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이데올로기의 추억

노동사회

경제위기 이데올로기의 추억

admin 0 3,561 2013.05.12 08:03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표현, 아마 귀에 매우 익숙할 것이다. 요즘에는 그렇게 많이 사용되는 것 같지 않지만 예전에는 교장선생님, 사장님들이 샴페인이 뭔지도 잘 모르는 학생들, 노동자들 앉혀 놓고 "과소비하지 말아라", "니 분수를 알아라"하고 훈화말씀 하시면서 어지간히 쓰시던 표현이다. 아직까지도 간혹 스포츠신문 같은 데서는 막판에 방심하다가 역전당한 경기를 두고, 추억을 자극하기 위하여 이 표현을 쓰기도 한다.

샴페인에 관한 안 좋은 추억

이 표현이 한국인들의 집단의식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인 9월 말엽의 어느 아침이다. 1989년 9월23일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서울발 WP紙(『워싱턴 포스트』)"의 피터 마스 기자의 기사를 인용해 "한국인 샴페인 너무 일찍 터뜨렸다"를 헤드라인으로 뽑고, "일벌레의 나라에 만연한 소비풍조"와 "주말이면 이어지는 수상스키-윈드서핑 행렬"을 개탄했다.

과소비는 당시 신문들에게 매우 비중이 큰 의제였다. 이렇게 과소비에 대한 개탄이 만연했던 것은 1989년 들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80년대 내내 호황이었던 경기가 불황으로 접어들어 생긴 경기침체기의 '위기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보수신문들의 위기의식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나친 임금인상과 격렬한 노사분규, 성장의 동력인 재벌에 대한 규제 때문에 한국경제가 남미형 악순환에 빠져들었고, "용이 지렁이로 되었다"는 진단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노동자들의 과소비와 3D업종 기피는 분수를 모르는 노동운동이 낳은 또 다른 부정적 결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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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9월23일자 조선일보 "한국인, 샴페인 너무 일찍 터뜨렸다." ]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과소비) 행태의 저변에 깔린 우리의 해이한 근로윤리다 …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고 질 나쁜 제품이 많이 만들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 가치인식을 새로이 할 필요를 느낀다.
- 1989년 10월3일자 『조선일보』사설 중에서


87년부터 92년까지 『조선일보』의 경제뉴스를 분석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강명구 교수는 당시 보수신문의 과소비 담론은 이처럼 "막연한 근검, 절약의 정신윤리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정신적 측면에 대한 비판을 통해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자본측의 입장"을 가지고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언론과 사회』, 1994년 봄호). 단지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부 졸부의 몰지각한 행태로만 비판되던 과소비가, 앞서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를 계기로 "경제성장 과정의 일시적인 부작용을 넘어서 한국인 모두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즉 한국병이라는 치료하기 힘든 중증 질환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도 만드는 '밤의 대통령'

이렇게 서민, 여대생, 공단 근로 여성 등에게까지 '한국병'이 만연해있음을 발견한 『조선일보』는 비통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향해 우렁차게 치료법을 내놨다. 아, "우리도 다시 뛰자!"(『조선일보』 기획시리즈, 총17회, 1991년 8월30일∼9월19일). 동남아의 말레이시아에서는 밤샘작업을 예사로 하고 있고, 중남미 칠레에서도 한 해 휴일 4일로 성탄절마저 일하는 등 "소마저 뛰고" 있는데, 우리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을 본받아서 낭비적인 노조활동과 파업을 하지말고, 노사정이 합심하여 "기술자가 우대받는 사회, 기술자가 실제 파워를 갖는 사회, 젊은 두뇌의 창의력이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되는 사회"로 "다시 뛰어야", 비로소 한국병이 고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와 보수신문들이 경기침체기에 내놓았던 이러한 진단과 대안, 즉 경제위기 이데올로기는 경제학적으로 근본부터 틀린 것이었다. 대개의 경제학자들은 1989년에 나타난 약간의 경기침체기는 장기적인 국제분업 구조로 재편되는 과정이 강요하는 과도적 어려움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소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겠지만 당시의 불황은 보수세력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소비나 노사분규, 정부규제가 일방적으로 몰고 온 것이 아니라, 선거시기 정치바람으로 인한 통화증발, 자본이 설비투자보다는 각종 투기로 몰리는 현상, 종속-임가공형 경제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하루 백만 부씩 발간하는 '밤의 대통령'은 당시만 해도 마술적인 힘이 있었다. 『조선일보』 등이 주장한 '기술투자, 생산력 증대, 경쟁력 강화, 선진국 진입'이라는 기술입국의 성장주의 청사진은 김영삼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이루는 신경제 5개년 계획과 이후 세계화 명제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재계와 보수신문들이 위기라고 협박하며, 자신들이 가공한 객관적 경제지표를 근거로 우리의 머리 속에 집어넣은 '위기의 현실과 복종의 윤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샴페인 냄새도 제대로 맡아보지 못한 애꿎은 노동자와 서민들은 90년대 초반 경기호황 시기에도, "너희들이 게으름 피우고 파업이다 뭐다 하니까 아까운 샴페인이 너무 일찍 터졌잖아"라는 짜증 섞인 훈계를 계속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90년대 중반 6% 성장률이 '위기'라고?

