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민주주의

노동사회

노동조합 민주주의

admin 0 4,597 2013.05.0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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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월 노동연구원 노동포럼에서 발제한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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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노동조합은 일찍부터 민주적인 의사결정기구와 선거제도로 인해 민주적인 조직으로 불려왔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북돋우는 엔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대해 묻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어느 순간 ‘민주주의 없는 민주조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의구심은 다시 물음들로 이어진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실종이 최근 거론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와는 관계 없는 것일까? 노동운동의 향후 발전전망에 대한 논의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서구에서 발달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도 ‘이식’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란 따로 존재하는가? 

이 글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시도이다. 이 글은 먼저 다음 장에서 왜 노동조합의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는가를 살펴본 다음, 제3장에서는 노동조합의 민주주의에 대한 제반 논의를 검토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것이 효율성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나의 딜레마를 형성하기도 한다(제4장). 이러한 딜레마는 조직구조에서 구체적으로는 현장중심주의와 중앙강화주의라는 배타적인 무게중심으로 나타난다(제5장). 이 글에서는 이 두 이론의 영합(zero-sum)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논의로서 ‘유기적 결합주의 모델’(articulated form of unionism)를 제시할 것이다(제6장). 마지막으로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한국적 노사관계에서 갖는 함의를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노동조합의 민주주의에 관한 폭넓은 논의를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구조 및 운영 틀 속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특히 현재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건설이 ‘박정희 체제의 산별노조’로 귀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산업별 노조의 건설 역시 민주주의의 제고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2. 왜 노동조합 민주주의인가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는 지난 19세기 노동조합이 항상적인 조직으로 성립된 이래 끊임없이 사회·정치적 논쟁의 주제가 되어왔다(Fairbrother, 1990: 1). 특히 서구에서는 1980년대 초 이래 노동조합운동이 위기에 직면함에 따라 노조민주주의는 노동조합운동을 재생시키는 수단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들은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를 노조 민주주의의 결여, 즉 노동조합 조직의 관료화와 현장조합원의 참여 부족 - 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Regalla, 1988: 346).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조합원들의 이해가 다양화되어감에 따라 이를 종합하고 나아가 행동의 전제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서 그 중요도가 더해진다. 주변-핵심노동자라는 측면에서 노동자계급의 양극화와 사용자·직업·산업 등 집단적 정체성의 차이에서 오는 특수성의 증대, 그리고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분열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화·이질화되고 있음을 보이는 지표들이다. 이러한 이질성의 증대는 경제상황의 변화, 노사관계의 탈집중화(disaggregation) - 중앙권위의 훼손과 노조의 분열 증대 등 - 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특히 Hyman(1992:165-6)은 “노동자 계급이라는 개념은 (집회에서나 외쳐지는) 추상에 불과할 뿐 결코 사회학적인 묘사나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다. 차별화 분리, 그리고 분열은 노동조합의 발전과정에서 항용 있어왔던 것이다. 연대란 결코 자연스럽다거나 고정된 성질이 아니라 기껏해야 달성하기 힘든, 그러면서도 하루살이와도 같은 목표일뿐이었다”라고 말하며 노조의 단결과 연대를 위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은 최근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이행이 하나의 세력을 이루어감에 따라 더욱 증대되고 있다. 산업별 노동조합은 재정 및 운영의 중앙집중성과 단체행동에 대한 통제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조직형태이다. 따라서 이러한 운영원리는 곧바로 노조중앙의 관료성을 증대시키고 현장성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 예를 들어, 이은숙(1999)은 산별노조로의 이행이 필연적으로 관료화로 이어진다면 그 반대의 축으로서 조직운영의 민주성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별노조는 조직운영에서 고도의 중앙집중성을 요구한다. 재정을 포함하여 조직전반의 중앙집중성은 개인가입원리 및 비고용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조직의 운영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직이 관료화될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므로 현장으로부터의 의사소통구조의 민주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산별노조의 건설이 현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현장의 붕괴’ 주장과 연결되어 노동운동의 위기인식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노조 민주주의에 관한 관심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지도력 위기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이 총연맹-연맹-기업별노조라는 형태로 조직되어 있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먼저 3단계로 이루어진 노동조합의 조직구조는 단계간 역할분담의 미정립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이는 권한과 책임소재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진다. 또한 민주노총의 관료주의는 최근 상층부의 결정이 현장정서와 괴리되고 있다는 지적과 더불어 투쟁 역시 대중동원과 결합되어 있다기보다는 수사적 또는 선언적 투쟁으로 그치고 있다는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각급 의사결정기구에서 성원의 미달은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위협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노조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의 결점을 보완하고 노동자계급의 지도자를 훈련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민주주의를 함양한다(Mcllroy, 1995).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작업장과 경제영역에 확대시키기 위해서도 노조내부의 민주주의가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그들의 동료가운데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가르치고 실행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민주주의는 ‘좋은 그 어떤 것’으로만 묘사되어 왔다. 기껏해야 그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의 추상일 뿐이었다. 그럼 노동조합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다음 장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3. 노동조합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그것이 갖는 중요성을 인정받는 만큼이나 사람들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노조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적할 사실은 모든 논자들이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Allen(1957: 15)은 ‘노조활동의 목적은 조합원의 일반적인 생활수준을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것이지 노동자들에게 민주주의를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목적은 조합원들을 소비자로 인식하여 그들을 만족시키고 그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자 주권론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강조한 나머지 다른 가능한 이해관계를 배제시키고 있다는 약점을 지닌다(Hemingway, 1978: 11). 

