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산재보험과 팍팍해지는 산재노동자의 삶

노동사회

거꾸로 가는 산재보험과 팍팍해지는 산재노동자의 삶

편집국 0 4,966 2013.05.17 09:25

최근 들어 산재보험과 관련한 소식들이 언론에 많이 오르내린다. 열린우리당이 산재보험과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의료비심사평가체계를 일원화하겠다고 나선 것에서부터 “산재노동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하다. 나이롱 환자다”라든지 “산재의 원인이 음주 때문이다”, 심지어 “현장에서 안전모 등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주장들까지, 정말 다양하다.

이런 얘기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현장에서 일하다가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이 상당히 문제가 많고 파렴치한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산재노동자들이 거짓으로 날짜를 부풀려가며 치료를 받고 허구 헌 날 술 마시고 일해서 사고가 빈발하며 회사측은 안전을 철저히 지키려 발버둥치는데 노동자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현실이 그런가? 대답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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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자들   -출처: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

갈수록 어려워지는 산재승인

얼마 전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노동자 한분이 찾아 왔다. 현장에서 그라인더를 이용하여 사상작업을 하던 중 그라인더에 손가락이 말려들어가 손가락이 골절되고 변형되어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인데, 회사 날인을 받고 산재요양신청을 했으나 불승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승인된 이유가 희한했다. 목격자 진술이나 병원 진료기록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재해 사실은 인정하나 신청상병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 3인 모두 재해와 상관없는 진구성 골절(이미 이전에 골절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소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 노동자에게 사고경위를 듣고 근로복지공단 결정사항을 들여다보니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이례적인 결정에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당사자의 서류들을 자세히 검토하다 보니 어느 정도 짚이는 구석이 나타났다. 회사측에서 제출한 자료에서 “사고를 재현해 보면 그라인더에 장갑 두 켤레를 낀 손가락이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등으로 사고사실을 부정했던 것이다. 산재보상보험법 제100조, ‘사업주의 조력’ 조항이 실로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상담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현대중공업 노동자가 왔다. 현장에서 스테이지를 타고 그라인더 작업 중 팔꿈치가 부딪혀 팔꿈치 골절과 인대파열을 진단받고 산재를 신청했으나 역시 불승인을 받았다. 불승인 사유는 “사고 시간에 대한 진술이 다르고 근로복지공단 자문의가 급성 재해가 아닌 진구성 골절로 보아 사고와 무관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역시 상담자가 가져 온 자료를 살펴보니 회사측에서 제출한 자료에 “항상 산재를 내려고 계획적으로 준비한 자로 보여짐”이라고 쓰여 있는 등 산재신청에 불리한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두 사례 모두 공단 자문의의 ‘알 수 없는’ 소견과 회사측이 치밀한 방해 행위가 확인되었다. 이전 같으면 아주 예외적으로 생기는 경우들이 최근 들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산재결정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공단은 강화된 자문의의 권한을 이용하여 너무나 손쉽게 불승인을 남발하고 있다. 작업 중 사고의 경우 사고와 상병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만 인정하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현실에선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본인과 목격자의 진술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사측에서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지어 사고를 인정하더라도 병명과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회사측이 산재승인에 대해 적극 항의한다는 이유로 불승인을 당하고 있다.  

망가진 몸과 마음을 갖고 떠밀려 다시 현장으로 

장기간 단순 반복작업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취급하는 노동자, 혹은 노동강도가 강화되어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여 아픈 노동자들이 있다. 주변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지만 당사자는 새벽 통증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병원에 가면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병명을 진단 받는다.

대부분 뼈와 신경, 인대, 혈관계통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서 작업내용과 작업사진, 의사소견서 등 빽빽하게 자료를 준비해서 공단에 제출한다. 산재보상법에 정해진 7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고 주위의 눈총 받아가며 병원치료를 받는다. 어느덧 한달, 두달, 석달이 지나면 통보가 온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 조였는지…, 태어나서 그렇게 가슴 조이기도 드물다. 

그런데, 불승인이다. 운이 좋아야 일부 승인이다. 하늘이 무너진다. 그동안 요양한 기간동안 임금과 치료비 한 푼 못 받고 앞으로 치료받을 날도 많은데 어쩌란 말인가? 가슴이 답답해 온다. 가족들 얼굴이 차례로 떠오르고 세상이 막막해 진다. 그동안 모아 둔 돈도 없고 그나마 약간 모아둔 돈도 바닥난 노동자는 아픈 몸으로 복귀를 한다. 하늘이 노랗다. 매일 집에 와 찜질하고 부황 뜨면서 정말 전쟁 같은 노동을 감당해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노동력을 상실한 노동자로 변해 가는 것이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다행히 어려운 시험 겨우 치러내고 산재승인을 받는 것이다. 가슴 조이던 가족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이제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 밝은 마음으로 치료를 받고자 다짐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부른다. 의사도 아닌 원무과 산재담당자가 부르는 경우가 더 많고 무섭기도 더 무섭다. 불러서 “공단에서 종결 얘기가 나온다. 이 달에는 연기를 하고 다음에 봅시다.” 한 달 뒤 또 원무과 직원이 부른다. “공단에서 자꾸 종결 얘기를 한다. 나도 이제 견디기가 어렵다.” 다행히 종결하라고는 않는다. 다음달 또 부른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종결통보 내려 왔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아, 당사자는 아직도 아픈데. 다 낫지도 않았는데.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병원과 공단에 항의한다. 그러면 공단은 특진을 가보라 한다. 산재보상법에 보장된 병원 선택권을 노동자에게 설명해 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병원을 공단이 정하고 가라 한다. 그래도 간다. 앉아서 당할 수는 없으니. 하지만 결과는 “증상고정이니 종결하시오”이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이제 산재노동자는 팽팽 돌아가는 현장으로 당장 돌아가야 한다. 두렵다. 아직 아무런 준비도 돼있지 않고 몸도 성치 않은데 당장 내일부터 10시간씩 일하고 특근, 철야해야 한다.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현장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공단은 재활프로그램을 한다고 난리법석이지만 산재노동자는 받아 본 적이 없다.

