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해, 기업급식은 노동조합이

노동사회

쌀의 해, 기업급식은 노동조합이

admin 0 2,448 2013.05.12 03:46

2004년은 '쌀의 해'이다. '쌀의 해'에도 우리 농업과 우리 쌀의 운명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새해에도 시장 개방의 압력에 우리 농업은 질식할 지경에 놓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쌀의 해'에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나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교급식은 민주노동당

작년부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 광역의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이 운동은 아이들이 날마다 접하는 학교 급식에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우리 농·수·축산물의 소비 촉진을 도모해 농·어촌의 안정적인 소득 확보를 꾀하고자 제안된 것이다.

사실 이 운동은 학교급식의 절박한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되었다. 학교급식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급식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질의 외국산 농산물이나, 폐기 처분돼야 할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원료를 사용하다가 빈번하게 적발돼 왔다. 패스트푸드, 가공 식품 등으로 어린이 비만, 아토피성 피부병 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급식까지 저질의 외국산 농산물을 사용한다면 아이들 건강이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매년 발생하는 학교 식중독 사고들은 학교급식의 위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이 "학교급식, 우리 아이 못 먹이겠다"며 나섰고, 민주노동당이 '조례 제정 운동'이라는 유용한 무기를 제시하고 함께 싸운 것이다.

싸움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위탁급식에서 우리 먹을거리 위주의 직영급식으로 변경해 학교급식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벌써부터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아이들의 식습관이 놀랄 만큼 교정됐다. 항상 패스트푸드, 가공식품을 찾던 아이들이 우리 먹을거리에 눈을 돌리게 됐다. 아토피성 피부병을 앓던 아이들이 깨끗이 치유되기도 했다. 먹을거리가 아이들의 생활 습관과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기업급식은 노동조합이

여기서 잠시 나와 가족들 그리고 동료들이 먹는 먹을거리에 대해서도 돌아보자. 아마 여전히 주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질 낮은 위탁급식에 한 끼를 의존하는 아이들, 믿을 수 없는 농수산물을 비싸게 사 먹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될 것이다. 먹을거리는 아이들의 건강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몸이 가장 큰 재산인 노동자야말로 건강을 위해서 한끼를 먹더라도 먹을거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경영진들이 일부러 몸에 좋은 것들만 찾아서 먹을 때, 우리의 먹을거리는 점점 더 형편없어지고 있다.

2004년 '쌀의 해'에는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나서서 우리들의 먹을거리부터 바꿔보자. 우선 지역 사회의 학부모 단체 등과 연대해 민주노동당과 지역 주민이 전개하는 학교급식 조례 제정 운동에 적극 동참하자. 더 나아가 학교급식뿐만 아니라 기업급식에도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해 보자. 노동조합이 농촌과 직접 연계해 질 좋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흐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된다면 노동운동은 농민운동과 연대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노동자들은 경영진들을 압박해 기업급식에서 질 좋은 농산물로 만든 먹을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고, 농민들은 안정적인 소득 확보를 통해 고사 직전의 농업을 살리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노동조합이 지역 농촌과 질 좋은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이것은 신뢰할 수 없는 농산물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먹었던 노동자들의 건강과 가계에도 크게 도움될 수 있다.

노동조합과 지역 농촌의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조합 차원에서 직접 농촌을 방문해 자신들이 먹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봉사 활동이 정례화된다면, 그 기여분만큼을 농산물로 받는 상황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부자들만 주말 농장에 가는 게 아니다. 우리도 주말 농장에 갈 수 있다.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이 이런 운동을 전개하면, 온갖 훼방꾼들이 등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움직임은 시장개방을 가속화하고 지역 차원의 움직임을 무력화하려는 세계화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더 이상 정부나 기업의 결정에 맡기지 않겠다는 노동자들의 선언과, 내가 직접 생산한 소중한 농산물의 소비자와 직접 만나겠다는 농민들의 선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이름 값하는 '쌀의 해'가 되길

학교급식 조례 제정 운동을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문제나, 기업급식에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데는 우선 민주노총이나 산하 연맹 등 상급단체의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급식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농산물 직거래 운동 등이 보완된다면 기업급식이 이루어지지 않는 노동조합에서도 충분히 좋은 농산물을 싸게 공급받는 일도 가능할 수 있다.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올해 학교급식 조례 제정 운동을 지원하고, 기업급식에도 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운동 등을 확실히 전개해 2004년이 '쌀의 해' 이름 값을 톡톡히 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