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에게 노동안전교육을!

노동사회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안전교육을!

편집국 0 3,319 2013.05.17 09:44

 

2004년 12월. 태국 여성노동자 6명이 노말헥산에 집단중독된 사실이 보도되면서 이주노동자가 놓여있는 작업조건을 세상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말초신경이 마비되어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중증중독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 노동자라면 과연 환기장치도 없는 작업실에서 심한 냄새를 참아가며 하루 12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시키는 경우도 드물뿐더러, 그런 조건에 놓이더라도 관리자에게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정 안되면 직장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언어적인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사업주에게 항의하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은 단지 그 때문만이 아니다. “당장 나가라!”라는 소리를 듣기 싫으면 묵묵히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으로 오기 위해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경우 직장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 결국 취급하는 화학물질이 뭔지 누구에게도 설명을 들을 수 없고, 직업병에 대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는 쓰러질 때까지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상시적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매우 열악한 노동안전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 3월 27일 부천 외국인노동자학교에서 진행된 산재매뉴얼 교육  - 출처:노동건강연대 ]
 
이주노동자 노동안전실태와 『노동안전매뉴얼』 작성 배경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에 발행한 「국내 거주 외국인노동자 인권실태조사」를 보면 이주노동자의 노동안전실태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산업기술연수생과 미등록노동자)의 3분의 1 가량이 산재경험이 있다. 한편 “산재보험으로 치료나 보상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는 47.6%나 됐다. 적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절반정도는 산재보험의 존재와 기능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열악한 환경, 불안한 고용조건 속에서 일하다가 산재를 당하면, 그마저도 제대로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부상요인으로 이주노동자의 34.7%가 ‘작업에 사용되는 기계·기구의 안전설비 미비’를 꼽았고, ‘본인 실수’는 17.7%, ‘동료노동자의 실수’는 17.0%라고 지적했다. 이 조사 결과가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주노동자들이 아주 불안전한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기계의 안전은 말할 것도 없고, 행여 ‘실수’가 있더라도 다치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 노동안전의 기본이다. 게다가 산재사고가 발생한 경우 회사에서 작업환경 개선 등 사후조치를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미등록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의 경우 산업재해 사후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이주노동자들의 환경은 안전에 관해서 일하는 사람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작업장 내 발언권이 매우 낮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다칠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조사에 따르면 입사 후 산재를 당할 때까지의 기간은 ‘1주일 이내’가 13.7%이고, ‘3개월 이내’가 56.5%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 입국한 이후 안전보건교육(작업장에서 어떤 유해인자가 있고, 그것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이주노동자가 73.1%에 이른다. 보고서는 “안전교육을 대충이라도 받았던 경우, 입사 후 산업재해를 당하는 기간이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던 경우보다 늦춰지고 있음을 드러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동건강연대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안전매뉴얼』을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교육을 진행하게 된 계기는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열약한 실태에 근거한다. 노동건강연대는 2004년에 노동안전매뉴얼 제작을 준비했고, 2005년부터 교육을 시작했다. 
 
“이런 책이 꼭 필요했어요”
 
과거에 노동부, 산업안전공단이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매뉴얼』을 여러 나라 언어로 발행한 적이 있고, 이는 2005년 1월에도 산업안전공단 홈페이지에 소개됐다. 노동건강연대가 작성한 『노동안전매뉴얼』도 안전수칙 등을 보면 공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차이점 분명하다. 이주노동자 입장에 얼마나 다가가려고 했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노동안전매뉴얼』은 사회운동단체들 사이에서도 처음 제작된 것이다. 이주노동자지원단체들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일반에 관한 매뉴얼을 제작하고 교육을 실시한 경험이 있었지만, 노동안전보건에 한정한 교재와 교육은 한 적이 없었고 노동안전단체들도 특별히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교재를 개발하지 않았다. 
 
이 매뉴얼의 내용 중에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말’을 소개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손 빼” → “Son Pae”(Remove your hand) 
 
이런 식으로 매뉴얼은 작업상 필요한 말과 그 발음, 의미를 소개하면서 실용성을 고려했다. 이 노동안전매뉴얼을 교재로 실시한 교육의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몸이 아픈 것조차도 사업주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안전한 작업을 요구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구하지 못할지라도 노동의 권리를 전혀 모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은 대단한 차이다. 필요하면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싸울 수 있는 것을 알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얻었다는 표정으로 교육장소를 나간다. 
 
『노동안전매뉴얼』은 현재 영어, 방글라데시어,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한 번은 교육 때 통역을 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가 “이러한 책이 꼭 필요했다.”며 스스로 번역해서 친구들에게 배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어떤 이주노동자지원단체는 자기 지역에 있는 러시아 사람을 위해 번역을 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아직 미흡한 점이 있는 교재지만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으면 한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삶은 우리 사회의 거울
 
교육은 노동건강연대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가 함께 실시한다. 이주노동자의 모임을 조직하고 있는 지원단체에서 교육 자리를 준비하고 노동건강연대가 강사를 파견한다. 지원단체 이야기에 따르면 요즘 소위 ‘불법’이라고 불리는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심해서 모임이 잘 안 된다고 한다. 고용허가제를 위한 정부의 단속강화는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하는 실천들도 짓누르고 있다. 
 
이전에는 노동사무소에 상담하면 임금체불 같은 경우는 미등록이든 등록이든 이주노동자 신분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 해결됐는데 요즘 노동사무소에 가면 우선 “불법”인지 “합법”인지 묻는다고 한다. 위축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사무소에조차 민원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그것을 알고 임금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다가 1개월마다 해고하고 새로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반복하는 사업주가 있다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당하는 불이익을 제대로 시정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 전체적인 노동조건 향상도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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