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된 ‘정당의 실천’이 필요하다

노동사회

집중된 ‘정당의 실천’이 필요하다

편집국 0 2,920 2013.05.17 09:31

4월 국회가 가까워져 오면서 민주노동당도 안달이 났다. 비정규 정부법안을 저지하고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권리보장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표도 세웠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독도’도 지키러 가야하고, 다른 상임위원회 일들도 많아서, 몸도 잘 안 따라준다.

sgjo_01.jpg
[ 지난 2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사무실을 점거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관계자들   -출처:매일노동뉴스 ]

울며 죽느냐 욕먹고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더구나 2월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행사했던 민주노동당은 막판에 “4월 국회 심의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여야와 약속하고 ‘농성’을 풀었다. 따라서 이제 무작정 심의에 반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심의에 참석하면 결과는 뻔하다. 여당과 한나라당이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해 정부안을 일부 수정하는 ‘대체안’이 표결에 붙여지고, 민주노동당은 ‘무기력하게’ 반대표를 던지는 그림이 그려진다. “아, 우리 실력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일까” 자조하며, “다음에 한 판 더 붙자”며 울분만 삼킬 판이다.

처리 직전에 상임위를 다시 점거하는 등 물리력을 동원해 처리를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물리력을 동원해도, 여당과 한나라당이 처리에 합의하면 막는데도 한계가 있다. 회의장을 옮겨서 처리할 수도 있고, 의장이 경위권을 발동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힘들게 싸우다 전사해도 민주노동당은 비난의 화살까지 맞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도 있다. “심의까지 같이 하고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절차적 민주주의까지 무시하며 물리력을 동원하는 폭력집단”이라고 여당과 한나라당이 작정하고 비난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국가보안법 결사저지’에 나서며 법사위원회를 점거한 한나라당은 여론 펀치를 맞아도 견딜 수 있는 맷집이라도 있지만, 민주노동당은 그럴 만한 체력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그림자가 민주노동당에도 그대로 덧씌워지면 당은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당은 민주노총 대대에 관한 성명에서 “대대장을 무단 점거해 가로막은 폭력행위는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는데, 어쩌면 그 비판이 그대로 당에게 되돌아 올 수도 있다. 이래저래 고민이다.

민주노동당의 전술, 공론화로 ‘승부’ 걸기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이 모든 그림들이 현실화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볼 때 선진사회협약, 노사관계 로드맵 등의 논의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4월 국회에서 비정규 정부법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여당이 2월 국회 때처럼 끝까지 ‘쇼’를 하다가 끝내 강행처리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요구도 강하고 여당 의지도 강한데다 한나라당도 처리키로 합의한 마당인데, 가능성이 높으면 높았지 어떻게 낮을 수 있냐”는 이의를 제기해도 좋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지형과 노사정간의 정황, 각각의 힘 관계 등을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 그렇게 판단한다. 정보 부족으로 오판했을 수도 있고, 다양한 변수들이 결합되면서 5월초 본회의 시점에서 결과적으로 ‘틀려버릴’ 수도 있다. 이 분석이 맞는지 틀릴지는 5월초에 판가름난다. 현재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다만 이 글은 일단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전제로 풀어가고자 한다. 세상 모든 일이라는 것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대응도 느슨해진다. 이렇게 되면 통과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 거꾸로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 대응력도 단단해지고 전술도 치밀해진다. 저지할 힘이 더 세지고, 실제로 통과 가능성을 낮추게 된다. 대부분의 전술은 그래서 ‘최악’의 순간까지 상정하고 짠다. 민주노동당도 항상 최악의 순간을 그리며 전술을 짰다.

민주노동당은 최근 전술을 바꿨다. 현재까지 해 온 정부법안 저지 중심에서 벗어나 정부법안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법안에 대한 지지 여론을 일으키겠다는 ‘공세적’ 전술이 그것이다. 이른바 공론화 전술이고, 다른 말로는 ‘꽃놀이 패’ 전술이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는 지난 17일 “정부 스스로 정부안을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부르는데 실제 보호법인지 양산법인지 가려보자”며 여야에게 공개토론을 요구했다. TV토론도 좋고, 어떤 토론도 좋다는 것이다. 많이 하고 시끄러울수록 좋다. 비정규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까지만 끄집어내기만 하면 ‘비정규 차별’을 싫어하고, ‘파견제라는 중간 착취 제도’를 기피하는 국민 여론은 당연히 민주노동당 편에 선다는 계산이다.