이러한 소비자 주권론을 제외하면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크게 관료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는 현장중심주의와 정치학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노동조합의 운영에 ‘이식’시키고자 하는 자유론적 다원주의로 나뉘어진다. 

노동조합 관료주의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비관적인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Michels는 「정당론」(1958)에서 이해관계의 다양성에 따른 갈등은 노동자계급의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제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도자들은 숙련과 경험을 바탕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발전시키며 따라서 불가피하게 조합원의 생활과 이해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철의 과두제법칙’(an iron law of oligopoly)을 제시하고 있다. 즉 지도자들은 조합원들의 급진적인 이해에 맞서 그들 자신의 이해를 우선하며, 그 결과 정책은 보수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별로 문제시하지 않았던 다원주의 (pluralism)의 진출로 인해 소강상태를 보였던 노조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1970년대 Hyman(1975; 1979)의 관료제 비판에 의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Hyman은 현장조직의 관료화에 초점을 맞춰 1) 위계적이고 집중화된 현장조직, 2) 조합원의 전투성에 대한 통제, 3) 사용자로부터의 후원과 그들에 대한 협조적인 자세, 그리고 4) 공식적인 상급조직에 의한 현장조직의 포섭 등을 밝혀낸다. 즉 노조 간부는 외부기관(사용자 및 정부)에 대해 협조적인 관계를 끌어내기 위해 중계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조합원들의 활동과 투쟁의 과정에서는 보수적인 역할을 마다 않는다. 이러한 역할은 조직의 안정과 생존에 대한 보호자로서 갖는 그들의 특별한 위치와 외부기관과 안정적인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그들의 이해, 그리고 전문능력에 대한 그들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과정은 지도적인 현장위원들이 공식적인 관료조직인 상급단체에 포섭됨으로써 더욱 확대된다. 그 결과 Hyman은 노조 민주주의란 다만 부분적으로 그리고 시험적으로 성취될 수 있을 뿐이라고 진단한다. 