자본주의 사회는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고 경기가 순환한다. 그 경기변동을 따라 80년대 말 이후 재계와 보수신문들이 떠드는 경제위기 이데올로기도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1996년 반도체 호황의 착시효과가 사라지고 경기가 후퇴하는 국면에서는 재계가 '고비용-저효율구조론'이라는 것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경제가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비, 과잉규제, 과잉소비 등 고비용의 벽에 갇힌 '위기상태'라는 주장이었다.

당연히 보수신문들에서는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보다는 고임금과 무책임한 불법파업, 정부의 무능한 과잉규제 때문에 경제성장이 뒤쳐지고 있다며 윤리적 울분을 토하는, 예전부터 자주 듣던 뻔한 소리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보도태도에 대해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균 교수는 『경제보도』에서, "당시의 경기후퇴를 전적으로 고비용 구조 탓으로 판단한 것은 적어도 우리 경제의 기본적 특질을 무시한 판단이었다"고 비판한다. "반도체산업 등 일부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출구조, 그리고 내수산업의 경기조절 능력이 미비된 수출 의존적 경제는 수출주종 품목의 해외경기 변동에 무방비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줄기차게 떠들었던 "고임금 구조에 따른 실업 또는 실직 위기" 또한 "과장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경제위기'란 용어는 구조가 붕괴되기 일보 직전의, 공황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곧바로 호황으로 돌아선 80년대 후반이나, 실업률 2.1%, 성장률 6%을 기록했던 1996년 상황에서는 경제학적 상식으로는 경제위기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96년의 상황이 경제주체들에게 얼마나 어려웠던 것인지는 몰라도 경제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엄살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한국경제는 결국 제대로 된 진짜 경제위기를 경험하고야 말았다.

견딜 수 있는 불황에 대해서는 항상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치던 언론들은 정작 '진짜 경제위기'를 앞두고는 어떤 신호도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대안을 찾는답시며 노동자들과 국내 진보적 지식인 앞에서는 큰소리치고, IMF 프로그램과 검증되지 않은 외국지식인들 앞에서는 꼬랑지를 내리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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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경제 5단체장들이 4월30일 '경제회생과 투자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재벌 총수들은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에 안심했다고 말했다.   - 출처:오마이뉴스 ]

