EITC도입 이래서 위험하다

노동사회

EITC도입 이래서 위험하다

편집국 0 4,014 2013.05.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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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양극화에 따른 사회안전망 재편의 일환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에 대해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내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빈곤탈출효과가 별로 없는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이고 저임금 노동자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의견과 근로빈곤층에 대한 정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해서 여기 찬성 주장과 반대 주장을 함께 모아봤다. 노동사회 독자들이 EITC를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래는 EITC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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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TC는 미국에서 1975년 도입되었다. 기본적인 가정은 임금 즉 근로소득이 발생할 경우,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EITC가 특이한 점은 만약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도 동일한 공제비율을 적용해서 국가가 세금환급형식으로 근로소득이 있는 빈곤가족에게 돈을 준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복지제도와 달리 EITC는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세액을 공제해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EITC의 도입 목표가 노동유인을 높이고, 이에 따른 빈곤탈출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EITC는 점증구간, 평탄구간, 점감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점증구간은 일을 해서 소득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많은 세액을 공제해주는 구간이다. 평탄구간은 일을 해서 소득이 높아져도 받는 세액공제가 동일한 구간이다. 마지막 점감구간은 일을 해서 소득이 높아질수록 받는 세액공제가 낮아지는 구간이다

각 언론들은 한국의 근로소득보전제도를 국가가 저소득층에게 주는 ‘보너스’로 소개하고 있다. 미국의 EITC(Earned Income Tax Credit)를 기본 모델로 하고 있는 근로소득보전제도가 국가의 보너스라고 하니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보너스로 삭막한 삶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EITC가 삶의 오아시스가 될지 아니면 어두운 족쇄가 될지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EITC가 삶의 오아시스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EITC가 일하는 빈곤층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 둘째, 돈내기 싫어하는 국가가 자기 주머니 털어 돈 낸다고 하니 반갑다는 무조건적인 복지확대론 셋째, EITC를 통한 소득파악률 제고 등 EITC의 제도적 효율성론 넷째, 생산적 복지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것이 노동자·서민에게는 좋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현실론이다. 

최저임금제 약화, 빈곤탈출효과 빵점

EIT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빈곤층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EITC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은 절대빈곤층 뿐만 아니라 일하는 빈곤층, 비정규노동자의 빈곤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EITC는 일하는 빈곤층의 빈곤을 감소시키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에서 EITC로 인한 아동빈곤 감소효과는 조금 있었지만 전반적인 빈곤감소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EITC가 임금이 있는 즉 근로소득이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층 중에는 근로소득이 없는 사람들, 혹은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EITC는 이들을 제외하고 어떤 형식으로든지 간에 일을 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대상자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 따라서 빈곤감소효과가 그리 크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지급하는 금액과 지급하는 시기의 문제이다. 미국 EITC는 1년 평균 1,784 달러를 빈곤가족에게 지급한다. 미국 EITC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한 연구에 따르면 월평균 8만원 정도가 EITC로 지급된다. 8만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그 돈으로 과연 일하는 빈곤층의 빈곤탈출이 가능할까? 

또한 EITC는 1년에 한 번 지급된다. 나라에 따라서는 매달 지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국의 인프라를 고려할 때 1년에 1회 연말 정산 시 지급될 가능성이 크다. 근로빈곤층은 빈곤을 1년에 한 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경험한다. 따라서 EITC처럼 1년에 1회 지급했을 경우 빈곤층의 소득보장정책으로 의미가 없다. 

사실 이 정도 문제만 가지고 보면, EITC가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세 번째 이유를 듣는다면, 왜 EITC가 빈곤감소효과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바로 EITC가 최저임금을 높이지 않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과 EITC 급여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EITC 도입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압력이 낮아졌기 때문에 저숙련·저임금·불안정한 고용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는 미국 중위소득 50% 미만 인구의 빈곤률은 오히려 증대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여기에 최저임금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 EITC가 도입될 경우 유사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최저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적용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EITC가 도입되면 최저임금의 인상은 더욱 어려워질뿐만 아니라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제 적용은 어쩌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대략 윤곽이 잡혔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소득이 발생하면 EITC를 지급하지만, 실제 최저임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빈곤은 오히려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도 여전히 EITC가 빈곤 감소에 효과가 있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는가? 

EIT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EITC 때문에 국가의 재정지출이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정부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무조건적인 복지확대론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지금 한국 사회보장체계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일단 도입된 제도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제도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 정부 관료들, 제도 행정비용 때문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된다. 예컨대 지금 상황에서 한국의 수 많은 민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바꾸는 것이 쉽겠는가. 아마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EITC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 EITC를 통한 정부 재정지출에 눈이 멀어 버리면 노동자·서민의 입장에서 유용한 제도의 도입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EITC가 도입되면 소득파악률이 높아진다? 

