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는 노동운동가, 개혁하는 한국노총

노동사회

실천하는 노동운동가, 개혁하는 한국노총

편집국 0 3,375 2013.05.17 09:10

종합병원 응급실이라는 곳은 삶과 죽음이, 이별의 안타까움과 완치의 희망이 교차한다. 넓지 않은 그 공간 속에서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전보다 건강해지길 고대하며 희망을 품는다.

한국노총 대의원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영등포구민회관으로 향하는 기자에게 문득 병원의 응급실이 떠올랐다. 불과 며칠 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력사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던 그 곳에서, 또 다른 총연맹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모여있는 것이니 참 아이러니다.

책임있는 사회개혁 주체로

정해진 시각보다 30여분 늦게 시작된 2005년도 한국노총 대의원대회는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무리 없이 예정된 회순대로 진행되었고 대의원들의 관심도 4명이 출마한 위원장 선거에 집중된 듯한 느낌이었다.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노총기와 회원조합기 입장이 이어졌고, 모범조합원 표창, 대회사, 축사 등이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이어진 각 분과위원회 심의 결과보고와 2004년 사업보고, 회계감사보고도 원안대로 처리되었다.

이어진 2005년 사업계획 심의를 통해 한국노총은 책임 있는 사회개혁 주체로서의 활동전개, 현장과 함께 하는 한국노총, 사회연대강화를 통한 열린노총 건설이라는 기조 아래 기업별 노조 극복, 비정규직 조직화 등을 통해 조직확대·강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 악화되고 있는 노동기본권 사수, 정치세력화 전략과 전술 수립,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저지하고 대안적 경제체제 수립, 사회연대성 강화로 경제 및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각종 사회적 차별 철폐를 펼쳐가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조직확대·강화,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 투쟁, 정치방침 수립, 산업공동화 저지 및 경제민주화 투쟁, 신자유주의 세계화 저지투쟁, 사회 양극화 철폐투쟁, 사회개혁투쟁, 한반도 평화정착과 자주적 평화통일 실현이라는 8대 핵심사업을 설정했다.

4파전으로 벌어진 21대 위원장선거

애초 선거와 관련하여 이용득·권오만 연합집행부와 이동호 기획조정실장의 양자구도 속에 무난한 연임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1월25일 마감된 후보등록 결과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동호 한국노총기획조정실장(전 국민연금관리공단노조 위원장), 이경식 한국수자원공사노조 위원장, 장대익 공공노련 대표위원장이 출마함으로써 예상을 뒤짚었다.

각 10분씩 주어진 후보연설을 통해 기호 1번으로 출마한 장대익 후보는 현 집행부가 한국노총 위기가 치유되길 바랐던 조합원들의 열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며, △2007년 복수노조, 전임자임금지급금지 저지 △중앙위 위상강화 △중장기전략을 담은 희망백서 발간 △날로 늘고있는 부채 해결방안 마련 등을 주요 공약으로 삼았다.

기호 2번 이용득 후보는 지난 8개월 간의 임기동안 검증은 충분히 되었다며, △현장강화를 통한 실천하는 노동운동가 △사회적 연대를 통한 열린노총 건설 △유사 산별 통합을 통한 산별노조 건설 등을 내세웠다.

기호 3번을 받은 이동호 후보는 현지도부의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예산에 대한 마인드 부족 등을 강하게 비판하며 “강한 노총, 일하는 노총, 노총다운 노총 건설”을 외쳤다.

기호 4번 이경식 후보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젊음을 밑천으로 △과감한 변화와 혁신 실천, △젊은 노총 건설 △양대노총 통합 방안 모색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선거운동에서부터 시작된 변화의 바람

‘개혁’과 ‘보수’로 양분되어있던 한국노총 내 세력구도가 세분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이번 선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과거에 보였던 노련별 조직적 움직임이 사라지고, 연맹 내 독자적 지지양상도 나타났다. 운수와 제조, 공공노련은 장대익 후보지지가 대세였지만 운수 내에서의 택시, 제조 내에서 금속은 장대익 후보 세력권에 포함되지 않았다. 더구나 노련 위원장의 특정 후보 지지선언에도 불구하고 산하 단위 일부에서는 위원장 개인의 지지일뿐 노련이나 연맹의 지지의사는 아니라며 차후 문제제기 할 가능성도 있어보였다.

