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사회 진로

노동사회

21세기 한국사회 진로

admin 0 3,401 2013.05.07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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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2000년 12월 20일(수)
-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사회: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 토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강정구 동국대 교수, 김대환 인하대 교수·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박석률 겨레문화21 대표,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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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_01.jpg김금수: 반갑습니다.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20세기를 되돌아보면서 다가오는 21세기를 전망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실제로는 연구소 회보인 『노동사회』도 50호를 맞이했고, 해가 가기 전에 함께 만나 소주잔이라도 기울일 구실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좌담회를 열게 됐습니다. 

2000년으로 20세기가 마감되고, 2001년은 21세기의 첫 해가 됩니다. 우선 20세기를 마감하는 감회부터 말씀해주시죠. 더불어 20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지도 얘기해주시고요.  

권영길: 20세기는 ‘혁명의 세기’, ‘전쟁의 세기’였습니다. 세계사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서로 교차한 시대’로 정리할 수 있고요. 한반도로 국한하면 식민지와 해방, 분단과 전쟁, 외세의 지배와 독재, 그리고 이에 대항한 반외세·반독재 투쟁이 이어졌던 시기였습니다. 87년 이후에는 억압과 착취가 중심 화두로 떠올랐고,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향한 운동이 전개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미완의 세기’입니다. 특히 한반도의 상황은 더욱 그러합니다. 민주화는 아직 불완전하며, 분단체제는 여전합니다.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도 사라지지 않았죠. 운동진영의 과제인 자주·민주·통일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홍세화: 독일에서 사는 분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20세기는 한민족에게 ‘유민의 시대’였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개인 역정도 어느 정도 드러내는 규정입니다. 또한 20세기는 비정상의 시대였습니다. 전쟁, 학살, 독재, 착취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는 우리 역사의 비정상성을 잘 말해줍니다.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은 1세기에 걸친 비정상 상태가 정상상태로 이행하는 분기점이었습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 세계와 동북아에서 한반도가 갖는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강정구: 세계사적으로 20세기는 제국주의 전쟁으로 출발한 동시에 소련의 사회주의 실험이 시작된 사회주의 실험기였습니다. 2차대전 후 미·소냉전이 이어졌고, 89년의 탈냉전 개시 이후 미국의 단일패권 질서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는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식민지를 경험했고, 해방을 이루자마자 전쟁과 분단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6월 항쟁 이후 88년 6.10 남북학생회담 등 학생들의 선도투쟁으로 통일시대가 겨우 출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부분은 20세기 중후반에 우리 민족이 연루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군사독재 시절의 의문사, 고문, 탄압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20세기의 한반도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자 가치인 인권, 구체적으로는 ‘생명권’이 짓밟힌 시대였고, 우리 민족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습니다. 

김대환: 영국의 노동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이 19세기 말과 20세기를 ‘노동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노동의 시대가 최고조에 도달하기도 전에 노동의 쇠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노동자의 권익신장, 사회보장제도 발달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70년대 중반 이후 신보수주의가 득세하면서 노동세력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런 가운데 21세기의 진입로에 서 있습니다. 사실 20세기 노동의 성장은 자본주의의 물질적 발전에 편승한 측면이 큽니다. 자본주의의 부분적 조절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그 속에 함몰되어 후퇴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한국의 경우 노동의 시대는 길게 잡아야 87년 이후 10년간일겁니다. 우리 역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물질적 포섭에 함몰되어 피크(peak)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후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21세기도 이 연장선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21c_02.jpg김금수: 제 생각으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 파괴의 세기, 증오의 세기였습니다. 양대 세계대전이 있었고, 파시즘을 겪었습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횡행한 세기였고요. 하지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해방운동이 뜨겁게 불타올랐던 세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투쟁과 대립의 변증법을 다시 한번 확인한 세기이기도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20세기를 눈앞에 둔 19세기 말의 인류사회가 진보와 발전, 해방과 혁명의 기대로 끓어올랐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날의 인류사회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21세기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요? 21세기에 우리가 고민할 화두랄까요? 

