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선언 10년 노동운동의 성장

노동사회

세계화 선언 10년 노동운동의 성장

편집국 0 3,519 2013.05.13 11:04

1990 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세계화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내세운 세계화는 학술적인 용어가 아니라 정치적 슬로건으로 등장했다. 1993년 집권 초기부터 국제화를 내세운 김영삼 정부는 1995년부터 세계화를 정부의 정책방향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kyshin_01.jpg“국제화를 세~게 하는 것이 세계화”

세 계화와 국제화가 어떻게 다른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그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회창 국무총리의 한마디로 압축되었다. “국제화를 세~게 하는 것이 세계화”라는 국무총리의 단순한 인식은 세계화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해프닝이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외환위기와 IMF의 경제통치를 통하여 세계화된 한국경제의 모습을 임기 내 직접 보여주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네 가지 커다란 환경변화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특히 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현재에도 환경변화에 따라서 노동운동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첫째, 세계화라는 거시적인 노동운동 환경의 변화이다. 아직 조직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의 많은 신생 노동조합들은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중소기업 노조들의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더욱 컸다. 둘째, 민주화와 더불어 이루어진 정권 교체 시기에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낳았다. 야당집권으로 가시화된 정권교체는 과거와는 다른 정부의 노조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반면, 곧바로 그것이 무너지면서 노동조합이 일관된 정책적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셋째, 시민운동의 등장으로 노동운동이 하나의 사회변혁 내지 사회개혁 세력으로서 이미지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90년대 시민운동의 성장으로 시민운동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운동, 노동운동은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인식이 확산되었다. 넷째, 남북분단으로 인한 통일운동노선 내부의 갈등이다. 통일문제를 둘러싼 노선 대립과 갈등은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세계화와 노동계급의 다양한 분화

1995 년 민주노총이 출범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동구권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었고, 더 이상 자본주의와 경쟁하는 경제체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의 세계화는 김영삼 정부에 의해서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자’는 경제적 민족주의로 시작되었다. 세계화가 탈국가, 탈민족, 탈영토의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적어도 90년대 중반 정치적 슬로건으로 등장한 세계화는 국제시장에 수출을 더 많이 하는 것을 의미했다. 공격적인 수출이라고 불릴 수 있는 한국의 세계화 전략은 파국으로 귀결되었다. 곧바로 1996년 12월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 한국은 경제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성급한 경제개방으로 인하여 이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의 기업과 정부는 전대미문의 경제공황을 맞게 되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국가위기 속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사정위원회를 기반으로 대타협을 이루어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과 정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면서 교직원 노조와 공무원 노조의 합법화와 같은 교환을 얻어냈다. 그러나 정리해고가 기업에 의해서 남발되고, 공기업 민영화가 정부에 의해서 강행되면서,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에 의한 경제 회생이 이루어지자 노동자들의 불만은 크게 고조되었다. 노동조합의 참여와 타협에 의한 정리해고나 기업합병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배제되고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되면서, 경제위기 하에서 이루어진 노사정의 타협은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귀결되었다.

경제위기로 인하여 한국의 노동계급은 급격한 분화를 경험하였다. 이것은 내적인 이질성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로 인하여 노동운동은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1997년 이후 200만명에 달하는 신규 실업자가 발생했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비정규직(임시직, 단기계약직, 시간제 등) 종사자도 90만명 정도 늘어났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등장으로 노동시장은 대기업 노조원, 중소기업 노조원, 정규직 비조합원, 비정규직 비조합원, 실업자로 분화되었다. 

수세적 방어와 대기업노조 중심의 활동

한 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더욱 대기업 노조 중심으로 변질된 것도 바로 경제위기 하에서 중소기업 노조들이 존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조직적으로 규모가 크고, 기업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기업합병 등을 막을 수 있는 조직력과 동원능력이 있는 대기업 노조들만이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국 많은 중소기업 노조들이 경제위기 하에서 사라졌다. 1987년 설립된 많은 신규 노조들이 이 시기 동안 큰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계화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전대미문의 경제공황에 노동계는 별다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수세적인 방어에 활동을 집중했다.

