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헌법의 뿌리를 흔드는 노동법 개악

노동사회

이탈리아 헌법의 뿌리를 흔드는 노동법 개악

admin 0 3,509 2013.05.12 03:43

2003년 12월6일, 로마는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로 무척이나 혼잡스러웠다. 여느 때의 로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베를루스꼬니의 연금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집회가 이탈리아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CGIL을 비롯한 3대 노총이 주최한 이날의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약 100만명이 참가했다. 흡사 지난 1994년 연금법 개정을 둘러싸고 베를루스꼬니와 노동자들이 대치했던 국면이 재현되는 듯한 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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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베를루스꼬니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시위 ]

백만명이 참석한 집회

베를루스꼬니의 재등장 이후 계속되는 악법 제정은 노동자들을 비롯한 전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생존권 차원에서 대정부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국적인 반정부 투쟁의 불을 지핀 사안은 크게 두 가지이다. 2002년 노동계와 전국민을 경악시켰던 노동법 제18조의 개악과 2003년 9월 슬그머니 입법 예고된 비아지(Biagi) 법안에 따라 노동부 장관 마로니(Maroni)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연금 개정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일련의 시위들은 산발적이고 산만하다. 그렇지만 이는 지속적으로 조직되고 있으며, 노동자 단체들뿐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단체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게다가 좌익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도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1994년 베를루스꼬니가 실각한 최대 원인은 무리한 연금법 개정시도였다. 그러한 점들 때문에 최근의 반정부 시위는 단순히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항의 표시에만 국한된다고 볼 수 없다. 또 다시 정권퇴진 운동으로 번질 수도 있는 것이다.

2001년 베를루스꼬니가 다시 등장한 후, 신자유주가 모든 국가정책의 기조가 되었다. 이는 기업경영의 마인드를 적용하여 비효율적인 국가 구조를 바꾸고 21세기 세계화 전략을 추구하겠다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존 산업자본가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베를루스꼬니 자신으로 대표되는 신흥 자본가들의 경제적 영향력과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 베를루스꼬니 정부는 가장 커다란 걸림돌인 노동자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부 주도의 노동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극우정당 출신 장관의 노동법 개악

jbkim_02_5.jpg결국 국가와 국민의 이익보다는 베를루스꼬니 자신의 기업이익 증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가를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베를루스꼬니 정부의 가장 커다란 목표이자 전반적 기조라 볼 수 있다. 베를루스꼬니 정부는 이를 위해 ‘세계화’라는 모토를 등장시켜 국민들에게 세계화야말로 이탈리아가 21세기에 추구해야할 지향점이라고 홍보하였다. 그리고 미국 부시정권의 등장이라는 국제정치상의 변화는 이러한 베를루스꼬니의 의도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부처 수를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1989년에는 21개 부처였던 것이 2000년에는 19개 부처로 축소되었고, 베를루스꼬니 정부가 등장한 이후에는 16개의 부처로 재조정되었다. 표면상으로 보면 정부 부처가 효율적으로 통폐합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베를루스꼬니 정부의 16개 부처 공무원 수를 이전 21개 부처 시절과 비교해 보면 이와 같은 모습은 확연히 드러난다. 업무와 권한 영역은 재조정되었지만, 1989년 296,554명에서 2003년에는 271,000명으로 공무원 수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베를루스꼬니가 의미하는 정부의 효율성은 기존 세력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주면서, 자기 기업들에게 경제적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베를루스꼬니가 집권한 것은 달레마(D'Alema) 정부 이후 경제적 실정 등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경제정책의 틀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리고 베를루스꼬니는 점증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교묘하게 국내의 경제적 불만과 연계시켜서 정책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이렇게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베를루스꼬니 정부는 합리화와 효율성이라는 미명으로 이탈리아 노동정책의 기반을 송두리째 전환시키려 하고 있다.

베를루스꼬니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를 주도하고 추진하고 있는 기관은 노동 및 사회정책 부(Ministero del Lavoro e delle Politiche Sociale)이고 그 책임자는 마로니라는 인물이다. 그는 극우 정당인 북부동맹의 당수 움베르또 보시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성향이 매우 공격적이고 친기업 지향 기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위험스럽게도 인종차별적 성향까지 갖고 있다. 이러한 인물이 2001년 베를루스꼬니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노동 및 사회정책 부의 장관을 맡아서 반정부시위의 원인되었던 노동법 제 18조 개정과 연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마로니가 주도하고 있는 노동법 제 18조의 개정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이를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유로운 해고를 통해 노조활동을 무력화시키고, 기업들에게는 임시직이나 계약직을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는 합법적 토대를 제공해서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가장 대표적인 개악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지만 지난 2003년 6월 국민투표까지 거친 상태이다.

