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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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회고와 전망

admin 0 3,289 2013.05.12 03:06

어떤 정부에 대해서든 집권 첫해의 경제적 성과를 그 정부의 경제 정책과 '직접' 연결시켜 평가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최소한 집권 첫해의 경제적 결과는 그 이전 시기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이렇다 할 적극적인 경제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물론 SK 글로벌 사건으로 불거진 카드채 대책 및 관련 정책 조치들이나 최근의 부동산 대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이 끊임없이 시행되었지만, 대부분 일단 발생한 사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그리고 국토 균형발전 특별법이나 동북아 경제권과 관련된 제도들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가시적인 어떤 성과를 가지고 평할 단계는 아니다. 정권의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2003년은 '정치의 해'였지 '경제의 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 어떻게 보면 새 정부는 한두 해에 성과를 얻는 단기적 경제 정책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현상유지를 추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정부의 단기적 과제를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는 3대 현안인 이라크전 발발 우려, 북핵 문제, 내수 침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는데(최고 경영자 신년포럼, 2003. 2. 14), 이 가운데 경제정책의 직접적인 대상은 내수 침체 문제 한가지였다. 이어서 내수 침체 문제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정의 조기집행으로 대응하는 방법 외에 선택 가능한 대안이 별로 없다. … 부동산 가격 폭등, 가계부채 및 신용카드 문제 등에서 보듯이 내수촉진 시책은 일정한도를 초과하면 부작용이 매우 크다. 이러한 부작용들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는 있으나 아직 민간 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채택할 만큼 경기상황이 나쁘지도 않다고 본다. … 이같이 당면 현안을 해결하고 우리 경제의 불투명성을 제거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긴 하지만 단기 과제의 해결에만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신정부의 경제 정책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데 두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으로 2003년이라는 한 해에 한정해서 노무현 정부 경제 정책의 공과를 직접 평가하기보다는 2003년에 부각된 한국 경제의 문제와 과제를 중심으로 (정부가 밝힌 대로) 좀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극심한 불황기에도 수출 증가가 두드러져, 경기논쟁 야기

2003년을 성장, 고용, 물가, 대외거래 등 거시 경제적 성과라는 관점에서 간단히 짚어 보자. 연초 5∼6%선 까지도 예상되었던 경제성장률은 2%대(한국은행 전망치는 2.9%)에 머물렀고, 실업률은 전해의 2%대 후반에서 3%대 초반으로 올라섰다. 물가는 전해에 비해 조금 높아진 듯하지만,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대외거래는 매우 양호해서 11월까지 수출액(통관기준) 증가율은 전년 동기간에 비해 18.4%에 이르렀으며,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연초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 11월까지만 보더라도 104억 달러 선으로 추정된다. 특히 9월 이후 산업 생산의 증가와 수출 증가가 뚜렷해지자 '경기논쟁'이 일어났다. 수출과 산업 생산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경기불황이 끝났다는 주장을 하고, 여전히 저조한 성장률이나 실업률, 설비투자 등에 주목하는 경우에는 앞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며 경기회복의 시점을 2004년 하반기까지로 연장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 경제의 호조와 미국 경제성장률의 증가로 당분간 수출 증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정도이다.

경제 성격 변화와 분명해진 구조적 결함

2003년의 경제 결과를 경기 순환상의 불황 국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회복되었던 몇 년 동안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잠복해 있던 한국 경제의 성격 변화와 심화되는 구조적 결함들이 불황기를 맞아 분명해진 측면이 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수출이 급증하더라도 투자와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과 청년실업률이 급증하는 현상이다. 설비투자 증가율도 1/4분기 -3.4%, 2/4분기에 -3.7%에 이어 3, 4분기에도 더 낮아졌다. 3/4분기 들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등 세계 경제의 조건이 개선됨에 따라 수출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경기 회복은 뚜렷하지 않다. 이에 따라 직업창출 능력이 약화되고 장기 성장기반의 약화도 일어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양동욱 외(2003),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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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율이 저축률을 밑도는 축소 재생산 경제의 특성이 한국경제에 고착화된 것은 1998년이후 지속적인 일이다. 따라서 불황으로 인해 투자와 소비가 침체된 이상으로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2000년을 막 마무리짓는 시점에서 1999년∼2000년의 성장률 회복시기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가한 적이 있었는데, 2003년의 불황에도 적용된다. 호황과 불황을 막론하고 즉, 경기순환과 무관하게 적용되는 한국경제의 특성들이 올해의 불황기에 더욱 심화되었던 것이다.

