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Korea!

노동사회

This is Korea!

admin 0 2,894 2013.05.12 08:05

파키스탄 사람 샤니 씨는 지난 3월2일 고용안정센터에 구직등록을 하고 사업장을 알선 받아 한 사업장에서 3월7일부터 일하고 있었다. 절차상 사업장변경신청서를 접수해야 하는데 회사측에서 일이 바쁘니 관리자가 해 주겠다며 여권, 외국인등록증을 맡겨 두라고 하였다. 갓 입사한 상태에서 스스로 처리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할 수 없었던 샤니 씨는 일을 관리자에게 맡겼다. 그러고는 빨리 처리해 달라고 몇 차례 독촉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관리자가 처음 몇 차례는 "일이 바쁘니 좀 기다려라, 곧 하겠다"고 대답하더니, 4월 말경에 물어봤을 때는 사업장변경신청서를 접수하였다고 하였다. 샤니 씨는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5월6일, 관리자는 느닷없이 샤니 씨가 '불법'이니 더 이상 고용할 수 없다며 해고해버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샤니 씨는 하루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 '미등록체류자'가 되었다.

시키는 대로 하다보니 '불법체류자' 돼있더라 

사정은 이러했다. 고용안정센터의 알선으로 샤니 씨의 취업이 확정되자, 회사의 관리자가 3월9일 고용안정센터를 방문하여 절차를 문의하고 관련 문서를 받아두고 업무가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4월16일이 되서야 받아온 문서를 작성하여 고용안정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관리자가 작성해 간 문서는 '외국인근로자고용변경등신고서'가 아니라 '근무처변경허가추천서발급신청서'여서 그 자리에서 반려되었다. 회사에서는 고용안정센터에서 내준 문서를 작성해서 갔지만, 해당 문서가 아닌 다른 문서였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문서를 다시 받아와 또 차일피일 미루다가(샤니 씨에게는 신고를 마쳤다고 하고), 5월6일 고용안정센터에 해당 문서를 제출하면서 절차를 밟으려고 했다. 그러나 회사의 소홀함 때문에 이미 샤니 씨는 구직등록 후 2개월이 경과되어 이미 출국대상자 명단에 올라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회사측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할 수 없다며 샤니 씨를 해고해버린 것이다.

지난 해 8월16일 공포된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에 따르면 구직등록 후 2개월 내에 사업장변경신청절차를 마쳐야 한다. 노동부에서는 2004년 4월30일까지는 유예기간을 설정해 2개월이 넘은 사람의 경우도 사업장변경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했었다. 그러나 샤니 씨의 경우는 유예기간이 지난 다음이었기 때문에 여기에도 해당될 수 없었다. 

샤니 씨는 본인의 아무런 잘못도 없이 회사측의 무성의로 인해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우리 상담소에서는 고용안정센터와 노동부에 샤니 씨의 어처구니없는 사정에 대해, 또한 이런 일로 인해 미등록체류자가 증가한다면 고용허가제 정착에 걸림돌이 될 것이므로 샤니 씨의 사업장변경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보냈다. 그리고 샤니 씨는 4월16일 이전 취업사실이 인정되어 사업장변경신청을 할 수 있었다.

샤니 씨의 경우는 다행히 상담소를 찾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직등록을 하고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다가 2개월을 넘겨버린 사람의 경우,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아무런 정보나 도움 없이 속수무책으로 미등록체류자로 전락한 사람의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무 확인 없이 접수되는 '이탈신고서' 

"이제는 안 나와도 되니 갈 데 있으면 가라, 오후부터는 일하지 말라면서 저에게 일방적으로 권고사직을 통보했습니다. 저는 분하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사장님께 사업장변경신청서 작성을 부탁드렸더니 사장님은 작성해 주시려고 하는데, 사모님이 '못써준다'면서 양식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사모님은 욕설까지 퍼부었고 심지어 아들까지 나서서 '돈도 주지말고, 아무것도 해주지 말고 가게도 찾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4월8일에 다시 찾아가서 무슨 이유로 사업장변경신청서를 안 써주느냐고 물었더니 흑룡강사람 어쩌고 연변사람 어쩌고 욕을 하면서 사장님이 주먹을 불끈 쥐고 저를 때리려고 달려드니, 사모님이 나를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4월20일 고용안정센터의 담당자와 상담하러 갔더니 사업장이탈신고가 전산처리 완료되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용안정센터가 정부를 대표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고용주의 말만 듣고 못해준다고 하니, 그럼 저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문제는 현재 사업장 이탈신고가 되어 있어서 제가 불법체류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3월31일 구두 상으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는데, 사업장이탈이 웬 말입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중국 동포인 김택수 씨는 우리 상담소를 찾아오면서 이 편지를 직접 써 가지고 왔다. 닥트 공장에 근무했던 김택수 씨는 작업과정에서 사장과의 이견으로 충돌을 빚어 티격태격하다가 평소처럼 막말을 해대는 사장에게 항의하다가,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고 사업장에서 나왔다. 이후 사장부인이 다시 와서 일하라고 했지만 걸핏하면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욕하고 "그만둬라, 중국에 보내버리겠다"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거절했다. 

