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영화화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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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영화화 경쟁

admin 0 6,154 2013.05.12 08:24

영화계에서는 같은 소재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지면서 제작사들 사이에 갈등이 유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돈을 내고 일정한 장소에 들어가서 ‘특별한 이야기’를 보는 흥행업이라는 영화의 특성으로 인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은 다른 상품처럼 시너지 효과를 주기보다는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기며 80년대 후반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지강헌 탈주사건'을 3곳의 영화사에서 동시에 제작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어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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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지강헌 탈주극’ 영화사 세 곳 경쟁 불붙어

다인픽처스(대표 지성현)에서 제작하고 김의석 감독이 연출을 맡은 ‘무전유죄(가제)’는 지난 4월27일에 일찌감치 제작사실을 발표했다. 최근 시나리오가 완성됐으며 주연배우들을 캐스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진씨네마(대표 이순열)도 이미 2년 전부터 지강헌 사건을 소재로 한 ‘홀리데이’를 준비해 왔고 관객 1천만시대를 연 ‘실미도’를 쓴 김희재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오는 9월 크랭크인을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신생 영화사인 ㈜씨네터의 차성호 대표도 최근 지강헌이 남긴 유명한 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제목으로 해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혀, 같은 소재를 놓고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한꺼번에 만들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특이한 소재의 신선함을 강조하는 ‘차별성’과 정서적인 ‘보편성’을 함께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코드가 맞은 경우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는 영화계 내에서 떠도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탄탄한 시나리오가 있을 경우 다른 영화사나 제작자가 이를 모방하거나 도용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런 일이 생길 때 종종 기획안이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재판까지 가는 경우가 있었고, 국내에서도 몇 년 전 소방관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나 중국음식점에 대한 영화들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일이 있었다.

‘지강헌 탈주극’이 영화화되는 것은 후자보다는 전자의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탈주자들이 여장을 하고 도망 다니기도 하고, 인질로 잡힌 가족들에게 범죄자들과의 정서적 교감이 생기는 이른 바, ‘스톡홀름 신드롬’이 나타나는 등 이야기 거리가 풍부하다. 또, 탈주자들이 경찰에 포위를 당한 후 ‘STILL LOEVING YOU’, ‘HOLIDAY’ 등의 팝송을 들으며 총기자살과 사살로 생을 마감해 그 어느 영화보다 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건 발생 당시가 ‘88올림픽’이라는 화려한 축제를 전후한 시기여서 우리사회 한편에 도사리고 있으나 드러나지 않았던 어두움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기에, 연출을 하는 입장에서는 작품성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여지도 많다. 탈주자들이 자신들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변호사를 형사 돈이 없어 ‘무전유죄’로 형량이 커졌다”며 “사람을 학살하고 부정축제를 일삼은 자는 벌하지 않고 왜 우리들만 응징이 돼야 하냐”고 절규했기 때문이다.

주범인 지강헌이 강도라는 직업(?) 외에 단순한 습작 수준을 넘은 ‘시인’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인물이라는 점도 매력을 더 해 준다. 중견배우 문성근씨는 자신이 연기자로 도전하고 싶은 배역 중 하나로 그를 지목한 일도 있다.  
     
이번에 서로 경쟁이 붙은 세 영화사는 ‘먼저 촬영해서 개봉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충무로 속설에 따라 서로를 견제하며 9월 초 크랭크 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참고로 그동안 가장 많이 영화화 된 소재는 ‘신데렐라’로 만화영화에서 뮤지컬, 무용(발레)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방송 3사 FM라디오, 다양성 사라진 ‘잡담전파’

지난 봄 개편에서 MBC 라디오는 낮은 청취율 등을 이유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송기철의 월드뮤직’등 전문음악 프로그램을 편성에서 제외시켰다. 청취자들은 좋은 프로그램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에 항의메일로 방송국 결정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직접 프로그램 살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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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최근 라디오 음악채널이 갈수록 ‘음악’보다 ‘잡담’에 치중함으로써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FM라디오 음악채널을 1주일간 모니터링 한 결과를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KBS, MBC, SBS, CBS 등 방송 4사의 16개 프로그램 가운데 10곡 이상의 음악을 방송한 프로그램은 6개(CBS 3, SBS 2, KBS 1, MBC는 없음!)뿐이고 나머지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초대 손님으로 나온 연예인들과 진행자가 잡담이나 농담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중에게 맑은 음질로 음악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FM음악방송의 전파와 방송시스템이 제 몫을 못하고 낭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FM라디오의 변화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멀티미디어의 확장으로 인해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 인구가 급감한 탓도 있다. 하지만 최근 FM라디오의 선곡과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번에 모니터링을 한 문화연대의 표현을 빌리면 “점차 AM화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문화연대는 FM의 문제는 선곡수의 절대적 부족, 연예인 진행자들의 전문성 부족, 음악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 희박, 다양한 대중음악에 대한 접근 어려움 등을 열거했고, 개선방향으로 △음악프로그램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찾기, △다양한 방식과 내용의 음악프로그램 신설 및 개편, △진행자의 전문성 확보/제작인력의 전문적 인력 편성을 들었다.

이번 모니터링 결과에서 특히 주목을 해야 할 점은 풍부한 물적, 인적 자원을 지닌 방송3사(KBS, MBC, SBS)를 제치고 CBS FM이 타 방송사들에 비해 차분하고 집중력 있는 방송을 하며 음악FM의 특성에 맞도록 팝, 가요, 재즈 등 다양하고 전문적으로 분화된 다양한 편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행자(DJ)들 역시 대부분이 음악 칼럼니스트나 색소폰 연주자 등 음악전문가들이 맡고 있다.

음악FM이 대중들에게 새로운 장르나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편견이나 편식 없이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역할을 해 주고 거기에서 익숙해진 음악을 통해 음반 등 대중음악 산업이 발전한 다는 것을 감안 할 때, ‘잡담’과 인기곡 위주의 ‘잡탕선곡’은 이젠 지양되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은 10대 시절에 라디오의 심야방송과 함께 꿈을 키우고 성장하는 시기가 있다. 펑크록을 연주하는 인디밴드 노브레인이 부른 ‘고물라디오’라는 곡에는 한 밤중에 노래를 들으며 꿈을 키우던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펑크, 메틀, 프로그레시브록 같은 음악도 좀 더 자주 FM 전파를 타고 흐르길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