Hyman이 Michels의 비관론에 바탕을 두고 노조 민주주의에 대해 우울한 전망을 제시하였다면, Fairbrother (1990: 1996)와 Fosh (1993) 등은 Hyman이 제시한 관료화이론을 이어받으면서도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노조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한 단계 높이고 있다. 그들은 노조 관료화를 극복하는 처방전으로서- 동시에 노조 재생의 방안으로서- 조합원의 직접적인 참가에 주목하며 동시에 그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Fairbrother에 의하면, 현재 노동조합의 위기는 경영구조의 분권화와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노조의 집중화된 구조 사이의 모순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경영구조가 분권화되고 작업과 고용이 기업별로 재조정됨에 따라 노동강도의 강화, 작업관행의 변경과 고용의 축소 등이 전면에 나섰으며, 그것은 교섭의 중심을 작업장으로 옮겼다. 이러한 단체교섭이 분권화는 곧바로 역동적인 현장조직의 가능성을 높이며, 이를 통해 영국노동운동은 재생이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현장참여에 대한 강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변노동자, 즉 여성·소수인종·동성애자 및 장애자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였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노조의 의사결정기구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대표성 부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Rees 1992: Cunnison, 1993). 특히 성 민주주의(gender  democracy)라는 개념은 노조 민주주의의 개념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고 동시에 조합원 구성의 특징적인 성격을 반영한다. 여성노동자의 조직화와 성차별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노조 운영에서 성 민주주의는 노조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핵심으로까지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즉 여성 파워의 출현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 문화에 대한 도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조합원 참가에 바탕을 둔 조합원 중심주의 (lay-led unionism)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민·자유주의적 접근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영국에서는 작업장 노조주의라는 조건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관료화를 축으로 삼은 반면, 미국에서는 주로 시민·자유주의적 접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Lipset et al., 1956; Edelstein et al., 1975; Strauss, 1990). 더욱이 전자가 작업장 노사관계에 초점을 맞춘 반면, 후자는 중앙의 집중성을 전제로 민주적인 운영에 대해 논의하였다.
 
예를 들어 Lipset 등(1956)은 국제인쇄노조 (ITU)의 양당선거제도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노동조합의 과두체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대의 제도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ITU내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요인으로서, 1) 양당제도의 역사적 전개, 2) 비공식적인 조직, 특히 직업공동체의 발전, 그리고 3) 지부조합의 상대적 자율성과 조합원 직선제를 포함한 조직의 구조적·제도적 측면을 들고 있다. 이 가운데 그들은 노조민주주의 핵심은 조직 내의 양당제도의 존재로 보고 있다. 

평균적으로 대규모 노조는 하나의 공식적인 조직, 즉 노조 내부장치 그 자체와 개인 조합원만을 갖는다. 따라서 반대를 조직할 수 있는 자율적인 하부조직이나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독립적인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 노조운영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유일한 수단은 조직관료 자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작업장 조직은 일반적으로 사용자에 대응하기 위해 노조 전임간부들의 지원에 의존하고 따라서 일반적으로 조직적 반대의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다. 또한 노조 위계질서 내에서의 신분상승을 바라는 지부간부들은 지도자들에 의존해야한다. 결론적으로 전형적인 일당노조(one-party union)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무당노조(no-party union)이다(Lipset et al. 1956: 77-8). 

Dickinson(1981)은 지도부에 대한 반대 조직으로서 정파(party)와 분파(faction)의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의하면 정파란 분파에 비해 보다 조직화되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그룹을 지칭하며, 민주적 조직의 시금석으로서 분파를 정파로 바꿔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Edelstein 등(1975)은 공식적인 하부구조에 바탕을 둔 경선을 제안한다. 그들에 따르면 반대의 효율성은 투표에서의 좁은 격차를 의미한다. 그들은 비록 노조에서의 의사결정이 갖는 과두적인 성격은 인정하지만 조합원들에게 선거를 통한 선택이 존재하는 한 민주적 원칙은 유지된다고 본다.  