강정구: 21세기로 접어드는 길목인 지금 시점의 세계사적 과제는 미국의 단극체제를 종식시키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체제를 실현하는 것이라 봅니다. 한국사적 과제는 당연하게도 분단체제의 극복과 통일의 실현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가 여러모로 혼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21세기 초반은 민족사적으로 기회의 시기가 될 거라 예상합니다. 통일 한반도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상대적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지역강국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이는 19세기말의 조선이 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행사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통일 한반도가 떠맡을 수 있습니다. 한반도 통일은 미국-일본 대 중국-러시아라는 긴장구도를 균형 잡힌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홍세화: 21세기 한반도의 화두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칭구도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유럽-유라시아-아시아의 횡단선이 미국 중심의 종단선과 만나는 지점인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 남북이 더불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 21세기의 화두가 되어야 하지요. 여기에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생명권, 생태가 폭넓게 어울려야 합니다. 그런데 세기의 전환점에 선 한국 사회는 대단히 동물적이고 야만적입니다. 인간, 인문주의, 생명정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김대환: 21세기의 화두로 ‘열린 노동정치’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시장주의와 물신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노동이 ‘열린 노동정치’의 핵심입니다. 미국 패권 이야기가 있었는데, 미국의 단일패권이 한 세대를 못 넘길 거라 봅니다. 십년을 넘기 힘들다고 하는 유럽학자도 있습니다만. ‘열린 노동정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체제를 기획하고 주도하는 운동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21세기 노동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권영길: 오랜 동안 노동조합운동을 해왔고, 지금 노동조합이 중심이 된 민주노동당 대표의 입장에서 평화와 평등사회 건설이 새로운 세기의 중심이라고 봅니다. 물론 지금은 이를 위해 역량을 결집할 때이고요. 

박석률: 20세기는 제도와 체제의 거대한 실험기였습니다. 혁명과 전쟁, 식민과 해방이 교차되었던 시대였지요.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금도 인간존엄성의 굴복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지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을 넘어 공동체와 인간성의 회복을 새 세기의 여전한 화두로 삼고 싶습니다. 

김금수: 여러분이 말씀하신 평화와 평등이 충만한 사회,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이 존중받는 공동체 같은 공통된 요구와 희망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서 불씨를 키우고 있습니다. 저는 결국에는 이런 소박한 바람들이 역사발전을 위한 투쟁의 원동력 구실을 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21세기 역시 단선이 아닌 나선형의 역사발전 형태를 띨게 분명합니다. 국내외 지배세력의 반동과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세력의 도전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21세기는 자기 진로를 잡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21c_03.jpg권영길: 저는 사회주의 실험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실험이란 표현 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20세기에 시작된 사회주의 실험이 끝났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계속된다고 보십니까?

강정구: 실험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상적으로 볼 때 중국은 자본주의이고 사회주의가 아닌 것 같지만, 이걸로 마침표를 찍어서는 곤란합니다.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유기업과 향진기업 그리고 지자체나 조합이 소유한 공적 소유가 상당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 전일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규정력 속에서 중국은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중국의 경험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중국이 어디로 갈지는 인류사회 전체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환: 저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결합의 핵심문제는 지배구조(governance)의 문제라고 봅니다. 70년대 중반 자본주의가 동요할 때 사회주의도 동요했고, 그 결과 유고슬라비아 등 동구권에서 중앙계획을 분권화하고 시장경제를 결합하려는 노력이 있었지요.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사회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의 결합이라는 문제보다는 지배구조를 어떻게 잘 할거냐를 고민해야 할겁니다. 현재 중국 경제에서 사유화 부문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민영화되고 있으며, 금융만 국가소유로 남아 있지만,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사유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지금은 사회주의를 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은 시기입니다. 현대의 정보통신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사회주의 경제가 가졌던 비탄력성과 폐쇄성을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에 도달할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경제체제의 지배구조라는 관점에서 기술발전을 어떻게 활용할 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입니다. 