그 러나 경제위기 이전에도 세계화의 영향력은 노동시장에서 나타났다. 노동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먼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의 노동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구의 경우 1960년대와 70년대, 일본의 경우 1970년대, 한국과 대만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었다. 한국의 경우 동남아시아 노동자들과 중국 노동자들이 들어와 주로 3D 업종뿐만 아니라 각종 서비스 업종으로 진출하였다. 이것은 한국 노동운동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노동운동은 배타적으로 내국인 노동자들의 운동이라고 인식해왔던 한국의 노동운동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서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국내 노동자들의 분화 이외에 외국인 노동자까지 국내 노동시장에 유입되면서 노동자계급은 매우 다양한 속성을 지니는 노동자 집단들로 분화되어 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러한 노동자들을 고려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기업별노조 체계 하에서 이러한 고려는 노동조합의 합법적 활동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조합의 활동은 여러 가지 제재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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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정부에 대한 노동계에 대한 기대는 대우자동차 탄압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 출처: 오마이뉴스 ]

권위주의 정권과는 다르겠지 했는데…

권 위주의 정권을 대체하는 민주적 정치세력의 집권은 언제나 노동계에게 민주적 노사관계의 제도화 가능성을 꿈꾸게 하였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기대는 ‘적어도 권위주의 정권과는 다른’ 노동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곧바로 좌절과 분노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위기 하에서 세계은행과 IMF의 요청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정책은 오히려 한층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대우자동차 파업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과거와 같이 공권력을 동원한 무력 진압을 보여주었고, 노동계와 정부의 대립은 오히려 날카로워졌다. 한국전력과 같은 국영기업 민영화가 시도되면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을 시작으로 2004년 공무원노조 파업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근로조건이나 권리를 둘러싼 노동계의 파업은 노사관계의 선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노사대립이었다.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은 언제나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민주화로 인하여 과거보다 더 높은 기대 수준을 갖게 되었지만, 그러한 기대 수준이 충족되지 못하면서 정부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은 약화되지 않았다. 조직적인 차원에서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계속해서 거부하면서 민주노총과 정부와의 갈등 관계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04년 총선을 계기로 정당과 노조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적어도 총선과 같은 선거에서 과거와는 다르게 노동계의 선택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되었다.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도 지도부 수준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밝힘으로써 노동계의 정당 선택은 보다 확실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노동계의 정치적 선택을 둘러싼 갈등 해소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새로운 관계 모색

노 동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화는 시민운동의 성장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 등장하기 시작한 시민운동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이들 시민운동은 과거 민주화 운동의 목표가 더 이상 운동의 목표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운동 노선을 추구하였다. 새로운 운동 노선은 체제 변혁적인 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개혁노선이었다. 점차 노동조합 활동이 기업 내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시민단체들은 활동의 결과를 모든 사회성원들이 누리게 되는 공공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1990년대 급성장한 시민운동이 노조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공공영역에서 개혁담론을 주도하게 되었다.

노동운동은 시민운동과의 관계 설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운동은 가장 조직력이 큰 노동조합 조직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의 시민단체들이 거대한 노조들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큰 것이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사회적인 쟁점들을 제기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시민운동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을할 필요가 있다. 기업 울타리 안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는 새로운 운동노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업별노조 체계 하에서 노동조합이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활동 내용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극복해야할 노동운동 내부 노선대립

분단국가인 한국사회에서 통일을 둘러싼 갈등은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세력 내부에서도 존재하고 있다. 통일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노동운동 노선과 계급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노동운동 노선 대립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이다. 더구나 분단의 극복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립은 쉽게 해소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이 직면하지 않은 독특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아직 전면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잠복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계 내부에 통일문제와 관련된 입장 차이는 대선이나 총선에서의 입장과도 연관되어 있다. 통일문제를 우선시 하는 관점에서는 보수당의 집권 저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했던 반면, 노동문제, 계급문제를 우선시 하는 관점에서는 여야 모두 보수정당이라는 관점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진출을 과제로 인식했다. 그러므로 통일문제는 노동계 내부에 깊은 갈등의 골을 낳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노조 조직률이 12% 정도에 불과한 한국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노동운동 노선이 대립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낮은 조직률을 극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들 사이에서도 이해의 공유와 연대 형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이러한 노선 대립을 긍정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노조운동은 한편으로 기업 울타리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현실인식을 통하여 전국적인 수준에서 노조조직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다른 한편 새로운 노동운동 노선을 제시하여 노조 내부의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기업 울타리 밖으로, 새 출발을 위하여

한 국의 노동운동은 독재권력의 탄압과 세계화의 역풍을 헤치고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과거 어느 시기에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실이라는 점에서 노동운동은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화, 민주화, 시민사회의 성장이라는 조건에서 노동운동은 국민적 지지를 잃으면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노사정이 아니라 새롭게 시민사회가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노사관계, 노동운동, 노동정책 모두가 시민사회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한 국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전범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노동운동의 방향 설정에 공헌할 수도 있다. 서구 노동운동과는 다른 조건에 놓여있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기업의 울타리에 매몰되는 경제주의적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울타리 밖의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개혁의 주체로 자리매김을 할 때 한국의 노동운동은 21세기 새로운 노동운동의 모델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