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참여가 만든 빛나는 '반쪽 승리'

노동사회

중증장애인 참여가 만든 빛나는 '반쪽 승리'

편집국 0 3,371 2013.05.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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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마디 마디가 저려오며 말도 어눌해진다. 정신 또한 혼미해지며 탈진해간다. 이젠 악으로 입술을 깨물며 ‘이완수 놈’을 되뇐다. 그러면 가끔 몽롱해지다가도 불끈 손에 힘이 가해진다. 

2004년 12월16일, 12일차를 맞은 단식농성단이 쓴 대자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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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lee_01.jpg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관장 이완수)은 30년의 역사를 가진 장애인 이용시설이다. 주로 지체장애인들이 이용하고, 생활체육, 취미, 직업훈련, 상담, 치료 등을 실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월7일 오후3시, 서울 광진구 아차산 기슭에 자리잡은 바로 그 정립회관 체육관 앞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8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정립회관 민주화쟁취 투쟁승리 보고대회’가 열렸다.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집행위원장 박경석, 이하 정립공대위)의 사무실 점거농성 231일만의 일이었다. 

231일 점거농성이 도달한 자리

‘정립회관 사태’는 지난해 6월, 65세 정년퇴임을 앞뒀던 이완수 관장의 ‘장기집권 의지’에 대한 시설이용자들과 서울경인지역사회복지노조 정립회관지부(지부장 김재원, 이하 정립지부) 조합원들의 반발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인사징계, 점거농성, 폭력충돌, 용역동원, 연대투쟁, 교섭회피, 단식농성 등 장기투쟁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전형적인 과정을 거쳐 계절이 두 번 바뀌도록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다가, 광진구청이 제시한 중재안에 대해 지난 2월7일 쌍방이 조정·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정립지부, 시설이용 장애인들, 장애인단체 및 기타 사회단체들로 이루어진 정립공대위와 정립회관 사용자측이 합의한 중재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정립회관은 해고자 노조원 4명중 3명에 대해 정직 3개월로 징계를 낮추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4명은 정직 2개월로 낮춘다. △ 관장 이완수는 농성 해제 후 시설정상화를 위한 제반조치 강구 후 ‘적절한 시기’에 퇴임한다. △ 점거사태 이후 발생된 쌍방의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하고, 이후에도 추가징계를 하거나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등등. 

그런데, 이러한 표면적인 결과는 정립공대위 입장에서 볼 때는 어쩌면 긴 시련을 에둘러 거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갈등의 근원이었던 이완수 관장은 비록 자기 말마따나 “10년 동안 해먹지”는 못하겠지만 ‘적절한 시기’를 보장받았고, 시설민주화를 위한 핵심적인 요구였던 정립회관 발전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무산됐다.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징계도 일정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말 그렇기만 한 것일까? 비록 서류상의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정립회관 투쟁은 소중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는 단지 길고 험한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노력과 수고를 위로하기 위한 말만이 아니다.       
    
연임반대는 당신 권위적인 행동 때문이야 

많은 장기투쟁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정립회관에서도 노사갈등이 스멀스멀 피어나게 된 발단은 권위적인 사용자의 일방적인 통제가 관철되던 곳에 들어선 ‘민주노조’ 혹은 ‘강성노조’였다. 정립회관에 노조가 들어선 것은 1990년이다. 그러나 노조가 설립 이후 최초로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은 2001년, 그러니까 2000년에 상급단체를 민주노총 공공연맹으로 변경한 직후였다. 그리고 노조가 처음으로 제시한 기본적인 요구들, 근무시간 중 조합활동 보장, 운영위원회 및 인사위원회 노조참여, 월 4,100원 급여인상, 체불임금 지급 등은 이완수 관장에게는 거의 대부분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였고, 교섭은 결국 매년 파행되었다. 

2003년에 시작된 임단협 교섭도 지리한 과정을 거쳐 2004년을 넘어서도록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4월에는 김재원 지부장을 포함한 조합원 4명에게 노동조합 활동을 빌미로 정직 1개월 및 견책의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그런 가운데, 드디어 6월30일로 예정된 이완수 관장의 정년퇴임이 다가왔다. 그런데,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회는 11년 동안 헌신한 관장의 ‘명예로운 퇴임식’과 새 관장 선출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물쩍 이완수 관장의 연임 길 닦아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사회는 우선 진행되고 있는 수영장 공사 등 사업의 안정성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이완수 관장을 2년 계약직으로 다시 초빙할 것과, 관장직을 65세 정년제에서 연임이 가능한 3년 임기제로 바꾸는 규정개정 추진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정립공대위는 이완수 관장의 정년퇴임은 오래 전에 예정된 일이었는데 이에 대한 현실적인 준비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며, 임기제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임기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정년’을 없앤 것은 이완수 관장을 배려한 것이라는 의혹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 이사회와의 면담 과정에서 “이완수 관장이 정년을 넘겨 몇 년을 더하는 것은 노인복지적 측면으로 보아 줄 수 없는가”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듯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공금 횡령 따위가 없는)’ 이완수 관장의 연임을 노조가 처음부터 반대하고 나선 것은 형식의 문제를 넘어서 그간의 독선적인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성격을 띄었다. 이는 다만 이완수 관장과 노조 사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립회관 노무관리진단팀에 의해 실시된 『노무관리진단 결과보고서』(2003년 10월)에 따르면, 회관 ‘경영진’의 리더십성격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 85%가 넘는 정립회관 직원들이 ‘권위적이다’라고 답변했다. 그 대답은 ‘독단적이고 권위적이다(51%),’ ‘다소 권위적이다(35%)’, ‘보통이다(14%)’ 순이었으며, ‘민주적인 편이다(0%)’, ‘아주 민주적이다(0%)’라고 대답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승진·승급에서 조합원을 배제하는 등의 탄압 때문에 50여명 직원 중 42여명이었던 조합원은 10여명으로 줄어있는 상태였다. 

