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노동사회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편집국 0 3,400 2013.05.17 09:16

미국의 ‘벼랑끝 몰기’와 북한의 ‘벼랑끝 버티기’

지난 2월 10일 6자회담 참가의 무기한 중단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북한 외무성 성명으로 한반도에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벼랑끝 몰기’와 북한의 ‘벼랑끝 버티기’가 가져온 결과다. 

북한을 회담에 끌어들이고,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북한이 왜 6자회담 불참을 선언했고,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부시 2기에서도 지속되고 북한에 대한 요구수준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6자회담에 복귀해보았자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미국에 대북강경책의 빌미만을 만들어 줄 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북한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고, 연두교서에서도 북한에 대해 완화된 표현을 썼지만,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임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부시가 취임사에서 행한 ‘자유의 확산’과 ‘폭정의 종식’ 발언은 콘돌리자 라이스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폭정의 전초기지’로 북한을 지목한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더구나 부시의 연두교서 발표에 맞춰 뉴욕타임즈 등 언론을 통해 북한이 6불화우라늄을 수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미 여러 차례 써먹은 미확인 정보를 흘려 북한을 압박했다. 이것은 단순히 강경파들의 언론플레이가 아니라, 부시와 라이스의 생각이 실린 부시행정부의 공식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 있다. 게다가 때 맞춰 북한의 핵물질 수출의 긴급성을 알리는 부시의 친서를 소지한 미 국가안보회의 마이클 그린의 한·중·일 순방은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림의 떡’조차 보여주지 않고 일방적 양보 요구

부시 2기의 대북정책은 1기 때 보다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북정책의 초점이 ‘북한핵문제’가 아니라 ‘북한체제변형문제’로 확대될 조짐 마저 있다. 이에 따라 부시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요구와 주문의 수준이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북한핵문제만 해결되면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북한핵문제 해결을 넘어서 “폭정이 종식”되고 “자유가 확산”된 “체제변형이 이루어진 북한”이 되어야 비로소, 북한에 보상을 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북한핵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라이스가 제시하고 있는 북한핵문제 해법은 이른바 ‘리비아 방식’이다. ‘선 핵폐기, 후 보상’을 고수하면서, 사실상 백기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폐기후에 체제보장과 경제제재조치 해제 등 보상에 대해 확신 할 수만 있다면 ‘리비아 방식’이라도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절박하다. 
그러나 미국은 ‘그림의 떡’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다. 라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핵을 먼저 포기하게 되면 얼마나 좋은 일들이 벌어질지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림의 떡’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일방적 양보와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미국의 강압을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북한은 『2.10 외무성 성명』과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성숙”되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조건’은 방북한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을 통해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일에게 보낸 친서에서 거론한 “조선측의 합리적 우려”와 무관치 않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 또한 우리 송민순 차관보를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의 정당한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작년 11월 “북한의 핵이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LA발언’도 이런 중국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2월 17일, 민주당 대표단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북한 외무성의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불참 선언에 대해, “북한의 주장은 옳은데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의 “합리적 우려” 해소해주어야

그렇다면 북한의 ‘합리적 우려’란 무엇인가.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에 의한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을 줄곧 요구해 왔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어떤 국가가 핵무장을 포기하고 불평등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체제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핵무기국가들이 해당 비핵무기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위협하지 않겠다는 안보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소극적 안보보장(NSA: negative security assurance)’이라고 하다. 1970년 NPT의 탄생과 1995년의 재연장 합의는 핵무기국가와 비핵무기국가들간에 이런 약속과 전제에서 가능했다. 더구나 미국은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문? 제3조 1항에서, 북한에 대해 이 NSA를 문서로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러한 NSA 약속을 정면으로 깼다. 2002년 ?핵태세보고서?와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또 북한의 우려는 이런 것이다. 미국이 제기한 핵의혹에 대한 검증에 동의하여 사찰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끊임없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새로운 전제조건들을 제시할지 모른다. ‘이라크 교훈’은 북한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이라크의 경우 10년가까이 전국토를 이 잡듯이 뒤지는 철저한 무기사찰을 받아 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대량파괴무기 의혹을 제기하며 이라크를 침략했다. 

