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전쟁'과 고문기술 제국의 몰락

노동사회

'인민의 전쟁'과 고문기술 제국의 몰락

admin 0 4,615 2013.05.12 07:45

이라크전이 '공식적으로' 종결된 지 1년, 전쟁의 양상은 이전과 비교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지 1년이 되어 가지만 '자유·민주주의·자유경제'를 모토로 내걸었던 미국의 '해방전쟁'은 약속했던 것 중 그 어느 것도 이루어내지 못 했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가 갈파한 것처럼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일 뿐이다. 다시 말해 전쟁이란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문제는 바로 그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었나'가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라크전에 있어 미국의 '정치적 목적'은 무엇인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hylee_01.jpg미국 이라크 침략의 정치적 목적

이라크 침략전쟁이 미국의 신보수파에 의해 오래 전부터 기획되고, 집행된 전쟁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신보수파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의 군사력에 기반한 세계평화와 그 속에서 "새로운 미국의 세기",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의 항구적 세계지배야말로 그 전략적 목표에 해당된다. 이러한 원대한 세계전략에는 그 하위 전략이 있게 마련이고, 여기서는 신중동전략이 아시아전략과 더불어 그 핵심축을 이룬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반미성향 국가와 정권에 대해 주로 전복, 암살 등 '꼼수'가 동원되었다면, 탈냉전시대에는 소위 "깡패국가"를 제거하기 위한 대담한 전면전이 주가 된다. 특히 이라크 침략전쟁의 경우 미국의 정치적 목적은 다분히 복합적인 것이었다. 

먼저 미국의 '중동 새판 짜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만만하지만, 중동에서 미국·이스라엘의 로드맵에 대표적인 걸림돌인 사담 후세인을 확실히 제거하여 이라크에 안정적 친미정권을 수립한 뒤, 이를 아프가니스탄과 연결하고 다음으로 이란을 친미화하여, 중앙아시아에 항구적인 친미벨트를 구축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이라크의 석유자원이다. 이는 21세기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해 결정적인 정치자원이다. 이라크의 석유를 장악한다는 것은 유럽과 일본, 나아가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도 미국이 결정적 우위를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사실 이것만해도 미국이 이라크, 아니 더 정확히 후세인과 '식민전쟁'을 벌이기에 충분한 정치적 이유가 된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 국내적으로 9·11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이데올로기적 동원기제의 사회심리적 뒷받침이 있었다. 

종전선언 후, '인민의 전쟁'이 시작되다

그러나 지난 1년 사태의 전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실 미국의 군사력으로 볼 때, 사담 후세인의 군대만으로는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은 그 다음부터였다. '인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일이 아니며, 후세인이 있건 없건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미군은 이라크 민중 전체와 상대해야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가망 없는 전쟁이며,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과거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도 실제 일본이 한 것이라고는 고작 주요 도시와 그것을 잇는 간선도로 즉 '점과 점'을 점령했을 뿐이었다. '면(面)'은 여전히 중국 민중의 것이었다. 

베트남전 당시에도 미국이 지상도시를 초토화했을지 몰라도 월맹군의 지하도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베트남 민중의 '마음 속'은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30년이 흐른 탓일까, 한 번 채인 돌부리에 또 넘어 지듯이, 미국은 뻔히 그 끝이 보이는 바로 그 길을 또 가고 있다. 잦은 전쟁과 이를 위한 국고의 탕진이 대제국의 몰락으로 귀결됨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전쟁의 민영화'와 '고문의 아웃소싱'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그렇게 보자면 미군이 이라크 전쟁 포로들에 가한 잔혹행위, 그 '전쟁포르노'는 후자임에 분명하다. 애당초 미국의 신보수주의자와 군부는 국제법에 관심이 없었다. 이들의 오만한 도덕적 예외주의로 볼 때, 자신들을 위해 국제법이 존재하지, 국제법을 위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라크침략부터가 국제법위반인데, 포로에 대한 제네바협정 따위는 이들에게 잘 해야 도로교통법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러한 사태는 미국이 그까짓 신호등마저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다급해 졌음을 반증하는 아주 중요한 표징이다. 이미 정규병력만으로 상황유지가 힘들어지자, 미국은 대량의 민간인 전쟁기술자들을 전쟁에 투입하고 있다. 특히 정보분야에서 전문기술자들만으로 일손이 달리자, 전혀 훈련되지 않은 '미숙련공'을 고문과정에 투입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결국 사고로 귀결되었다. 특히 미국방성을 주계약자로 한 '전쟁의 민영화'라는, 그 자체로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이러한 '혁명적인' 전쟁수행방식은 미국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라 부를 만하다. 

