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언론개혁에 나서자

노동사회

노동운동이 언론개혁에 나서자

admin 0 3,105 2013.05.07 07:19

2001년이 시작되면서 언론개혁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신문과 신문, 신문과 방송 사이의 논쟁을 넘어, 신문과 김대중 정권 그리고 신문과 한나라당 사이에 갈등이 크게 불거지고 있다. 예의 언론개혁 대상자들은 불붙는 논쟁을 헐뜯기 싸움이나 진흙탕 싸움 정도로 낮추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개혁 논쟁을 노동자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본질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지배도구라고 간단히 판정 내릴 수도 있다. 실제 그런 판단이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본질론으로 접근할 때, 언론은 자본가들의 지배도구라는 판단이 전적으로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 우리 언론들을 보더라도 이 점은 뚜렷하다. 노동쟁의는 물론, 이른바 구조조정에서 언론은 얼마나 반(反)노동자적 보도를 일삼아왔던가. 

그러나 언론을 자본가계급의 지배도구라고만 규정한다면, 그 이후 우리가 할 것은 무엇일까. 혁명밖에 없다. 필자는 혁명이 불가능하다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 문제는 별개의 차원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문제는 오늘이 혁명적 상황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동계급이 언론개혁 논쟁에 유의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재벌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도 노동자들의 경영참여 운동을 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쟁취해낼 수 있는 것은 가능한 최대로 얻어내면서 변혁을 준비하자는 뜻이 함축되어 있지 않은가.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 반노동자적 세계관을 선전하고 있는 언론의 개혁 가능성을 조심스레 진단해 보는 것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절박한 문제인 동시에, 민중이 주인 되는 사회를 일궈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언론사주들의 '황제경영'

여기서 논의의 초점은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언론의 반노동자적 보도 태도가 필연인가에 모아진다.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언론들만 보더라도 노동운동에 무조건 적대적이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언론은 반노동자적 보도를 일삼는가. 언론 내부의 구조적 요인과 역사적 요인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구조적 요인이다. 이 문제는 왜 언론노동자들이 만드는 지면이 반노동자적인가라는 질문과 곧바로 잇닿아 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언론사 또한 하나의 기업이다. 여기서 기업의 뜻은 명료하다. 자본을 투자한 사람이 창업을 해 임금을 주고 기자들을 고용해 신문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면서 이윤을 얻어내고자 한다는 말이다. 물론 신문들은 스스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임을 애써 가리려고 한다. 이를테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틈날 때마다 '민족지'를 자처해 왔다. 중앙일보는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자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 신문사의 사주들은 자자손손 신문사를 세습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이병철씨에서 이건희씨로 그리고 다시 이재용씨로 세습되어 오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신문사를 세습해온 사주들의 후손 가운데 제대로 기자생활을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경력 관리' 차원에서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문제는 바로 그 사람들이 재벌그룹 총수들을 뺨칠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점적 소유권에 바탕을 두고, 배타적 인사권을 무기로 그들은 주필과 편집국장을 장악하고 있다. 주필을 통해 신문의 사설과 논조를, 편집국장을 통해 편집국 기자들의 기사와 시각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편집국 구조는 젊은 예비 언론인들의 기개를 무자비하게 꺾고 있다. 이른바 '수습기자 길들이기'는 간단하다. 언론사 사주가 지니고 있는 편집 틀에 어긋나는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가령 사회 의식이 투철한 한 수습기자가 민주노총의 노동운동에 대해 단순히 자본 쪽 주장만 되풀이하지 않고, 노동 쪽 주장까지 담아내 객관적으로 보도할 경우 어떻게 될까. 부장(데스크)에 의해 그 기사는 다시 재구성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기사 실명제의 허구성이 여기에 있다. 

비민주적인 내부 구조

뿐만 인가. 그 기자가 그럼에도 계속 자신의 취재 방향을 '고집'해 기사를 작성할 경우 데스크로서는 그를 '피곤한 기자'나 '무능한 기자'로 여기기 십상이다. 여기서 문제의 데스크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올라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가 그 '순치의 과정'을 거부하고, 항거했다면 데스크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주 → 편집인 → 편집국장 → 부장 → 차장 → 1진 → 2진'으로 이어지는 취재 관행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하향적인 지시가 거의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계층적 구조는 단순히 취재나 지면제작 과정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 대한 일종의 길들이기 기제이기도 하다. 

그 피라미드 구조의 맨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 사주는 언론자본가로서 자본가 일반과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사주는 원천적으로 노동운동이나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만일 누군가가 노사문제 또는 노자문제를 균형 있게 보도해 나간다면, 그는 어떤 자리에 있든 곧 사주에 의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주는 횡적으로 한국사회의 지배세력과 연결되어 있다. 가령 동아일보사 김병관 회장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그리고 현 이한동 국무총리와 사돈을 맺고 있다. 

언론내부의 수직적 피라미드 구조가 민주화되어야 할 당위성이 여기서 나온다. 그 수직적 구조가 전혀 개혁되지 않을 때, 우리 신문지면에서 노동운동에 호의적, 아니 공정한 보도는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개혁은 다름 아닌 그 수직적 피라미드 구조의 민주화다. 

정기간행물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해 특정 족벌의 소유에 제한을 가하고, 편집규약 등의 편집자율권 보장을 도입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인 것이다. 그것은 피라미드 구조 속에 억압되어 있는 언론노동자들에게는 해방의 과정이기도 하다. 언론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통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사실상 의식을 '검열'당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편집의 자율성 보장은 민주노총이 노동자 경영참가운동을 벌이는 것과 정확히 같은 차원의 문제이다. 