EITC의 전제조건 중 하나는 바로 저소득층의 소득파악문제이다. EITC가 근로소득에 근거하기 때문에 저소득층 소득이 파악되지 않는다면, 실제 EITC는 작동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EITC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EITC를 통해 소득파악률이 높아질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이 EITC 급여 때문에 소득을 정확하게 신고할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그래서 “EITC는 소득파악률이 얼마 안 되는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 소득파악률을 높이자는 주장 자체에 대한 반론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득파악률을 높이는 것은 EITC의 전제조건이지 EITC를 통한 효과가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EITC의 급여가 높아야만 소득파악률을 높일 수 있다. EITC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이 커야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소득을 정확하게 신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월평균 8만원 때문에 자신의 소득을 정확하게 신고하는 집단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회의적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EITC 도입과 함께 ‘면세점’(법률에 의하여 과세를 면제할 때 그 기준이 되는 한도)의 인하가 동반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면세점이 너무 높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조세전문가들을 통해 이야기되어 왔고 실제 너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EITC 도입과 함께 논의되는 면세점 인하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보다 강력하고, 사실 그래야 EITC의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따라서 EITC를 통한 소득파악률의 재고보다는 면세점 인하의 효과와 맞물려 소득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아진다.

신자유주의 복지개혁만 있는 게 아니다

생산적 복지와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이 대세라는 측면에서 EITC가 생산적 복지의 성격을 가지지만 그것이라도 개혁적으로 수용하자는 입장이 있다. 생산적 복지와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은 세계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EITC만 두고 보더라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복지국가 체제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과 독일 등의 유럽, 심지어 일본에서도 EITC 형식의 제도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반면, 유럽 등의 국가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실업부조, 비정규노동자 등 저소득층노동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감면 제도, 주택수당 및 공공적 의료서비스 제공을 통해 빈곤문제와 저소득층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정도 역시 나라마다 다르다. 자유주의적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국민연금이 민영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이 대세이니 다른 대안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할 순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복지개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지, 혹은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할 때 누구의 입장에서 고민할 것인지이다.

저임금노동으로 몰아넣기 

특히, EITC의 경우에는 빈곤층을 항구적인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으로 몰아넣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기혼이냐 미혼이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다. 이는 미국 EITC가 부부합산소득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소득을 합했을 때, 점감 구간에 속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점증구간이나 평탄구간에 머물기 위해 자신의 노동시간을 단축한다

반면 일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던 사람들’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하는데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돌봐야 하는 아동 혹은 노인이 있거나 노동시장에 참여할 기술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미국은 빈곤층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정부는 AFDC(Aid Family Dependent Children)라는 공공부조를 TANF(Temporary Assistance for Needy Families)로 변경하면서 공공부조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평생 60개월로 한정했다. 또한 미국의 각 주들은 TANF를 받는 사람들의 50% 이상을,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자활 및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즉 아동이 있는 독신모라도 몸을 움직여 일하지 않으면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 AFDC에서 TANF로 변경되면서 공공부조를 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TANF와 EITC의 합동공격 속에서 일을 할 수 없던 많은 사람들은 꾸역꾸역 노동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미국의 노동시장상황을 고려할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임금·불안정노동일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은 스웨덴 등의 노르딕국가에 비해 저임금비율이 2배에 달하며, 시간당 1~10 달러의 저임금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비율이 1999년 기준으로 45.6%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EITC와 TANF가 확대됨에 따라 저숙련·저임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급격히 증가했다. 즉 EITC와 TANF가 노동능력 있는 빈곤층을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게다가 위스콘신주의 빈곤탈출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받는 임금은 실제 복지급여보다도 낮게 나타나고 있다. 결국, EITC와 TANF는 미국 빈곤층을 벼랑 끝으로 몰아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하라’고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미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참여정부는 작년에 ‘일을 통한 빈곤탈출’이라는 슬로건 하에 ‘선 고용지원, 후 복지제공’이라는 원칙을 제기한 바 있다. EITC가 도입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의 관계 조정문제가 당연히 발생한다. 이는 EITC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대상자가 중복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의 일을 통한 빈곤탈출이라는 슬로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들은 사회적 일자리이든, 자활이든, 저임금 노동이든지 간에 일을 먼저 해야만 하고, 국가는 이들에게 EITC만을 지급하게 된다. 결국 실제로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으로 몰아넣고 고착화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EITC와 최저임금제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의 손닿는 곳에 다른 대안이 있다

이것이 바로 EITC의 실체이다. 즉 EITC는 말처럼 일하는 빈곤층의 빈곤탈출이나 소득보장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저숙련·저임금·불안정노동으로 빈곤층을 몰아넣기 위해 도입된 것이며 그쪽으로 탁월한 효과를 낳고 있다. 그런데도 EITC를 찬성할 것인가? 

사실 이런 저런 문제점과 실효성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핵심은 과연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사회복지제도를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EITC가 미국식제도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의 시각에서 복지제도를 사고할 때, EITC가 노동자와 서민의 ‘배부르고 등따신 삶’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느냐이다. 우리에게 어떤 대안도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의 첫 번째 대안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을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제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대로 실행한다면 사실 EITC는 도입 자체가 불필요하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체계로서 ‘실업부조’를 새롭게 검토해 볼 수 있다. 실업부조는 실업보험, 한국식의 고용보험에서 주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장기실업자와 청년실업자의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한 정책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나라들에서 실업부조를 실시하고 있다. 실업부조가 실시되면 장기실업자와 청년실업자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언저리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하는 빈곤층의 생활보장이 가능해진다.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어쩌면 ‘다 좋지만 이건 현실 불가능한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하지만 EITC나 실업부조의 출발선은 동일하다. EITC의 도입에는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는 점, 월평균 8만원을 지급해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버금가는 예산인 3조원이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EITC 도입이나 실업부조 도입이나 어렵긴 매한가지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어떤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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