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좌표는 있는가 경제정책의 선회, 표류 그리고 함정

노동사회

지금 좌표는 있는가 경제정책의 선회, 표류 그리고 함정

admin 0 2,926 2013.05.12 03:09

한국경제는 지금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국민 대중이 앓고 있는 삶의 고통, 불안과 위기는 동전의 이면이다. 경제구조와 대중의 삶 양면에서 겪고 있는 오늘의 고통은 저성장, 양극화 그리고 대외 종속 및 외향화라는 ‘삼중고’의 현상으로 집약된다. 우리는 왜 이 삼중고를 겪고 있는 것일까? 이 고통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 다음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단지 현실의 어려움만이 아니다. 낡은 색깔론과 안이한 변호론이 대립하고 있고, 여론의 표면을 지배하고 있는 이 지루한 이항 대립은 실제 현실의 사태를 직시하기 어렵게 만들고, 호도하고 있다. 이 또한 문제다.

위기의 진실 가리는 낡은 색깔론과 안이한 변호론

재계, 보수야당, 지배언론, 그리고 학계와 연구소에 포진되어 있는 보수 이데올로그들은 서로 방향과 의도는 다소 다르면서도 한 덩어리로 합세하여 현정부의 경제 정책이 “좌파적”이라고 몰아 부친다. 현정부가 분배 우선주의, 평등주의 또는 포퓰리즘의 경향을 보이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가 이런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혹시 정부 내에서 실권을 갖고 있지 못한 일부 비주류 인사들의 분배나 평등을 중시하는 ‘말의 성찬’에서 그와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책 운영의 실상은 이 비판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러한 색깔공세는 자신들의 시장 근본주의-이는 보편적 중립주의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명백히 특권적 계급 프로그램이다- 또는 무책임 재벌주의 입장을 세상의 중간, 또는 중심이라고 믿으면서 하는 비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한국 보수의 색안경 세계에서는 자신들이 걸터앉아 있는 자리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히는 정책은 중간 또는 중심의 왼편에 있는 것으로, 그래서 ‘좌파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자리는 중심은 물론 중간도 아니고, 오른쪽 중에서도 한참 낡아빠진 저 한 구석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무현 정부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사회통합 그리고 참여를 내걸고 등장했던 집권 초에는 이 같은 이데올로기 공세가 드물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실정이  공세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의 한국경제 곤경을 놓고 정부 당국이 국민에게 들려주는 소리는 어떤가. 정부는 지금의 문제의 성격을 ‘혁신과 통합’의 새로운 고도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치를 수밖에 없는 진통, ‘전환의 계곡’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며 그래서 꾹 참고 견뎌내야 하는 일종의 산고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현재의 과도기적인 전환의 진통을 이겨내기만 하면 한국 경제는 선진적 혁신경제로 이행하여 성장 엔진의 활력을 회복하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 고르게 잘 사는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정부의 이 장밋빛 청사진을 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정부의 이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단지 당면한 현재의 어려움과 삶의 불안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말 문제는 미래가 어두워 보인다는 것, 미래의 희망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빠져 든 저성장, 양극화 그리고 대외 종속 및 외향화와 탈민족화라는, 자본의 세계화 시대에 한국사회경제 삼중고의 위기는 쉽게 빠져 나오기 어려운 깊은 함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chlee_02.jpg초기 정책 기조: 구조개혁과 성장정책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지향과 전망을 가진 것이며,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가. 현정부의 정책은 그 기본 기조에서 김대중 정부 정책 패러다임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며, 현정부 정책지향에 새로운 요소가 존재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집권 초기 정책을 구조개혁 정책과 성장 정책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노무현 정부는 기업과 금융제도의 구조개혁에서, 세계시장에 전면 개방된 영미식 시장경제, 주주가치 중심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김대중 정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론’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무분별한 개방과 외국자본의 침투 및 지배가 국민경제에 몰고 오는 위험에 대한 인식이 없고, 이에 대비하는 국내적 조절기제 수립의 필요성에 대한 사고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이전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재벌개혁 5+3 원칙’을 계승하고,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를 시행한다는 생각을 보이기도 했다. 또,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내세운 것은 이전 정책에 비해 진일보한 요소였고, 이전 정책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공기업 민영화 일변도에 대해서도 자제하는 방침을 보인 것도 중요하다.