노동조합의 관료화이론이나 자유주의적 입장이 반드시 배타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Morrison 등, 2000). 상호 중복되는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의 조직률이나 조합원의 투표참가율은 어느 관점에서도 노조 민주주의의 지표로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노동조합에 대한 높은 만족도가 조합원 참여의 증대와 직결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이론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파의 존재에 대해 현장중심주의는 노조 내부를 분열시키는 원인이자 민주주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는 데 반해, 시민자유주의적 입장에서는 분파 또는 정파의 존재를 노조민주주의의 직접적인 지표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분파란 기본적으로 조합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지도부의 행태에 대한 필수적인 제재(sanction)에 속한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여성의 참여와 이를 위한 여성 독자조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제도화된 분파의 성적인 형태’(Healy et al., 2000: 350)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모순이라 할 것이다.

노동조합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노동조합의 민주성이 조직 안에서의 효율성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딜레마- 민주성과 효율성의 모순-를 살펴보기로 한다. 

4. 노조 민주주의의 딜레마

일찍이 관료제 이론을 최초로 체계화한 Max Weber는 “경험적으로 말하면 순수하게 관료적인 행정조직은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점에서 최고의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조직이다” 라고 관료주의를 예찬하고 있다(Beetham, 1996).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과 관련하여 Child 등(1973)은 이를 행정적인 합리성(administrative rationality)과 대표적인 합리성(representative rationality)의 모순으로 규정짓고 있다. 

Child 등(1973)에 따르면 행정적인 합리성이란 목표를 달성(goal-implementation)하기 위한 집행논리로서 효율(efficiency)을 중시하는 반면, 대표적인 합리성은 조합원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목표의 형성(goal-formation) 내지 정책결정시스템으로서 효과(effectiveness)를 중시한다. 이러한 두 합리성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합리성은 상호 대립적인 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즉 대의적인 과정에서 조합원의 광범위한 참가는 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합리성 사이의 갈등은 권력의 원천과 배치라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행정적인 합리성은 단일하고 조정된 통제시스템으로서 권위의 주요 원천을 조직위계의 최상층에 배치한다. 이에 반해 대표적인 합리성은 권력과 통제의 분산을 주장하며 권위의 원천을 제도적 위계의 밑바닥, 즉 조합원에 놓는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노동조합 효과의 구조에서 이러한 두 대표성 사이의 관계를 [그림]과 같이 그리고 있다.           

tjpark_01.gif효율성과 민주성을 둘러싼 논쟁은 그 뿌리가 깊다. 일찍이 Flanders(1970: 38-47)는 이러한 딜레마를 ‘조직’과 ‘운동’이라는 양면성을 띨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의 고유한 모순에서 찾고 있다. 즉 조직으로서는 행정적인 효율을 중시할 수밖에 없지만, 운동의 측면에서 이는 민주적인 참여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Hemingway(1978)은 노조가 조합원을 위해 행사하는 힘(power for members)과 조합원에 대해 행사하는 힘(power over members)의 균형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물으며, 이러한 모순을 ‘민주주의의 모순’(democracy dilemma)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Kochan(1980)은 조직의 중앙집중화는 효율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지만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중앙집중화와 이로 인한 정치적 과정의 결여는 반대의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분권화는 조합원의 참여를 높이는 반면 집중화는 그 반대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운영을 둘러싼 이러한 민주성과 집중성 사이의 갈등은 노조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장강화주의와 중앙집중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전자는(-)  노조의 민주화와 효과를 원인과 결과로 인식하여 노조의 결점은 과도한 집중화와 이로 인한 조합원의 소외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후자는 비록 노조의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큰 집중화와 중앙의 조정역할을 포함한 행정적인 해결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다(Fairbrother 등, 1990 참고). 다음 장에서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5. 현장인가 중앙인가

