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선언 이후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노동사회

세계화 선언 이후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편집국 0 3,070 2013.05.13 11:00

한 국에서 1997년 외환금융위기(이하 ‘외환위기’ 또는 ‘위기’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1997년의 외환금융위기를 일컬음)에 뒤이은 경제위기는 단순한 순환의 차원을 넘어서 한국발전모형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위기의 뿌리는 어디에 맞닿아 있었는가? 분분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시기의 발전모형과 관련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97년 위기는 박정희 시기의 발전모형이 해체되고 새로운 발전모형이 모색되던 과정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구조전환의 상징으로서 세계화 선언

이 러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주는 상징적 사건은 1994년 11월 김영삼 정부의 이른바 ‘세계화 선언’이었다. 세계화 선언은 1980년대 말 유례 없는 경상수지 흑자 및 ‘3저(싼 기름값, 낮은 금리, 달러 약세) 호황’ 등에 따른 경제조건의 급격한 변화와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비롯된 노동의 공세적 양상에 대한 국내 대자본의 대응방식 과정 중 하나였다. 그리고 국내금융시장의 빗장을 열어제치고자 압력을 가했던 해외자본의 개방화요구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세계화 선언은 1997년 외환유동성 위기에 의한 심각한 공황국면을 초래한 계기적 과정이었으며, 과거의 발전모형을 철저히 해체하고 본격적인 ‘앵글로-아메리칸 모형’을  대안모형으로 확고하게 만든 상징적 원인이었다. 돌이켜 봤을 때, 다소간의 수사적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1994년 말의 세계화 선언은 우리 사회를 20여년간 규정지었던 경제사회구조 변환의 정점 중에 하나였다. 그러므로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대중들의 삶의 양식을 본질적으로 뒤흔든 결절점으로서의 상징성도 지녔던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화 선언 이전과 이후의 경제조건 변화와 그것의 사회경제적 귀결 및 노동대중의 삶의 양식간의 관계를 조망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세계화 선언과 외환위기

1980 년대 세계적으로 금융자유화와 금융혁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한국도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의 집권기부터 자유화를 추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된 것은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에 의한 국내경기의 호조건과 이에 따른 자본의 강력한 내재적 요구에 의해서다. 3저 호황으로 달성된 대량의 경상수지 흑자는 막대한 유휴자본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정점에 달한 제조업부문이 투자영역을 제한하면서 실물조건과 금융조건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두 조건의 불일치는 민영화(privatization)에 준하는 사적자본 축적영역의 확장과 산업집중에 대응하는 금융부문의 집중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요구조건을 ‘금융자유화’라는 이름으로 내걸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금융자유화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3저 호황기의 대폭적인 대미 경상수지 흑자에 의한 한미통상 마찰조정에 따라, 특히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한 미국 측 요구는 1992년 ‘3단계 금융자유화 및 개방계획’으로 수용되었다. 이에 따라 금리자유화, 여신관리제도 개편, 단기금융시장의 발전 등 굵직굵직한 개혁안들이 추진되기 시작했는데, 이중에서 이후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외환 및 자본자유화 조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1994년 11월의 세계화 선언은 이 흐름을 확정하는 계기였고, 1996년 OECD가입과 함께 그 과정은 사실상 매듭지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자유화 과정이 야기한 제도변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글리에타(Michel Aglietta)라는 경제학자는 역사적으로 주기적인 교체를 형성하는 두 가지 금융체제를 크게 ‘관리된 금융체제’와 ‘자유화된 금융체제’로 부른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1990년대 우리의 금융자유화 과정은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과정으로, 아직까지는 양자가 혼합된 과도기적 상태로 볼 수 있다. 실물부문이 전통적인 고부채 차입의존적인 축적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에 제조업부문 30대 재벌의 평균부채비율은 여전히 500%를 상회하였다. 또한 1997년 전후로 부도가 난 6개 재벌의 평균부채비율은 무려 1,877%에 달했다.

사실 한국의 전통적 축적구조는 호황국면에서 왕성한 자본축적과 뒤이은 급격한 이윤율저하 및 유동성위기라는 형태를 띠었다. 왕성한 자본축적은 빠르게 자본생산성을 떨어뜨렸으며 동시에 노동시장을 압박하여 임금 몫을 끌어올려 양 측면에서 이윤율을 급격하게 끌어내렸던 것이다. 즉 한국의 금융공황은 금융의 취약성과 이윤율 저하가 결합해서 발생하는 유동성위기구조를 띠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다만 그것이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외환유동성 위기로 표출된 것뿐이다. 이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이래로 수입자본재 의존적인 축적구조가 만들어낸 항상적인 외화유동성 제약의 폭발이었다.