두 번째, 성장정책을 보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를 내걸고, 규제 완화를 통해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조건을 제공하며 만국 자본의 유치를 위해 입지 경쟁에 나서는 ‘시장 경쟁국가’라는 이전과 동일한 노선을 견지했다. 

그렇지만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노선은 종래 경제특구 방식에 따른 ‘금융·물류 허브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책 기조를 ‘첨단산업 클러스터’ 육성 중심으로 정책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외국자본 주도보다는 국내자본 선도형으로 바꾸었다. 분권과 균형 발전론은 산업 클러스터 육성을 통한 성장 경쟁력의 강화와 동시에 국민 통합의 제고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책 요소다. 

6개월 밖에 안 걸린 경제정책의 보수 선회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 구상은 어떻게 실현되었고 어떤 성과를 보였는가. 개혁의지는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 우리사주제도 개선, 상속증여세제의 완전포괄주의 채택 ,그리고 증권집단소송법의 도입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는 하였다. 그러나 정말 개혁다운 개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정책 리더십은 실종되었고, 일관성도 잃었다. 

취임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전환점으로 정책기조는 변화의 기미를 보였다. 2003년 8·15 경축사를 통해 새 국정 목표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구호가 내세워졌고, 이로써 보수적 선회를 분명히 했다. ‘2만 달러’ 구호는 원래 삼성 재벌 그룹이 제시한 것으로 전경련이 다시 세련화한 것이었는데, 재계가 만든 이 신성장 이데올로기에 정부가 편승한 것이다. 또, 카드사 문제와 개인신용불량자 문제로 인한 시장혼란에 대처함에 있어서 지난날의 무책임 관치금융 방식을 답습했다. 카드사의 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부실경영과 불법 행위, 관료들의 정책 실패와 감독 실패에 대한 책임 규율 원칙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2004년에 들어서는 투자 촉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계의 규제완화 요구에 끌려들어 가면서 정책의 개혁성은 더욱 퇴색되었다. 정책 진용에도 새 정부 조각에서 대표적 개혁 인사였던 이정우 실장이 물러나고, 구조조정의 전도사역할을 했던 이헌재 부총리가 다시 들어섰다. 

최근 상황을 보면, 재벌정책에서는 김대중 정부 후기에 개악되어 실효성이 아주 약화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계열사의 주식의결권 제한제도를 방어하는 일조차 힘겨운 상태로 몰린 상황이다. 반면 노동정책에서는 비정규직 관련 개악법안과 노동3권 중 1.5권만 인정하는 공무원노조 방침을 둘러싸고 노동 진영과 대치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뒤늦게야 위기의 심각성을 알게 된 모양인지, 이른바 “ 한국형 뉴딜” 정책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름은 아주 거창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노자 타협과 금융 통제라고 하는 뉴딜의 핵심을 거세한 이 경기 대책이 단기 미봉책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제사회 비전과 정책 과제를 담고 있는 가장 최근 문건이라 할 「역동과 기회의 한국」(재경부, 한국개발연구원)을 보면, 기술혁신 및 인재양성, 동북아중심국가 구현, 노사관계 안정, 시장개혁, 국가 균형발전, 민생안정과 복지확충, 그리고 정치·행정사회 혁신 등이 7대 전략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참여복지, 차별해소와 통합 등의 말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 위상과 실체적 내용의 신뢰성은 크게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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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9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과 법안 발의를 담당했던 주요 당직자들이 부유세 관련 조세법안을 설명하고 있다.  - 출처: 오마이뉴스 ]

앞뒤 안맞는 정부정책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기조가 보수적으로 선회하고 심지어 방향감각을 잃은 것으로까지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첫째, 김대중 정부 시기로부터 물려받은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의 모순들이 표면화되고, 확대·심화되면서 노무현 경제의 앞길을 막았다. 저성장, 양극화 그리고 대외 종속 및 외향화 심화의 삼중고는 김대중 정부가 넘겨 준 것이기 때문에 분명 현정부만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정부는 이를 초래한 정책 요인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 없이 안이하게 답습하였다는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전 정부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보인 성장·분배 선순환과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기조는, 재벌에 대한 강도 높은 규율 요구와 노동권의 대폭적 신장, 그리고 이러한 ‘희생의 교대’를 통한 노사평화와 새로운 시민권의 사회계약 형성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실천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반대 길을 걸었다. 민주적 갈등조절에 실패한 반노동·친재벌의 코스, 그에 따른 정치적 리더십의 실종과  사회 전반에 만연된 단기주의적 행동 양식은  앞서 김대중, 김영삼 정부가 걸어갔던 바로 그 길이다.