"지난 2년 동안(1999∼2000년) 경제를 지탱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소비와 투자마저 급속히 축소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 기업들이 투자를 포기하고, 부채가 늘어나고 소득은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중·저소득층 가계가 더 이상 씀씀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된 탓이다. 고소득층과 중·저소득층 가계의 소비 및 소득 불균형은 이미 위험수준에 다다라 사회적 통합을 파괴할 수 있는 지경에 처했다. 사회적 통합의 파괴는 산업구조의 통합성과 상호의존성이 약화되거나 파괴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경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이 점점 더 한국경제의 다른 부분들과 관련 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지나치게 높았던 수출의존도는 적정수준으로 조절되지 못하고 외환위기이후 오히려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충분한 국내 저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외자에 의존하는 정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 부문의 호황이 다른 부문으로 확산되는 경로가 파괴되어 가면서 수출의 호황이 내수의 회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외환위기이후 구조조정과 제도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각 구성요소들이 서로간에 연관성을 잃어가고 있다. 만약 새로운 경제위기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경제 내부에 부문간 최소한의 연관성과 상호보완성이 유지되어야 개방과 해외자본의 유입이 국민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관리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국민경제에 위기 요인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민경제의 해체 현상은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대단히 높은 경제성장률이 유지된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 … 은행을 대신할 것이라던 주식시장은 자생력을 잃고 약간의 외국인 자금만 빠져나가도 휘청거리며, 오직 외국인 투자가의 은혜로운 손길만 기다리기에 이르렀다. 국내 투자가들이 외국인 투자가의 행태를 추종하면서 한쪽에서는 남아도는 자금이 갈 곳을 몰라 헤매고, 다른 쪽에서는 웬만한 대기업도 자금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국제기준의 자본비율(BIS 비율)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은행은 기업금융을 포기하고,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계금융에만 매달린다. 깎이기만 하는 임금과 늘어나기만 하는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견뎌왔던 노동자들도 이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정부가 추진해 온 구조조정에 전면적인 반기를 들고나섰다."(유철규, 2001)

거세된 경제의 공격성

2003년에 뚜렷해진 한국경제의 성격 변화로 '공격성의 거세'를 들 수 있겠다. 외환위기 이전 삼성의 자동차업 진출 선언으로 국내 자동차업계가 앞다투어 규모 키우기 투자에 나선 적이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기존 생산능력의 두 배가 넘는 설비를 갖추게 될 것이었다. 이를 두고 영미 자동차 관련 업계의 반응은 대단했다. 당시도 세계적으로 생산 설비가 남아도는데, 한국업계는 정신이 있느냐는 견해가 주를 이루었다. 그 때 썼던 표현이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친구가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포드나 GM 자기들이 죽으면 세계적 과잉설비도 다 해결될텐데, 우리보고 난리냐."

정책적으로 보면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생각이지만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한가지 철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 문제를 따지자면 한이 없지만, 자동차 생산의 경우 한국이 외환위기 이전 세계 4위 생산국(1996년 현재, 2000년 현재로는 세계 5위)이 되고, 조선업의 경우는 세계 선박 건조량의 33.9%(1999년 현재)를 점유하고, 철강업에서 포철이라는 세계 1, 2 위 규모의 철강생산 기업을 두고, 세계 반도체 D램 생산의 38%(2000년 현재)를 담당하기까지 한국경제는 대단히 공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공격성은 기존 세계경제 질서의 파괴라는 측면이 있었고, 그 압축적인 결과가 식민지를 겪은 최빈국에서 세계 십 몇 위에 이르렀다는 한국 경제의 규모이다.

이제 상황은 바뀌어 한국 기업은 투자에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수출이 회복되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수출이 회복되기 이전에 이미 선제적 투자를 했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현저한 변화이다. 확실하게 수익이 확보된 이후에야 움직이는 금융자본의 투자 행태와 유사하다. 금융부문, 특히 다국적 금융기관이 한국경제의 투자 결정권에 참여한 것이 분명한 사실인 까닭에 외국인 자본의 국내 지배력이 과다할 수 있다는 최근의 국책연구소와 한국은행 등의 우려가 예사롭지 않다.