mhhyun_02.jpg경총과 노동부의 산재노동자 완전 소탕작전

이렇듯 아픈 노동자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병원과 공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짤려 재활프로그램 그림자도 못 보고 팽팽 돌아가는 사업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이 나라 사회보장제도인 산재보험제도의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는 부류들이 있다.

바로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경총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모든 산재노동자를 ‘나이롱 환자’ 혹은 도덕적으로 해이한 노동자로 규정한다. 노동자가 아프다하면 꾀병이고, 자연적인 퇴행성이고 치료를 연장하려하면 휴업급여(평균임금의 70%)를 노린 사기꾼들의 치밀한 작전쯤으로 생각한다. 집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옮기려면 요양연기를 목적으로 한 불순한 전원이라고 매도한다. 치료 중에 추가로 병이 확인되거나 생겨 추가상병을 신청하면 치료기간을 연기하기 위한 행위로 본다. 이전에 다쳤던 부위가 재발되어 재요양을 하려하면 일하기 싫어 공짜로 급여를 받으려는 파렴치한 정도로 바라본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 같이 주장한다.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산재 관련 지침들을 더욱 엄격히 하라.”

 그래서 작년 노동부는 신속하게 근골격계 처리지침을 만들어 근골격계 질환자들을 울리더니 이번에는 산재보상법의 취지를 무시하는 내용의 요양업무처리지침을 내 놓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경총은 더 목소리를 높인다. 산재노동자가 도덕적으로 해이한 것은 단체협약 상의 생계비보조, 부가급여 때문이니 경총 소속 기업들은 산재노동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 사항을 파기하거나 개악하고 치료 중인 산재노동자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서 최대한 짧은 기간만 치료받도록 하고 바로 복귀하도록 해라. 만약 복귀가 어려운 산재노동자들은 퇴사를 유도하거나 안 되면 잘라버리라고. 

그래도 성이 안 찬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산재노동자들을 매도하는 작전도 대대적으로 벌인다. 작년 국정감사 때 산재발생원인이 ‘노동자들 음주’ 때문이라고 난리를 떨더니 노동부는 안전모 등 보호구를 지급했는데도 착용하지 않은 노동자에 대해 과태료를 매기겠다고 한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에겐 솜방망이를 갖다대면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열린우리당은 작년 국정감사 때 음주논란 이후 바로 산재보험 진료기간과 진료비가 터무니없이 길고 높다며 언론을 동원하여 호들갑을 떨더니 올 4월 임시국회 때 건강보험, 산재보험,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일원화하겠다고 난리다.

이 모든 공격들의 목표는 뚜렷해 보인다. 산재보험료를 절감하고 기업의 사회적 임금을 축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산재노동자 보호조항을 폐기시킨다. 산재발생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전담시키려는 것이다. 산재보험제도를 민영화시키려는 것이다. “산재보험 사전승인제를 폐지하고 선진료 후평가하라. 협소한 산재인정기준 폐기하라. 재활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산재노동자 원직장 복귀를 추진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인 산재보상제도의 개혁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억지도 그런 억지들이 없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우습게 보지 마라!  

산재노동자들은 높디높은 산재진입장벽과 씨름하면서 한번 홍역을 치르고, 그 다음 쉽게 호전되지 않는 병과 갑자기 찾아오는 종결통보에 휘청거리고, 산재요양하기 전과 전혀 변함 없는 노동현장에 아무런 재활치료 없이 복귀하여 몸을 혹사하고 떨어지지 않는 통증과 싸운다. 산재요양 시 생계비는 항상 쪼들렸고 왜 그리도 산재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는 많은 지…. 정말 이 땅의 산재노동자들은 산재 한번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병들고 지쳐 버린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많은 노동자들이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도 계속된다. 그래도 명색이 ‘사회보장제도’인 산재요양을 한 것인데! 

하지만 산재의 원인 제공자인 자본과 정부는 애써 모른 척하고 오히려 산재노동자의 고통 위에 이윤의 천국을 지으려 한다. 산재보상제도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산재보험을 민영화하여 자본의 논리에 완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맡기라 한다. 그러기에 노동자의 건강과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자본과 정부에 맞선 투쟁은 지극히 정당하며 절실한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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