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위기’, R&D 투자 강화로 뚫어가자

노동사회

노동운동의 ‘위기’, R&D 투자 강화로 뚫어가자

편집국 0 3,556 2013.05.13 11:24

얼마 전 『시사저널』에서 재미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하나 나왔다.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주제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사회단체를 묻는 항목이 있었다. 이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한 곳은 참여연대(59.4%)였다. 2위는 경실련(41.8%), 그리고 3위는 환경운동연합(24.2%)이 차지했다. 4위를 민주노총(8.2%)이 차지하였고, 5위는 소비자단체협의회(6.8%)가 차지했다. 여론조사 수치로 단순비교하면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은 참여연대의 7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사회적 영향력’ 상실하고 있는 노동운동

민주노총은 자금규모, 전체적인 회원(조합원)숫자, 동원 가능한 조직력, 상근자 숫자 등을 생각해볼 때, 참여연대나 경실련, 환경운동연합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참여연대의 7분의 1 수준, 경실련의 5분의 1 수준의 사회적 영향력밖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민주노총이 ‘사회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운동진영 내부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대체로 공감하고 있는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내용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와 대기업·중소영세 노동자로 대비되는 노동자 계급 내부의 양극화 심화, 기업별노조 체계의 강고함과 산별노조 이행의 지지부진함 등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인식만으로는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실천적’ 과제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노동운동이 그토록 자주 써먹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잠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노동운동이 어떻게 서로 ‘닮은 꼴’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식 자본주의와 ‘닮은 꼴’인 기업별노조 체계

최 근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주주가치 경영’을 핵심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노동운동이 흔히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하곤 하는데 실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을 기업지배구조 차원에서 살펴보면 역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실천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노동배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 하에서 혁신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식배당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압력에 못 이겨 최고경영자(CEO)가 끊임없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고경영자가 선택하게 되는 것이 이른바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라 불리는 감량경영이다. 그 중에서도 다른 경직성 비용보다 상대적으로 ‘만만한’ 노동자의 임금인하와 비정규직의 남발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리해고의 남발, 비정규직의 확대 등의 감량경영 중심의 단기적 업적주의는 절대로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기업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고숙련과 헌신성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장기적인 효율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보는 핵심 이유는 구조적으로 ‘투자의 단기주의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어려움의 핵심인 기업별노조 체계의 작동원리를 곰곰이 고찰해보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작동 메커니즘과 일치하는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최 고경영자가 주주의 단기적인 압력을 받는 것처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조합원의 임금인상 중심의 단기적인 압력을 받고 있고, 최고경영자가 장기적 혁신투자를 결단하는 전략적 지도부 역할을 못하는 것처럼,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장기적 혁신투자를 결단하는 ‘전략적 지도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노동운동 또한 ‘투쟁의 단기주의 함정’에 빠져서 좀처럼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우리 노동운동은 자본과 노동이라는 다른 포지션에 있을 뿐 미국식자본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직원리를 살펴볼 때 ‘대안적’인 측면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기업별 노조 체계 하에서 구조적으로 투쟁의 단기주의 함정에 빠져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탈출구는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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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승리는 즉각적인 R&D 투자로부터

군 부독재 시대에는 모든 정당한 요구들이 억압받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는 억압을 견뎌내는 전투성과 단결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이었다. 그러나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자본과 정권은 물리적 폭력만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지 않는다. 나름대로의 논리적 정당성과 재벌친화적 경제연구소들이 생산한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노동운동을 공격하고 주장과 정당성을 획득해나가고 있다. 예컨대 삼성경제연구소 하나만 하더라도 수백 명의 석·박사들을 연구원으로 확보하고 있으며, 1년 예산만 2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렇게 재벌들이 운영하는 경제연구소는 삼성경제연구소 하나뿐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국민들을 향해 사회적 설득력을 확보하려면 그만큼의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내년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한일 FTA문제는 물론이고, 연금문제가 되었건, 의료문제가 되었건, 노동자 주택 문제가 되었건 엄청나게 많은 분야에 대해서 노동운동은 준비된 것들이 별로 없다. 앙상한 당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때그때 반대의 소리만 낼뿐이다.