21c_04.jpg강정구: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고슬라비아의 경험을 고려해야 합니다. 유고가 시장사회주의 체제였고,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사회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노동자자주관리를 시도했고, 노동자평의회가 생산과 분배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다민족국가인 유고가 티토라는 영웅이 있을 때도 시장기제와 지역협동조합소유가 작동하면서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떨어졌고, 집단이기주의 문제가 대두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유고의 지배구조는 맑스가 구상한 민주적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고, 현재의 중국식과는 달랐습니다.  

현재 중국 경제의 성공은 미소대립 속에서 미국시장 개방이 발단이 되었고, 지금은 미국시장 없이도 자체발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방국가들은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가 다당제를 가져올 거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자본주의에 포위 당해 있는 점을 고려하여 체제운영의 측면, 즉 지배구조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환: 유고가 성공하지 못한 데는 35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중앙집권체제의 분권화가 민족문제와 겹치면서 실패한 겁니다. 중국은 민족문제에서 지배구조를 잘 해온 편입니다. 중국이 국내외 경제의 변화된 상황에 잘 대응해왔지만, 지금까지는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방어에 머무른 측면이 큽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큰 시장과 많은 인구의 강점을 어떻게 살려나가는지를 주목해야 할겁니다.  

권영길: 사회주의가 실험이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사회주의냐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문제는 그 건설 주체가 누구냐는 논의와 직결되며, 저는 여전히 노동자계급을 주체라고 보며, 조직노동자가 정치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석률: 저 역시 공감합니다. 인간성이 회복된 평등사회를 실현하는 도정에서 노동자운동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지요. 

21c_05.jpg김대환: 권대표가 말씀하신 평등사회에 공감합니다. 불평등이 구조화되면 사회적인 도덕이나 원칙을 잡기 어려워집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대등하고 평등할 때 예절과 예의와 원칙이 있게 됩니다. 이래야 정치 민주화, 남북 화해, 경제의 건전화가 가능해집니다. 우리 사회가 계급신분사회도 아닌데 사람들끼리 만나면 학연, 지연, 혈연부터 따지고 그 속에서 누가 높고 낮나를 따집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대등하고 평등한 사회로 가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이 있어야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사회적 도덕률과 개인의 세계관이 바뀌지 않은 채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 사회주의로 간다해도 독재억압체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민주적 제도, 상호존중, 공동체 의식 같은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김금수: 대안체제 이야기가 벌써 나왔네요. 원래는 한국 사회의 오늘을 진단하고 대안사회 문제를 논의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서 있는 한국 사회의 현상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리 사회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경제위기로 인해 IMF 관리체제가 들어서고 50년만의 정권교체도 경험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인 부문에 걸쳐 개혁을 한다고 사회 전체가 북적거렸는데요. 

홍세화: 여기저기서 지적한 바입니다만, 저는 정권교체의 의미를 극우세력의 헤게모니가 배제된 최초의 정권이라는 점에 두고 있습니다. 이승만에서 김영삼까지 이어지는 정권들은 극우세력이 헤게모니를 쥐었습니다. 극우 헤게모니를 배제한 결과 노동운동의 경우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합법화가 이뤄졌고, 국가보안법개폐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남북관계 역시 역대 어느 정권보다 진전됐습니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의 이면에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이라는 장기 전략 속에서 북한을 교두보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극우세력에 의해 자유민주주의의가 참칭되고 왜곡된 상황을 고려할 때, 진보세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성격을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민주당 내부와의 연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면과제는 극우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극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집단과의 싸움을 전선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껏 보수가 극우의 우산 아래 있으며 기득권을 누려왔는데, 이제는 이 둘을 분리시킬 과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21c_06.jpg박석률: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멉니다. 독재의 잔재가 청산 안된 채 사회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민중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을 비롯한 신생정당은 선거 참여와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기성정당은 당수가 공천권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유산입니다. 이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지난 총선에서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준 것은 한국정치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정치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권의 좁은 울타리를 어떻게 국민들에게 활짝 열어놓느냐가 정치개혁의 핵심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호흡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공고화이고 한국 정치발전의 요체입니다. 국민과 민중들의 투쟁과 참여의 결과 김영삼-김대중 정부가 세워진 건데 여전히 국민들은 정치에서 배제당해 있습니다. 

