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평준화가 교육형평성을 파괴한다고?

노동사회

고교평준화가 교육형평성을 파괴한다고?

admin 0 7,094 2013.05.12 07:47

“기초를 착실하게 안 닦아주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차이가 벌어지거든요. 사실 과외에 들이는 액수 따라 ‘대학 수준’이 달라진다는 소리, 동네 아줌마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신경 쓰여서 무시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애요? 글쎄, 수학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거 10만원, 과학은 12만원, 그리고 글쓰기…, 요즘 영어는 안 하고 있는데도 그래도 학원비만 한 달에 수십만원 들어가는 것 같네요.”

jhlee_01%20%282%29.jpg뿌리 깊은 학력차별의 폭력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엄마인 어느 노동조합 간부의 말이다. 20년 가까운 경력의 노동조합 활동가도 “사회구조가 조장하는” 학부모로서의 불안 앞에서 태연할 수는 없었다. 아니, 노동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학력(學歷)의 힘’에 대한 뼈저린 경험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위한 사교육 투자를 합리적 선택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87년 대투쟁 이후에 ‘언더’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세상으로 나왔어요. 나와서 공개적인 노조나 사회단체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는 그냥 자기 삶을 찾아간 사람들도 꽤 있었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 가는 길이 대학 나온 거, 안 나온 거 따라 너무 차이가 큰 거예요.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은 살 길 잘도 찾는데, 노동자 출신들은 노가다나 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생활하기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어리고 순진하기만 했던 저도 노동운동이라는 울타리 밖의 냉정한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된 거죠.”

이 노조간부의 근본적인 바람은 단지 자신의 아이가 “창의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대학(가능하면 ‘일류대’)을 나와야 한다”는 믿음이 매우 강하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편견’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로서 노동자들이 삶 속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온갖 폭력에 대한 경험들이 무의식 깊이 심어 놓은, ‘근거 있는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 노조간부의 생각을 원칙적으로 비판하는 건 간단할지 몰라도, 그가 처한 위치에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평준화가 사교육 열풍을 부채질 했는가

공장 밖으로 나서면 어디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긍정하는 문화를 발견할 수 없는 우리 현실이 ‘나는 못 먹고 못 입어도 내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 보내서 노동자 안 만들겠다’는 ‘그릇된 통념’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지적만으로는 공교육 예산을 넘어설 정도로 확대된 사교육 열풍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 원인은 제도교육과의 관계 속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부자신문의 기자들과 노동배제적 경제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연구자 및 관료, 기업인들은 그 원인과 해결책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작년 하반기부터는 그 답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못해서 신문과 방송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그 ‘엘리트’들 말씀은, 고교평준화제도라는 ‘악의 축’을 빨리 해제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교평준화제도는 1974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 소위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한 중학생 입시경쟁이 과열되면서, 고입재수생, 과외열풍, 지역 격차 등이 사회문제가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서울과 부산 두 곳에서 처음 도입된 것이다. 이후 평준화제도는 확장과 후퇴를 반복적으로 거쳤고, 지금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절반정도가 평준화 고등학교라고 한다. 현재의 교육체제는 ‘불완전한 평준화’인 것이다. 어쨌든 이렇듯 “기회균등 사상, 경쟁선발보다 협동을 강조하는 교육체제, 인간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이념적 기초로 하여 실시된 고교평준화제도가, 어찌하여 불평등을 조장하는 사교육 열풍의 원인으로까지 지목된 것일까?

평준화해제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선두에 서온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주호 박사(17대국회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한다. ‘고교평준화 → 학교교육의 획일화와 질저하 → 학부모의 불만 → 과외의 급팽창 → 교육의 형평성 훼손’, 그러므로, “평준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늘어가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하층이다.” 

이렇듯 평준화해제론자들은 평준화제도를 ‘평등’, ‘교육형평성’이라는 이념적 뿌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괴물’로 묘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고교평준화가 ‘학력(學力)의 하향평준화’, ‘평둔화’를 불러왔다”, “평준화지역의 사교육비가 비평준화지역보다 높다”는 결론의 연구결과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런 연구가 나올 때마다 보수신문들은 현실을 통렬하게 개탄하기 바쁘다. 

