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뇌물사건

노동사회

노동위원회 뇌물사건

admin 0 3,907 2013.05.07 06:21

회사에서 사직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자 사소한 이유를 들어 회사는 노동자 안성기(가명)씨에게 감봉 3개월에 총액 15%라는 근로기준법에도 어긋나는 징계를 하였다. 노동자가 부당한 해고와 징계를 당했을 때 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기 위하여 노동위원회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성기씨는 그 동안 꼬박꼬박 낸 근로소득세가 헛되이 쓰이지는 않는구나 생각했다. 구제신청을 3개월 안에 하지 않으면 비용이 드는 일반법원에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 안성기씨는 서둘러 회사의 소재지가 있는 곳인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구제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돈도 들지 않고 2개월 정도만 지나면 심판회의를 열어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하니 참 신속하고 좋구나 생각했다.

지노위에 구제신청서를 제출했는데

구제신청서를 제출하자 담당심사관이 지정되었는데,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친숙한 이름을 가진 여성심사관이었다. 담당심사관이 지정되자 심사관은 신청인인 안성기씨와 회사측 사람을 불러서 조사를 하고 다른 증거자료도 제출토록 하였다. 회사는 돈이 많아서인지 이름 있는 노무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였다. 제출한 답변서를 받아보니 그럴듯한 말들로 안성기씨를 감봉 3개월 징계를 받아도 마땅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안씨는 회사측의 답변서를 반박하는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증거들을 나름대로 모아 추가로 제출하였다. 기대와 달리 담당심사관이 불친절하여 다른 심사관에게 다음 절차를 물어 보았다. 증거조사가 끝나면 심사관이 조사한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심문부의안'이라는 것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공익위원 3명으로 심판위원회가 구성되며 심판기일이 잡히면 기록을 공익위원들과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에게 5일전에 도착하도록 보낸다고 한다.

얼마 있으니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심문회의 기일이 잡혔으니 나오라는 통지가 왔다. 심문회의가 있는 당일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사용자위원까지 회사측을 나무라는 태도다. 또 안씨에게 내려진 감봉총액 15%는 1회 감봉 총액을 10%로 제한한다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사항이라는 점도 확인되었는데 역시 현명한 공익위원들이 법을 잘 아시는 것 같았고 결과가 좋게 나올 것 같았다. 심문회의가 끝나자 담당심사관은 집에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한달 후쯤 결과를 통지한다고 하였다.

"식대로 30만원 줬더라고"

결과가 궁금해서 담당심사관에게 전화를 하니 심사관이 안씨의 목소리인 줄 모르는 듯 '신청인측, 피신청인측'하고 물어 얼떨결에 '예'라고 답하였다. 조금 듣다 보니 안씨를 회사측으로 오인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밝힐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사가 고마웠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여 뭔가 있구나 생각하고 계속 말을 시키게 되었다. 

"노무사가 식대 하라고 30만원 줬더라고. 내가 우리 심판과장님도 만나라고 했어. 만났다고 그르더라고 아마 얼마 주었겠지 뭐."
'뭐 회사측 노무사로부터 30만원을 받았다고.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심판과장까지' 안씨는 순간 너무나 놀랐다. 
"심판과장님하고 내가 공익위원들 배정하는 것을 신경 좀 썼어요. 특별히 생각해서 금요일에 배정한 거야."
'그래 돈 받고 공익위원배정까지도 심사관과 심판과장이 개입했구나.' 안씨는 심사관이나 심판과장이 어떤 사건을 담당할 공익위원 배정까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민주노총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사업담당자로부터 듣고 알았다. 
"판정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이 '이 사건은 근로자 손을 들어줘야 될 것 같은데 심사관 생각은 어떠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나하고 심판과장님하고 잘 말해주었어. 안 그랬으면 이 사건 못이기는 게임이야 암 어림도 없지."
'이것은 판정회의에 들어가 판정결과가 회사측에 유리하게 나오도록 힘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공익위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기록 한 번 제대로 보지 않고 와서 심문회의에 참석하고 심사관 생각에 휘둘린단 말인가.' 
"중앙노동위원회에 가면 이기기 어려우니까 안씨를 불러서 잘 설득해 보라고. 나도 이거 판정문 쓰기가 힘들어요. 워낙 이게 감봉할 건이 못돼."

심사관 생각도 안씨에 대한 회사측의 감봉징계가 부당하다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판정문을 쓰려니 고민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런 판정문이 중앙노동위원회까지 가게 되면 비리가 들통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안씨는 중앙노동위원회도 이러한 비리관행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중노위에 가서는 어느 정도 금액으로 인사를 하면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아 중노위에 가서 인사하는 거! 벌써 뭐 그런 걱정까지 하나. 가면 뭐 여기 하는 정도로 인사하면 되요. 그거 중요하지 중요해."
그나마 조금 공정하다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실제 있다는 내용이다. 안씨는 전화를 끊고 한참동안 정신이 없었다.

헌법 33조와 근로기준법

'배울 만큼 배우고 과장씩이나 되는 나도 이렇게 당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하는 생각에 이 일을 그냥 묻어두어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다시 전화를 들어 민주노총에 이 일을 알렸다.

그런데 회사측에서 눈치를 챈 것일까. 아니면 심사관 말대로 중노위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던 것일까. 회사는 판정에 이기고도 느닷없이 감봉징계를 사면한다는 통보를 보내왔고 깎인 월급도 되돌려 주었다. 

그러나 안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판정문 송달 받은 날로부터 10일 안에)을 하였다. 징계로 인하여 승진에서 한 번 누락되었고 인사기록에 징계사실이 여전히 남아 있어 불이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미 징계자체가 없어져 재심신청이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중앙노동위원회는 지방노동위원회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 한 3개월 뒤면 판정이 내려진다). 

안씨는 혼자 구제신청서를 쓰고 증거자료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노동법 책을 보게 되었다. 그 노동법 교과서 한 쪽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하여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권이 단순히 선언으로 그치지 않도록 다시 헌법 제10조에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여 국가로 하여금 기본권의 보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근로기준법은 제30조 제1항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기타 처벌을 하지 못한다"고 하고 만일 부당한 해고나 기타 불이익한 처분을 당했을 때 노동자는 노동위원회라는 기관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 신속한 구제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공정성·전문성·신속성을 갖추어야 하며 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후기

지난해 12월 초 한 일간지에 공개되었던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한 심사관이 회사측 노무사로부터 뇌물을 받고(노무사가 직접 준 것인지, 단순히 전달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공익위원 배정, 판정회의 개입을 한 사건이다. 이같은 심사관들의 비리는 그간 소문으로만 떠돌았으나 이 사건을 통해 비로소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위원회 제도개선 투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사건 배정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사건 배정시 추첨을 통해 하는 방안이 시범 실시되고 있으며, 판정회의에 심사관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독립성 확보 문제, 공익위원 구성이 사용자 편향적인 인사들로 되어 있는 점, 구제명령의 실효성 확보, 조정전치주의 문제, 심사관들의 자질 문제 등 많은 것들이 여전히 미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하여 검찰에 고발하였으나 담당검사는 만일 심사관이 징계를 받았다면 30만원이라는 액수로 볼 때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담당 심사관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3개월 후면 다시 어느 자리에선가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참 관대한 나라다. 

오늘 한 노동조합 위원장으로부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는데 담당심사관이 노동자가 제출한 증거서류 중 일부를 누락하고 복사해 공익위원들에게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심사관이 돈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솜방망이 같은 처벌과 징계가 계속된다면 이런 일들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건 범죄를 방조하는 행위인데…….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