홍세화: 저는 여기서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결국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이란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는 계몽의식이 부족했습니다. 운동진영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폭압에 저항해온 운동은 독재체제가 와해되자 민주주의가 이뤄진 걸로 착각하고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무지와 몽매에 대한 ‘이성(理性)에 눈뜨기’라는 어려운 과정과 그에 걸맞은 사회투쟁을 거쳐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점에서 우리 사회의 눈뜨기 단계는 너무 낮습니다. 요즘 교회비리가 사회문제로 되고 있습니다만, 대형교회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이성에 눈뜨기 수준을 가늠케 하는 잣대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구약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강정구: 홍선생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식인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은 게 근대국가형성이 제대로 못돼서 그렇다고 분석하면서 서구의 경험을 거론합니다. 하지만, 서양은 안 그런데 한국은 그렇다는 식의 문제제기는 의미 없습니다. 미국을 보면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물론 유럽은 미국과 다릅니다만. 

제가 며칠 전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과 관련하여 참전군인들이 중심이 된 군사평론학회와 세미나를 했었습니다. 참전군인들이 군복을 입고 와서 빨갱이들 끌어내라고 난리를 피우는데 제가 거기서 본 게 정말 계몽 안된 무지몽매한 인간상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사회 진보의 일단락도 느꼈습니다. 옛날 같으면 참전군인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과 세미나를 어떻게 같이 했겠으며, 그 난리법석 속에서 우리가 소리지르며 반론을 제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앞에서 지적한 대로 극우 헤게모니가 약화된 결과이고 이성에 눈뜨기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징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김대환: 홍선생 말씀대로 정치는 국민이 만듭니다. 국민이 깨어있으면 정치권이 아무리 기득권을 주장해도 지금처럼 되지는 않을 겁니다. 우익세력이나 운동진영이나 ‘국민의 저력’을 자주 말하는데 우리 국민은 위대하지 않습니다. 지배세력과 기득권층이 우리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는데도 제대로 손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 혁명이 없었습니다. 시민혁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거지요. 동학농민전쟁 이야기도 하지만 제대로 끝장본 게 없었습니다. 민족해방도 스스로 쟁취한 게 아닙니다. 해방 후 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외세를 등에 업은 친일-친미파가 득세를 하도록 방조했습니다. 4.19혁명과 6월항쟁 등 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제대로 끝장을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틀과 판이 이런 속에서 짜여진 겁니다. 이성에 눈뜨기나 계몽을 말씀하셨는데 폭압에 시달리다보니 더더욱 이런 걸 챙길 여유나 훈련이 없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밥 먹으면서도 정치 이야기를 할 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정치의식은 상당히 후진적입니다. 

박석률: 저는 이 문제를 의식과 행위의 자기분열 결과로 봅니다. 군사독재와 급격한 경제발전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물리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철저히 짓밟았고, 그 결과 민중들은 몸을 사리게 되었고, 의식수준은 대단히 낮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을 지속적으로 당해온 결과 민중들이 실제 느끼는 불안과 불만은 대단하지요. 몸으로 느끼는 어려움으로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한 관심은 대단히 높지만, 그에 걸맞은 교육이나 훈련을 경험한 적이 없다보니 의식수준은 크게 계발되지 못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근대혁명이 없던 원인으로 저는 외세를 지목하고 싶습니다. 일제나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세가 없었다면 주체적인 근대화혁명이 가능했을 겁니다. 