2004년 성장률 높아지나, 고용문제 해결 어려울 듯

내년도 경제성장률은 침체된 올해 경제를 분모로 삼아 계산하는 것인 만큼 성장률 4∼5%선은 유지될 것이다. 특히 세계경제의 조건(수출 여건 및 원자재가격 등)이 올해보다는 좋을 것이므로 수출 증가율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내저축과 투자의 고리(금융과 산업의 고리) 약화, 국내소비와 국내생산의 고리 약화, 내수기반의 붕괴라는 구조적인 문제는 시장 근본주의 관점에 매여 있는 한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이는 곧 경제의 투기화와 단기화 경향을 억제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국적 금융자본의 이해 관계와 어떻게든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2004년에 새로이 제기될 만한 한두 가지 이슈를 생각해 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올해 제기되었던 대부분의 문제들 특히 개방과 노동력 유연화 문제는 지속적으로 핵심적인 경제적 이슈가 될 것임은 물론이지만, 이에 더해 경제적 우파 민족주의의 본격적 대두가 예상된다. 최근에도 이미 외자계 은행이 된 국민은행장이 외자 유치의 문제점을 제기한다거나 전 고위관료가 주도하는 민영화 펀드가 구성된다든가 또는 외환보유고 등으로 한국투자공사를 만들자는 움직임들이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문제는 이들 펀드나 투자공사가 서구 금융자본과 다르게 운영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외환보유고로 충당하겠다는 투자공사의 운영을 서구 금융자본에게 맡기자는 판이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외환보유고가 앞에서 지적한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을 악화시키는데 사용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민족주의적 사고는 서구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현재의 개방 방식이 다수 국민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 왔다. 어쩌면 외자유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지 모르는 인물들이 외자유치의 위험성을 갑자기 깨닫게 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그 펀드들의 운영방식과 그것을 담을 지배구조의 개혁이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한 국민경제의 발전 나아가 다수 국민의 생활상 불안정을 완화하는 효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관련해서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혁이 적극적으로 요구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로서 본격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서고, 심지어 해외 증시와 채권시장 투자가 허용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 국민연금의 운영은 서구 금융자본의 운영원리를 철저히 따르도록 요구받고 있다. 진정 경제적 민족주의가 국민의 삶에 보탬이 되려면 국민과 노동자의 재산으로 운영되는 자금의 사회적 성격이 분명히 인식되어야 하고, 그 투자 방향에 대해 국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유럽의 노동자 기금이나 여타 사회기금의 운영방식이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단기적 수익성만을 취직의 조건으로 요구받는 펀드 운용자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경제의 투명성 높여야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한다면 우리사회의 투명성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올해 하반기에 주목받고 있는 건설회사의 원가 공개 문제는 올바른 시민적 요구이다. 그동안 진행된 구조조정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그토록 투명성을 외치면서도 정작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투명성 문제는 소홀히 대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논하기 앞서 과거 시스템에서는 최소한 정부는 아파트 건설원가를 알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모른다. 알고 있어도 자본의 권리(영업권)로 보호받을 뿐 국민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시장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드러나고 있듯이 전혀 아니다. 최소한 국민의 삶과 직접 관련된 정보를 자본의 손에 맡겨 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도 버리는 식의 규제완화는 한국사회의 발전 수준에 이미 걸맞지 않는다.

정부 스스로 밝혔듯이 1년 간의 준비를 끝내고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한다는 신정부 2년 차의 경제 정책은 금융적 투기성을 적절히 억제하여 국민경제의 정상화를 도모함으로써 국민 생활상의 안정을 추구하고, 이와 직접 관련된 부분의 투명성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길 기대한다.

[ 참고글 ]
유철규 (2001), 세계화와 국민경제의 긴장: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현황과 대안, 계간 창비 2001 봄호 pp. 90∼106
양동욱 · 홍승제 · 이주경 · 임철재 · 문소상 (2003), "우리경제의 장기 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과제- 구조적 저성장 진입가능성과 대응방향",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한국은행(2003), "2003년 3/4분기 국민소득(GNI) 잠정추계 결과", 2003.12.10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