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노동자 국제연대운동의 진전을 위하여

노동사회

새로운 노동자 국제연대운동의 진전을 위하여

admin 0 3,515 2013.05.12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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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지난 10월22일 민주노총 하반기 국제연대포럼에 제출한 발표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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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강화되고 구조화되면서, 국제주의와 국제연대는 이제 더 이상 머리 속에 맴도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필수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현실적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국제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신자유주의 공세의 핵심 기구들에 맞선 투쟁, 이라크 침략 전쟁을 계기로 한 반제반전투쟁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운동진영의 실천은 노동자 국제연대운동의 촉진과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노총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한일FTA 저지를 위한 도쿄 원정투쟁을 한국 민중·사회운동진영을 비롯해 일본의 진보적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진영이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한·아세안 FTA 등에 대한 국제주의적 대응을 위한 모색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위와 같은 흐름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민주노총 국제연대 사업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를 둘러싼 국제노동운동의 환경과 조건을 살펴보고 주요한 과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필자의 단상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주류 국제노동조직의 정책에 대한 비판 

국제노동운동의 주류적 흐름을 대변하고 있는 국제자유노련(ICFTU)은 북반구 노조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남반구 노동자 대다수는 노동조건과 생활조건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 반대를 주장하고 있으나, ICFTU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노동조합의 권리, 인권, 환경권 존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그치고 있다. 

또한 ICFTU는 “WTO 규칙에 노동권 조항이 편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고용과 임금에 있어서 ‘자기 방어’에 급급한 북반구 노동자들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이다. 왜냐하면, 북반구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조건 및 삶의 질 악화는 “그들보다 아래에 있는 다른 국가들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하여 자국의 산업을 유지하려는- 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의 금융적·투기적 축적 체제로의 전환에 의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금융시장에서의 투기에 집중되고 있는 “고용 없는 성장 체제”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WTO 체제에서 “노동기준과 환경기준의 향상을 편입시켜 자국 생산품을 보호하거나, 적어도 개발도상국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제3세계와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도모”하더라도, 위와 같은 “고용 없는 성장”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다면, 북반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고용·임금 조건은 개선되기 힘든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건 개선, 임금 향상의 주된 요인은 ‘국제적 차원의 보호(국제협정과 국제무역체제에 편입된 노동권 보호 조항)’라기 보다는, 한국, 브라질, 남아공 등의 경우처럼, 산업 활동이 재배치된 특정 국가에서 태동한 강력하고도 전투적인 노동계급의 투쟁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논의되다 중단된 다자간투자협정(MAI)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다. OECD-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TUAC)의 태도는 국제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다자간투자협정은 초국적자본의 소유권을 절대화시키는 반면, 노동권, 환경권, 인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자본의 금융투기적 축적 경향을 촉진시키고, 경제주권을 초국적자본의 이해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OECD-노동조합자문위원회는 광범위한 투자 자유화를 동의해주고 고작해야, 노동 및 환경권 존중이라는 문구를 다자간투자협정 전문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ICFTU를 위시한 '주류적 국제노동조직'은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 대안적인 세계질서의 모색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존 세계질서 내에서 북반구 노동자들만의 특별한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활동해왔다. 즉 “자국이 자본유치를 위한 상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자국 정부를 지지”한 북반구 조직노동자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책과 실천이었다. 그리고 ICFTU/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 등 주류 국제노동조직이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투쟁과 동원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북반구 정부, 서방8개국정상회담(G8), 그리고 WTO,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과의 ‘협상과 로비’를 주요 전술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비판의 지점이다.  

ICFTU를 위시한 국제노동조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효과가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에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이는 남북 노동자들 간에 불평등과 분할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은 남북 불평등과 분할, 남북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 악화, 자본의 금융투기 확장과 고용 파괴를 동반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반구 노동자들에 비해 근본적으로 부와 자원 분배에 있어서 약자인 남반구 노동자들에 대한 ‘신자유주의 과정’ 자체를 문제삼지 않으면서, 단결권과 단체협상권 등 핵심노동기준의 보장만을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ICFTU와 북반구 노동자들은 왜 남반구 노동조합의 의제에는 신자유주의 반대, 실업과 빈곤 문제의 해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 모색, 고용과 소득 창출 등이 필연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국제자유노련-세계노동총연맹 통합과정에 대한 비판적 고찰

inter_01.jpg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국제자유노련(ICFTU)-세계노동총연맹(WCL) 통합은 북반구 노조 편향적인 국제노동조직의 자기반성과 개혁이 동반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ICFTU-WCL 통합 과정이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라는 측면에서 고무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제기한 북반구 노조 편향적인 역사적 실천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편향(북반구 노동자들의 ‘자기 방어’적 실천을 강화하고, 남반구/북반구 노동자들간의 위계와 분할을 더욱 심화)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현재 세계노동자계급의 단결은 조직형식적인 통합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남북 노동자들간의 진정한 단결이 급선무이다. 또한 ICFTU의 내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현재의 통합 과정에 대한 공개적이고 투명한 토론 과정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비대해진 통합세계노총의 관료주의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항상적으로 요구되지만, 이는 명백한 비전과 목표, 구체적 실천을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ICFTU-WCL 통합 논의는 1) ICFTU의 북반구 노조 편향적 정책과 실천에 대한 평가, 2) 남북 노동자들간의 분할과 위계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의 인식지반 확대, 3) 노동계급을 넘어 국제적인 반전/반세계화 사회운동 진영과의 포괄적인 동맹관계 형성을 위한 계획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계기로 전환되어야 한다. 나아가 진정으로 통합세계노총의 출범을 원한다면, ICFTU와 WCL 이외의 민주적·자주적 노동조합들이 통합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할 것이다.  

