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지자걸음 하다가 갈등의 수렁으로 간 노동정책

노동사회

갈지자걸음 하다가 갈등의 수렁으로 간 노동정책

admin 0 2,584 2013.05.12 03:12

민주노총 사무실 주변에는 경찰들이 밤낮으로 진을 치고 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구속과 수배, 파면, 그리고 해고도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과거 정부와 같은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출범 초기 '친 노동정권'이라고 보수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우리 노동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하자더니

노무현 정부는 출범 당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핵심적인 정책방향으로 제시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차별해소와 동일노동동일임금, 국제기준으로 노동법 개혁, 사회적 대화체제 구축 등을 핵심적인 과제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연유에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우려의 한편에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년이 다가오는 현재 시점에서 볼 때 노무현 정부가 내세웠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파업사업장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과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고 공무원 노동자들에 가차없는 탄압이 집중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파견노동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등 비정규직 사용을 대폭적으로 완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노사정간의 대화 테이블도 집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우리사회가 해결하여야 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가 양극화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중소기업과 대기업,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간의 양극화가 극심하다. 경제의 양극화는 무조건적인 개방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정부 정책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수출에 의존하여야 하는 우리 경제에서 개방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집단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급한 개방정책이 사회의 양극화와 갈등이라는 후폭풍을 몰고 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의 양극화를 촉발하는 정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나 사회보장 확대를 비롯한 양극화를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에서는 국민의 정부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성적표를 보이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 도입 등의 진전이 있으나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노동자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혁, 그리고 향후 우리의 사회보장체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는커녕 연기금 조차도 단기적인 정치적 편의에 따라 운영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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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4일 공무원노조 파업전야제가 열린 연세대 앞.   - 출처: 오마이뉴스 ]

오리무중인 비정규직 차별시정

참여정부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시정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정하고 차별시정기구를 만들도록 하였으나 차별시정기구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는 여전히 오리무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차별시정 관련법과 기구 설치를 두고 정부 내에서의 논의가 있었으나 정부차원의 통일적인 대책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차별문제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최근 정부의 법안에서 명시적인 조항이 포함되었다는 점은 나름대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차별 인정 여부가 위원회의 판단이나 법률 해석에 맡겨져 있다는 점,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 시정을 제기하여야 한다는 점, 사용자 입증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정부법안의 차별금지는 노동현장에서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은 크게 완화되어 차별금지의 효과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법안은 파견노동을 사실상 전면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등 비정규직의 사용을 대폭적으로 확대하였다. 특히 파견업종 확대를 두고 외국의 경우를 들먹이고 있지만 외국의 제도와 노사관계 현실과의 면밀한 비교가 빠져있는 평면적인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파견업종을 넓게 인정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는 상용파견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파견노동자들은 파견사업주에게 상용으로 고용되어 있다. 그리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기 때문에 파견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크지 않으며 파견노동을 사용하는 사용사업주 입장에서는 동일노동일임금을 지급하여야 하고 파견업체에 대해서도 비용을 지불하여야 하기 때문에 파견을 사용할 경우 사용사업주는 직접고용 할 경우보다 인건비 지출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제도적인 조건에서 파견업종을 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파견업종 확대가 곧바로 파견노동 양산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노동부 자료에서도 독일의 파견노동자 비율이 0.7% 수준이라는 점이 이를 잘 말하여 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해서 '남용금지, 차별해소'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비정규법안은 이러한 출범 초기의 원칙과는 너무나 먼 거리가 있다. 불법적인 남용이 합법적인 남용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차별금지는 무늬만 남게 될 우려가 많다. 

추방되는 이주노동자, 방치되는 저임금노동자 

또한 노무현 정부가 통과시킨 최초의 노동관계법이라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정책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10년 이상 끌어왔던 이주노동자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였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는 성과이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유린을 초래하는 미등록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 법안은 실패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의 성공여부는 미등록불법체류자 해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등록불법체류자는 법률의 한계도 있지만 정부의 정책 집행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노동정책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현행법에서도 정부의 정책의지에 따라서는 미등록불법체류자 문제를 상당히 해소할 수 있었음에도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이러한 기회조차 뺏어가면서 정부의 강제추방정책에도 불구하고 미등록불법체류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시장의 차별을 해소하는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최저임금제도를 꼽을 수 있다.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이후 최저임금 노동자의 상대적 임금이 도리어 하락하였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은 것은 노동운동권의 무관심과 최저임금 결정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노동계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미적거리고 있어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의심스럽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간의 차별을 도리어 확대시키고 있으나 정부는 노동시간단축 전사업장 조기 도입, 초과노동시간 규제, 교대제 개편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방치하고 있어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에 의문을 가지게 하고 있다. 

무엇이 노정관계를 악화시켰는가

2004년은 2003년에 비해 노사분규 발생건수가 늘어나고 있었으며 최저임금을 둘러싼 투쟁이 예년에 비해 크게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노사정간의 대화를 위한 노력이 집중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립 양상으로 진행되진 않았다. 그러나 LG칼텍스정유에 대한 공권력 투입 등 정부의 구시대적인 노동정책으로 노사관계는 진통을 겪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급기야 노동계에서 강력 반대하고 있는 비정규법안을 제출하면서 노정관계를 급격한 대립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상반기에 노정관계가 대화의 국면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계가 대화와 새로운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던 데서 찾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정부는 형식적으로는 대화와 새로운 노사관계의 정립을 외치면서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노사관계 로드맵 추진 의사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일자리를 명분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재벌개혁을 후퇴시키는 등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더욱이 FTA를 비롯한 개방정책에 발 벗고 나서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기조는 비정규입법이라는 초강경 수단을 들고 나오면서 정점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비정규입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재편 정책에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구조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노동계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독선과 아집이 노정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의 말처럼 정부는 여전히 노동을 배제와 통제의 대상이라는 구시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회통합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하여 노동과 파트너쉽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조합은 분산적인 노동조합 체제와 분산적인 교섭구조를 산별구조로 전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산별제도로서의 전환이 노사관계 발전의 중심적인 과제임에도 사용자와 정부의 산별교섭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이다. 2004년 노사분규의 많은 부분(67.8%)이 산별교섭 또는 산별노조와 관계되어 있음에서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을 위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면 노사관계의 개혁을 위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정부가 "귀족노동자" "대기업 이기주의" 등등으로 노동조합 내부를 교란하려는 듯 한 태도를 보여 노정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 원하면 상대부터 인정해라

노무현 정부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노동정책의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당선 2년이 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을 해소하고 소득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양극화와 차별의 결과만을 가지고 정부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부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묻고자 한다. 

단기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짧은 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함에 있어서 차별과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참여 정부는 차별해소를 통한 사회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차별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도리어 정치적인 구호와 반대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노사정간의 대화를 중시하고 있으며 노사관계에서의 사회통합적인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사관계 안정과 우리 경제의 경쟁력 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노사정간의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를 진정한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가장 우선적으로 있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이 노동자의 저항에 부딪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노동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으로는 진정한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하다. 과거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활용하였던 방식이나 멕시코 등 남미국가에서 추진하였던 일부 노동자 계층을 포섭하겠다는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꿈꾸고 있다면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격변의 시기, 철학과 원칙을 다져야

더욱 큰 문제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노동정책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대외개방, 양극화, 노동시장의 급변 등 한국의 노사관계를 둘러싼 환경은 전례 없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는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는 후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노사관계 현실을 바꾸어 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무현 정부에서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정책은 여전히 경제정책에 끌려 다니고 있으며 장관을 비롯한 노동정책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갈지자걸음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노무현 정부 집권 중반기에 접어 들어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 2년의 노동정책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