보수신문의 두 얼굴

1997년 12월4일자 신문 일면의 머릿기사들은 "제2의 국치일", "삼전도의 굴욕", "IMF 신탁통치" 등과 같은 침통하고 자극적인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체제가 막 들어선 직후, 상처입은 민족적 자존심은 분노를 쏟아낼 대상들을 찾아다녔고, 보수신문들은 희생양을 찾는 이러한 흐름에 선정적으로 편승했다. 그리하여 '미일 자본음모설'이니, '일본이 독도문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금융지원을 고의적으로 늦추고 있다' 따위의 편집증적 추측을 여과 없이 보도했고, "나라망신 타이밍도 놓쳐", "경제 다 망쳐 놓고…재경원 문책론도"라며 정부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수신문들이 뒤늦게 권력에 대한 파수견 역할을 한답시고 거품을 물고 짖어대며 비판하는 대상에는 물론 언론 자신은 빠져있었다. 구제금융 신청 직전까지도 단독 여론조사(97년 9월11일, 주한외국 금융기관장 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단독 인터뷰(9월18일, 캉드쉬 IMF 총재 회견) 등을 통해 "한국 경제위기 아니다"며 외환위기 가능성을 철저하게 부정해왔던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97년 초부터 외신과 국내외연구소 여러 곳에서 제기되었던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보수신문들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다룬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정경유착을 통해 방만하고 무리한 문어발식 차입경영을 하고 단기 외채를 무분별하게 도입해, 외환위기의 결정적 주범으로 지목된 재벌들도 보수신문들의 비판대상에서 어느새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제시한 핵심 축은 '정리해고'와 '재벌개혁'이었는데, 이 두 가지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이필상 교수는 노동자들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냉혹할 정도로 정당성을 강조"했던 당시 언론들이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카멜레온처럼 변했다"고 지적한다(『관훈저널』 2000년 겨울호). 대기업 구조조정이 거론될 때마다 보수신문들은 '경제발전의 엔진', '수출 역군', '한국 실정 무지' 등 현실론을 들고 나와 제동을 걸었지만, 노동계 파업이 진행될 때는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재벌에게 영업하는 기자들

이렇듯 보수신문이 재벌들에게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자체의 이념적 친화성도 있지만 IMF 이후 신문사 경영이 악화되면서 더욱 치열해진 광고수주 경쟁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일간지들은 수입의 80% 이상을 광고에 의존하는데, 현재 주요 고객이 대부분 재벌기업 계열사들인 것이다. 실제 IMF 이후 대량감축에서 살아남은 기자들과 편집진은 광고리베이트제를 도입하는 등 "영업마인드가 강화됐다."(박종인 머니투데이 경제부장, 『관훈저널』 2000년 봄호). 경제면 배정과 경제관련 기획기사, 기업 관련 기사의 비중이 늘어났고, "일선 기자들을 참담하게 만드는", 홍보성 인터뷰도 자주 신문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재벌과 '경제위기'는 원래부터 관계가 좋았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80년대 말 이후 주기적으로 유포되었던 경제위기론의 주창자는 언제나 "재계의 기득권세력"이었다고 지적한다. 불황기마다 제시되었던 경제위기론은 주로 "국가경쟁력을 위축시키는 시대착오적인(!) 정부의 과잉규제를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으로 진단하고, 경기순환에서의 단순한 불황을 "경제제도를 재벌 중심적으로 정비하거나 또는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기회로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양치기' 보수신문 버릇 고쳐놓자

IMF 이후 조금 잠잠하던 경제위기 목소리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최근 다시 높아졌다. 작년이래 지속된 내수침체와 금융불안에 더하여 이른 바 '중국쇼크' 등 해외악재가 겹치면서 좌우를 막론하고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수)언론을 통해 주로 듣는 '경제위기론'에서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분배구조 등 거시경제체제의 양극화 경향에 대한 걱정보다는 양극화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재벌들의 '공정거래법 따위로 왜 우릴 귀찮게 하느냐'는 불평이 훨씬 더 크게 들린다.

조선, 중앙, 동아 등 신문시장의 70% 이상(2002년 3대신문 시장점유율은 67.6%)을 장악하고 있는 이러한 목소리의 대변자들은 당연히 노동자와 서민들이 연이어 자살하고, 대통령이 두 달 동안 직무정지되어도 '진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이들에게는 불황으로, 혹은 광고주들에게 거슬리는 비판적 기사를 내보냈다가 광고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만이 위기인 것이다. 이런 보수신문들에게 그래도 언론기관이라고 위기의 진단과 대안모색을 맡겨놨다가는 멀쩡한 경제도 잡고 말 것이다. 이제는 정말 안 된다. 양치기 보수신문들의 "경제위기가 나타났다"는 짜증스런 고함은 '진짜 경제위기'도 위기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