둘째, 이전 김대중 정부 시기에도 노사정위원회의 운영과 복지예산의 증대 등 표준적 신자유주의와는 다소 다른 정책 요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전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패러다임과 ‘영미식 기업·금융 구조개혁론’ 사이에서 정책 논리상 상호 일관성을 가졌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하다. 

현정부가 내세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및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상은 다분히 유럽식 사회적 시장경제의 방향성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업·금융 구조개혁’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개혁으로 방향전환을 요구한다. 이 같은 제도적 상호보완성 또는 통합성의 조건에 대해 현정부가 얼마나 정확한 자기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제도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현정부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현정부의 자기 이해의 부족은 「역동과 기회의 한국」(재경부, 한국개발연구원)이라는 문건에서도 발견된다. 이 문건은 혁신 전략의 국가사례로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싱가포르, 대만 등을 제시하면서도 놀랍게도 이들 국가 전략들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 -영미식자본주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개발 자본주의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고급 국가전략 문서에서 이러한 ‘맹목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최근 정책 기획위원회가 주최한 “혁신 주도형 경제의 구축 방향”을 주제로 한 제1회 국가 경쟁력회의에서도 이 같은 몰이해는 반복되었다. 

셋째, 현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시장 개혁론, ‘개방=좋은 것’의 사고, 투기자본과 투자자본의 차이를 묻지 않는 무분별한 외국자본 순기능론에서 결코 벗어나 있지 않다. 유럽 강소국의 사례에서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소국 개방경제가 세계화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하여 어떤 독자적인 국내적·국민적 조절기제를 갖추어야 하는지, 세계화시대일수록 왜 제도적·문화적 수렴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자본의 소유와 지배 구조 측면에서 어떤 국민적 기초를 수립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를 보여 준 적이 없다. 

따라서 국민 경제의 동반·균형·안정 성장과 참여복지, 사회통합적 혁신경제를 실현 가능케 할, 한국 고유의 제도적·문화적 조건과 특성에 기반을 둔 ‘비교 제도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한국식 제도 개혁과 ‘코리안 스탠더드’가 필요한지에 대한 사고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죽은 세계주의와 시장물신을 넘어서기 위하여

1997년 위기와 IMF 체제의 성립 이후, 우리는 무반성적으로 국민적 조절기제를 해체하고 무력화하는 죽은 세계주의와 사회적, 민주적 요구를 삼키고 선제공격하는 시장 숭배주의에 포로로 붙들려 있었다. 그로 인해 지금 한국 사회경제와 국민 대중의 삶의 고통을 초래한 정책 패러다임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할 것이다. 즉, 투자부진 및 소비위축과 저성장, 고용불안 및 빈곤 심화로 나타나는 두 국민으로의 분열경향과 경제재생산 구조의 양극화와 자본운동의 무책임하고 불투명한 탈민족화(denationalization), 이와 연관되어 특히 금융 측면에서 뚜렷한 자금순환의 파행적 탈구(disarticulation) 등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적 민주개혁 정부는 이 사태의 핵심 매개자, 특히 국민경제의 안마당을 국제 금융 자본의 투기 천국으로 내어 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 경제는 한국의 “중남미화 경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재의 이 양극화와 탈민족화의 저진로(low road)함정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국민소득 2만불’의 혁신경제 이행을 쳐다보고 있는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과는 달리, 불행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깊은 함정, 더 깊은 수렁일지 모른다. 이 종속적 신자유주의의 지배적 경향을 반전시키려면 어떤 반경향의 정치적·제도적 계기, 민주적이고 민족적인 재개혁의 동력이 필요할까? 세계화의 유령에 홀리지 말고, 죽은 세계주의와 시장 물신주의, 나아가 정신의 식민화에서 벗어나 자기 머리로 사고하는 것은 새 진로 개척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선결되어야 할 조건으로 보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