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별노조를 버려야 살 수 있다

노동사회

기업별노조를 버려야 살 수 있다

편집국 0 3,249 2013.05.13 11:24

2005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새해에도 노사관계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노사관계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어렵다. 세계 경제의 전반적 침체현상은 새해에 한층 심화될 것으로 많은 기관들이 예측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비롯한 국제정세의 불안과 이에 따른 유가와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 현상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불안한 국제경제 환경 속에서 국제적인 자본 간의 경쟁도 일층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침체와 원화 가치 절상에 따른 수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경제는 새해에도 힘찬 회복세를 보이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예측기관들이 금년도 성장률을 작년보다 더 낮은 4% 미만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 침체와 경쟁 격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구조조정, 휴폐업, M&A 등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고용불안과 임금상승의 둔화가 예상된다. 게다가 소득의 양극화 현상도 점점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조 20년,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들은 당연히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화의 영향에 따라 종전에는 제조업, 금융업 등에 한정되었던 외국자본의 국내 진출은 의료, 교육, 서비스 등 상대적으로 글로벌화의 영향을 덜 받았던 내수부문으로까지 광범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에 따라 이들 산업에서도 경쟁의 격화와 구조조정, 고용불안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의 일차적 대상이 될 비정규직과 관련한 노사간, 노정간 갈등도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연초에 비정규직 관련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지만 국회 통과 여부에 상관없이 유연화 저지 및 비정규직 보호를 둘러싼 기업 차원의 노사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에서 격차의 원인과 그 해법을 둘러싼 노사간, 노정간 논쟁도 지속될 것이다. 

구조조정, 고용조정,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 대응하기 위한 정책 수립과 제도화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필수적이지만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체제의 복원을 위한 여건 조성과 합의사항 준수여부를 둘러싼 대립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산업별로도 산별 교섭의 구조와 내용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이 여러 산업에서 보다 폭넓게 나타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금년도 노사관계를 둘러싼 여건변화와 노사관계 이슈를 둘러싼 예상되는 노사갈등 등은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응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1987년 이후 전개되어 온 한국의 노동운동은 자본과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자주적 노동운동, 현장 노조원의 참여와 통제에 기반을 둔 민주적 노동운동, 그리고 노조원 대중의 강고한 투쟁력에 기초를 둔 투쟁적 노동운동으로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쌓아왔으며 오늘날 세계 노동운동 가운데서도 가장 굳세게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는 사례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에 가까운 노동운동 과정에서 굳어진 관행과 제도, 의식 가운데는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기업별로 나뉘어져 조직된 노동조합과 노조원의 관심사는 기업 차원을 벗어나기 힘들었고 따라서 그 일차적 관심사는 자기 기업에서의 임금과 근로조건 향상 등에 집중됨으로써 경제적 조합주의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경영참여와 산별교섭 및 사회적 합의체제가 없는 가운데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조합 탄압이 지속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노동조합은 자본과 국가와의 교섭보다는 총파업 등 투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투쟁일변도의 전투적 조합주의 노선이 굳어졌고, 총파업은 반복되었지만 조합원들의 동원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운동은 일반 국민들로부터도 소외당하고 있다. 한편 개별 기업 차원의 교섭과 투쟁에 의존함으로써 노동운동이 파편화되고 산업적,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는 소홀한 기업별 조합주의의 폐해를 낳았다.

