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행복을 위한 국민행복연금인가

노동사회

누구의 행복을 위한 국민행복연금인가

구도희 0 4,376 2013.05.16 02:53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0, 60대들은 각 82%, 80%로 매우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새누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장년층의 이러한 높은 투표율은 보수의 집결이라는 정치적 지형이 작용했겠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핵심으로 내세운,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의 영향도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들뿐 아니라 퇴직을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이라는 약속은 민주당의 것보다 훨씬 진보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20만 원공약, 재미 좀 봤을 텐데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공약은 한국노총이 노동과 복지 분야 등에 있어 각 후보에게 제안한 대선정책 중 새누리당과 유일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2007년 국민연금 개악 이후 제기된 기초노령연금 수급액 인상 약속(2028년까지 2년마다 0.5%씩 인상, 2028년 국민연금 A값의 10% 지급)이 전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이 공약을 통해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 인수위원회가 기초연금의 재원을 국민연금 기금에서 마련한다는 안을 제출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국민연금 탈퇴가 줄을 이었고, 주춤하던 납세자연맹의 안티국민연금운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등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급속도로 상승했다. 더욱이 329일에는 5년마다 시행하는 중장기재정계산추계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발표하면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불안은 더욱 커져 갔다.

그동안 기금 고갈을 중심으로 하는 연금개혁 논의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에 의한 기금 고갈론중심의 국민연금 담론은 꾸준히 활발하게 제기되며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우는 불씨가 되고 있다. 이번 인수위원회에서 제시한 황당한 발상은 그러한 국민연금 불신의 불씨가 더욱 번져서 활활 타오르라고 풀무질을 한 격이었다. 인수위원회가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결국 국민연금 기금의 사용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넘어갔지만, 언젠가 다시 추진할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고갈우려에 뒤로 밀린 사각지대 문제

2010년 기준 18~59세 전체 인구 3,260만 명 중 공적 연금 비적용자는 1,200만 명이다. , 36.8%가 제도 밖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림1]에서 보듯, 취업자 중에서 무급가족종사자, 특수형태근로자, 노점상, 영세자영업자, 임시일용노동자 등은 공적 연금에서 제외되거나 가입했다 하더라도 보험료를 납부한 납부기간이 매우 짧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4대 보험 중 특히 부담이 큰 국민연금을 기피하기 쉽다. 그런 조건에서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 수급액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비례하여 연계시키겠다고 한 것은 저소득층 차별을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지난 20127월부터 실시 중인 두루누리 사업을 통해 저소득노동자들의 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의 광범한 사각지대(18~60세 인구의 40%만 보험료 납부 중)로 인해, 2050년이 되도 노인의 2분의 1만이 연금을 수급하고 그나마도 대부분 낮은 연금액을 수급할 것이라는 전망은 사각지대 해소가 국민연금 제도의 안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관건임을 알려준다.

 

국민연금은 공적 노후소득보장체계이다. 공적이라 함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일정 수준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제도권 밖에 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비정규직, 여성, 영세사업주 등 사각지대 문제가 심각한데도, 정부는 지금껏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한 정책만을 추진하여 왔다. 사각지대 해소를 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는 10, 20년 후에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사각지대 해소 없이는 국민연금제도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한편, 2007년 소득대체율 하향 조정(60% 40%) 이후, 정부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까지 포함한 다층연금체계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국가가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을 회피하고, 이를 사적 영역으로 전가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국민연금 보험료도 납부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퇴직연금제도나 개인연금 등의 다른 연금체계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림의 떡일 뿐이다.

요컨대 다층연금체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이나 국민연금이 국민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적 연금의 책임을 사적 연금에 전가시키는 시스템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사적 연금 활성화로 인한 이득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나 서민이 아닌 금융자본가와 고소득자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노인복지 마스터플랜 수립이 우선이다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상대빈곤율은 14.6%OECD 30개 국가 평균 10.6%보다 약 4.0%P 높다. 노인빈곤율은 우리나라가 45.1%, OECD 30개 국가 평균 13.5%보다 3배 이상 높다.

한편, 201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 590만 명 중 국민연금 급여를 받는 이는 180만 명으로 약 32% 정도이다. 그 중 특례노령연금자 135만 명을 제외하면 실제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노인층은 극소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박근혜 정부가 제시하는 국정과제를 보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대상 확대 계획은 찾아볼 수가 없다. 비단 노인빈곤만이 아니고 전반적인 빈곤 방지책 자체가 그야말로 매우 빈곤한 실정이다.