그간 노동운동은 재벌들을 향해서 연구개발(R&D)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 연구개발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64%로 독일(2.50%), 프랑스(2.18%), 영국(1.89%)보다 오히려 높다. 이러한 실상을 감안했을 때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재벌이 R&D투자를 안 한다고 비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오히려 R&D 투자를 정말로 게을리 하는 세력은 자본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노동운동 세력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주노총은 걷어들이는 총 조합비의 몇%를 R&D 투자로 사용하고 있는지, 기초정책을 위해 투자할 수 있도록 단위노조와 조합원들은 총연맹을 배려해 왔는지 자신부터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준비된 정책역량 없이 준비된 총파업은 불가능

민 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현재 노사정 대화기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노사정 대화기구는 말 그대로 협상 틀(형식)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정이라는 협상틀 그 자체가 ‘내용’의 진보성까지를 자동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노사정 대화기구를 통해서 내용적 진보성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의제설정전략 △조직동원전략 △시민사회와의 연대전략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 의미에서의 아젠다(Agender) 전략을 올바로 확보하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머리 좋은 몇몇 사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당 또는 청와대에 ‘인맥’이 있다고 해서, ‘쇼부’쳐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은 장기적 혁신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노동운동이 사회적 설득력을 얻기 위한 장기적인 혁신투자를 꾸준히 할 때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노동운동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산별노조의 이행전략 수립, 노동운동의 장기적 이념만 하루종일 연구하는 연구자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된’ 정책역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준비된’ 총파업은 불가능할 것이며, 노사정 대화기구를 통해 공세적인 승리를 얻어내는 것도 힘들 것이다. 자본과 정권보다 준비된 전략을 확보하고, 준비된 정책역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노사정 대화기구는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98년의 뼈아픈 패배처럼 노동운동을 옥죄는 ‘덫’이 될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2005년이면 민주노총이 건설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민주노총 운동 10년을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10년 동안 조합원의 계급적 단결력은 정말로 높아졌는지, 민주노총은 정말로 1천만 노동자의 희망으로 우뚝 서가고 있는지, 혹은 오히려 (조중동과 노무현이 아니라) 비정규직·중소영세 노동자들로부터 “노동계급 상층 11%”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회장에서 비정규직 철폐라는 유인물을 뿌리는 것말고 비정규직·중소영세 노동자의 문제해결을 위해 제대로 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 보았는지, 지지부진한 산별노조의 이행에 대해서 책임 있는 연구와 대책수립은 하고 있는지 등등을 말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민주노총 10년 동안 미래에 대한 투자 즉 R&D 투자만 제대로 되었다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다 못해 10평짜리 셋방살이를 하는 노동자들조차 내일을 위해 오늘 현재를 아끼고 아껴 저축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데, 우리 노동운동은 미래를 위해 그 어떠한 저축을 해왔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노총이 처한 구조적 어려움, 예컨대 기업별노조 체계, 소모적인 정파간 갈등, 예산부족 등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더라도 어렵다고 해서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현재’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

이러한 맥락에서 부족하나마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것들을 제안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 민주노총은 정부에 국고보조금을 신청하되, 전액을 ‘정책&전략 연구개발’에 사용하는 내부 규약을 제정·관철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민주노동당에 정책연구소가 설립되었는데 그것은 당 지도부의 마인드가 있어서도 아니고, 당내 활동가들의 마인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자금법에 국고보조금의 30%는 의무적으로 ‘정책연구소’에 사용하도록 강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민주노총도 국고보조금을 요구하되, 전액을 정책과 전략 연구개발비로 사용하는 것을 내부 규약으로 제정·관철한다면 지금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겪는 어려움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국고보조금을 받는 문제가 수월치 않다면 민주노총의 전체예산 중에서 일정량은 반드시 정책생산에 투여하도록 하는 정책예산할당제라도 시행해야 한다. 이는 지도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하여 실천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현재 있는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 대한 인사권과 임기를 ‘현 집행부’와 의식적으로 분리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집행부는 속성상 현재의 투쟁요구에 더 많이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미래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분립처럼 인사권과 임기를 구조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민주노총 위원장 임기가 3년이면 정책연구소 소장 임기를 5년으로 설정하여 ‘엇갈리게’ 하는 방법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안들은 어쩌면 노동조합운동의 바깥에서 사정 모르고 하는 소리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책과 전략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R&D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한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투자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사회적 성격 강화는 ‘구호’ 이상의 수준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민주노총이 지난 10년에 대한 냉정한 자기평가 속에 지금이라도 정책과 전략분야에 대한 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