친일과 굴종의 역사

노동운동이 언론개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역사적 요인에 있다. 한국언론의 역사는 철저하게 반민중적으로 굴절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의 왜곡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적잖은 사람들이 군사정권시대부터 한국 언론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한국 근·현대 언론사는 그 출발점부터 왜곡과 굴절로 이어져왔다. 근대언론의 출발점으로 언론학계에서 평가하는 독립신문은 그 창간일(4월7일)이 '신문의 날'로 기념되고 있을 만큼 말 그대로 '독립신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독립신문은 중국(청)에 대해서 독립을 주장했을지 모르나,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우호적이었다. 그 결과, 이 신문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의병들을 일러 '비적'이라 부르고, '놈'이라 표현하는 반민중적 작태를 서슴지 않기도 했다. 

그 뒤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시대적 굴절은 새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터이다. 일본 '천황'의 생일을 맞아 대대적으로 노골적인 찬양에 나서는가 하면, '대 일본제국의 신문'임을 스스로 자임하고 나서기도 했다. 유일하게 '항일'의 기록으로 내세우는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도 기실 그 일장기를 말소한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는 신문사로부터 해직 당해야 했다. 

친일의 추악한 과거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해방공간에선 반공으로 표면화했다. 친일파 청산요구에 빨갱이로 답하며 민중운동을 탄압했던 언론권력의 역사는 그 이후 계속 반민중적 사회구조의 수호로 이어진다. 

분단국가 수립에 앞장선 언론권력들은 그 뒤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한층 권력 지향적으로 변해간다. 쿠데타 자체는 물론 3선 개헌과 유신체제 성립에도 한국언론은 톡톡히 한 몫 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언론의 본질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였다. 정치군부의 쿠데타에 맞선 민주시민들을 당시 우리 언론은 폭도로 몰아세우는 폭거를 저질렀다. 조선일보의 현 김대중 주필도 당시 민주시민들을 일러 '총을 든 난동자'로 기사화 했다. 

뿐만 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찬양했고, 그 결과 전씨는 곧 대통령에 취임한다. 1980년 당시 한국언론의 노골적인 추파가 없었다면, 과연 전두환 일당이 그처럼 쉽게 집권할 수 있었을까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전두환 정권이 이 땅의 노동운동을 얼마나 탄압하고 후퇴시켰던가. 

80년대 중반 학생시위에 밀려 전두환 정권이 벌인 이른바 '금강산댐 소동'은 어떤가. 수도권 전역이 수장된다며 호들갑을 떤 결과, '평화의 댐' 건설 명목으로 코흘리개 돼지 저금통까지 끌어 모아 갔다. 1986년에 7월 검찰이 부천 경찰서의 성고문사건을 발표했을 때도 한국언론은 수사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해 노동자 권인숙 씨가 "혁명을 위해 성(性)까지 도구화했다"고 보도했다. 

1987년 6월 대항쟁 뒤 1노3김의 기계적 보도로 결국 노태우 정권 성립에 기여한 것도 언론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닥친 공안정국도 언론이 앞장서서 조성했다. 그 곡필의 와중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마녀사냥'을 당해야 했다. 

언론수용자인 노동자가 나서자

이 글의 들머리에서 말했던 오늘의 반노동자적 보도는 기실 그 역사적 연장선 위에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언론사 내부구조가 소유·경영·편집이 3위1체가 됨으로써 봉건적 문화에 찌들어 있고, 특정가문이 독점적으로 언론사를 소유하며, 자자손손 대물림하고 있는 상황에선 신문지면이 철저히 자본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언론을 어떻게 개혁해야할까. 

두 가지 길이 있다. 언론 내부 개혁의 길과 언론 외부에서 법제화의 길이 그것이다. 먼저 언론 내부 개혁의 길이다. 그 주체가 언론노동운동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언론노조가 강력한 대오를 이룰 때, 편집국장의 기자 직선제를 비롯한 편집권 독립을 단체협약으로 얻어낼 수 있다. 물론 단체협약에서 편집권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파업을 불사하는 투쟁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노동조합의 조직적 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은 기업별 노조 형태로 되어있는 언론노조들을 산업별 노조로 전환했으나, 정작 핵심인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사 노동조합은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두 번째 언론외부의 길은 입법운동이다.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정간법) 전면 개정을 통해 특정가문의 언론사 주식소유를 제한하고,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언론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언론 수용자들이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정간법 개정이 국회에서 개정되는 것이라면, 한국의 보수적 정치구조 현실에 미루어 입법화를 위해 언론수용자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과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언론인 단체들이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시민언론운동 단체들과 지난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를 출범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언개연은 국회에 정간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2001년 들어서서 입법운동은 한결 활발하게 일고 있다. 언개연에는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도 가입해있다. 

단체협약을 통한 길과 입법화의 길, 두 방법을 병행해 추진하는 것이 두 길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은 물론이다. 언론내부의 언론노동운동과 언론수용자운동과의 연대는 그 두 길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다. 노동자들 또한 언론수용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구나 언론으로부터 언제나 차별대우와 매도를 당해온 가장 큰 피해자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아쉽다. 

언론개혁 없이 노동의 새벽은 오기 어렵다. 보라. 주5일제에 노사정이 합의한 다음날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가 한 목소리로 시기상조를 들고나서지 않았던가. 대우자동차의 피눈물나는 파업을 세 신문사는 어떻게 보도했던가. 언론권력은 지금껏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며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결국 언론개혁은 언론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사회세력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세력이 누구인가. 그 세력이 지금 침묵하고 있기에 오늘 언론개혁이 주춤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