결국 문제는 고부채차입에 의존한 왕성한 축적과 그에 의한 고도성장달성이라는 전통적 축적방식의 본질적 모순, 즉 급격한 이윤율하락에 의한 유동성위기가 사회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990년대 금융자유화에 따른 자본시장개방, 그것도 특히, 어이없게도 일반적인 자본계정 자유화단계를 무시한 단기자본계정 우선자유화는 전통적인 축적구조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극단화시켰다. 이는 실제로 외채문제가 주요 이슈였던 1980년대 초 GDP 대비 외채의 비중이 1997년보다 높았음에도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점에서 명백하다. 따라서 일반적인 주류경제학자의 관점에서도, “자본시장 개방, 규제완화 등 1990년대 금융부문의 자율화와 개방화는 이전 기간에 경험하지 못했던 불안정성과 위험을 가져왔고, 결국 외부적 충격이 왔을 때 한국의 기업과 금융부문의 곳곳에 누적되었던 구조적 취약성이 일시에 노출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였다.

상시적 고용불안과 ‘실현위기’

앞서 본대로 한국의 위기구조는 전형적으로 고부채 차입의존적인 자본축적과 그에 따른 이윤율의 급격한 하락이라는 유동성위기구조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위기 이후 한국의 위기구조형태는 과거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벤처열풍’과 2001년 ‘마구잡이 카드발행’에 의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적 소비신용 증대라는 처방의 효력이 떨어진 이래 새롭게 위기구조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외견상 전통적으로 경험해왔던 형태가 아니었다.

예컨대 국가신용등급은 거의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였으며 외환보유고는 2004년 현재 무려 2,000억불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단기외채비중 역시 외환위기 이전보다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어음부도율도 1997년 10월 0.43에서 2002년 9월 현재 0.05수준으로 현격히 떨어져 있다. 고용문제 또한 ‘비정규직문제’, ‘청년실업문제’ 등 일자리 창출담론의 확산이 그 심각성을 보여주지만 지표상의 실업률은 별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예컨대 1997년의 실업률이 2.6%인데 2002년과 2003년의 경우 각각 3.1% 및 3.4%로서 크게 높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실제 체감되는 위기 징후와 지표간의 괴리가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시스템, 즉 축적구조의 구조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런 상태를 ‘실현위기’의 징후로 표현할 수 있다. 실현위기의 특징은 기업들의 수익성하락은 전체적으로 저지되지만, 경기의 활력은 구매력의 약화로 지속적으로 둔화되는 위기구조를 나타낸다. 위기 전후 제조업 대상 수익성 추이를 보면, 1999년을 기점으로 위기 직전의 수익성 하락을 빠르게 회복한 후 추세적으로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위기설이 파다한데도 주식시장이 꽤 높은 수준에서 안정성 있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힘이 뒷받침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익성규준 중심의 축적구조는 노동의 희생을 요구했고 동시에 자본에게도 내수위축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증대되었지만 유연화는 차별적으로 전개되었다. 즉 비정규직 부문에서는 유연성이 크게 증대되었지만 반면 정규직의 경우 엄격성 지수가 오히려 늘어났다. 이러한 유연화의 차별적 전개는 대다수 고용관계를 비정규직 형태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고용불안을 증대시켰고 동시에 정규직 부문 역시 제도화된 고용안정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규율에 철저히 노출됨으로써 체감 고용불안도 높아졌다. 이러한 구조는 외견상 정규직 대 비정규직간의, 노동 대 노동의 대립구조로 여겨지면서 노동운동의 위기조짐까지 형성되고 있지만 이는 실상 맑스가 말한 대로 자본의 편성구조, 즉 자본의 점증하는 집중과 배제의 원리를 반영할 뿐이다.

고용불안 속 내수 위축의 그림자

고 용의 불안정성은 결국 안정적인 소득-지출 흐름을 불안정하게 하여 소비지출구조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복지제도가 부실하고, 사회보험적용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대부분의 노동자는 배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업은 소득의 급격한 감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소득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증대된 불평등구조는 비정규직 비중의 확대와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의 격차 증가 등으로 파생된 고용 및 임금구조의 불안정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의해 악화된 임금분배율이 소비구매력에 제한을 가하면서 상품실현의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화된 금융체제’에서 내수부문의 위축은 대중구매력의 약화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즉 금융자유화의 본격적인 전개과정에서 임금 및 고용조건의 변화는 소비행태에도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여, 위기 이전 경기역행적(contracyclical)인 소비가 위기 이후에는 경기동행적(procyclical)으로 바뀌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의 위기국면에서 소비와 수출은 오히려 증대하면서 투자부진에 따른 경기하강을 방어하는 경기역행성을 띠었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위기국면에서 소비는 오히려 경기하강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이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불황국면에서 소비는 감소하고 이는 다시 불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하나의 악순환을 형성한다.

민스키(Minsky)는 금융자유화에 의한 포트폴리오구성의 가능성에 노출될 경우, 소비가 자산가격 변동에 지나치게 연동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소득불확실성이 부의 축적과 소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해서 2002년 발표된 어떤 연구에서는 이와 관련, 직업의 안정성과 장래성을 기준으로 높은 불확실성에 직면한 가구들이 예비적 저축 동기에 의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인다는 가설을 유의하게 확인했다. 불황기에 수백조원의 뭉칫돈이 투기성 부동자금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이나, 급격한 고용불안정과 불안정한 미래에 따른 노동대중의 예비적 저축동기 증가나 모두 금융자유화가 초래한 소비행태 변화의 원인임이 분명하다.

