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노동자를 기억하라!

노동사회

죽은 노동자를 기억하라!

편집국 0 3,844 2013.05.17 09:24

4월28일이 세계적으로 산재사망자를 추모하고, 작업장의 안전과 보건 확보를 위한 기념의 날이 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하지만, 북미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1989년 캐나다 노동운동은 법적으로 4월28일을 ‘추모의 날’로 정하도록 하였으며, 미국 노총(AFL-CIO)에서도 4월28일을 같은 의미로 지정하였다. 

이 날이 국제적인 추모의 날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1996년 4월28일 뉴욕의 국제연합(UN) 건물에서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촛불을 켜고 분향을 하며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이때부터 산재 노동자에 대한 추모가 세계적인 행사가 되었다. 물론 국제자유노련(ICFTU)에서도 ‘사망 노동자와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있다. 

한편, 국제노동기구(ILO)에서 4월에 추모행사를 시작한 것은 2001년이며, 2003년 4월28일 ILO는 사망자에 대한 추모뿐 아니라 작업장의 질병과 사고를 예방하는 것을 강조하는 ‘세계의 날(World Day)’ 행사로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까지 매년 7월에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노동자 건강권 강화의 달’ 등의 명칭으로 사업이 집행되다가 2002년부터 매년 4월로 변경하여 추진하고 있다.

egkim_01.jpg
[ 노동절행사에서 죽음과 골병으로 내모는 노동강도 강화에 반대하는 퍼포먼스  -출처:노동과 세계 ]

4월은 노동자 건강권 쟁취투쟁의 달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폭력적 강제집행을 통한 노동강도 강화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풍전등화의 위기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은 산재노동자들을 ‘엉터리 나이롱 환자’로 매도하며 비용을 축소시키기 위해 갖은 악선전과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국면 속에서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을 맞아 민주노총이 준비하는 4월 투쟁은, 내려 먹이기 식이 아니라 현장으로부터 근로조건 개선투쟁을 준비함으로써 건강권 투쟁이 갖는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 건강권을 사회적 의제화하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을 벌여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운동진영 내부에서부터 노동자 건강권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노동자 건강권 파괴의 근본원인이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임을 사회적으로 쟁점화하고, 노동강도 강화 저지,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 촉구, 노동자 건강권 투쟁 확대 강화를 쟁취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쟁취하기 위하여 민주노총은 18개 안전보건단체가 참가하는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공동사업추진위원회’(이하 4월 공추위)를 결성하고 사업을 힘있게 준비하고 있다.

건강한 노동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까 

공추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첫째, 민주노총 소속 각 단위노조는 기본 사업으로 4월25일부터 30일까지 각 노조별로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게시한다. 그리고 4월28일에는 각 노조별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추모 선전전을 사수할 것이다. 또, 단위노조의 조건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기본사업 이외에도 조합원 교육, 1주일간 추모 리본 달기, 조합원 건강권 및 안전보건 요구에 대한 실태조사, 작업장 유해요인조사 등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민주노총 15개 지역본부가 주최하는 ‘전국동시다발 합동 촛불 추모제’를 4월28일 저녁 7시부터 진행한다. 이 추모제는 국외에서도 실시하는 추모제로서 ILO에서 규정한 ‘세계의 날’을 맞아 산재사망열사를 추모하고, 현장에서 더 이상 산재노동자를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장으로서 실시하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는 추모시를 낭독하고, 지금도 산업재해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참가하여 예방할 수 있었던 산재 피해사례와 산재노동자로서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당하는 부당한 고통과 탄압을 증언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또한 각 지역본부별로 추모의 의미를 나타내는 다양한 상징의식 등이 배치될 것이다

셋째, 산재보험법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민주노총은 이미 2002년 후반부터 산재보험법 제도개선을 위한 입법팀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입법팀에서 개혁법안을 거의 완성하여 자료집 출간을 준비중이다. 그런데, 요즘 열린우리당 몇몇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의료비(산재보상법, 자동차보험법, 건강보험법) 심사평가체계 일원화 제도’의 도입을 4월 임시국회에 상정하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한 공청회가 산재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서 무산된 적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산재법 개정안과 열우당의 개정안 그리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등의 의견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토론회를 개최하여 열린우리당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5년에 민주노총 입법팀이 제출한 산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간과할 수 없는 ‘살인’, 산재 사망

또 하나의 4월 사업이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매일노동뉴스』,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산재사망 공동캠페인’이 바로 그것이다. IMF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현장의 노동강도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그 결과 노동부발표 산재사망자는 1998년 2,212명에서 계속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3년에는 급기야 2,923명까지 증가했다. 2004년 되어서야 겨우, 2,856명으로 사망자 숫자가 아주 조금 감소했다. 특히 건설현장은 십 수 년째 한해에 700~800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는 상황이며, 1999년 대비 2003년 산재사고를 보면 재해자는 100% 증가하고, 산재사망자는 30% 증가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재사망은 대부분 예방이 가능한 것들이다. 산재사망은 기업 활동의 불가피한 산물이 아니다. 자본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조금만 노력한다면 대부분의 산재사망은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죽지 않아도 될 노동자들을 죽이는 지금의 산재사망 구조는, 자본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살인 행위’ -그것이 무의식적일지라도- 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산재사망의 책임은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 책임을 가진 사용자에게 우선적으로 물어야 하는 것이다. 

egkim_02.jpg
[ 지난 해 노동자대회 후 거리행진 모습  - 출처: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산재사망의 1차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이루어내고자 공동 캠페인을 벌이기로 하였다. 이 캠페인은 죽음의 행렬을 저지하고 사회가 나서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공동캠페인단은 4월28일을 전후하여 각 조직의 대표자들이 참가하는 출범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공동캠페인단의 주된 사업은 『매일노동뉴스』 등 각종 언론매체를 이용한 대국민 의식전환 활동과 토론회 또는 정책연구를 통한 정책개발 사업이 될 것이다. 언론매체를 통한 사업은 산재사망은 노동자의 실수나 불가피한 사고가 아닌 기업의 ‘살인 행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산재사망을 발생시킨 기업주를 처벌하는 것이 산재사망을 줄이는데 꼭 필요함을 알려내는데 주력할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정책에 대하여 정부 및 자본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는 것 또한 필요한 활동이다. 이를 위해 외국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하여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만들기 위해 ‘산재사망 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 등을 개최할 것이다. 이외에도 산재사망 다발 사업장에 대한 ‘살인기업 선정식’과 사망재해 원인분석을 위한 정보공개청구운동 등도 실시할 계획이다.

노동자 건강권은 ‘미끼’가 아니라 ‘무기’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내부에서조차 노동자 안전보건의 중요성이 많은 동지들에게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감히 한다. 이러한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무감각은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면, 많은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이 집회 투쟁의 현장에서 외치는 다음과 같은 ‘단골메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기름밥 먹어가며, 매연 마셔가며,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고 죽으라고 일했는데 정리해고를 한다고 합니다. 동지여러분 말이 됩니까! 투쟁합시다!” 

그러나 기름밥과 매연을 먹는 것은 고용이 안정된다고 해서 참아야 할 일이 아니다. 이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는 건강한 조건에서 노동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정작 현실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임금단체협약 투쟁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거나 고용에 대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투쟁할 때 노동자들의 분노를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뒤집어져야 한다. 노동자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은 단지 ‘미끼’가 아니라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 4월의 노동자 건강권 투쟁은 그러한 ‘미끼’를 ‘무기’로 만드는 과정의 첫 출발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