이후 김택수 씨는 고용안정센터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다른 공장으로 옮기게 해달라고 했으나 담당자는 전후사정도 자세히 들어보지 않고 무조건 서류만 내주며 사장 사인을 받아오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나 사장이 호락호락 서류를 만들어 줄 리는 만무했다. 결국 사장이 고용안정센터에 이탈신고서를 제출했고, 김택수 씨가 이미 억울함을 호소했음에도 고용안정센터 담당자는 본인에게 아무런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이탈신고서를 접수해버렸다.

상담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회사측과 접촉해 보니, 김택수 씨가 "나 죽었소" 하고 와서 다시 일한다면 이탈신고를 철회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중국으로 보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마치 김택수 씨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후 우리 상담소에서는 고용안정센터에 사업주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받아들여 정확한 사실조사 없이 이탈신고서를 접수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한편, 진정서를 제출하여 재조사를 요구하다. 처음에는 기세가 등등하던 사업주는 대질 조사가 닥치자 이에 응하지 않았고, 김택수 씨는 구직등록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 떨어지는 정부 신뢰

위의 사례들은 고용허가제에서 두드러지게 문제가 될 몇 가지 사안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구직등록 후 2개월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경우의 문제이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지정알선'이 금지된다. 즉, 외국인 스스로 직장을 구해 사업장이동을 할 수는 없고 고용안정센터에서 알선해 주는 사업장으로만 옮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안정센터에서를 통한 알선이란 회사명과 전화번호 등이 한글로 기록된 구인등록사업체 목록을 외국인들에게 제공하는 것뿐이다. 한국말도 서툴고 한글은 더구나 읽을 수 없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 이 목록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다. 

그나마 상담소를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이 목록을 들고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외국인을 대신하여 목록에 있는 사업체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노동조건이나 위치 등을 물어 안내해 주기도 하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도입한 '지정알선 금지'가 외국인들의 구직과정에서 중간브로커가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장치라면, 고용안정센터를 통한 알선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위의 샤니 씨와 같은 사업체에서 근무했던 압둘 씨도 동일한 사유로 사업장변경신청이 반려된 후, 샤니 씨 문제가 해결된 뒤 상담소를 찾아왔다. 또다시 고용안정센터에 진정서를 우송하고 난 며칠 뒤, 노동부는 6월12일부터 구직등록 후 2개월 이상 된 사람들에게도 선별적 구제조치를 한다는 발표를 하였고 이에 따라 압둘 씨도 사업장변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지난해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조치 이후로 4년 이상 이주노동자들의 '자진출국'이 미진하자 정부는 수 차례에 걸쳐 자진출국 기간을 연장하기도 하고, 단속과 관련한 방침들을 여러 차례 오락가락 발표하여 이주노동자 정책과 관련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8월17일부터 실시되는 고용허가제에서 문제가 될 게 뻔한 구직등록 후 '2개월 이내 사업장변경'도 위의 노동부 발표처럼 4월30일까지 유예기간 설정, 5월1일부터 불가, 6월12일부터 선별구제 등으로 오락가락하였다. 정부는 이와 같이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무마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 자체(제25조)를 개정하는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행정편의 때문에 불법체류자로 만들어서야 

둘째, 사업장변경 사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부당한 사유로 이탈신고를 해도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고용허가제 시행의 일선 기관인 고용안정센터의 업무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업주가 임금삭감이나 폭행, 해고통보 등 부당노동행위를 해서 근로계약의 유지가 불가능할 때, 외국인 스스로가 사업장이동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사업장 이동을 하려면 전 사업주가 '외국인근로자고용변경등신고서'를 고용안정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일선 고용안정센터에서 해당 외국인에게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업주가 변경사유를 사실과 다르게 기재하여 제출하여도 어찌할 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근무지변경문제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상담소를 찾는 대다수 외국인들의 경우 사실 확인을 해보면 위의 김택수 씨처럼 사업주가 부당노동행위를 하고도 오히려 '이탈신고서'를 제출해 사업장이동이 불가능했던 사례들이다. 

고용안정센터에서 이탈신고서가 접수된다는 것이 곧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중대 사안임을 고려한다면, 접수 이전 당사자간의 사실조사 작업은 행정편의상으로 처리될 수 없는 필수적인 절차여야 하는 것이다. 

고용허가제고 뭐고, "차라리 '불법'이 되겠다"

지난해 말, 미등록초과체류자 합법화등록 이후, 'E-9 비자'를 취득하여 외국인등록증을 받고 우리 상담소를 찾아오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은 한때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사장의 강제출국에 대한 협박과 부당한 대우에도 말없이 참고 일해야 했던 이주노동자들은 합법적인 신분이 되자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사업장변경문제로 상담소를 찾아와 어려움을 털어놓다가 "차라리 불법이 되겠다"고 한숨을 쉬는 외국인들이 드물지 않다. '산업연수생'들이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일상생활의 자유제한 때문에 차라리 이탈하여 자발적인 '불법체류자'가 되었듯이, 이들도 사업장변경절차를 밟다가 부당한 사업주와, 사업주의 말만 듣는 불합리한 시스템을 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느 외국인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주장만 받아들여져 결국 사업장변경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상담소 문을 나서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냉소적인 눈빛과 함께…. 

"This is KOREA!"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