민주노동당은 이 공론의 장에서 정부법안은 비정규 양산법이며, 진짜 보호법은 양대 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준비해 단병호 의원이 발의한 ‘비정규 권리보장 법안’이라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겠다는 것이다. 목표는 정부법안 철회와 권리보장법 입법화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 △비정규직 사용 시 사유제한, △파견제 폐지, △최저임금을 노동자평균임금의 50% 수준으로 법제화하는 것 등 민주노동당의 대안을 널리 알리고, 정부법안과 비교를 통해, 정부법안을 보호법이라고 착각해온 국민들이 ‘짝퉁’과 ‘진품’을 가려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각 정당에 토론을 제안했고, 각 방송사에도 토론의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공론화 전술이 갈 수 있는 두 가지 길

이 제안에는 두 가지 정도의 2차 시나리오가 뒤따른다. 각 정당들이 수용할 때와 하지 않을 때가 그것이다. 먼저 각 정당들이 토론 요구를 수용하면, 토론장에서 열심히 법안을 비교해가며 정부법안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민주노동당 안을 설명하면 된다. 논리와 기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준비만 열심히 하면 별다른 어려움도 없다.

토론에서는 ‘말 빨’ 센 사람이 이긴다. 승리할 만한 선수도 얼마든지 있다. 노회찬 의원 같은 자타가 공인하는 ‘토론 선수’도 있고, 권영길 의원 같은 비록 초선이지만 중량급 인사도 있으며, ‘영원한 노동자’ 단병호 의원 같은 상징적이 인물도 있고, 역시 말 빨도 좋고 노조도 잘 아는 심상정 의원도 있다.

공론화만 성공하면 여론을 등에 업고, 4월 국회 심의과정에서도 법안 개정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세간의 이목이 비정규 문제로 집중되고 여론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노동계 투쟁에도 힘이 실리고, ‘잘 하면’ 정부법안까지 철회하게 만드는 ‘사건’까지 일으킬 수 있다.

행여 ‘항복 선언’인 철회까지는 못 시키더라도 정부여당으로 하여금 법안 내용에서 대폭 후퇴하도록 하는 전리품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회 대부분 논의 과정에서 소외돼 왔던 민주노동당은, 이 과정에서 ‘노동’ 문제에서만큼은 교섭단체와 동등한 ‘시민권’을 획득하는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이 전술을 잘만 활용하면 명분과 실리를 다 살리는 즐거운 경험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정당들이 수용하지 않을 때에는? 민주노동당은 이때부터 “정부여당은 대화 의지가 없다”고 몰아세우는 여론 전쟁을 시작한다. “보호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지레짐작 겁먹고 안 나온다”거나 “국회 안의 수만 믿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어둡게 만든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우리는 노동자를 대표해 이렇게 간절하게 대화를 요구했는데도, 보수여야는 노동자를 모두 비정규직 만들고 중간 착취하는 법을 강행하고 있다”고 이리저리 마구 떠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선동’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면 4월30일 재·보선을 앞두고 바짝 여론에 신경 쓰는 보수여야가 법안 처리를 다시 유보할 수도 있고, 유보하지 않더라도 노동계 의견을 대폭 수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리는 당장 못 챙겨도 저지할 명분은 축적된다.

sgjo_02.jpg
[ 지난 달 17일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비정규법안 공개 토론회를 제안한 바 있따.  - 출처:매일노동뉴스 ]

정부여당이 정말 겁내는 건 ‘노정관계 파탄’

하지만 이처럼 소수정당 민주노동당이 ‘꽃놀이 패’를 쥐고 흔들 만큼 거대정당과 정부가 호락호락할지 의문이다. 또 민주노동당이 비정규 문제의 공론화를 추진할 적극적 자세나 객관적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도 스스로 따져볼 일이다.

정부(노동부)의 의지와 신념은 놀랄 정도로 단호하고 흔들림 없다. 정부는 자신들이 만든 정부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라는 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반대에 대응하는 논리도 있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 정부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규직 대공장 이익만 대변하는 집단’의 이기적인 반대행위를 물리치고, 4월 국회에서는 반드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도 법안 내용에 대한 인식에서는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여당은 ‘표’를 먹고사는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정부보다 정치적인 고려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또 노사정 대화 등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도 추진해야 하는 처지에서, 비록 양대 노총이 대기업 정규직을 주로 대변한다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현실적인 조직과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비정규법 한 건 강행 처리하고 노정관계가 파탄 나는 그림은, 이들로서도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것이다.

여당은 이 때문에 2월 처리를 하지 않았다. 결국 민주노동당의 ‘환노위 점거’가 법안을 저지한 것이 아니라 양대 노총의 ‘정치력’과 ‘투쟁력’이 결정적으로 법안 처리를 저지한 것이다. 물론 이 때는 한나라당이 법안처리에 반대한 점도 주요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그 이유는 2월 국회 막바지에 4월 처리 합의에 도장을 찍으면서, 대체로 제거됐다.

