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인 섬세함과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사회

대중적인 섬세함과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admin 0 2,908 2013.05.0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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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만나, 우리 사회와 사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큰 그림과 더불어 작은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 진정한 사회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때: 2001년 3월 26일(월)
곳: 참여연대 회의실 
대담: 윤효원 『노동사회』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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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_01_3.jpg사무처장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이름이 높은 데, 시민운동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 자신을 운동가라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80∼90년대 인권 변론을 하면서 운동하는 분들을 뒤에서 지원했고, 그분들의 뜻을 법정과 역사 앞에 드러내려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시민운동도 등 떠밀려 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늦바람 같은 거지요. 

왕성한 활동을 하다보면 개인사를 돌보기 어려운데, 가족들의 불만은 없습니까. 

사실 엉망진창입니다. 어떤 점에선 가족들의 희생 위에 운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희생이지만, 제 자신도 보람을 찾고 있고, 아내나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얻는 거 하나 없이 무작정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운동가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는 말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보상이 있다고 봅니다. 보상의 내용과 기준이 다를 뿐이죠. 

참여연대는 신생 조직이지만, 짧은 기간에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으로 성장했습니다. 성장의 비결이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성장 지상주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성장이란 말 자체가 부정적인 뜻을 갖고 있습니다만, 창립 때보다 규모나 영향력이 굉장히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잘 해서라기보다는 사회가 엉망진창이라 할 일이 많아서라는 게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가 내세우는 것은 '권력감시'라는 건데, 우리 사회가 워낙 부패하고 비합리적이다 보니, 참여연대가 제기하는 내용이 설득력을 얻게 된 거라 봅니다. 물론 참여연대 내부도 할 일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한계가 있고, 불만도 많습니다. 
한계나 불만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문제 제기 영역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대안과 비전, 나아가 치밀한 일 처리, 무엇보다 대중적인 섬세함과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프로가 되어야 하고, 좋은 일 한다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스스로 굉장한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여기서 전문성은 학문과 지식이라기보다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자질이나 능력 같은 것을 말합니다. 국민, 지식인, 언론을 한데 묶어 세워 여론을 만들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이 점에서 부족한 게 많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들의 참여의식도 부족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바라는 사회, 즉 올바른 체제 변혁을 얼마나 이뤄냈는가에 대해서도 끝없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처장님은 얼마 전 미국 시민운동단체를 둘러본 결과를 소개한 ‘NGO-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미국 시민운동과 비교할 때, 한국 시민운동의 강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19세기 토크빌이 미국을 몇 달 여행하고 『미국 민주주의』를 썼는데,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주민 자치와 시민 참여를 꼽았습니다. 이런 토대 위에 견제와 균형, 참여민주주의, 선거제도, 배심제 등 입법·행정·사법 모든 영역이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상적인 사회는 아닙니다. 미국 노동운동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는데, 도청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고, 노동조합 전체적으로 조직률이 하락하는 등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몇몇 시민운동가들은 연방정부를 통제하고 변화시킬 가능성이 없다는데 절망하고 있기도 했고요. 

반면 우리는 엉망진창이지만 변화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정치적으로 보자면, 지금은 의석이 없지만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의원을 내고 교섭단체를 만들어 기성 정치권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 시민운동에 비해 열악한 건 사실이지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이 있어요. 미국은 앞서 있지만 희망을 잃어버렸고,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interview_02_3.jpg정부의 일방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계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정부 퇴진'을 공식 기조로 내걸었고, 한국노총 역시 정부와 갈등 관계입니다. 결과적으로 올해 노동운동은 투쟁 노선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권 4년차를 맞은 김대중 정부를 어떻게 보십니까?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정부는 출범 초기 노사정위원회라는 탁월한 제도적 틀을 만들었습니다. 이 경우 이해의 조절·타협·절충은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두 노총이 양보한데 반해, 경제위기의 당사자들인 재벌들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IMF 위기 이후 20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음도 불구하고, 재벌은 책임 안 지고,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는 태도는 잘못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려면 먼저 제도와 체제를 바꾸고 불법·탈법의 책임을 물은 바탕 위에서 새 사회의 비전을 제시했어야 합니다. 이런 사전 작업 없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내모는 상황입니다. 노동자 동의 없이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모든 개혁은 구성원 모두와 함께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기 어렵습니다.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백안시하는 태도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영권이 기업주한테만 있다는 주장은 주식회사 시대에는 있을 수 없어요. 상장된 대기업의 경우, 이미 국민기업입니다. 투자자가 주인이 되고, 가장 유능한 사람이 경영자가 되고, 노동자가 경영참가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산업의 미래가 없어요. 경영참가가 잘 이뤄지는 독일의 경우 기업 경쟁력이 높습니다. 한 개인이 주인이 되고 나머지는 종이 되는 상황에서 주인의식·경쟁력·생산성은 자리잡지 못합니다. 경영참가는 인간의 심리나 본질을 고려해도 당연한 일입니다.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현정부의 개혁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미국경제의 경착륙이 전망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 역시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경제의 기반이 외국자본에게 넘어가는 추세고,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면서 사회적 균열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도 순탄치 않을 전망입니다. 여러모로 비관적인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 횡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요. 