(1) 현장중심주의의 허와 실


현장강화주의(grass roots activism)에서 현장이란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참여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수행하는 일차적인 공간이다. 더욱이 노동조합이 규율 있는(disciplined) 집단행동(Hyman, 1975)과 더불어 조합원의 행동하려는 의지(Offe 등, 1985)에 의존한다면 조합원의 참여는 노조활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이룬다: “조합원의 참여는 노조의 생명력과 성공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Fairbrother 1984: 23). 작업장 차원에서 조합원의 참여에 대한 강조는 특히 Fosh(1993:)에 이르러 작업장 노조재생론(the workplace-renewal-of -unionism thesis)으로 발전한다. 그에 따르면 노조에의 관여 (involvement)는 노조에 대한 참여(participation)와 헌신(commitment)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노조에의 관여는 여러 가지 요인, 예를 들어 노사관계의 환경, 과거의 경험, 지역노조의 구조 등에 영향을 받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부간부의 리더십 스타일-참여적이고 민주적인-이다. 그러나 모든 현장강화론자들이 리더십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 Fairbrother는 단체교섭의 하향이동을, 그리고 Darlington(1994)은 지부차원에서의 전투성을 앞세우는 등 강조점에서 일정부분 편차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논자들이 기본적으로는 Hyman의 작업장 관료화이론을 출발점으로 하여 현장재생론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실상, 현장은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참여할 뿐 아니라 조합원을 동원하는 지점이다. 또한 현장은 이를 통해 상급조직이 안고 있는 관료주의를 불식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의 보루이기도 하다. 즉 관료주의와 그 대안으로서의 참여가 발생할 수 있는 조직적 위상이 바로 현장조직인 것이다. 특히 단체교섭과정에서 현장조직은 조합원의 직접적인 관심을 단체교섭 안건에 반영함으로써 그들의 관심을 참여와 동원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고충처리 등 다양한 조합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점이 역시 현장이기도 하다. 

최근 급속한 기술혁신과 더불어 경제의 지구화로 인한 경쟁의 격화는 시장과 생산조직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세계화와 시장 분단의 동시적인 진행은 포드주의라 일컬어지는, 반숙련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체제를 뿌리에서부터 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사용자들은 다양한 대안적인 기업전략과 조직, 그리고 노사관계를 실험하며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조직의 우위성에 대한 조직적인 근거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다양한 경영전략에 맞서 그 산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에 대해 교섭하거나 심지어는 조정할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약화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구화 시대에 경쟁이 격화되고 새로운 생산방식이 도입됨에 따라 개별적인 경영자에 대한 대응전략의 구축은 결국 기업 내부의 현장조직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즉 기업내부의 구조조정, 신기술의 도입 및 작업조직의 변경 등 기업특수적인 환경변화에의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차원에서 ‘교섭에 의한 구조조정’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를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아온 Locke(1990: 1992)에 따르면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위기는 중앙집중화된 산업별 조직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별 조직이 지배하는 노사관계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들(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위기는 이탈리아의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노사관계와 파편화된 노사관계 제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즉 그들은 이탈리아는 관료적인 효율성과 잘 조직된 정상교섭, 그리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정치적 연대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지배적인 산업별 노조가 현재의 산업 재조정과정에서 초래된 기업차원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강한 지부로 이루어진 연맹체’(a federation with strong locals)에서 노조 조직구조의 해답을 찾고 있다: 
노사관계의 패턴이 다양화 되어간다는 사실은 노사관계의 이론측면에서 뿐 아니라 노조정책의 미래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노사관계의 재형성(reconfiguration)에서 무게중심은 지부나 기업차원으로 옮아가고 있다. … 갈수록 다양화되어 가는 노동운동의 가운데에서 연대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는 변했으며, 이에 따라 노동조합도 변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과거의 수직적이고 고도로 관료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경제에 굳건하게 결합된 강한 지부로 이루어진 연맹체와 같이 보다 수평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구조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전체 노동운동을 위한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Locke, 1992: 247). 

