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이후 '속빈개혁'만 남았다

노동사회

'적과의 동침' 이후 '속빈개혁'만 남았다

admin 0 2,739 2013.05.12 03:04

노무현정부는 정경유착과 정치부패 청산을 통한 깨끗한 정치 실현, 지역갈등과 권위주의 극복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심화, 대미종속성 극복과 개방적 민족주의 실현 등에 대한 국민적 열망으로 탄생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와 같은 국민적 열망을 얼마나 채워줬을까? 

ytjung_01.jpg노무현 정부의 시대적 사명과 국민의 평가

제17대 국회 개원식 축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여년간의 정치개혁성과로 선거문화의 혁명적인 변화, 밀실공천의 중단과 당원·국민에 의한 공직자후보선출, 국정원·검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 청탁과 정실을 배제한 대통령의 공정한 인사, 국회와 대통령의 상호견제 기능 회복, 정경유착 차단과 부패척결 등의 여섯 가지를 들었다. 노대통령의 자평을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노무현정부로서는 잘해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은 자꾸만 떨어졌다. 

노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취임 직후(2003년 3월말)의 71.4%에서 5월말 57.3%로, 같은 해 7월에는 40.4%로 급락했다(『한겨레신문』 2003년 7월11~12일 조사). 1여년 지난 2004년 5월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판결이 있은 직후인 5월25일,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의 조사결과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50.1%로 다시 올라갔으나, 잠깐뿐이었다. 불과 2주 뒤 39.0%(『한겨레신문』 조사의 경우 45.3%에서 37.8%)로 다시 하락하였다. 제17대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이 거대여당으로 등장한 이후에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총선 후 여섯달이 지난 10월의 조사들(10월6일 『경향신문』과 10월27일 『문화일보』)에서 노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각각 25.6%, 24.1%로 이전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함께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도 동반하락하여 최근 조사(『문화일보』 10월27일)에서 한나라당(30.5%)보다 낮은 28.2%를 기록하였고, 얼마전의 조사(『내일신문』11월 6~7일 조사)에서는 한나라당(26.8%)을 앞지르기는 했으나 여전히 형편없이 낮은 27.1%에 지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일까? 지난 9월에 실시한 한 여론조사(『시사저널』, 9월17일) 결과에 의하면, 노무현정부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정책분야는 경제정책분야(54.1%)였고, 다음으로 정치개혁(10.3%), 외교정책(8.5%), 과거청산(5.3%)의 순이었다. 

여전한 대미종속성과 왜곡된 지역문제해법

정치외교분야에서 노무현정부의 실정으로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대미종속성의 극복을 통한 호혜와 평등의 한미관계 수립이라는 국민, 특히 젊은 세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대미종속성을 강화하는 조치들을 취했다는 점이다.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군의 파병에 대해서, 국민의 과반수, 젊은 세대의 대다수가 반대했고 대통령 선거운동기간 자신도 반대했지만,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돌연 입장을 바꿔 파병을 강행했다. 게다가 취임 후 미국을 방문한 노대통령이 젊은 세대가 ‘악당’으로 생각하고 적지 않은 미국인들도 혐오하는 부시대통령을 ‘극찬’하였다. 주한미군기지의 한강이남 이전여부와 비용에 관련된 대미협상의 경우에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다음으로 그나마 성과가 있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지역갈등문제에서도 비슷하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캠프에서는 JP의 무력화로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충청권의 정치적 지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충청권으로의 신행정수도 이전’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움으로써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던 지역갈등을 다시 자극하였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사회적 희소가치의 수도권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과제는 권력의 공간적 분산이 아니라 기능적 분산, 즉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의 확대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에서는 중앙행정기관의 공간적 분리 그것도 수도권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의 분산으로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지역갈등을 다시 격화시켰다.

속보이는 정치제도개혁

노무현정부는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개혁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와 권력극대화에 더 큰 비중을 둠으로써 정당민주화와 국회정상화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17대 총선에 임박해서 1인2표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나, 진보정당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구정당’들과 담합하여, 시민단체들의 제안인 전체의석의 1/3에 훨씬 못 미치도록 비례대표의 의석비율을 축소하여 결정했다.

또한,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조 타파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지구당을 일괄 폐지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에 장애를 초래하였다. 지구당은 폐지하고 현역의원 사무실만 허용함으로써 국회의원을 갖지 못한 정당은 지역주민과의 접촉을 어렵게 만들었고, 그 결과 현역의원들에게 유리해져 정치권의 물갈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만약 풀뿌리 민주주의보다 저비용의 정치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핀란드처럼 현역의원들의 사무실도 허용하지 말아야 했다. 