또한 각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노총의 개혁을 주장했다. 한국노총이 위기상황이라는 공통된 진단 하에 통합노총 건설, 정책역량 강화, 원칙과 대의에 따른 노총운영, 사회연대, 현장강화를 통한 자신감 회복 등을 통해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이용득 현 위원장을 제외한 세 후보는 이용득 집행부에 대해 현장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독단을 일삼고 있으며, 민주노총과 별 차이가 없었고, 민주노동당과의 관계설정도 바람직하지 못하는 등 무능력했고, 지도부에 대한 현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용득 후보측은 8개월 동안 검증을 받았고, 단결된 모습을 보여줘야 선거 후 추진력과 대중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되받았다.

한편 각 후보별 개인홈페이지 제작이 늦어지고, 어느 해보다 길었던 설연휴로 인해 선거운동 기간이 대단히 짧았던 탓에 지역 유세가 취소되는 등 대의원들이 각 후보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실제 대의원대회장에 와서야 후보의 얼굴과 공약을 알았다는 대의원들이 상당수였다.

선거 전날까지 확정되지 못하는 노련별 대의원 선정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선거기간 ‘확정된 대의원 명부 및 연락처’를 요구하는 후보들과 선관위의 논쟁도 벌어졌고, 이 와중에 이경식 후보가 선거가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진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이 가처분 신청은 결국 특정후보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기각되었다).

이처럼 ‘확정된 대의원 명부’에 대한 논란은 과거 한국노총의 선거방식이 노련 위원장 결정 중심의 선거에서 대의원 개개인의 자율투표로 전환되고 있고, 이에 따라 선거운동방식도 개인에 대한 공략으로 전환하고 있는 탓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선호되고 치열했던 선거운동 방식이 대의원 개개인에게 보낸 핸드폰 문자메시지였던 점도 짧은 시간동안 효율적이고 대의원 개개인의 공략에 유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정확한 조합원 명부조차 관리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한국노총 60년 역사에 비춰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만큼 조직관리가 허술했다는 반증은 아닐까?

이용득 당선, 태풍의 눈이 될 것인가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선거운동에 비해 결과는 조금 싱거웠다. 전체 723명의 대의원이 투표를 마친 시간은 오후 1시경. 곧바로 투표함 개함에 이어 개표가 시작되었고, 한표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각 후보진영 참관인들에 비해 대의원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무난하게 되지 않겠어?”, “그래도 1차에서 바로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여유 섞인 말들이 들렸고, 늦어진 시간 탓인지 어서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는 대의원도 있었다.

개표결과를 기다리던 회의장의 떠들썩함이 일순 가시고 결과 발표가 이어졌다. 기호1번 장대익 후보 185표, 기호2번 이용득 후보 484표, 기호 3번 이동호 후보 9표, 기호 4번 이경식 후보 40표. 역시나 결과는 이용득 현 위원장의 무난한 재임이었다. 

위원장 선거에 이은 임원선거에서는 사무총장에 권오만 현 사무총장이 당선되었고, 임원진과 중앙위원 선출, 박인상, 이남순, 오문환, 김낙기, 이광남, 강찬수 지도위원 선임, 결의문 채택을 끝으로 폐회되었다.

위원장 선거와 대의원대회는 끝이 났다. 대회장에서 만난 한 대의원은 “한국노총 내에도 기득권이 존재하고 이들이 현실에 안주해 있었던 탓에 한국노총이 위기를 맞고 있다. 과감히 변해야 한다. 아직은 부족하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토로했다.