이러한 현장강화론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반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어졌다. 하나는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Hyman의 현장 관료화 이론을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중앙집중주의적인 관점에서 현장중심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후자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실증주의적 차원에서 논리의 차이는 결국 구체적인 현장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강화론자는 현장중심적인 조직구조의 경우 노동조합이 당면하고 있는 이슈가 작업장 외부에서 주어질 경우 노조의 대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현장의 권한 강화가 현장조합원의 참여증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첫째, 작업장 재생주의는 현장에서 조합원 참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부차원을 벗어나 결정되는 사안을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에서 임금은 중앙정부에 의해 지침으로 시달되기가 십상이다. 이 경우 기업단위에서 임금을 인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효율성의 제고나 고용의 감소에 의해 주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단체교섭의 분권화는, 그것이 현장조합원의 참여를 제고시킬 수 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노동조합 힘의 결집이라는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시킨다는 점에서 현장주의는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의 공격 앞에 무력감을 드러내게 된다.  

● 둘째, 현장 외부에서 자원의 동원은 곧바로 상급조직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상급단체와의 연계는 지부노조의 관심을 ‘오늘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업장의 특수성을 뛰어넘어’ 확대하는 채널구실을 한다. 즉 종업원 의식에의 매몰과 경제주의적 편향이 노동운동의 지배적인 방향타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 세째, 현장자원만으로는 노조의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현장조직이 충분한 전임인력이나 재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거나 사용자의 공격적인 노조탄압에 직면하였을 경우 고립분산적인 투쟁만으로는 노조의 재생은커녕 당장 생존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구조조정이 기업특수적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 대응에서는 전문가의 참여와 조언, 때로는 상급단체로부터의 재정적인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Locke(1992: 247)도 인정하고 있듯이 약한 지부에 대한 사용자의 도려내기나 착취를 어떻게 방지할 것이며, 나아가 조합원의 다양한 이해를 어떻게 조정하여 노동자의 단결을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더욱 지독한 것은 사용자나 정부의 정책에 대응하면서, Kelly(1988)가 말하고 있는 이른바 ‘경쟁적 분파주의(competitive sectionalism), 즉 ’다른 그룹을 희생하여 자기그룹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이상으로 현장중심주의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론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무엇보다도 두 개의 논의, 즉 현장중심주의와 중앙강화주의를 영합관계(zero-sum contradiction)로 보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다시 말해 지부의 역동성과 중앙의 통제를 상호모순의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예를 들어 ‘강한 지부를 바탕으로 한 중앙의 강화’라는 아이디어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더욱이 현장강화주의와 중앙강화주의는 양자 택일의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현장조직과 전국조직의 관계(relation)에 대한 시각을 놓쳐버리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시각의 결여는 결국 중앙과 현장이 별개로 움직이는 평행적 노동조합주의(parallel unionism: Turner, 1962)에 빠져 버리게 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적 대안으로서 본고에서는 '결합적 노동조합주의'를 제안한다. 

