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을 넘긴 CBS노조 파업

노동사회

넉달을 넘긴 CBS노조 파업

admin 0 3,730 2013.05.07 06:40

CBS노동조합의 전면 파업은 지난해 10월 5일 새벽 5시부터 시작되었다. 사측이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함에 따라 파업 참여 조합원은 월급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 파업은 넉 달째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 파업이 시작된 직접적인 계기는 2000년 임금 단체 협상의 결렬이었다. 지난해 6월 7일 시작된 임단협 교섭회의가 7차례의 전체 회의와 9차례의 실무 협상 끝에 결렬되었다. 그리고 9월 27일 노조원 91%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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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의 지배 구조가 가진 문제와 권호경 사장의 정치적 굴신, 무능 경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늘의 CBS 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사진은 권호경 C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언론노련 조합원들  ]

파업 장기화의 이유

단순히 임단협 결렬이라는 이유 때문에 파업을 하고 있는데도 넉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파업이 지속되고,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CBS의 지배 구조가 가진 문제와 권호경 현 사장의 정치적 굴신, 무능 경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늘의 CBS 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CBS는 개신교 각 교단이 함께 운영하는 재단법인이다. 각 교단에서 파송하는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사장을 선임하고, 경영을 감시한다. 그러나 대부분 목회자인 이사들은 CBS 이사직을 명예쯤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 때문에 경영자를 견제하는 자신의 책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장직은 이른바 '교회 정치'에 의해 주요 교단 목사들이 돌아가면서 차지하고,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는 최소한의 능력 검증 절차조차 없다. 이러다 보니 사장의 경영을 견제 감시할 수 있는 곳은 노동조합 밖에 없다. 권호경 사장 역시 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로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를 하다가 지난 94년 '교회 정치'에 의해 CBS 사장으로 옮겼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권호경 사장과 노동조합은 협조적 노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IMF가 닥치고 CBS 직원들이 정리해고와 임금 반납, 체불 등의 고통을 2년여 겪으면서 권 사장의 무능과 재단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지난 99년 4월 CBS 노동조합은 "재단 개혁"과 "권호경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33일 동안 전면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이 파업은 CBS노동조합이 벌인 첫 파업이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파업 초반부터 불법 시비에 휘말렸고 노조 집행부의 지도력이 의심받았으며, 회사측은 집요하게 노조 파괴 공작에 나섰다. 결국 이 파업은 CBS에서 재단 지배 구조와 경영자의 무능을 처음으로 공론화 했다는 것 이외에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뒤 새 노조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노사간의 갈등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것은 CBS의 구조적인 문제가 잠복되었다는 것일 뿐 언제든지 재연될 불씨를 안고 있었고, 결국 2000년에 들어서면서 문제는 다시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호경 사장의 파행

2000년에 들어서자마자 99년 파업 당시의 노사 합의 사항인 "권호경 사장 경영 평가"가 무산되었다. 사측이 경영 평가를 위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 무성의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사측이 무성의하게 나왔던 것은, 99년 경영 개선 계획을 대부분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어서 고의적으로 경영평가를 무산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이어서 총선을 석 달 가량 앞둔 1월 24일 권호경 사장이 새천년 민주당 김옥두 신임 사무총장에게 '축 총선 승리'라는 꼬리표를 달아 보낸 취임 축하 화분 사진이 한겨레신문에 보도되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노동조합은 2000년 1월 27일 "CBS 살리기 운동"의 깃발을 올렸다. 권호경 사장의 정치적 굴신 행위와 무능 경영으로 인해 무너져가고 있는 CBS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2월에서 3월에 걸쳐 권호경 사장이 94년과 96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99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충성 편지'를 입수해 공개했다. 권 사장은 이 편지에서 "(문민 정부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정부시책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방송 제작부서의 간부급) 진용을 개편했다"고 밝혔으며, 당시 기독교계에서 대북 구호 사업의 창구 단일화에 반대하던 움직임과는 정면으로 어긋나게 "국가 기관 요원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성 편지' 공개는 사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3월 11일 부장급 간부 9명이 사장 퇴진과 노조의 폭로 자제를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호소문에 동참한 사람들은 전체 부장급 간부의 80%인 28명으로 늘어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권호경 사장은 호소문을 발표한 서명 간부 12명에 대해 정직 2개월과 감봉 3개월의 징계 결정을 내렸고, 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에 대해서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징계를 받은 간부들을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국으로 발령 내는 보복 인사를 자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권호경 사장의 무능과 정치적 굴신 행위, 사내의 정당한 목소리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면서 노조원들에게 권 사장과 전면전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고정 관념을 깬 파업