따라서 여당 입장에서 볼 때 법안을 처리할 결정적인 시기는 양대 노총을 설득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합의까지는 못 가더라도 노사가 어느 정도까지는 의견이 조율되는 정도”(이목희 의원)에서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여당으로서는 최소한 양대 노총의 ‘묵인’ 사인정도는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로서 여당은 민주노동당과 직접 상대할 이유가 별로 없다. 양대 노총 만나기도 바쁘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최근 정보 수집력과 접근력이 떨어지는 등 양대 노총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서 ‘왕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양대 노총과 ‘찰떡 공조’해 한 몸처럼 움직일 때는 민주노동당이 변수라기보다는 ‘양대 노총=민주노동당’이 한 덩어리가 돼야 주요 변수가 된다. 이렇게 되면 여당은 양대 노총의 정치적 대표체로서 민주노동당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지난 2월 국회 상황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달라졌다.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지도력’이라…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비정규법을 다루자고 제안했고, 한국노총이 경총과 법안 협상을 진행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서 있는 자리는 어색하다. 여당도 이러한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미 여당은 양대 노총과 직접 물밑 대화를 깊숙이 진행하는 등 부지런히 파고드는 중이다. 이미 그 작업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까지 여당이건 양대 노총이건 한나라당이건 누구도 ‘꽃놀이 패’를 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갈 경우 여당이 ‘꽃놀이 패’를 쥐고 흔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이 작업이 거의 완료되는 시점이 여당이 비정규입법을 처리하는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4월일 수도 있고, 6월 임시국회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민주노동당은 여론 지지도 10%대를 유지하는, 정치하는 정당이다. 현금을 다 써도 비상시에 꺼내 쓸 결정적인 ‘신용카드’가 남아있는 것이다. 바로 당이 밝힌 ‘공론화’ 카드가 그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자신들이 세운 전술대로 정치력을 발휘해서 공론화 전술을 실현할 경우에는 민주노동당은 여당 전술에 실질적인 제동을 거는 세력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이 정도 되면 양대 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지도력’과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부여당과 자본을 향해 본격적으로 ‘맞짱’을 뜰 수도 있다. 전세가 역전되는 것이다. 이는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에게 가장 좋은 그림이 그려진다. 이는 동시에 정부와 보수정당, 자본에게는 최악의 순간을 뜻한다.

립서비스 말고 제발 ‘정당의 실천’을 보여다오! 

민주노동당은 현재 10명의 의원을 가지고 10%대의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군소 정당이다. 9석의 민주당은 집권 경험이라도 가지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은 원내진출한지 갓 1년 밖에 안됐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해 세상 사람들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됐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식상해지자 언론들도 발길을 돌렸다.

이런 객관적 상황에서 당이 밝힌 비정규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원단이 전부 매달리고, 당 지도부와 당직자들, 당원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녀도 쉽지 않다. 여기가 유럽이라면 좀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동문제는 아직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열심히’ 안 한다. 요즘 당은 입만 열면 ‘비정규’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이게 ‘립 서비스’가 아닌지 의문이다. 비정규 문제로 ‘맞짱’을 두자고 의기양양하게 각 정당들에게 도전장을 던지고서는 엉뚱하게 ‘독도’ 지키겠다며 배타고 떠났다.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정당인지 시민단체인지 모르게 기껏 한다는 것이 ‘장외 집회’ 계획만 줄줄이 잡아 놨다. 집회 자주 한다고 여론이 움직일 것이라는 발상은 다른 수단이 별로 없는 노조나 단체들이 주로 활용하는 방식이지, 정당이 주로 쓸만한 방식은 아니다.

그나마 당에 영향력을 지닌 의원들도 각자 상임위원회의 덫에 갇혀 산다. 누구 하나 다른 정당 의원들을 만나 “토론에 나오지 않으면 재미없을 것”이라고 협박하거나 “나오면 좋은 것 준다”고 진지하게 꼬드기는 이도 없다. 당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질 하는 ‘열성당원’들도 정파 놀이하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정부법안은 비정규 양산법, 속지 말자”고 인터넷 사이트 돌아다니며 ‘펌 질’하는 당원들도 매우 드물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계속 이렇게 나오면 4월 처리는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갈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정황만으로 봐서도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변수가 아니며 4월 처리 가능성은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로 진행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좋은 그림이 아니다. 코앞의 4월, 민주노동당이 정말로 비정규법안을 가지고 ‘맞짱’을 뜨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독해질 필요가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