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연금정치와 박근혜 정부 연금개혁안

노동사회

민주화 이후 연금정치와 박근혜 정부 연금개혁안

구도희 0 4,952 2013.05.15 04:00

새로운 연금정치 국면이 시작되었다. ,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연금개혁이 이슈로 등장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수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기초노령연금 개혁안이 결론으로 제시되었고, 이 개혁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공학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결론 정해놓고 출발하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지난 3월에 구성된 이른바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통해 소위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여기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연금개혁안 자체보다는 연금정치 측면에서 이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먼저 연금정치의 원론을 상기해 보자. 노동자들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고, 또 조세를 통해 기초노령연금 재원을 부담한다. 일하는 동안 대부분은 기여자이고, 나이가 들면 수급자가 된다. 기초노령연금제도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수급자가 될 것이다. 나아가 대중들은 이미 400조 원을 넘어선 국민연금기금이라는 사회적 기금의 주인이기도 하다. , 연금제도의 원천이자 존재 근거는 바로 노동자 시민이다.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연금을 높여야 하네 낮춰야 하네 하는 이야기들은, 결국 노동자들의 노후에 관한 얘기다. 노동자들의 의사와 동떨어진 연금개혁을 일방적으로 추진해서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라는 면에서 한국의 연금개혁 정치는 어떠했는가? 한국 연금개혁에서 노동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곤 한 사회적 합의는 정말로 민주주의적인 연금정치를 가능하게 했는가?

 

한국 연금개혁 정치, 민주주의의 황무지

민주주의라는 면에서 우리나라 연금개혁을 돌이켜보면, 차가운 바람이 횡행하는 빈 들판이 연상된다. 한국 연금정치는 민주주의의 황무지였다. 우리나라 연금개혁에 단 한 번이라도 민의(民意)’라는 것이 제대로 반영된 적이 있었는가? 그 전에 연금개혁에 관한 민의를 형성해내고자 하는 사회정치적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었는가? 그렇게 형성된 민의를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는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다.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은 있었을지언정, 대중적 논쟁을 위한 정보 제공과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전혀 없다.

김대중 정부 시기 국민연금 급여 수준이 70%(40년 동안 보험료 납부 시 받는 연금액이 평생 평균소득의 70%임을 의미한다)에서 60%, 그리고 다시 노무현 정부 후반부인 2007년 말 40%로 낮춰질 때, 소위 사회적 합의기구도 그리고 국회도, 결국에는 정부의 의도를 그대로 좇아갈 뿐이었다.

첫 번째 ‘70%에서 60%로의 급여 삭감에 관해서는 국민들에게 국민연금 급여 삭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문가 내부 논의만 있었다. 참여정부 시기인 두 번째 국민연금 급여 삭감을 둘러싸고, 형식적으로 사회적 합의기구도 형성되었고 국회 차원의 논의도 있었다. 언론 보도도 있었고 사회적 논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개혁 과정을 주도한 것은 관료들이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기초연금 도입 등에 관한 연금개혁 논의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2006년 말 보건복지부 유시민 장관 주도의 정부 입법 시도로 사회적 합의기구의 논의가 중단되었다. 언론은 정부가 내놓는 얘기들을 받아쓰는 데 급급했다. 대표적인 것인 연기금 고갈론이다. 정부는 수십 년에 걸친 경향으로 이해해야 하는 연금재정추계를 결정된 미래인 것처럼 유포했다. 또한 장기 출산률과 경제성장률, 고용률 변화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임에도, 당장의 연금급여 삭감으로만 고갈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였다.

반면에 국회는 이 논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민들의 대표체로서 합의에 나서기보다, 정부-여당으로 그리고 야당으로 연금합의에 나섰다. 이들 정당들은 민의를 대표하기보다 연금법과 사학법 등을 둘러싼 정치공학적 거래에 더욱 몰두하였다. 그 결과가 2007년 기초노령연금의 도입과 국민연금 급여의 유례없는 큰 폭의 삭감이었다.

 

민주정부 시기 조용히진행된 급여 삭감

다른 나라 연금정치 사례를 보면, 2007년 한국의 경우처럼 공적연금 급여를 60%에서 40%로 한 번의 입법으로 삭감하고, 이에 대해 대중들이 잠잠했던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대중들은 이 삭감의 내용을 아는 경우도 많지 않았고, 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시민사회운동 진영과 노동운동 진영이 일방적 연금개혁을 저지하고자 하였으나, 이들의 저항은 대상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박정희 시대에 있으나마나한 국민복지연금법이 만들어지고, 전두환 시대 국민연금법이 일방적으로 도입됐지만, 민주화 이후 연금정치의 절차가 보완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정책 투입 면에서는 민주화 이전과 이후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정당도 사회적 합의기구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정책 개입 통로가 될 수 없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수준의 민주화로는 연금개혁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회적 공론화와 숙의가 수반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이를테면 노동운동이 연금정책 방향을 대중적으로 유통시키고 정책 결정의 장에 개입하는 것을 경험할 수 없었다.