CBS 노동조합의 파업이 넉 달 동안 흔들림 없이 지속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파업이 노조원 각자의 신앙과 정치적 결단으로 시작한 파업이고, 집행부는 그 결단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에서 파업 투쟁을 수행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집행부는 이번 파업이 '종교 권력'과의 싸움인 만큼 오래가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집회와 시위를 벌이지 않아도 조합원들이 흔들리지 않고, 지식 노동자인 기자와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이 집회와 시위를 계속할 경우 쉽게 지칠 것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집회와 시위 같은 세 과시용 행사를 줄였다. 대신 인터넷 홈페이지(www.nojo.pe.kr)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파업 진행 상황을 알리고, 조합원들의 의견이나 생각 역시 홈페이지에서 자유로이 개진하도록 하는 이른바 '재택(在宅) 파업'을 중심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 동시에 노조 집행부는 매일 출근해서 수시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회사와의 협상에 임했다.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집회와 시위를 줄이는 대신에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조합원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청취자들과 전파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만나는 기회도 가졌다. 

10월 26일에는 신촌의 한 카페를 빌려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이라는, 1천명이 넘는 청취자들과 조합원들이 직접 만나는 공연 겸 일일찻집을 열었다. 이 행사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이 청취자들의 CBS에 대한 많은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행사는 그 뒤 시민단체 대표와 청취자들로 구성된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발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복지 시설도 두 차례 방문해 사회 봉사활동도 벌였다. 

청취자들의 CBS 사랑

CBS 노사간 임금 단체 협상은 지난해 말 타결될 뻔했다. 노조의 임ㆍ단협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일부 수정하기로 노사 실무 대표가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권호경 사장은 실무 합의의 수용을 거부했다. 또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진행하면서 CBS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던 정태인 씨(경제 평론가)를 일방적으로 해임한 데 이어 노조 전임자 2명도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해고했다. 이때부터 청취자들과 시민단체들이 CBS 사태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애청자와 시민단체 관계자, 고정 출연자 등이 1월 18일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C사모)을 정식 결성하고, CBS 사태 해결과 권호경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에 돌입했다. 이들이 나선 것은 민주 시민과 한국 교회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 온 CBS가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는 시대에 꼭 필요하고, CBS가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는 권호경 사장의 퇴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C사모는 인터넷 홈페이지(www.cbslove.com)를 개설하고 권호경 사장 퇴진과 CBS 정상화를 촉구하는 청취자들의 서명을 받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도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김중배 언론개혁 시민연대 대표,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도정일 경희대 교수 등 주요 시민단체 대표들과 학자, 언론인, 정치인 등이 서명에 참여했다. 지역에서도 C사모 결성 움직임이 활발해 대구와 전주, 춘천 지역에서도 시민단체와 학자, 목회자들이 자체적으로 C사모를 결성했다. 현재 C사모 대표는 양길승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으며, 오창익 인권실천 시민연대 사무국장과 전 시사자키 진행자 정태인씨가 함께 간사를 맡고 있다. 

CBS 사태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지대해 문화일보와 중앙일보, 한겨레 등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다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와 『딴지일보』에서도 다루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권호경 사장은 지난 연말 이후 방송이 파행을 빚거나 말거나 이른바 "배째라"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파업으로 방송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권 사장이 양보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권 사장에게 CBS에 대한 사랑과 염려는 없고, 오로지 자기 자리를 보전해야 한다는 고집만 있기 때문이다. 권 사장은 넉 달동안 무노동 무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조합원들이 생활이 어려워져서 업무에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CBS 사태의 본질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모을 것이다. 그리고 CBS가 과거 어두웠던 독재 시대의 작은 등불이었던 것처럼 다시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언론으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