김대중 정부의 철학과 비전이 잘못 됐습니다. IMF 경제위기는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의 실수로 일어난 게 아니라, 짧게는 지난 30년 개발독재의 후유증이자 길게는 식민 잔재와 분단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정부는 경제 회복이 늦어지더라도 체제가 가진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만, 임기응변과 미봉책에 급급했습니다. 'IMF 조기 졸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새 시대에 맞는 인프라를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재벌체제 개혁이나 4대 부문 개혁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 시스템과 국민들의 의식과 관행을 바꿔내기 위한 개혁을 집중적이고도 일관되게 집행했어야 했습니다. 현 정부가 잘한 게 남북문제인데, 이것은 미국의 개입과 극우세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방향을 갖고 일관되게 밀어 부친 결과, 좋은 성과를 얻게 된 겁니다. 

극우·반동·퇴행의 정당들인 자민련이나 민국당과 연합한 결과, 한 것보다 못한 게 더 많아졌습니다. 국회에서 통과가 어렵고, 정책 혼선이 오더라도 수구정당과 연립하기 보다 국민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정책을 추진했더라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 십 수년 동안 노동운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계속 발전해 주요 사회세력으로 성장했지만,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시대 흐름에 밀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혹자는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현재의 노동운동을 어떻게 보십니까.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의 극단적 탄압과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발전해온 것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조직률이 11% 안팎으로 떨어지는 등 정체를 겪는 듯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안정되면 조직률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노동운동이 너무 단시안적인 '경제' 투쟁에 매달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열심히 투쟁해 임금인상이 10% 되더라도 교육·의료·주택·물가 비용이 오르면, 그 효과는 미미해집니다. 사회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임금이 100% 올라도 인간다운 삶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참여연대는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운동과 논의만 많이 했지, 실제 같이 제대로 해온 게 없습니다. 시민운동 스스로 노동운동의 과격한 이미지 때문에 기피한 측면도 있고요. 하지만 조세개혁, 보험개혁 등 같이 할 일이 참 많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지지를 하지만, 우리는 안 그렇습니다. 한국 시민들의 이기주의를 인정하지만, 노동운동 역시 국민과 함께 가려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였는지 곰곰이 돌아봐야 합니다. 파업이 노동계급의 이익을 넘어 사회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확증을 현실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이 사회개혁에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내주기 바랍니다.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시민운동의 '신자유주의성'을 이야기하면서 선을 그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립니다만, 노동운동이 자기 목적에서 사회개혁을 제외하지 않는 한, 시민운동과의 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됩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바람직한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 운동도 극단적인 논리가 망쳐 놓은 게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 하나의 사물이나 사태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한 측면에 집착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만 본다면 사태의 본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요. 세상에는 극단이 포괄할 수 없는 중간 영역이 더 많습니다. 시민운동이 노동자계급의 운동에 전적으로 복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세개혁·복지개혁·사법개혁 등 지금 시민운동이 하는 사업들 가운데는 노동자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소액주주운동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경영의 투명성 확보는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복잡다기함을 보지 못하고, 이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피아(彼我)를 가른다면 운동은 고립되고 어려워질 것입니다. 

대담 중에 '사회변혁'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처장님이 생각하는 사회변혁은 어떤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회를 꿈꿔왔고, 다양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든 것이 변해왔고, 변할 거라는 겁니다. 자본주의라고 언제나 똑같은 게 아닙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1백년 전의 그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주의도 마찬가집니다. 80년 전과 오늘날이 같을 수 없습니다. 사회변혁 역시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그 내용과 형식이 변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의 변혁은 다른 나라의 이론이나 경험과는 많이 다르다고 봅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부정부패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몰상식과 비합리가 횡행하는 우리의 경우, 사회변혁의 기초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행정·기업경영·지역사회에서의 참여, 투명성, 책임성, 견제와 균형, 법 앞의 평등이 그 구체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운동가들이 실증적으로 사회를 봐야 할 때입니다. 거대담론으로 추상적으로 사회를 분석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큰 그림과 더불어 세밀한 설계도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전투에서 승리해야 큰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작은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