새 형태의 위기극복 전략이 요구돼

한 국의 전통적 축적방식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자본을 투입하는 고성장전략 하에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는 지속적인 자본재수입을 위해 수출과 수입대체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업구조 고도화에 의한 대규모 신규산업의 창출은 농촌으로부터의 급격한 노동이동과 과잉노동인구에 대한 대규모의 일자리를 동시에 창출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정부가 위기 시에도 높은 투자에 의한 고도성장전략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마치 자전거가 출발할 때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속주행이 요구되는 특수한 초기조건에 비유된다. 실제 과거 위기국면마다 안정화정책으로 ‘수출촉진과 급속한 경제팽창정책’이 취해졌던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축적조건과 전략은 이러한 전통적 발전양식과 투자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의 긴축정책이 실패로 판명이 나고 1998년 하반기부터 전통적인 해법이었던 경기팽창정책으로 비록 위기국면을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이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은 더 이상 과거의 성장방식을 용인하지 않았다. 위기를 계기로 하는 금융과 노동 중심의 혹독하면서도 광범위한 고용 및 구조조정은 사회 자체를 바닥에서부터 뒤흔드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심각한 사회적 불안정성의 증대였다. 경제주체들은 미래보장과 관련한 안정성이 심대하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시장주의라는 합리성 논리에 따라 전체적 합리성과 양립하지 못하는 부분적 합리성의 극단화의 형태로 나타났다. 구조적인 내수부진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거시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대로 ‘구성의 오류’에 빠진 듯하다. 기업들의 투자는 불확실성에 휩싸이면서 장기간의 대기상태로 빠져들었다. 이에 따른 전례 없는 지속적인 투자위축은 허약한 사회안전망을 들춰냈는데, 즉 취약한 사회간접임금시스템은 불황국면에서 고용불안정과 심각한 임금격차에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계층을 급팽창시켰다. 또, 전통적으로 그래왔듯이 국내시장에서 판로를 찾지 못한 기업들은 수출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내수부문의 위축은 수출과 내수부문의 양극화현상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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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성의 오류: 어떤 원리가 부분적으로 성립해도 전체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성립한다고 추론함에 따라 발생하는 오류. 개인의 입장에서는 절약해서 저축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사회전체에게는 오히려 소득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케인스의 ‘절약의 역설’ 등이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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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러한 상황은 위기 이후 축적조건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위기극복 전략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개발연대시기의 발전전략은 ‘리스크(위험)의 사회화’로 불려지는 것으로서, 그것은 주로 대규모 고용창출전략에 따른 양식이었다. 그러나 위기 이후에는 그것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된 듯하다. 리스크를 사회화할 수 있던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은 해체되었으며 그 자리를 대체한 개인적 합리성에 기초한 시장중심적 효율성논리는 공동체적 리스크를 껴안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투자의 사회화’, 성장을 위한 안정 전략

이제 전통적인 리스크의 사화화 대신 케인즈가 말했던 ‘투자의 사회화’에 주목해야 한다. ‘투자의 사회화’는 성장을 위한 안정화전략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새로운 축적조건 하에 적합해 보인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시장규율의 강화에 지배받는 새로운 축적조건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점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증대이고 따라서 시장의 힘에 의한 성장을 요구한다면 그 전제로서 우선 시장의 안정성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정성은 ‘평등주의의 확보’에서 가능하다.

모두가 무력감에 빠져있던 1930년대 대공황기에 케인즈의 이론이 빛을 발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이론이 현존질서가 투자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 기초하여 훨씬 더 많은 ‘평등주의적 경제’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는 점을 함축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위기 이후 해법에 관해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라는 이데올로기 수준의 담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제는 성장과 분배에 대한 우선순위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불안정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투자의 사회화는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할까? 사실 전통적인 케인즈의 공공정책에 대한 해석은 고용창출과 관련된 반면 고용구성변화와 관련된 ‘투자의 사회화’에 대한 해석은 소홀한 편이었다. 로빈슨(Robinson, J.)은 케인즈의 ‘고용창출’을 위한 정부역할론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 문제는 “정부지출이 어떤 대상에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고용구성조정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잡은 ‘고용창출’ 혹은 ‘일자리창출론’에 비판적 준거를 제공한다. 즉 문제는 ‘일자리 조정’인 것이다.

물 론 이러한 일자리 조정은 사회보장적 성격 및 경기안정화 역할로서 취약한 계층의 공적 부문으로의 흡수 및 일자리창출뿐만 아니라 동시에 고급지식부문의 안정적인 창출을 위한 조정 역시 포함하는 큰 틀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제한된 수준의 일자리조정에 그치는 한, 한정된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 과 같은 생각에 이르면 1994년 11월 세계화 선언 이후 겪어왔던 지난한 노동대중의 삶의 조건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은 노동의 힘이 하나의 정치권력으로서 얼마나 빠르게 제도화되느냐에 온전히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일방향적인 흐름이 사회전체에 야기한 균열적 결과는 공동체적 운명에 대한 관심의 증대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 현실정치적 바탕은 결국 노동의 힘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