미국의 일방적 발표로 시작된 북한핵문제

사실 북한 핵문제는 매우 우습게 시작되었다. 2002년 10월 17일, “북한이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시인했다”는 미국 정부의 일방적  발표로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계획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한 적이 없으며, 미국의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계획에 대해 구체적이거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단지 언론을 통해, 북한이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부품인 코발트 파우더와 고강도 알루미늄합금을 수입했다고 흘렸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핵개발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미국은 똑같은 내용을 이라크의 핵개발 증거로 제시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바 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의 압둘 칸 박사가 북한에 핵기술을 제공하고 북한에서 핵무기를 목격했다는 내용을 흘리고 있으나, 정작 칸 박사나 파키스탄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바 없다. 

북한이 무기급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할 대규모 농축시설을 건설하려 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국의 주장대로 북한이 우라늄농축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이 건설중인 경수로발전소의 원료를 확보할 목적으로 실험실 수준에서 우라늄 농축 기술을 개발하려 했을 가능성이다. 천연우라늄의 사용이 가능한 흑연감속원자로와는 달리, 경수로발전소는 농축우라늄만을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북한 형편에 농축우라늄을 외부로부터 전량 수입한다는 것도 여간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북한은 풍부한 천연우라늄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외부로부터의 농축우라늄을 수입하는 길이 막혔을 경우, 북한의 전력생산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려 했을 수는 있다. 

미국은 ‘북한위협론’이 필요

이처럼 이번 북한 핵파문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했다는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미국음모론”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들이 일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부린 농간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핵개발시인” 발표가 터진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냉각되었던 남북관계가 북한선수단의 부산아시안게임 참가로 다시 화해의 급물살을 타고 있었고, 고이즈미의 평양방문으로 북일관계정상화가 예상외로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한반도에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급속한 냉전 해체의 조짐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해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큰 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2월말 한 특강에서, “미국은 남북관계가 호전될 때마다 절묘하게 북핵 의혹을 제기했다”고 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같이 북한핵문제는 풀기 어려운 전략적·구조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강경파들 입장에서 북한핵문제나 한반도문제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단지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존재할 뿐이다. 미국의 목적이 정말로 핵무기확산 방지라면 북한핵문제의 해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북한핵의 폐기와 북한체제에 대한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과 맞바꾸면 된다. 북한에 보상을 해주고 북한핵을 “사버리면” 그만이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목적은 단순히 북한의 핵 제거에만 있지 않다. 미국은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일방주의정책과 중국 봉쇄정책의 명분 확보와 지속을 위해서는 ‘북한위협론’이 필요하다. ‘북한핵의 위협’은 선제핵공격전략을 지탱해주는 구실이 되고 있다. ‘북한미사일의 위협’이 없어진다면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MD계획의 명분이 사라진다. 따라서 ‘깡패국가 북한’‘테러지원국 북한’‘WMD 확산의 주범인 북한’이 계속 있어야 한다.  

1994년과 2000년의 교훈

우리는 1994년과 2002년의 비교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1994년 핵위기 당시 김영삼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는 대화 할 수 없다”면서 남북관계를 단절하고 미국보다도 더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후퇴하고 한반도에는 전쟁위기가 감돌았고, 북한핵협상에서 배제된 채 경수로 비용만 뒤집어썼다. 반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한반도문제의 주도권을 남북이 잡자, 미국도 이에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2000년 10월, 북한과 미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사실상 수교를 약속하는 ?북미공동코뮤니케?에 합의하게 된다. 

우리정부의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자세가 긴요하다. 북한에 대해서는 핵무기 불용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에 대해서는 강경정책의 변화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제공할 수 있는 체제보장과 경제지원과 같은 구체적인 보상안의 제시를 요구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는 우리정부의 안일한 대처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이라크 파병과 용산기지이전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해 주는 등의 ‘미국 퍼주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정책변화가 문제해결의 관건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