(2) 유기적인 노조결합론에 대해 

유기론적 노조결합론은 한 마디로 현장조직과 중앙조직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조직론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서 상호결합 (articulation)이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직적으로 차별화된 조직부문들을 통합시키는 연결망을 의미한다. 조직의 수직적 위계구조 내에서 부문간의 통합은 강력한 전국노조와 역동적인 지역노조를 ‘서로의 목표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Crouch, 1992) 공존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일찍이 Crouch (1993: 54-5)는 상호결합을 ‘서로 다른 수직적 수준들을 결합시키는 강력한 상호의존관계, 즉 중앙은 하부단위의 동의에 의존하고 하부단위의 자율성은 규약이나 상위단위의 통제에 종속되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조직 내의 권력 중심이 하부로 이동함에 따라 조직 내부의 단일성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서 상호결합에 대한 관심은 Crouch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증대하여 왔다. 최근 Murray 등(1999)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의 지구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조직구조가 내부의 상호결합에 바탕을 두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Traxler(1995)는 교섭구조에서 하위단위가 상위협약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형태로서 교섭수준간의 조율(co-ordination)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반드시 조직해체(disorganization: Lash and Urry, 1987 참조)나 노조 힘의 약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분권화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분권화 과정은 파편화의 위험이 어떤 형태의 조율에 의해 제한된다면, 이는 '조직적인 분권화'(organized decentralization)로 보아야 하며, 이것은 분권화가 조직해체로 이어지는 ‘비조직적인 분권화'(disorganized decentralization)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권화가 전국수준에서 체결된 기본협약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나아가 전국협약을 보완함으로써 조직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Anderson (1997), Due 등(1995)이 제기하는 '집중화된 분권화'(centralized decentralization)와 유사하다. 특히 Hyman (1999)은 구성조직이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조직적 단결을 유지하는 기제로서 조직수준간의 유연한 조율을 강조하며 이를 유기적 연대 (organic solidarity)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그것이 조직수준간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관계적(relational)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경영을 분권화 시켜감에 따라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는 보다 다양해지고 따라서 '직접적이고 지엽적인 경험과 열망이 낳는 이질성‘(Hyman, 1992)에 대항하기 위한 현장노조의 중요성은 그만큼 증대하였다. 그러나 현장노조에 대한 강조는 지부조직들을 수직적인 조직구조로부터 이탈시킬 우려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합구조는 지부조직에 대해 증대된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내부 정책의 일관성과 조직적 단일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지부조직 사이의 효율적인 연결망이 없이는 전국조직은 지부조직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더 이상 종합할 수 없게 되었다. 거시 및 미시수준을 결합시킴으로써 이는 한편으로는 지부 노사정책의 파편화와 다양성을 포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조직이 빠지기 쉬운 ‘관료적인 효율성‘의 위험을 제거한다. 집중화와 분권화 사이의 영합적인 이분화가 아니라 밀접한 상호작용에 따른 조직발전을 Lewin(1980: 155)은 ‘상호작용 민주주의’ (interactive democracy)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노조 지도자와 조합원 사이의 상호소통에 바탕한 의사결정과정을 의미한다. 

이상으로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여러 논의들을 살펴보았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현장중심주의가 작업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데 반해 자유주의가 상급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기는 하나, 두 개의 이론이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어느 한 요소에 배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면 객관적인 상황에서 주체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 및 운영에 대해 갖는 함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6. 우리 노조운동에 주는 함의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우리나라에 대한 함의를 알아보기에 앞서 지적할 사항은 역사적 발전의 유산으로서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 및 운영형태는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조합의 조직이 기업별 형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최근 산업별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있다고는 하나 산업별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집중도가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에서 노동조합 조직이나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진술이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구조의 분권화를 예단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이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서구에서 펼쳐진 논의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기업별 체제는 어떤 의미에서 의사결정기구가 제도적으로 조합원 곁에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실제로 기업별노조는 조합원과의 관계에서 보다 적극적이며 동시에 조합원이 직접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조직체계이다(Jacoby 등, 1992; Fujimura 1997). 특히  한국의 기업별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조합-조합원의 관계를 연구한 Frenkel 등(1999)은 흥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노조-조합원 관계는 경제적인 이익보다 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만족도를 높이는 기제이며, 이는 한국의 기업별 노동조합체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별 노동조합 구조는 그것이 갖는 파편성과 아울러 위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파편화된 집중화’(fragmented centralization)의 위험성을 드러낸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법이나 일반적인 노동조합의 규약에 의하면 위원장은 대내외적으로 노조를 대표할 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사무처요원에 대한 사실상의 인사권과 부서장 임면권을 가진다. 예산편성권 및 집행권, 역시 위원장의 권한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대의원대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위원장은 단체협약에 대한 체결권을 가지며 규약의 해석에 이견이 있을 경우 최종적인 해석권을 지니기도 한다. 

이러한 집중적인 권한은 권한의 남용과 위계적 질서, 전문 전임에의 의존 등 관료적인 조직을 만들 가능성을 지닌다. 규약에 대한 지나친 얽매임은 경직성을 낳으며, 위계구조는 개인의 책임회피와 행정낭비를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과정에서 필수적인 의사소통, 즉 조직 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관료적인 조직이 적절치 않다는 것은 누차 지적된 경우이기도 하다(Beetham, 1996: 14). 즉 피라미드형 체제를 갖춘 관료제에서 정보유통의 중심방향은 하향적인데 반해, 정보전달은 조직의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통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한의 집중은 위원장의 성향에 따라 노조의 성격이 좌우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위원장의 짧은 임기와 결합되어 노조운영이 일관성을 잃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인식과 위에서 논의한 노조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할 때 제기되는 것은 그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먼저 주요한 변화영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다.