위기론을 넘어서는 실천적 과제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이후 급속한 환경변화 가운데서 이러한 경제적 조합주의, 투쟁일변도 조합주의, 기업별 조합주의로서는 정부와 자본의 탄압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이제 노동운동 내외의 여러 사람들에게 뚜렷이 인식되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노동운동 위기론'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이슈이기도 하다. 먼저 임금 및 근로조건 등 경제적 이슈 위주의 노동운동만으로는 새로이 제기되고 있는 고용안정, 비정규직 문제, 소득격차 확대, 주택문제, 교육문제 등 전 산업, 전 사회적 이슈들에 올바로 대응하기 힘들다. 아무리 투쟁과 교섭을 통해서 임금과 근로조건을 향상시킨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불안해지고 세금, 부동산, 교육비 등이 오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조합주의로부터 사회적 이슈들에 대응하는 사회적 조합주의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투쟁을 통한 조합원 동원에 일정한 한계가 보이고 노동운동의 사회적인 고립을 가져오는 투쟁일변도의 조합주의도 이제는 투쟁과 교섭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보다 성숙한 조합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개별 기업 위주의 활동에 매몰되어 있는 기업별 조합주의에서 전 산업, 전 사회적 단결을 통해 초 기업적 이슈들에 대응하는 산별 조합주의로 전환하는 것은 이상의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 목표라 하겠다.

사실 노동운동은 지난해 금속과 보건의료 등 일부 산업에서 산별협약 체결에 성공함으로써 이러한 전환을 이미 시작하였다. 2004년의 산별협약은 몇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지난해의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한국 노동운동 사상 최초의 진정한 산별교섭, 산별협약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1백년을 넘는 한국 노동운동 사상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지금까지 몇 차례밖에 시도된 적이 없다. 먼저 1920년대 후반에 직업별로 조직되어 있던 초기 노동조합들이 산별노조를 결성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고, 산별교섭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는 해방 후 전평에 의한 것이다. 당시 전평은 16개에 달하는 정연한 산별노조 체계를 갖추고 전국 각지에서 강력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전평은 해방 공간 속에서 격렬한 좌우대립으로 인해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의 길로 빠져들었고, 결국 미군정과 자본에 의한 전평의 불법화와 더불어 산별노조, 산별교섭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세 번째는 5·16 쿠데타 이후 한국노총의 산별노조 구성이었지만, 이것은 당시의 군사정부가 노동운동을 통제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 구성한 형식적 체계에 불과했으며 단체협약은 기업별로 진행됨으로써 역시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시도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2002년 이후 금속과 보건의료 등 일부 산업에서 산별교섭, 산별협약 체결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자본 측의 완강한 거부로 일부 사용자와 협약이 체결됨으로써 전국단일협약 체결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2004년의 산별협약은 한국노동운동 사상 최초의 진정한 산별협약으로서 한국노동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4 산별협약 역사적 성과로 인식해야