그리고 2003년 10월24일 발효된 연금법 개정안은 연금 정책의 수정을 통한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법의 초안을 작성한 비아지는 노동부 노동정책 심의관이자 베를루스꼬니 정부의 노동정책 입안가였다. 그는 2002년 10월8일에 자신의 저택 앞에서 피살되었는데, 붉은 여단(Brigate Rosso)이 용의자로 지목된 그의 피살사건은 베를루스꼬니 정부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현재는 비아지 법안의 수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상원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항의가 노조의 시위와 파업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베를루스꼬니는  이와 같은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나 합의를 생략한 채 진행시키고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베를루스꼬니가 노동자들과 국민적 이해가 걸린 이와 같은 법안들 사이에 자신이 입안한 여러 악법들을 집어넣어 어물쩍 통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단체도 우려하는 노동정책

jbkim_03_6.jpg전국산업가연합(Confindustria)은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설립된 기업가들의 친목단체였다. 1965년에는 “Il Sole”와 “24 Ore”라는 신문들을 합병하여 협회 소유 경제신문까지 갖게 됨으로써 명실상부 이탈리아 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되었다. 현재는 131,000여개의 기업들이 가입하여 가장 강력하게 산업자본가의 입장을 대표하며 노사정 협의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철강, 화학, 섬유 등의 주요 산업체 협회들뿐만이 아니라 제3차 산업까지 하부조직에 편입시킴으로써 이탈리아 경제활동의 중요한 축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산업가연합은 파시즘 시기에는 정권에 협력하는 어용단체이기도 했으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탈리아가 산업구조를 중소기업 위주로 재편하는데 성공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단체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과정에서 집권 여당이었던 기민당 정권과 유착하여 구조적인 부정부패를 키웠고 이는 마니 뿔리떼(깨끗한 손)라는 부정부패 정치자금 수사를 거치면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마니 뿔리떼는 전국산업가연합이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내부적 자성에 의한 개혁이 아니라 대세에 따른 변화였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전국산업가연합은 그 구성원과 조직이 약간 과거와 다르다. 전통적으로 산업자본가들의 입장을 대표하던 예전과는 달리, 마니 뿔리떼 이후부터 기존 산업자본가 그룹, 신흥자본가 그룹, 그리고 중소기업 그룹이 세를 나누어 갖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산업자본가들과 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흥 자본가들과의 관계정립, EC 통합, 변화하는 세계정세 등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국산업가연합은 2000년에 중소기업 경영자 출신인 안토니오 다마또(Antonio D'Amato)를 회장으로 맞이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베를루스꼬니 정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사안에 따른 찬반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등 이전의 모습과는 변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베를루스꼬니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전국산업가연합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는 베를루스꼬니의 노동정책의 수혜자는 신흥 산업자본가나 제3차 산업계에 국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실제 다마또 회장은 중립적 입장에서 베를루스꼬니의 정책에 선별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대결국면이 주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것과 다르게 현재는 정부와 노동자가 대결국면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국산업가연합이 노동정책 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국산업가연합의 행보와 입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는 노동자들의 투쟁

베를루스꼬니 재집권 이후 이탈리아 노동계는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투쟁에 들어갔다. 초기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어느 정도 유지되던 관계가 노동법 개정과 맞물리면서 현재 대결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를루스꼬니 정부의 개악은 노동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를루스꼬니 자신의 기업과 정치적 생명을 위한 여러 악법들이 줄지어 입안되고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치라미(Cirami) 법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베를루스꼬니는 자신이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들에 대한 추궁을 무마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 법안의 골자는 기소자가 판사나 재판부가 적대적이라고 판단되면 재판 관할지나 재판부의 변경까지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를루스꼬니는 이러한 점을 악용해 몬다도리 사건이나 핀인베스트 사건 등에서 공소시효 만료로 무혐의 처리되었다. 2002년에는 국가 5대 고위직(수상, 대통령, 상원의장, 하원의장, 헌법재판소 의장)에 대하여 면책특권을 주는 법안을 제안하여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또한 가장 최근에는 언론사와 방송사의 소유지분(이전에는 20%의 개인소유지분 제한)과 광고 수주비율 등의 제한비율을 폐지시켜 독점을 강화할 수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을 제정하였다. 이는 재력을 이용하여 공영방송까지 자신의 수중에 넣겠다는 베를루스꼬니의 의도가 담긴 법안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베를루스꼬니 정부의 노동정책이 단순히 노동자 개개인들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고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 투쟁은 전국민적인 정권퇴진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투쟁에는 ‘아들의 방’으로 2001년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진 난니 모레띠(Nanni Moretti) 감독과 마니뿔리떼의 수장이었던 보렐리(Borelli) 판사, 마니뿔리떼 전문기자 뜨라발리오(Travaglio) 등이 이끄는 ‘지로똔디(Girotondi)’나 마니 뿔리떼 정신을 계승한 ‘시민사회(Societ? Civile)’ 등의 단체들이 참여하여 전국민적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주요 노조들은 베를루스꼬니 정부의 반노동자이고 반민주적 악법들의 저지하기 위해 EU 차원에서 국제적 연대를 조직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위해서 조직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현재의 정부와 노동자 대결국면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아직까지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노동악법들은 94년의 것보다 후퇴한 것이고,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역사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악법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1994년보다 더 많은 재력과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베를루스꼬니에게 대항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벌써 노동자들의 투쟁과 집회가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빈도나 효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우려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탈리아 헌법 제1조는 ‘이탈리아는 노동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조항이 표현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노동 기초 정신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현재 상황이 노동 없는 베를루스꼬니 왕국으로 이어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