● 의사결정기구의 분권화(현장참여주의) 
● 조합원의 직접적인 참여(현장 중심주의)
● 임원 선출과정에서의 경선(시민자유주의)
● 정파 또는 분파의 존재(시민자유주의)
● 소수그룹(여성 등)에 대한 대표권의 보장(현장참여주의)
● 투표율의 제고(시민자유주의, 현장참여주의)
● 임원 선출에서의 직선제(시민자유주의, 현장참여주의)
● 조직 내에서의 통일·단결의 유지(중앙강화주의)

먼저 의사결정과정에서 대의원대회의 활성화와 여성조합원에 대한 대표성의 보장(여성위원회, 여성할당제 등), 그리고 위원장 권한의 하향이동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무엇보다도 조합원 중심주의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UNISON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이러한 사상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 규약과 전국정책의 결정사항내에서 지부의 상대적인 자율성(재정, 운영, 교섭 및 정책 등)
● 대의원 대회에 대한 지부 및 여성위원회의 의안 상정권
● 전국정책에 대해 반대를 조직하고 캠페인을 할 수 있는 지부권리의 인정
● 의사결정과정서 고용직 전임의 배제
● 비례성과 공정한 대표성의 확립(여성 등) 

이와 더불어 시민·자유주의적 접근방식에서 나타나는 점들은 전국노조의 운영과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분파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다만 이 경우 분파는 단기적인 권력획득을 위한 ‘패거리’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의 일관성과 조직적 틀을 갖추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와 더불어 분파 내지 정파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보다 경쟁적인 선거구조의 형성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직선제의 도입여부에 대한 고민을 들 수 있다. 직선제란 조합을 조합원에게 돌려주는 일일 것이다. 셋째, 대의원 대회를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로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부에 대한 의안상정권의 부여와 더불어 실질적인 최고의결기구로서의 위상확립, 나아가 충분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토론 분위기의 확립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정규 대의원회 이외에도 여성대의원회나 직종이나 업종별 대의원회, 노동당원 대의원대회 등의 도입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별 체계에서 갖는 중앙집중성의 강화는 무엇보다도 조직의 분산성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변화되는 정치경제적 환경을 도외시한 채 조합원의 무관심과 현장의 공동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집중화는 관료화의 진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영국의 노동조합구조에 대한 Hyman(1989: 185)의 진단은 산업별 조직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유효하게 들린다. 

광범위한 조합원 참여의 전통과 더불어 영국 노동조합의 분산적인 성격은 노동조합의 관료화 경향에 대한 결정적인 대위(counterpoint)를 제공한다. 따라서 현장 민주주의를 희생으로 삼는 중앙집중화는 문제에 대한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조합원을 노동운동의 제도로부터 가속적으로 소외시킬 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산별전환을 위한 노력은 적극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전략적 집중화’(strategic centralization)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중앙으로 이전시키더라도 기능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하향 이전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강조할 지점은 중앙과 현장의 ‘관계’이다. 대의원대회의 활성화나 중층화된 단체교섭구조의 실현 그리고 비공식적 접촉(교육, 세미나, 간담회 등)의 확대나 지역조직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7. 결론 

노동조합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그 성격상 강한 현장지향성을 갖는다. 더욱이 노동조합의 운영에서 관료성 문제가 대두될 경우 그 처방전을 현장강화에서 찾는 것은 영국의 작업장 노조주의(workplace unionism)나 최근 미국에서 John Sweeny의 리더십 아래 추진되고 있는 ‘새 목소리 운동’(New Voice Campaign)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노조 민주성에 대한 추구가 ‘운동으로서의 노동조합’에는 적합하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