비평준화 주장의 ‘계급적 신경질’

“그 연구보고서들을 보면 조작에 가까울 정도로 엉터리 설계가 많아요. 시골, 중소도시, 대도시는 조건이 상당히 틀린데, 그런 부분들을 통제하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그리고 가톨릭 대학교 성기선 교수 등 하향평준화와 관련된 쟁점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은 평준화제도와 하향평준화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이들의 연구를 통해 하위 학생들이 평준화지역에서 더 ‘상향평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손지희 정책연구국장의 대답이다. 평준화해제론자들은 “평준화의 피해자는 하위계층 학생”이라는 논리를 자주 인용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목적이 교육형평성 회복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언론기사들을 보면 많은 경우, ‘형평성’을 훼손당한 하위계층 학생들에 대한 염려보다는 평준화체제 하에서 ‘엘리트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상위계층들의 계급적 신경질이 느껴진다. 실제 보수신문과 경제신문들은 사교육비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이민, 원정출산, 공교육 신뢰 붕괴, 국가경쟁력 약화’가 모두 평준화제도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신경질이 도가 지나칠 경우에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이 조사(PISA: 2000년 OECD 32개국 만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평준화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32개국 중 한국 학생들의 평균학력이 높은 것은 사실(과학1위, 수학2위, 읽기6위)이다. 그러나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상위권 학생들 성적은 여타 국가 상위권 학생보다 현격하게 낮다는 사실(상위 5%의 경우 과학5위, 수학6위, 읽기20위)이다. 이런 왜곡된 분포곡선을 놓고 어떤 학자는 “폭력적인 평균화”라고 평가한다. PISA는 평준화가 학생들의 평균성적을 향상시켰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지만, 상위 학생들 성적이 형편없다는 부정적인 결과, 사회적 지위와 성적의 약한 상관관계 등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PISA 결과에 대해 우리나라는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을 성공적으로 동시 충족시킨 사례로 지적되고 있으며, 또 부모의 경제적 지위와 학생의 성적의 상관관계도 낮은 편이었다.)이다. 

- 중앙일보 2002년 3월27일


이렇게 “폭력적이고 형편없는” 평준화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양심 있고 정직한 교육자와 교육행정가라면, 고교 평준화와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서 기회를 빼앗고 과외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고소득층 자녀만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명백한 증거 앞에, 겸허하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뉘우쳐야”(2004년 1월26일자 조선일보 사설, 「가난한 집 자녀만 멍들게 한 평준화」)할 것이라며 준엄히 꾸짖는다. 물론 이에 반대되는 연구가 제시되면 아예 무시하거나, “편향되고 비과학적인 주장들에 의해 국가의 장래가 걸린 교육개혁의 방향이 휘둘리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조선일보 2004년 4월27일자 사설, 「정부는 '평준화 효과'도 검증 못하나」)며 애써 외면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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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27일 교육시민단체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평준화 해체 시도'에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출처:오마이뉴스 ]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아이, 다양한 관계에서 성장한 아이

“지식기반사회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와 교육경쟁력을 위한 다양한 학교체제와 이에 대한 선택권 확대로의 전환”이 KDI 등의 평준화해제론자들이 생각하는 ‘평준화 이후 교육체제’의 골간이다. 교육제도가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그 ‘경쟁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이다. 조선일보의 생각처럼 “세상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만 구분하는 사람들, 남의 자식이 공부 잘 하기 때문에 내 자식이 공부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평준화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손지희 전교조 정책연구국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실 평준화를 둘러싼 논쟁은 근본적으로 교육철학과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공교육은 넓은 범위의 교양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수월성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게 평준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기본철학입니다. 물론 비평준화가 교육의 수월성을 보장한다는 실증적인 증거도 제시하고 있지 못하지만요. 

또, 엘리트, 엘리트하는데, 어려서부터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끼리 무한경쟁 속에서 승리를 거듭하면서 살아남은 아이와 다양한 수준의 또래들과 관계 맺고 스스로를 조정하면서 성장한 아이 중에 누가 더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도 고민해 봐야할 부분입니다. 저는 경쟁력 있는 엘리트란 사회적으로 키워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책임질 인재를 사회적으로 요구하려면 그에 합당하게 사회에 투자를 먼저 해야지요. 교육에 투자한 것은 하나도 없는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 보편교육체계를 붕괴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 뻔뻔한 주장입니다.

게다가 명확하게 서열화된 대학체계를 개혁하지 않는 한, 평준화해제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경쟁력을 위한 학교 자율성을 추구한다면 이는 입시구조에 고착된 또 다른 획일화일 뿐입니다.”

교육재편에 관심 가질 때

올해 말이면, 평준화해제를 주장하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과 평준화유지를 옹호하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의 공동연구 결과가 나온다. 이는 앞으로 재편될 국가의 교육정책의 초석이 될 가능성 높다.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는 눈앞에 둔 교육개방을 맞이하여 ‘공교육 새판짜기’를 기치로 부지런히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범국민교육연대가 프랑스나 독일과 같이 대학평준화체제를 목표로 제시한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라는 구상이 ‘서울대 폐지’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언론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바야흐로 ‘불완전한 평준화’를 특징으로 했던 교육제도를 두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새로움을 요구하는 움직임들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은 계층구분 없이 함께 살뜰하게 사용해야 할 사회적 재산이다. 공교육 재편을 둘러싼 교육주체들의 갈등과 충돌의 결과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