한편 교섭구조 면에서도 전국단일노조 대 전국단일 사용자단체 간의 중앙교섭과 지역별 교섭 및 지부 노조와 개별 사용자 간의 지부교섭이라는 전형적인 산별교섭 형태를 취하였는데 이는 미국의 분산교섭은 물론이고 지역별로 진행되는 독일의 산업별 교섭구조와 비교해도 산별교섭, 산별협약의 원형에 더 가까운 교섭구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섭내용 면에서도 산별 최저임금의 설정이나 주5일제 공동기준 마련 등 산별 통일기준이 마련되었고, 산별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대책 등을 통해 교섭내용을 비노조원을 포함한 산업 내 전체 노동자로 확장하고자 하였으며, 의료 공공성 강화 등을 통해 교섭의 사회적 확장을 꾀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기업별 교섭구조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산별 고유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지난해 진행되었던 산별교섭, 산별협약에서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별 교섭과 협약 결과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즉 산별교섭과 산별협약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이며,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구조와 내용이 확보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이 지향하는 바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산별노조 내부적으로는 산별교섭을 통한 교섭력 증대를 통해 임금 및 근로조건을 확보하는 동시에 임금 및 기타 근로조건의 격차 해소를 위한 산별 통일기준의 확보와 고용, 복지, 훈련 등에서의 산별체제 구축을 통해 노조원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둘째, 산별노조, 산별교섭은 단순한 기업별노조, 기업별교섭의 결합이 아니라 산업 내의 모든 조직·미조직 노동자들이 단결과 연대를 통해 산업 노동시장을 독점함으로써 교섭력을 높이고자 하는 시도이다. 셋째, 산별노조, 산별교섭은 조직 노동자의 좁은 이해를 넘어서서 노동자계급 전체, 혹은 더 나아가 국민 전체를 위한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노동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고 사회적 민주화와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건이 어렵다고 기본정신을 훼손할 수 없어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난해의 산별교섭, 산별협약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산업 내 격차해소 면에서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협약은 산업별 최저임금 설정과 비정규직 대책 마련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의 산별협약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보건의료산업 협약의 경우 소속 조직의 규모, 특성, 지역의 차이를 넘어서서 산업 전체를 포괄하는 단일 산별협약(통일단협)을 지향하였다. 그 결과로 보건의료노조는 주5일제, 비정규직, 최저임금제, 보건연대기금 추진 등 기업별교섭으로는 불가능했던 이슈들에 관한 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으며, 내부적으로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더 벌어지는 것을 막았다. 반면 협약의 결과로 상대적 고임금 사업장의 반발과 조직 내부의 갈등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금속산업의 경우 다양한 업종과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 등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산별 기본협약만 체결하고 나머지는 지부·지회교섭에 위임하였다. 이는 조직 내의 다양성을 고려한 현실적 조치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 축소를 통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라는 목표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산별 최저임금도 너무 낮은 수준에서 설정되어 실제 적용대상의 규모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약화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 산업의 협약 내용의 차이보다는 오히려 두 협약의 공통된 문제점에 주목해야 한다. 두 산업의 협약 모두 산업의 통일적 임금과 근로조건 확보를 위한 시도가 없었다. 인상률의 통일이 아닌 일정한 숙련수준에 상응한 통일적 임금과 근로조건의 확보라는 산별협약의 기본적 틀을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통일적 기준의 포기를 당연시 하면서, 산별 교섭은 최저임금을 비롯해 산별 최저수준의 임금 및 근로조건의 확보에 한정하고 실제 임금수준의 결정은 지부교섭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산별교섭, 산별협약의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 확대를 방치하겠다는 주장에 다름없다. 이 경우 지부교섭력이 큰 대형 사업장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그렇지 못한 중소 사업장, 비정규직 등에게는 매우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산별로 가기 위한 산적한 과제들 되새겨야

따라서 앞으로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산별 통일임금 및 근로조건 확보를 위한 틀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기업별로 정해져 있는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와 극단적인 임금격차 등을 감안할 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목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표 자체를 포기하거나 임금수준의 결정을 지부교섭에 맡겨두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둘째, 산별노조는 단순한 기업별노조의 결합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가 작업장과 사회의 양쪽에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산업 내 모든 노동자를 단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운동은 조직률이 10% 정도에 머물고 있어 산별 노동시장의 독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더욱이 주로 대형 사업장의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고 비정규직, 중소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미조직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중노동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이로 인해 조직노동자의 전체 노동자 계급대표성에 큰 의문이 제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을 빌미로 사용자들이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하고 임금 및 근로조건을 압박하는 등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는 새로운 조직화 노력과 개별 노조가입제도의 실현 등을 통해 조직률 향상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또 산별협약은 연대임금정책, 연대고용정책, 연대복지정책, 연대숙련정책 등을 추구하여야 하며, 특히 비정규직 이슈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관철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한편 협약 효력을 협약 대상이 아닌 미조직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해의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의 확대를 위한 기초적 요소들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앞으로 산별교섭, 산별협약은 의료, 주택, 교육 등 공공적인 이슈를 적극적으로 담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산업별 노사공동위원회의 구성, 사회적 합의체제 참여를 통한 정책의 제도화 관철, 정치활동의 강화 등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의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재정, 인력의 집중을 통한 정책역량의 강화도 필수적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은 또 하나의 전환기에 처해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제기될 정도로 노동운동을 둘러싼 여건이 어렵고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굳어져 온 관행 가운데 경제적 조합주의, 투쟁일변도 조합주의, 기업별 조합주의라는 틀을 깨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산별노조, 산별협약의 지향과 그 내용의 실질화가 필수적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