유일한 노인빈곤 방지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도, 국민연금과 연계하여 설계되면서 도입 목적이 노인빈곤 방지인지 국민연금제도 성숙인지가 불분명해졌다. 이래가지고 노인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연금을 수령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기초연금이든 기초노령연금이든 상관없다.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국가의 품격에 맞도록 하면 된다. 노인빈곤 방지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우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1인 독거 노인가구에 대한 대상 지원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인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의료, 주거, 돌봄서비스, 일자리, 문화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20만 원 수준의 현금 지원만으로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하다.

 

최저생계비 수준의 최저연금이 필요해

2007년 소득대체율의 급격한 하락(60% 40%)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국민연금 개악은 재정 안정화만을 추구했다. 이는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는 것 외의 효과는 없었다. 그 후에도 국민들의 노후보장을 책임지는 공적 제도인 국민연금의 장기발전계획이 제대로 수립돼 발표된 적이 없다. 당연히 사각지대 해소와 노인빈곤률 해소를 위한 중장기계획도 없었다. 2012년부터 실시된 두루누리 사업이 있긴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험료 지원이 빠지고 기존 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등 구조적인 사각지대 해소 방안으로 보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사각지대 문제는 보험료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기초노령연금은 2007년 국민연금 개악 당시 하락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입안된 것이었다. 국회의원들의 무관심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으로 인해 그 대상과 연금액의 확대가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도입 당시에는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합해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해야 한다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우리는 현재 조건에서는 소득대체율 50%’라도 확실히 지켜지기를 바란다. 나아가 국민연금의 적정 소득대체율이 얼마인지, 그리고 이에 대해서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이끌 것인지, 절대적 빈곤을 탈피할 수 있는 최저생계비 수준은 얼마인지, 또 상대적 빈곤선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최저생계비 수준의 최저연금액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기초연금제도,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설계해야

결국 기초연금제도를 원점부터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균등하게 분배돼 소득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는 ‘A’(연금수령 직전 3년간 가입자 전체의 평균소득 월액의 평균액)을 재설정해야 한다. 또한 기초연금으로 노후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비율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의 발전계획은 이와 같은 맥락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 이뤄지고 있는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산술적 결합 시도는 국민연금제도의 성숙과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빈곤 지원 대상 범위를 선진국 수준인 10% 이상으로 정하고, 그 중 노인들의 노후소득 보장의 대상과 수준 범위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 확대, 기초연금 도입 등 노인복지 마스터플랜이 이후 들어설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기초연금의 재원은 100% 국가부담으로 하고, 필요한 재정은 보다 강력한 세제 개편으로 충당해야 한다. 겨우 2%에 불과한 고령화 관련 지출을 선진국 수준(8~14%)으로 올려야 한다. 또한 더 이상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국민행복연금’, 기초연금이라 할 수 있을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초연금 도입은 목적이 노인빈곤 방지인지 전체 노후소득보장체계의 합리적 개편인지가 불명확하다.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가 노후빈곤 및 사각지대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고, 연금제도를 조기 성숙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연금제도라고 적시되어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국민행복연금이 이에 맞게 설계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국민연금과 연계된 기초연금이라면 과연 전체 소득대체율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국민연금의 A값과 기초연금의 상충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서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처럼 70% 소득 기준과 지급가능 연금액을 연계한 행복연금은 기초연금의 취지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요컨대,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소득대체율과 소득재분배적인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

더욱이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가입 기간에 비례해 수급액을 차등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이나 여성 등에 대한 차별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이는 공적 연금의 기본 취지인 사회 연대 정신에 어긋난다. 또한 행복연금이나 신용불량자 지원책인 행복기금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한 사람들의 불만을 자극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난 3월 급하게 추진된 국민행복연금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대표성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구성된 위원회가 과연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재고되어야 한다.

 

노동자 운영 참여와 감시 기능 강화돼야

박근혜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상 확대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로의 전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의 부분적인 개혁안은 제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결국 노년층과 장년층의 를 겨냥해 던져진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공약은 자신들이 진보 진영의 약점이라 공격해왔던, ‘완전한 포퓰리즘 정책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현재 상황이라면 공약(空約)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는 소득대체율 50%’라는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행복연금 제도를 국정과제로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들을 국민연금 정책 결정의 동반자가 아니라 들러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연금정책에 있어 거수기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노동자들의 대표성 강화와 국민연금 운영 감시 강화의 필요성을 공론화를 해야 한다. 기금 정책의 결정에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가 반영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를 위해 기금운용의 독립과 노동자들의 감시 기제가 필요하다. 또한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을 포함해,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한 법 개정 활동도 재개되어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단체의 연대를 통한 각종 공론화와 법 개정 노력이 시급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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