권영길: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즉 그 출발과 완성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를 포함해서 민주정치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정치는 지배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행위이자 독재와 분단을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긍정성을 인정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개선, 극우세력의 일정한 배제 등의 성과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현 정부 역시 역사의 긴 안목에서 볼 때 기득권 세력의 연장선에 서 있습니다. 민중을 위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는 공동체, 즉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 정치가 없는데서 초래된다고 봅니다. 이게 없다면 말씀하신 ‘이성에 눈뜨기’도 힘듭니다. 

김금수: 이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통일 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등 이전 상황에 비춰볼 때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12월 초 민주노총 지도위원 자격으로 남북노동자대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북한 직업총동맹이 초청하는 형식을 띠었고, 한국노총 14명, 민주노총 17명, 직총에서 40명이 참가했습니다. 토론회를 마무리하는 총괄발언에서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발전과 역사발전의 선도세력 또는 원동력 역할을 해온 노동운동세력, 즉 조직된 노동자가 통일운동에 본격 나섰다는데 이번 회의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주체이자 자주적 단결세력인 노동계급간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계속된 통일운동의 성과이자 엄청난 희생을 치른 통일운동가들의 공적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이번 회담은 노동계급운동의 통일세력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진전이었는데, 남북 노동운동간의 교류가 남북관계의 변화와 맞물려 실질적으로 발전해 나갈 방도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박석률: 6.15 공동선언과 북미공동선언으로 한반도는 전쟁위협에서 평화로, 분단에서 통일로 성큼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정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내용의 남북기본합의서를 갖고 있고, 통일논의의 방향에서도 공통점은 서로 인정한다는 확인 위에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북이 얼마나 자주적으로 역량을 모으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권영길: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21세기 초반은 ‘위기의 세기’일 수 있습니다. 거대 열강으로 떠오르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 구도 속에서 우리 민족이 어떻게 나가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반도는 오 육십 년대의 비동맹진영의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이 속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때는 상호체제의 인정을 전제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통일 체제로 ‘자유민주주의’만을 고집하는데 이런 태도는 대결과 적대를 부추길 뿐입니다. 국가연합은 결국 통일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진정한 통일방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통일이냐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데, 이런 논의가 통일논의를 억제하고 그것의 활성화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2001년 상반기로 예정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답방이 꼭 이뤄지게 해야 합니다. 
(이 말을 마친 후 권 대표는 한국통신노조 파업집회에 참가해 달라는 긴급연락을 받고 명동성당으로 떠났다.)

