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세상을 바꾼다! 나를 바꾼다!

노동사회

노동조합이 세상을 바꾼다! 나를 바꾼다!

편집국 0 2,983 2013.05.13 11:19

밤이 더 화려한 서울 동숭동 대학로.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통대)는 그 거리를 휩쓰는 떠들썩한 에너지가 그래도 조금은 조용히 지나가는 곳이다. 날씨가 궂었던 어느 목요일 늦은 오후, 일제시대에 지어졌다는 목조건물 안 방통대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성선희 교육선전국장을 만났다. 

전화로 급하게 약속을 잡고 어쩌고 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만나서 보니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지난 해 가을, 우리 연구소가 진행하는 간부교육에서였다. 뒤늦게 도착해 사람들 앞에서 “어렸을 적 제 별명은 이주일에다가 배삼룡을 합쳐놨다고 ‘이주룡’입니다”라고 썰렁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들어오며 머리를 긁적이던 내게, “주룡이 동지, 환영합니다!”라고 말해주던 그 환하고 넉넉한 웃음의 주인공이었다. 

난생 처음 파업을 치르며

방통대 노조는 지난 해, 1989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2002년 얻어낸 전향적 합의사항이 사측 교섭대표가 바뀌면서 무시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04년 임단협에서 방통대 노조는 인사징계위원회 노조 참여, 전임자 증원, 방송매체 제작진 직급정년제 폐지, 열악한 조건에 있는 시․군 학습관 근무자 처우개선, 계약직 5년 이상자(5명) 정규직화 등의 요구를 내걸었고, 12월13일 천막농성을 시작으로 12월24일부터 12월30일까지 전면파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비정규직 2명의 정규직화를 포함하여, 성선희 교선국장의 표현대로라면 “요구사항의 70% 정도”를 얻어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노동자 연대의식, 자부심 이런 것들이 자라나는 계기였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 ‘저 치들은 우리보다 월급도 많이 받는데, 왜 내가 저 사람들을 위한 요구에까지 같이 싸워야 하나’ 하는 마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 교육과 파업 과정을 겪으면서 단결과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어렵게만 보이던 요구사항 쟁취를 이뤄내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파업은 모든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와 어려움을 낳기도 한다. 파업 이후 성선희 국장의 고민거리는 방통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사이에 뿌리를 두고 점점 고개를 쳐들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불만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는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파업은 곧 격심한 ‘업무증가’였다. 게다가 2003년부터 직급체계가 통일되고 공무원이 누렸던 경력대비 상대적으로 나은 처우도 사라지면서, 파업이 보여준 역동성은 어떤 이들에게는 박탈감과 소외감을 일으키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파업이 끝난 이후 노동조합 홈페이지 게시판에 파업의 의미를 훼손하는 글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단다. 노동조합에서 지금까진 그냥 아무 답변 없이 내버려뒀지만, 성선희 교선국장은 이제 근거 없는 의혹과 이기적인 불만에 대해서 보다 당당하게 대응할 생각이라고 했다. “저들이 조장하는 분열이지만, 연대의식을 확인하는 것은 우리들이 해야할 몫”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자기성장의 기쁨

“노동조합이 세상을 바꾼다, 이 말을 제가 참 좋아하거든요. 작년에 난생 처음으로 파업이라는 것을 거치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더라구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성선희 교선국장의 말에는 내내 넉넉한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이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모두가 지켜야할 기초질서가 훼손당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늘 품고 있으면서도 쉽게 터뜨리지 못했던 그가, “다른 사람(약자)들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서 발견한 자기성장의 기쁨 덕택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성장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만들어내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체감한 덕택일 것이다.

2000년 “그냥 도장만 찍으면 된다”는 꼬임에 회계감사로 시작했던 노동조합 활동은 그에게 정당한 분노를 행동을 통해 풀어내고, 당당한 사회적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주변과 함께 자라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노동운동의 위기’는 이러한 아름다움만이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개인적인 소망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선희 국장은 장난처럼 씩 웃으며 ‘결혼’이란다. ‘아름다운 그’가 그 소원 꼭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