일방적이고 행정부 중심적인 연금정치의 결과물은 단순히 공적연금의 축소에 그치지 않았다. 노인빈곤 문제가 극심한 가운데 2007년에 나온 어정쩡한 해법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이다. 노인 30%를 제외하는 등 대상범위가 애매한 것은 물론, 기초노령연금 급여액은 애초 약속한 스케줄대로 인상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 도입 당시부터 이 제도를 점차 축소시켜,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 미수급자만을 대상으로 한 보충연금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반면 노동계는 기초노령연금의 점진적 확대가 예정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이해의 간극은 제도 개혁 과정에서의 소통과 논의가 부족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연금 기반 흔들 박근혜 정부 개혁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의 급여 지급을 약속한 바 있다. 모호한 해석의 대상이자 논란의 대상이 될 조짐이 보이는 기초노령연금 급여 수준을 약 두 배 정도로 올리고, 연금 수급자의 범위도 대폭 늘리겠다는 공약이었다. 박근혜 후보의 다른 공약들이 그렇듯이, 명확하고 철저하게 대상 집단의 이해관계를 겨냥한 약속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대선 승리 이후에는 인수위에서 국민행복연금이라는 이름으로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약 14~20만 원의 급여, 소득 상위 30% 노인에게는 4~10만 원 사이의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기초노령연금제도를 소득과 국민연금 급여를 고려하여 급여액을 조정하는 연금제도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인수위에서 내놓은 안은 각 소득 구간별 기초노령연금 급여액을 국민연금가입 여부와 가입기간에 따라 다르게 책정했다. 여러 기준을 섞은 탓에 한층 더 복잡해져서 이해하기 어려워졌고, 급여 보장의 목적 역시 불분명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소득 하위 70%가 국민연금 급여를 받는 경우, 그 급여액이 많을수록 기초노령연금 급여액은 적게 책정돼 있다. 국민연금의 고의적 미수급과 기여 회피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개인연금상품 가입을 촉진할 수 있다.

 

표 하나 보여주고 동의해달라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예상됨에도 기초노령연금을 인수위 방안대로 밀어붙이기 위한 행보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예상되는 특징 중 하나인 정치적 퇴행이 연금정치에서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사회적 합의 절차와 기구들을 무시하거나 폐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피해갈 수 없는 제도적 유산이다.

그 일례가 연금개혁 과정에 활용되는 사회적 합의기구, 즉 국민행복연금위원회이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주요 사회단체 대표들과 세대 대표들을 포함하는 구성을 가지고, 인수위가 제시한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위원회로 작동할 예정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사회적 합의 과정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합의체를 형성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개혁 방향도 아닌, 꽤 구체적인 개혁안을 먼저 결정해 놓고 사회적 동의를 구하는 것, 그것도 대표성이 불분명한 채로 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형성하기 전에 결론을 정해놓고 이에 대한 승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유례를 찾기 어렵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개혁을 준비하는 데 있어 우선적인 원칙 중 하나가, 개혁안을 형성하는 단계에서부터 혹은 적어도 여러 개혁안의 내용과 장단점에 대한 분석 단계에서부터 포괄적인 참여와 협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 개혁안을 마련하고 사후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 원칙은 행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한 상황에서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대안들의 재정 전망과 효과, 소득재분배 효과 등에 대한 분석 결과에 관한 자료들이 철저하게 공유돼야 한다.

그러나 소위 국민행복연금에 관한 내용으로 공개된 것은 하나가 전부다. 제도 목표와 도입 배경, 상세한 재정 전망과 소득재분배 효과 등에 대한 예측치는 그 어느 곳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연금개혁에 관한 결론은 이미 선언해 버렸고, 그 결론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몇몇 사람들을 모아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갖추겠다는 것은 기만이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의 연금개혁 시도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를 활용하는 것은 민주화 이후의 성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결론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위원회 내부의 동의를 동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뚜렷한 후퇴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국민 기만 복지공약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참여연대

 

국회와 시민사회는 소통화합대상 아닌가

게다가 연금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연금제도발전위원회를 이전에 이미 구성하여, 2013년 상반기에 연금제도 장단기 발전 방향을 정부와 국회에 보고하고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었다는 점은 상황을 더 미묘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있는데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새로 구성하여, 두 개의 공식적인 위원회가 연금개혁 논의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논의기구의 일관성은 연금개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일례로 스웨덴은 1994년에 우파 정권에서 좌파 정권으로 바뀌었음에도 의회에 설치된 연금개혁 관련 기획단의 내부 구성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렇듯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개혁안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책임은 확산되기 어렵다.

한편, 연금정치에서 사회적 합의기구 활용은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상당한 정치적 유용성을 갖는다. 정부의 일방적인 연금개혁 추진은 결국 연금개혁의 정치적 책임을 정부가 모두 떠안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활용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분산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구성할 때는, 차관 인사 때와 달리 야당과의 조율능력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국회 내 논의를 무력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정당 논의와 국민연금제도발전회를 모두 무력화시키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잘 살펴보면, 그 이름이 무색하게 대표 선별 등의 과정에서 야당과 노동 및 시민사회 세력들을 교묘하게 배제시키는 여러 장치들이 존재한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 선택한, 만장일치가 아닌 과반합의제도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졌고, 그 만큼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형성된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연금개혁을 밀어붙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들 입장에서는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빨리 개혁안을 처리하는 것이 이를 돌파하는 방법일 수 있다. 지금 국민행복연금위원회 활동 기한은 올해 여름까지이며, 가을에 법 개정이 이루어지도록 계획되어 있다. 후보 시절 그렇게 외치던 소통화합은 언제 할 것인지 궁금하다.

 

정치공학 중심 연금정치를 넘어서기 위하여

시작 단계지만 박근혜 정부의 연금개혁 정치는 민주적 형식은 갖췄으나, 그 실제는 시작부터 일방적이며 독단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이 취약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이 연금개혁안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으로선 국민행복연금의 상세한 내용과 개혁의 효과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내용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대중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최대한 소통하는 것이 먼저다. 정치공학 중심의 연금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대중의 힘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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