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자판기처럼 여기는 건 싫어요

노동사회

노조를 자판기처럼 여기는 건 싫어요

admin 0 3,287 2013.05.12 05:46

가을이 다 온 것처럼 으슬으슬한 비가 추적거리다가도 이내 곧 후덥지근해지는 날씨가 며칠 이어졌다. 이 달의 ‘독자와함께’를 위해 이수영 부장을 만나러 가는 날은 진짜 가을답게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빗줄기가 오락가락 했고, 소매로 한기가 스며들어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신촌에 있는 서점 앞에서 만난 이수영 부장은 얇은 반소매 차림이었다.
“세상에, 춥지 않아요?”
“집에 긴 팔 옷이 없어요.”

“「노동사회」 표지가 촌스러워요”

syim_01_3.jpg그렇게 조금 우습게 첫 인사가 오갔다. 이수영 부장은 대학노조 사무실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데, 주말에 집에 갈 때까지는 반팔 차림으로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근처 옷가게를 기웃거리며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이수영 독자는 성공회대 신학과를 나와서 현재 대학노조에서 조직2부장을 맡고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탓에 주변에 종교인이 별로 없다보니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아무래도 노조간부와 신부는 묶어서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수영 부장은 앞으로 별다른 일이 없으면 성직자가 될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대학원을 진학할 때 선배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하면서 사회생활을 해볼 것을 권했고, 마침 대학노조에 빈자리가 있어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대학노조는 요즘 가입지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입학 정원수보다 수능시험 응시자수가 더 적다보니 대학들이 신입생 충원이 어려워지면서, 코앞에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대학들이 많이 늘었다. 그리고 전국에 퍼져있는 신입지부들 덕분에 이수영 부장은 지방출장이 잦다. 이렇게 활동하다가 보면 가끔 노조가 ‘자판기’처럼 누르면 뭐든지 다 나오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현재 본인의 상황은 다른 노조상근자들보다 나은 편이라며 멋쩍어했다.

“사무실에 노동관련 잡지가 많이 와요. 그런데 『노동사회』는 표지가 촌스러워서 늘 눈에 잘 띠어요. 허허허, 이거 전략이죠? 『노동사회』를 보면 일반 조합원들이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요. 물론 저한테도 어렵구요.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 기사가 많이 있는 점이 좋아요. 그렇지만 일반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과 노동조합을 처음에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꾸려나가는지에 대한 기사들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조합에는 신생지부들이 많거든요.”

소박한 성직자와 건강한 민주시민

이수영 부장은 날카롭게 보이는 첫 인상과는 달리 이야기를 재미있고 쉽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앞으로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거창한 ‘활동가’가 아니라,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올바르지 못한 일을 보았을 때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가 되어서도 권위적이지 않고 허물없이 늘 사람 옆에서 어떤 이야기든지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소박한 소망, 비 그친 뒤 내리는 가을 햇살 속에 탐스럽게 영글기를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