게다가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정보가치가 있는 전쟁포로들의 경우 고문이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이집트, 모로코, 시리아, 파키스탄 등지로 이감시켜, 언론의 감시망 밖에서 정보를 캐내는, 말하자면 '고문의 아웃소싱'마저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번에 폭로된 포로학대는 진정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 '승전국'으로서의 오만함과 이슬람국가에 대한 종교적, 인종주의적 편견까지 가미된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라크 '분단국가' 만들 가능성도 있어

미국의 이러한 전쟁범죄적 추태는 분명 최근 전황의 반영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 부시행정부에 대한 미국 상원의원 로버트 버드의 최근 비판 중 몇 가지만을 추려 보자. 

첫째, 지난 4월에만 137명의 미군이 사망했는데, 이는 작년 3월20일부터 4월30일 바그다드 점령 때까지의 미군 사망자 전체보다 단지 하나가 모자란 숫자일 뿐이다. 둘째, 작년 6주간의 전쟁기간 중 이라크인의 사상자수는 보수적으로 추산해 약 5,000여명인데 비해, 지난 4월에만 점령지역 이라크인의 사상자수가 600여명에 달한다. 셋째, 부시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제한적인 주권이양와 관련해, 권한은 뺀 채 모든 책임만을 UN에 전가하고자 하고 있다. 넷째, '수니 삼각지역'에 출현한 저항세력의 활동도 요르단과 쿠웨이트로 통하는 주요 고속도로를 압박할 정도로 강화되고 있다. 다섯째, 팔루자가 투항하지 않을 경우 대대적으로 공격하겠다고 장담했던 점령당국은 미국에서 훈련받은 이라크인 부대가 팔루자 공격 및 순찰을 거부하자, 입장을 바꿔 '팔루자연대'를 조직하고 있다. 여섯째, '팔루자연대'에 대한 작전권과 관련 미합참의장 리챠드 마이어스와 현지 해병사령관의 말이 다르며, 언론보도와는 달리 현지 사령관은 팔루자로부터 해병대 철수에 반대하고 있다. 일곱째, 후세인 세력이었던 바트당원의 공직기용은 시아파 지도자의 반발을 사고 있고, 이는 주권이양 후의 권력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여덟째, 현재 이라크에 미국은 2만여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지만, 2년 동안 4천명을 추가 파병할 것이라는 영국을 제외하면, 스페인을 비롯한 두 나라가 완전철군을 선언하였고 나머지 국가들은 파병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나토 역시 개입을 꺼리고 있다. 이는 동맹군의 '국제화'가 위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홉째, 백악관, 국방성 그리고 바그다드의 임시행정처 모두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일어난 미군에 의한 이라크 포로 학대에 대해 너무나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식적인 종전 선언 후인 2003년 5월22일 발표된 유엔결의안 1483호는 점령당국에게 "이라크 민중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조건을 창출"하고, 나아가 "대의 기구를 위한 전국적이며 지방적인 제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미국을 위시한 점령당국이 이라크 민중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조건"을 창출해 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정이 더욱 악화될 경우 이라크가 분할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경우 지구상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분단국가'가 만들어 질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이라크 점령은 어디까지나 전쟁의 결과이며, 또 다른 전쟁에 의해 미국이 철수하지 않는 한 힘으로 얻은 기득권을 미국이 스스로 포기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미 '인민의 전쟁'으로 전화한 이라크 문제의 미래는 이라크민중과 미국간의 힘관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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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앞에서 열린 파병반대 '평화놀이터'에 참석한 어린이와 이 행사에 전시된 이라크 어린이  - 출처:프레시안 ]

'나홀로 파병', 화약 지고 불 속 뛰어드는 꼴 

상황이 그렇다고 할 때, 당장 2차 파병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파병에 대한 즉각적 재검토가 긴급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특히 기존 파병국 대부분이 발을 빼고 있는 조건에서 우스꽝스럽게 '나홀로 파병'하는 것은 현재의 이라크문제를 둘러싼 중동의 정세흐름을 거꾸로 타는 것이자, 화약을 안고 불 속에 뛰어 드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이른바 '국익'에 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고려에서 보더라도 더욱 그러하다. 이라크에서의 민중항쟁은 9·11이후 대세를 장악한 미국내 신보수파의 헤게모니를 현저히 약화시켰다. 특히 이번 포로학대사건은 이라크 전황 악화이후 그나마 틈이 벌어져 있던 신보수파와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관계를 더욱 벌어지게 하고 있다. 이는 최근 '재야' 신보수파의 대변인격인 윌리엄 크리스톨이 럼스펠드의 사임문제와 관련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해, 이는 북핵문제와 관련한 신보수파의 입지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국익을 옹호하며 파병을 주장하던 근거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파병을 했을 경우 미국으로부터 과연 어떤 '보상'이 있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한다. 실제 북핵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미국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참으로 냉정하게 따져 볼 일이다. 

그리고 지금 발을 빼지 않을 경우, 쫓겨나는 미군의 꽁무니에 붙어 이라크에서 나오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물론 이런 경우 파병을 주장했던 세력이 민심을 잃을 것이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자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