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실천을 위한 ‘우회로’ 혹은 ‘정공법’

노동사회

산별노조 실천을 위한 ‘우회로’ 혹은 ‘정공법’

편집국 0 3,351 2013.05.17 09:28

기아차 채용비리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폭력 무산 이후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구조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깊어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이루어진 민주노총의 자체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절반 이상의 단위노조 활동가들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산별노조를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동안 산별노조는 하나의 ‘담론’에 머무른 감이 있다. 

그러나 2003년 금속노조의 단체교섭 성사, 2004년 보건의료노조의 역사상 최초의 산별총파업 성사 등은 산별노조를 ‘담론’에서 ‘현실’의 의제로 바꾸어 놓았다. 더군다나 2007년부터 적용될 예정인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를 포함한 ‘노사관계 로드맵’과 맞물려 산별노조에 대한 관심과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부족할 테지만 산별노조 건설을 실천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왜 ‘산별노조’인가 

어떻게 보면 산별노조는 조직 형식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굳이 산별노조를 대안이라고, 그것도 ‘절박하게’ 제기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산별노조는 기업단위 노동조합에 비해서 노동자 계급을 포괄적으로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기업별 체계 하에서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11%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틀이라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 노동자인 미조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둘째, 산별노조는 임금인상 중심의 단기적 실리주의를 뛰어넘어, (산업차원에서) 포괄적 의제를 다룰 수 있다. 기업별 노조 체계 하에서는 사실 임금인상 이외에 제기할 수 있는 의제가 그다지 많지 않다. 반면 산별노조에서는 비정규직의 문제, 직업훈련의 문제, 최저임금의 문제,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해준다. 

셋째,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에 비해 ‘노동 내부의 평등’과 ‘노동 내부의 연대’를 달성하기에 유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노동운동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자와 빈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산업과 내수산업의 양극화만 심화된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 사이의 양극화도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확대로 인해 정규직 노동자를 향해 정서적 불신감이 형성되는 것은 그 이유 여부를 막론하고 인지상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산별노조는 노동 내부의 평등과 노동 내부의 연대를 확산하기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산별노조는 조직, 교육, 홍보, 정책연구 등에 있어서 영세성을 극복하고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 기업별 노조 체계로 인한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런데 산별노조의 의미를 위와 같이 △노동운동의 계급적 대표성 회복 △포괄적 의제 설정 △노동 내부의 연대를 통한 노동 내부의 양극화 극복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산별노조라는 ‘조직형식’ 그 자체가 아니라 ‘산별적 가치’가 아닐까 한다. 즉 아직 산별노조가 아닌 상황일지언정 산별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들은 그 자체로 산별노조 건설 ‘운동’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싼 ‘구조적 난관’ 

나는 노동운동 일부에서 제기하는 ‘산별노조 무용론’에 대해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노동조합 운동이 산별노조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일본처럼 몰락하게 될 개연성이 몹시 높기 때문에 산별노조의 전환은 노동운동의 명운을 건 ‘절박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앞에서 구태여 대부분 활동가들이 잘 알고 있을 ‘산별적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 늘어놓았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산별노조 건설을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때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실질적 ‘이행경로’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산별노조의 이행경로를 고민함에 있어서 ‘지금 현재’,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산별노조 건설을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 난관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잠시 유럽 산별노조의 건설과정과 분권화 경향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유럽에서 산별노조는 산업의 집중, 노동의 반(半)숙련화가 수반되는 ‘산업화’의 역사적 산물로서 등장했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지배적이었던 직업별 노조는 20세기 초반으로 넘어오면서 결국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 유럽의 전형적인(?) 산별노조라고 할 수 있는 ‘중앙집중적 산별노조’가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집중적 산별노조는 1970년대부터 산업구조의 다양화라는 변화된 환경으로 인해 소위 ‘교섭의 분권화’라는 것을 겪게 된다. 산업단위 교섭과 기업단위 교섭이 상호 보완적인 역할로 재조정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유럽의 사례와 비교해서 유추할 수 있는 한국의 산별노조 건설에 직면한 구조적 난관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현실은 ‘압축산업화’로 인해 노동운동 주체의 대응보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압도적으로 빠르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 산별노조가 건설되던 18세기 말~19세기 초의 ‘경제사적 단계’는 한국으로 치자면 중화학공업화가 급진전되던 1980년대 초·중반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이 단계를 약 20~40년에 걸치면서 노동운동 주체가 직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할 수 있는 조직적·정서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동조합 운동의 본격적 등장(1987년)과 민주노총이 출범(1995년)할 시기에 이미 산업구조가 ‘분권화’되는 추세로 반전된 것이다. 이는 산별노조 건설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컸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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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산별노조는 ‘산업구조의 동질성’ 강화에 따른 ‘노동의 동질성’ 강화 경향이 존재할 때 건설하기 용이하다. 반면, 산업구조가 다양화되고 이에 따라 노동의 ‘이질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존재할 때에는 조직의 원심력이 작동하여 내부적 저항에 직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노동의 이질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뎌 보일 수 있지만 구체적이고 가능한 길들