강정구:  6.15 남북공동선언은 시기상 적절했습니다. 앞으로 2030년이 되면 중국의 GDP가 미국을 능가하게 됩니다. 이때가 되어 중화민족주의가 미국의 단일패권주의와 충돌하게 되면 ‘신냉전’이 생길 겁니다. 노르웨이의 평화학자인 갈퉁에 따르면, 앞으로 중국-러시아-인도가 동맹을 형성하면 세계적인 차원에서 신냉전체제가 형성될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통일을 기정사실화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시드니 올림픽 공동입장, 노벨평화상 수상 등은 통일기반 조성에 상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6.15 선언에서는 2항이 핵심인데, 여기서 국가연합과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연합은 통일이 아니지만, 보다 나은 단계를 설정할 수 있는 ‘사이좋은 이웃’ 수준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통일준비단계지요. 낮은 단계 연방제의 핵심은 중앙통일연방국가의 토대를 닦는 일입니다. 그 과도기로 한반도 안에 1개, 2개, 때때로 남북 양국가와 통일국가까지 3개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내정이나 치안은 따로 운영하더라도 관광부나 문화부는 연방정부 스타일로 가고, 민족경제부나 외교부도 한 정부 아래 둘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의 기반을 조성한다면, 2030년 신냉전이 도래하더라도 한반도 통일이라는 추세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고, 이것은 민족사적으로 엄청난 공헌이고 기여라고 봅니다. 낮은 단계 연방제 수준에서의 국가통일 합의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정부 수반은 2년씩 돌아가면서 맡는다든지 하면서 쉽게 해결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남북 양측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고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 입니다. 권 대표가 말씀하였듯 자유민주주의만을 고집하자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입니다. 연방제는 ‘적화통일’이라는 단세포적인 반응을 깨뜨려야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되돌릴 수 없도록 굳히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서해공단 등 남북공동투자는 남북을 상호의존 관계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끊을 수 없도록 해줄 겁니다. 경의선 복원, 민족경제 구조 등 실질적인 기반조성을 마련하는데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21c_07.jpg홍세화: 지난 한 해의 남북관계 개선은 ‘비정상 상태’에서 ‘정상 상태’로 가는 전기를 마련하고, 그 기반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극우냉전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텐데 이걸 무엇으로 극복할 지가 새해의 화두가 되어야 할겁니다. 정치, 경제, 사회 이 모든 문제들이 통일과 맞물려 있어요. ‘이성에 눈뜨기’라는 측면에서 86년 금강산댐 시절의 의식수준과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시기의 의식수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조그만 것이라도 진전이 있었다면 이것이 역행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김대환: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는 현실주의자가 되는 게 중요할 듯 합니다. 특히 6.15 남북공동선언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걸 막아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보다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합니다. DJ 정부 역시 즉흥적으로 대처하고 단기적인 성과만 홍보하는데 급급해서는 안됩니다. 정부 교류를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교류의 확대가 이뤄져야 합니다. 노동조합과 학술단체, 여성과 문인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교류가 커질 때 정치 영역에서의 교류도 순항할 수 있습니다. 

김금수: 이번 남북노동자대토론회에서 인상 깊었던 일 가운데 하나는 한국노총 이광남 지도위원의 발언입니다. 이 분이 ‘나처럼 이념무장 잘 된 사람이 없는데 핏줄 앞에서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지요. 한국노총 산하 산별연맹 위원장 한 분도 ‘민주노총의 통일운동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직총 위원장이 그러더군요. ‘만나면서 새로운 게 오간다’고 말입니다. ‘경제위기나 IMF 문제는 통일되면 다 해결되는데…’라고 말하더군요. 통일운동과 반자본투쟁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노동운동이 분단극복을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통일운동가들만의 통일운동이 되어서는 통일운동의 대중적인 확산을 이뤄내기 어렵습니다. 통일문제가 자기 생활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적인 문제를 찾아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남북간의 합의문이나 호소문은 일반 국민들과 조합원들의 교육과 토론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강정구: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면 국내 수구세력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견제를 당해 결국 권력기반이 약화되는 현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정권담당자로서의 DJ는 통일에 관한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한미군철수문제도 이런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6.15 남북공동선언’과 한국, 중국, 일본도 참여했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플러스 3’ 회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기정사실로 만들면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동아시아를 위한 동아시아’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이행하는 중요한 기회였다고 봅니다. 이미 지난 경제위기 때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아시아통화기금(AMF)이 논의됐지만, 미국과 IMF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새로운 동아시아 체제의 형성과 아시아경제협력공동체로의 발전이라는 구상 속에서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짚어볼 필요도 있습니다. 