이용득 위원장이 3년 간 이끌어 갈 한국노총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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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득 위원장 당선 인터뷰


-비정규법안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은 한국노총만 관련된 게 아니라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노무현 정권이 강행처리 하려고 한다면 가장 위험한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국노총뿐 아니라 모든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연대해 반드시 저지해낼 것이다. 비정규직 부분이야말로 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갈등해소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노사정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최근 민주노총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무산되었을 때 한국노총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 입장에서는 노사정위 안에서 좀더 지금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보다 참여폭을 넓히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그 안에서 재논의를 하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참여의 폭을 넓힌다는 것은 현재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참여한다면 노사정의 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만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비정규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에 정부에서 다시 대화를 요구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나? 비정규직법안에 대해서 한국노총에게 양보란 있을 수가 없다. 민주노총이든 시민사회단체든 함께 연대해서 반드시 저지해 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한다면 사회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정권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다. 국민 모두가 해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국노총이 선두에 설 것이다. 총파업이다, 뭐다 하는 구체적인 얘기보다도 높은 강도의 투쟁도 전개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한국노총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는 주장은 노동계에서는 전혀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이 비정규직 확산법이지 어떻게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될 수 있겠나.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구체적인 투쟁계획은 가지고 있는가?
파업을 포함한 훨씬 더 강도 높은 투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동안 선거로 인해 투쟁본부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선 만큼 투쟁본부를 가동해서 구체적인 투쟁일정을 잡을 것이다. 

-앞으로 3년의 임기동안 주력할 사업은 무엇인가?
현 시기는 한국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국제사회 등 모든 부분이 과거보다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노동계만큼은 과거 방식 그대로 안주해 있는 세력도 있다. 이제는 노동운동도 바뀌어야 한다. 노동운동도 사회에 대해서 책임성을 느끼고,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위해서 협력적, 협조적 노사관계, 노정관계가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회갈등의 가장 주된 문제였던 노사문제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노동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노총의 운동방향은 투쟁과 협상과 대안제시를 병행해 나갈 것이다.

-작년에 외국자본 투자유치 사업을 했었는데 올해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장기적인 외국인 투자유치는 결국 고용이 창출되고 국가경제에 큰 이바지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국노동계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외국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책임 있는 주체로서 당연한 역할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국노총은 지속적으로 함께 활동할 것이다.

-비정규직 조직방안에 대한 구체적 복안은 있는가?
지금 현재 조직률은 10%대에 머물고 있고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한국노총은 조직률 제고 부분에서 2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최소한 5~6%정도의 차별 받는 노동자들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할 것이다.

-이번 임기 내에 복수노조,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 같은데 구체적인 복안은 있는가?
노동계 전체의 문제라면 민주노총과의 연대나 공동투쟁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전임자임금지급금지 부분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가 된 이후 노사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했음으로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데 자체적인 재정적 역량을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기였다. 산업화와 노동조합의 역사가 오래된 국가들과 견주어 전임자임금지급을 금지하겠다고 하는 발상은 너무나 시기상조이고 현시점에서는 용납할 수가 없다. 결국 노동조합 활동의 무력화를 조장하는 반노동자적 행위라고 보고 강고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다른 후보들로부터 독단적이다, 민주노총 따라하기다 등의 여러 가지 지적들을 받았는데 내부 조직 통합이나 그런 부분들을 보완해 나갈 계획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 투표 결과가 말해주는 거 아닌가? 저는 독단과 오만 같은 건 없다. 그러나 실천할 때에는 확실한 리더십을 가지고 실천한다. 고쳐나갈 것들은 고쳐나갈 것이지만 근거 없는 흠집내기는 수용하기 어렵다.

-초과근로를 줄여서 일자리 나누기를 하겠다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있는가?
구체적인 방법이 노총중앙에서 논의된 것은 있지만 산별대표자 등 공식 논의절차를 거쳐서 확정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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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