그런데 이렇게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과 구조적 제약조건에 대해서 살펴보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산별노조의 ‘필요성’과 ‘구조적 제약조건’은 상호 모순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노동조합운동의 대표성이 취약하고, 노동내부의 양극화에 대한 소극적 대응을 극복하기 위해 산별노조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정작 산별노조 건설을 조직적으로 추진함에 있어서도 역시 동일한 이유로 ‘구조적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에서 산별노조를 실천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 산별노조의 이행을 촉진하는 ‘제도적 유인구조(Incentive Mechanism)'를 설계하고, 둘째, 산별노조의 이행경로를 염두에 두며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점진적’ 실천 방법들을 고안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산별노조 이행이 왜 노동운동의 몰락과 재건 여부를 판가름할 정도로 절박한 사안인지를 모든 활동가들이 공감하도록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입각해서 지금의 조건에서 실천이 가능한 어쩌면 산별노조 건설의 ‘우회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사회적 교섭’을 통해 산별노조 건설에 유리한 제도적 지형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교섭은 미조직 89%의 대표성 반영, 포괄적 의제 설정 가능, 노동내부 양극화 극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산별노조의 ‘본질적 취지’에 부합할 수 있다. 물론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타결 내용은 근로자파견제, 정리해고제 등을 내주고 민주노총 합법화, 전교조 합법화 등을 받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비정규직의 확대에 기여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는 비정규직·중소영세 노동자들로 하여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적 교섭에 대해 ‘근거 있는’ 근원적 불신을 조성하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은 하나의 ‘교섭 형식’에 불과하다. 의제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비정규직을 위한 교섭이 될 수도 있고, 비정규직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교섭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사회적 교섭 틀을 이용하여 산별 직업훈련제의 도입, 산별 기업연금제의 도입 등을 통해 산별노조에 우호적인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현재 가능한 수준부터 부분적인 공동실천 방안을 모색하고 결의하는 것이다. 예컨대 언론노조가 독립적 기관지로 운영하고 있는 『미디어오늘』 같은 사례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같은 경우에도 『금속노동자신문』(Metallarbeiterzeitung)이라는 기관지를 금속(산별)노조가 ‘설립되기 전부터’ 발간하였다. 이는 조합원들의 ‘산별적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며 이후 각 지역별로 분산된 노조가 산별노조로 통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셋째,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실천방안은 산별노조로 ‘이행하기 전에’, 산별기금을 적립하는 것이다. 산별노조의 핵심은 교섭권의 집중과 함께 재정을 집중하는 것이다. 재작년 현대자동차에서 산별전환에 관한 조합원 총투표를 했는데 조합원의 과반수는 넘었지만 2/3가 안돼서 부결된 적이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산별전환에는 이르지 못했더라도 실제로 조합원 과반의 의지를 담아낼 수 있는 조건이라면, 노조 집행부가 의지만 존재한다면 산별노조의 ‘우회로’ 차원에서 ‘산별차원의 미조직·비정규 기금’, ‘산별투쟁기금’, ‘산별정치기금’ 등의 출자를 여타의 대기업노조에게 공동 제안해서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산별노조로 ‘조직형식’을 한꺼번에 전환하는 것은 조합원 2/3의 결의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기금의 설치 및 출자는 조합원 1/2의 동의만 구해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산별로 조직 전환을 함에 있어서 ‘이행기’를 설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업별노조의 역사를 갖고, 산업화시기에 진행된 유럽의 경우도 산별노조 전환을 위해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의 기간을 필요로 했다. 기업별 노조의 틀이 고착화된 한국적 현실에서 산별전환은 ‘낯선’ 그 무엇이며, 특히 대기업 노조의 입장에서 볼 때 쉽게 신뢰할 수 없는 상부조직에다가 ‘모험적 투자’를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별노조로의 이행 그 자체는 과감하게 할지언정, 전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근거 있는’ 불안감에 대해 완충장치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산별전환 3개년 계획 혹은 5개년 계획 등을 설정해서, 예컨대 1년차는 공동노보, 기금적립, 조합원 교육, 1단계 재정집중을 실시하고, 2년차는 산별 단협 쟁취, 현안에 대한 공동정책연구, 2단계 재정집중 등을 실시하고 3년차에 산별교섭 실시, 산별전환 완료 등의 마스터플랜을 짜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재정의 중앙 집중만큼은 비록 단계적이되, 처음부터 실시한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산별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산별 미조직·비정규 기금, 산별투쟁기금, 산별법률기금, 산별정치기금 등에 대해서, ‘결정은 올해 하고, 시행은 내년부터’ 하는 방식으로 우회하되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는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침몰하는 기업별체제, 뛰쳐나가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금 구조적 위기에 빠져있다. 한편으로는 활동가 재생산 구조의 붕괴 혹은 고령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별 노조로 인해 노동내부의 양극화에 대응하지 못하며 민심이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 역시도 노동운동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처럼 노동운동의 ‘몰락’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에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단위사업장 복수노조가 허용될 전망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들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산별로 전환될 가능성이 그나마 존재한다면, 몰락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공감대와 2007년의 변화와 같은 ‘외부적 충격’ 그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것이 노동운동의 몰락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아닐까하는 우려마저 들 때가 있다. 물론 이는 기우일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타고 넘는 한국노동운동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