남반구 노조운동의 과제

‘남반구 노조주의’는 북반구 노조주의에 대한 ‘상징적 블록’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고유의 의제와 실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인 산업활동 재배치 속에서 강화된 남반구 노동조합운동은 국제노동운동진영에서 자주적·민주적 노조운동의 상징으로 부각되었으며,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의 심화는 남반구에서도 광범위한 일자리의 소멸, 비정규·비공식부문의 확산을 낳았으며, 이에 남반구 노조주의 역시 전략·전술의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포함한다. 첫째, WTO와 FTA, IMF와 세계은행 체제를 넘어, 노동친화적인 국제체제의 형성을 위한 투쟁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핵심노동기준 보장” 요구를 넘어, 신자유주의 반대, 금융 투기 반대-일자리 창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 모색, 실업과 빈곤문제 해결, 고용과 소득 창출 등을 의제로 제기해야 한다. 일국적 차원에서 이상의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억압적 국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국제적인 차원의 연대와 협력이 비상하게 강화되어야 하며, 이는 노동조합들 사이에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사회운동세력들과의 포괄적 동맹이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적인 반전·반세계화 사회운동 진영과의 포괄적인 연대가 강화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효과가 작업장을 넘어 일국적·국제적 차원에서 전 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디. 이의 극복을 위해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이해를 넘어,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과제로 받아 안아야 한다. 일국적·국제적 차원에서 반전·반세계화 사회운동진영과 광범위한 연대와 동맹의 형성이 관건이다. 

셋째,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권, 노동기준 개선을 위한 ‘진보적 노동권’ 캠페인이 집중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현 시기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은 권위주의적 국가에 의한 전통적인 억압 체제와 더불어 경제자유무역, 자유무역지대, 자유로운 자본 이동, 국제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경쟁적인 외자유치 체제 등 신자유주의가 낳은 결과로 인해 노동권의 실질적인 행사가 봉쇄되고 있다. 따라서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는 노동친화적 국제체제의 형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반구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노동권 보장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민주노총, 남아공노총, 브라질 노총 등 3국 노총은 대륙별로 올바른 ‘남반구 노조주의’의 형성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국제자유노련의 개혁 방향

첫째, ICFTU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을 강화하고 주도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ICFTU가 WTO, IMF, 세계은행,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 국제무역·금융기구, 국제협정 등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로비’ 전략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며 ‘투쟁과 동원’을 촉진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둘째, 강화되고 있는 반세계화·반전 투쟁에 적극 결합해야 한다. 노동조합 고유의 의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세계화·반전 운동세력과 개방적인 연대를 형성해야 할 때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의 형성에 있어서 노동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셋째, ICFTU는 주변부/반주변부 국가의 노동조합 운동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남반구 노동권과 노동조건 개선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중요한 과제인데, 이를 위한 관건은 남반구 노동조합운동의 건설과 강화이다. 이를 위한 재정적·인적 자원의 적극적 투입과 국제연대가 필요하다. 

넷째, ICFTU는 보다 민주적이고 비권위주의적 조직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회원 조직의 50%에 달하는 남반구 노동조합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구조와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정책의 입안과 결정 과정에서 남반구 노동자들의 상황과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다섯째, ICFTU는 미군을 비롯한 이라크 점령군의 완전 철수, 반전 평화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노총(AFL-CIO)과 영국노총(TUC)의 미온적인 태도로, ICFTU가 국제적인 반전투쟁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유감이다. 이는 국제노동운동의 대표적 조직으로서 ICFTU의 위상과 역할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이라크 점령은 불법적일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전략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 중단과 이라크 점령군 철수를 요구하는 동원과 투쟁이 필요하다. 민주적인 이라크 건설은 이라크 민중들의 힘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여섯째, WTO와 FTA 등 ‘노동억압적인 국제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친화적 국제체제’의 건설을 목표로 투쟁해야 한다. WTO와 FTA 체제가 특히 남반구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정책과 대응 전략이 입안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국제연대사업 방향

민주노총 국제사업은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동맹의 건설에 복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갖고 있는 현실적 역량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이것의 실현은 국제적, 대륙적 차원에서의 진보적·민주적 노동운동의 주체 형성 과정과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FTA를 매개로 한 신자유주의적 지역 통합이 가시화되면서, 아시아 노동자연대는 대단히 긴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브라질노총이 주도하고 있는 ‘미주대륙자유무역협정(FTAA))에 반대하는 남미사회동맹’의 결성은 우리에게 대단히 시사적이다. 아시아 지역은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 역량이 남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것이 현실이지만, 지역 내에서 진보적·민주적 노동운동의 주체형성의 과정을 동반한 반신자유주의 동맹의 결성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는 최근 일본의 진보적 노동조합과 공동으로 진행한 한일 FTA 저지 투쟁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민주노총은 브라질노총(CTU-Brazil), 남아공노총(COSATU), 민주노총 3개 노총 연대 강화를 통한 남반구 노조연대회의 강화, 반전·반세계화 운동세력과의 결합력 강화, 그리고 ICFTU 정치·구조적 개혁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