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간부가 부르는 여린 삶과 사랑의 노래

노동사회

노동조합간부가 부르는 여린 삶과 사랑의 노래

admin 0 3,181 2013.05.12 03:47

우와! 노조간부가 음반을 냈단다. 요즘처럼 삶들이 팍팍한 때, 게다가 음반시장도 불황이고 인터넷에서 듣고 싶은 노래는 모두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세상에, 누굴까? 왜 음반을 냈을까? 궁금증이 들긴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그냥 ‘집회나 조합원 교육할 때 필요해서 투쟁가들 모아서 대충 만든 거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해서 들어보니 고정관념하고 참 달랐다. 일단 앨범 표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syim_01_0.jpg우와! 노조간부가 노래앨범을 냈다니

‘꽃은 어디에서 피어나 어디로 날아가는가...’

붉은 색 꽃무늬 벽지 같은 앨범재킷 가운데, 조그맣게 혼자 놓여있는 문장이다. ‘이건 어쩌면 민중가요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손톱이 까져라 CD비닐을 힘겹게 벗겨내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왠지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귀다. 앨범에 들어있는 노래들도 거기에 어울리게 서정적이다. 여리고 섬세한 목소리, 정겹고 차분한 하모니카와 기타 연주. 지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쓸쓸하면서도 그리운 옛 추억들이 떠오르게 하는 노래들이다. 이 음반의 모든 노래를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한 주인공이 바로 보건의료노조 김병수 문화국장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남산 중턱에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 중심지이건만 보건의료노조 건물 근처에서는 숨쉬기가 한결 나은 것 같았다.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한길가 하고도 공기가 전혀 달랐다. 어쨌거나 김병수 국장을 만나러 가는 길, 익숙지 않은 오르막길을 걷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겨울에는 여길 어떻게 다닐까? 여기 사람들은 다들 날씬하겠네’ 그리고, ‘그런 서정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야리야리한 꽃미남이겠지…’

음, 그것 역시 고정관념이었다. 가을이 깊은 어느 흐린 날 보건의료노조 건물에서 만난 김병수 국장은 건장한 체격의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김병수 국장은 한양대병원에 병원행정직으로 입사를 했다고 한다. 그가 입사할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병원행정직은 ‘구사대’로 활동을 할 정도로 노조활동과는 무관한 부서였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새파랗게 젊은 게 혼자 노조활동을 한다고 다녔으니, 그가 겪은 ‘탄압’은 나중에 교육사례로 써먹어도 될 정도였단다. 

“민중가요, 투쟁 속이 아니더라도 감동적입니다”

“사람냄새 나는 노래,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부담 없이 듣고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듣는 사람들이야 집회 때 잠깐이니까 상관없지만 노래부르러 다니는 사람 입장에서는 투쟁가만 계속 부르면 지치거든요. 항상 긴장감만 갖고 살수는 없는 거잖아요. 하지만 노동조합간부가 ‘사랑노래’를 해도 되는 건지, 지금 정세가 어려운데 이렇게 감성적인 노래들을 세상에 내놔도 되는 건지… 그런 고민들이 없었던 거는 아니죠. 그래도 주변에서 제 얘기 들어주시고, 앨범 만드는 거 도와주신 고마운 분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라고 힘을 실어주셔서 어렵게나마 음반을 내게 됐습니다. 저는 생긴 거는 이래도 사실 많이 여린 놈이거든요. 앞으로도 음반을 내게 된다면 제 감수성과 삶에 솔직한 노래들을 담고 싶어요. 물론 투쟁가라고 거기에서 빠지는 건 아니죠.”

묘한 떨림이 있는 목소리로 노래이야기를 하는 김병수 국장은 까무잡잡한 아저씨가 아니라, 심야 라디오 방송을 듣고 시를 끄적이는 소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섬세한 흥분은 곧 현실에서 수그러들고 있는 민중문화와 노동문화, 민중가요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파업할 때 팔뚝질하면서 신나게 함께 불렀던 노래들의 감동, 그리고 투쟁할 때 언제나 달려와서 우리에게 노래로서 힘이 돼주었던 그 사람들을 정말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집회나 파업에서 들을 때는 아, 좋다 했다가도, 막상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 민중가수들의 음반을 사거나 노래를 다시 찾아듣는 사람들은 정말 몇 안되거든요. 그렇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우리 노동자들의 문화 재생산의 통로가 막히고 있어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노래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음반도 잘 안 사고 열심히 노래부르고 공연해도 빈손으로 돌려보낼 때도 있고, 이 친구들이 착해서 돈 달란 소리도 못하거든요.

직접 만나보면 참 힘들게 살아요. 그래도 삶을 진지하게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버티는 건데… 그리고 민중가수들 음반을 사서 들어보면 단지 뜨거운 투쟁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살갑게 다가올 수 있는 노동자들의 여리고 섬세한 감수성을 노래하는 것들도 많거든요. 그런 노래들도 많이 듣고 불렀으면 좋겠어요.”

책임 있는 ‘문화활동가’로 살고 싶어

그는 지금 ‘현장의 작은 음악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6월 보건의료노조가 파업할 당시, 어찌어찌하다가 행사를 매꿔야 할 일이 생겨서 파업현장에서 노래 좋아하는 사람 몇 명과 함께 그냥 기타를 매고 ‘작은 음악회’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게 반응도 좋고 하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참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들을 노래를 통해 모두가 공유하는 작은 공간, 우리 삶이 들어있는 서정적인 노래들을 함께 부르는 맥주한잔과 촛불의 낭만이 살아있는 공간이 바로 김병수 국장이 노리는 민중문화계의 ‘틈새시장’이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참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똑같이 24시간일 텐데,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으니 아무래도 놓치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아빠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라는 큰딸에 이어 둘째 딸의 “아빠 집은 어디야?”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예쁜 딸들의 ‘충격발언’의 아픔도 있었다고. 그런 딸들이 이제는 다 커서 큰딸은 아빠가 함께 노래부를 친구들이 필요하다니까, 직접 ‘오디션’까지 보면서 자기 반 친구들 중에서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등 음반작업을 도와주었다며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이제 현장으로 돌아가 책임 있는 ‘문화활동가’로 살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하던 거리 공연도 다시 시작하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본조에서 조직생활이 길어지면서 많이 놓쳤다고 했다. 그런데 문화 분야는 후임자를 찾기가 참 힘들단다. 문화패들이 후배를 양성해 놓으면 다른 부서에서 다 데려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주어진 대로 관성에 이끌려 살아가기 마련인데 김병수 국장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열정과 끼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무리던 중, 김병수 국장이 “제가 노래하면 틀려도 틀렸는지를 몰라요. 제 노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라며 멋쩍게 웃는다. 돌아오는 길 노래할 때 어디가 틀렸는지 지적해주기 위해서라도 그의 노래를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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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