김금수: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와 운동진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이미 앞에서 대안사회의 방향으로 ‘평등사회’, ‘생명의 존엄성’, ‘열린 노동정치’ 등을 얘기했습니다. 이것을 구체적인 수준으로 낮춰 말한다면 사람들의 공통된 욕구인 ‘굶주리지 않기’, ‘헐벗지 않기’, ‘안심하며 살기’, ‘억압에 저항하기’ 따위일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욕구가 역사진보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김대환: 지금 경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사회 전체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고, 개인과 조직 모두 내일이 없는 듯 살아갑니다. 방향성과 목표 상실의 폐해가 개인주의 및 이기주의와 맞물리면서 양보와 타협이 없는 상황으로 사회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청사진과 비전이 필요한 때입니다. 불안정과 불투명이 사라져야 사회적 도덕률(moral principle)이 생겨납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해요. 정치나 정부도 내일이 없어요. 관료들의 머리 속에 중장기적인 비전이 없어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땜질만 하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합니다. 

강정구: 요즘 역사의 진보를 의심하는 운동가가 많습니다. 특히 통일운동과 관련해서 황장엽의 월남으로 큰 충격을 받고 ‘북한인권론’, ‘북한타도론’을 주장하는 『시대정신』 그룹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역사를 단기적 성과로 평가하는 조급증에 걸린 듯 보입니다. 역사를 장기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으로 보면서 운동해야 합니다. 리영희 선생이 ‘역사를 전취해야 한다’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에는 세대간 전취도 들어 있습니다. 후대를 위해 선대에서 길 닦는 보람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운동가의 자세가 돼야 합니다. 

홍세화: 운동진영이 문화 영역의 ‘진지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앞서 지적했듯 조선일보로 대변되는 극우기득권세력과의 싸움이 중요합니다. 국민의 의식수준에 따라 한 사회의 진보성이 차이를 보입니다. 유럽이라고 모두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제3의 길’을 내세우는 영국과 독일에 비해 프랑스는 신자유주의에 보다 완강한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국민의 20%가 트로츠키파를 비롯하여 공산당과 녹색당 등 사회당의 좌익에 서 있는 정치세력에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기에 가능한 겁니다. 이게 사회당 정부의 ‘우향우’를 막고 있는 토대인 거지요. 

강정구: 이전부터 노동 농민 빈민 통일운동이 있어왔고, 최근 들어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운동이란 것이 대중은 돈만 대고 전문가가 일하는 경향이 커지고, 무엇보다 운동가들이 자기 ‘부문’말고 총체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새로운 세기의 운동가들은 자기 부문의 전문성은 물론 80년대에 가졌던 계급과 민족 등 총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김대환: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 모두 과두지배체제가 되고 있어요. 앞서 말했던 governance 문제를 운동진영 역시 갖고 있습니다. ‘해체’, ‘개별화’를 돌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운동 진영이 예전만큼 부지런하지 못합니다. 더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전문가, 상근활동가, 대중들이 ‘같이 하는 운동’으로 가야 합니다. 

김금수: 오늘 좌담에서 사회 진로와 운동 방향에 대해 좋은 지적과 충고가 있었습니다. 도전은 거세고 과제는 많은 데 운동진영의 현재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새 세기를 맞이하며 운동진영 스스로가 돌아봐야 할 대목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서 오늘 좌담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선 운동진영들간의 협력과 연대 속에서 전략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중장기적 마스터플랜’, ‘사회의 청사진과 비전’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 가운데 확고한 원칙, 구체적인 행동방침과 전술을 내와야 합니다. 둘째, 대중적 토대를 튼튼하게 형성해야 합니다. 20년대 공산주의 운동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운동의 허점은 기본적인 대중토대가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셋째, 운동 주체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내부뿐만 아니라 자본과 국가가 볼 때도 운동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넷째, 내부를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면서 사회를 개혁할 수는 없습니다. 일상활동이나 내부체계가 엉망입니다. 작은 데서부터 고쳐나가야 합니다. 다섯째, 잘못된 운동풍토를 척결해야 합니다. ‘종파주의’나 ‘변절’ 이런 게 다 잘못된 풍토에서 비롯됩니다.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이 없고, 상대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자기편 봐주기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새 세기에 사회 진로와 운동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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