이렇듯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운영에 대한 불만은 깊고 오랜 것이었고, 노조와의 교섭 파행 속에서 무리하게 관장직 연임을 추진한 것이 그러한 불만이 노골적이고 집중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노조를 포함한 정립공대위가 단지 이완수 관장의 연임 반대를 넘어서 정립회관 발전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한 것도 이완수 관장의 11년 장기집권 과정에서 구조화된 권위적인 운영체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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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7일 정립회관 체육관 앞에서 정립회관 민주화쟁취 투쟁승리 보고대회   - 출처:오마이뉴스 ]

진정한 ‘자립생활’ 실천 위한 중증장애인들의 투쟁참여 

그런데 한편, 이완수 관장의 연임 추진으로 촉발된 이러한 갈등은 노사관계 또한 뛰어넘는 문제였다. 직원과 사용자뿐만 아니라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 또한 정립회관을 구성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권위적이었던 것처럼 이완수 관장은 스스로가 장애인이면서 같은 장애인 이용자들에게 권위적이었다고 한다. 정립지부 관계자는 “이완수 관장은 장애인들하고 오래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증언했다. 물론 이는 다소 편향성을 갖는 관찰일 수 있다. 그러나 참여하지 않은 정립회관 이용 장애인들도 많지만, 정립공대위에 1급장애인 30여명을 포함하여 장애인 50여명이 참여했고 많은 이들이 230일 넘는 기간동안 끝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은, 노조가 느꼈던 불만과 제기했던 주장이 장애인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이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정립회관은 이용 장애인들에게 상당히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매우 드물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장소이자,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자립생활 패러다임’을 가장 선도적으로 공급해온 장애인이용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란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체계화되고 발달된 개념으로서,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신장하고, 사회복지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도 장애인의 ‘주도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념이자 실천전략이다. 

자립생활은 장애인이 의존성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주도적인 역할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 통합되어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한 점에서 자립생활 패러다임은 전통적인 ‘재활 패러다임’과는 성격을 달리 하는 새로운 것이며, 한국에서는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이 1998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이익섭 교수 주도로 조직진단을 하면서 ‘재도약’을 위한 전략과제로서 받아 안고, 선도적으로 보급해왔다. 그러한 상징적인 곳에서 뿌리박혀 있던 권위주의적 운영구조와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소아마비협회와 정립회관 사용자들의 행동은, 장애인들에게는 더욱 더, 정립회관 공대위의 평가처럼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자립생활 패러다임의 보급기지인 정립회관의 운영을 일시적으로 막는 사회복지노동자들과 중증장애인들의 연대행동이 자립생활을 완성하기 위한 실천이 되었던 것이다.  

 ‘반쪽 승리’를 더 큰 온쪽으로 만들기 위하여 

정립회관 공대위는 이번 투쟁의 결과가 “반쪽 짜리 승리”임을 인정하면서도,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를 위한 중증장애인 당사자들과 사회복지 노동자가 한마음으로, 장애운동사에 길이 남을 저항운동이며 역사적인 투쟁”이고 “중증장애인들이 진정한 자립생활을 향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에 대하여 말하고 투쟁했던 소중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방어적인 시설 비리 척결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시설의 민주화 문제를 운동쟁점으로 제기했고, 우리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중증장애인들이 한 축이 되어 실질적으로 참여한, 장애운동의 이념으로서 ‘자립생활’에 기초한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투쟁의 과정을 짚어보면 이러한 평가와 주장은 단순히 투쟁에 참여했던 주체들의 자부심을 만족시키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이완수 관장 연임의 일방적인 관철을 막아낸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뿐더러, 230여일 동안 정립회관공대위에 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 투쟁의 의의와 자부심의 싹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쪽이 반쪽으로만 남아있으면 더 위험하다. 정립회관 사회복지노동자들과 공대위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듯이, 문제는 이제부터다. 사실 정립회관 사태의 핵심인물이었던 이완수 관장과 김동호 사무국장 등도 1990년대 초 비리 사건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모쪼록 정립회관 투쟁을 통해 틔운 시설민주화와 장애인 자립생활의 싹이 튼튼히 자라나, 한국사회에서 깊게 뿌리박은, 가지가 넓은 나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