열린우리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대선후보와 총선후보(지역구 후보만)를 당내경선을 통해 선출하기는 했지만, 진성당원은 여전히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확대할 능력도 부족하다. 진성당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행되는 국민참여경선제도는 당에 대해서 애정이나 충성심이 약한 일반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비용만 증가시켰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원내정당화의 추진 또한 그 폐해가 작지 않다. 지역주민이나 일반당원과 정당간의 거리가 멀어져 정책선거는 약화되고 이미지선거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국회의원들의 원외정당에 대한 장악력이 강화되어 신진세력의 정치진출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가 있는 부분은 기성정당 특히 열린우리당이 원내정당화와 개별의원 자율성 강화를 통해 개별의원들의 정책능력을 강화하고 대통령에 대해서 할 말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지난 17대 총선 이후 당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지도부는 청와대의 눈치를 살펴 왔고, 대통령의 입장과 다른 의견은 잠깐 나타났다가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는 순간 수많은 이견들이 일시에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이것은 열린우리당이 개별의원의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원래 목표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다른 정당의 눈치를 보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조차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개별의원의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공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고 당론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어려운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나 시민단체들이 국회개혁방안의 하나로 오래 전부터 제안해 왔던 ‘교차투표’, 즉 당론에 반하더라도 자신의 정책적 입장에 따라 표결하는 제도는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 

거대여당이 소속의원들의 교차투표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두 가지 폐해가 나타났다. 하나는 야당인 한나라당 역시 소속의원들의 개별적인 입장을 억압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줌으로써 여야간 대립과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우리당이 대통령의 입장을 무조건 두둔하여 국회의 행정부(대통령)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개혁대상인 ‘수구야당’에게 넘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최근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두 정당간의 대치국면이 장기화되는 것도 바로 이런 조건에서 기인한다. 

ytjung_02.jpg노무현 정부 이념·전략의 문제점

노무현정부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이며, 시대와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은 무엇일까? 노무현 정부의 주장대로, 17대 총선 이전에는 과반수를 넘는 원내 제1당이자 총선 이후에는 과반수에는 못미치지만 여전히 거대한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저항과 보이코트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일반국민 특히 장년층과 노년층이 노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도발적인 리더십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원인진단 모두 피상적이다.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를 차지했던 총선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데다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함으로써 국회에서 진보세력이 크게 강화된 총선 이후에는 전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서 찾아야 한다. 수구정당인 한나라당이 자신의 세력기반 또는 기득권을 손상할지도 모르는 개혁에 순순히 협조하리라고 기대했다면, 그것은 순진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면, 첫째, 노대통령을 포함한 지도부가 일관되고 확고한 이념과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시대 우리 사회, 우리 국민이 노무현정부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개방적 민족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완성 또는 심화하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인식한 열린우리당은 강령을 통해서 자유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전국공무원노조 사태와 정당개혁, 선거제도개혁 등을 처리하는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정책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공무원의 노조결성과 단체행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파업에 들어간 공무원들을 마구잡이로 구속하거나 징계하려고 한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상황논리로 자신의 조치를 정당화하지만, 그런 식으로 항변한다면 박정희대통령의 ‘유신’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자기 모순을 알고는 있을까?

이보다 더 심각한 이념상의 문제점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근본을 근본으로부터 와해할 수도 있는 경제정책들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외국인투자유치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소득과 일자리에 대한 결정권을 외국인투자가의 손에 맡기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나마 국내자본가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에도 단기이윤과 주식가격에 더 중점을 두는, 그래서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주주자본주의’의 기업지배구조를 도입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일자리와 소득 또는 생활여건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정치참여(자유경쟁선거)가 충분히 보장되어도 그것을 통해서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누가 신경을 쓰고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정치에 참여하겠는가. 노무현정부 하에서 더욱 확대되는 외국인투자와 주주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듯하다. 

두 번째 문제점은 열린우리당 소속의원들의 이념성향과 정책입장이 지나치게 다양하고 상충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130명 응답)들은 ‘중도보수’ 10%, ‘중도’ 28%, ‘중도진보’ 56%, ‘진보’ 6%로, 진보(좌파)에서 중도보수까지 실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이념성향 분포는 민주노동당 의원(8명 응답) 모두가 ‘진보’라고 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다양성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민주적인 제도나 지도력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혼란과 혼선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열린우리당이 그간 실제로 보여준 모습이다. 

‘보수개혁’ 이상이 가능하기 위해서

세 번째 문제점은 국회의 의정활동방식과 관련된 것으로 개혁의 동반자인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은 견제하고 수구정당(한나라당)과의 타협을 통해 개혁을 추진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층은 상당부분 중첩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마도 노대통령을 포함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수사적으로는 ‘진보’ 또는 ‘좌파’의 정책을 외치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한나라당과의 협상을 통해 기껏해야 ‘개혁적 보수’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한나라당 등 수구정당과 언론, 사회집단으로부터 ‘좌파정권’이라는 비난을 받게 만들지만, 동시에 열린우리당 지지층 특히 젊은 세대에게 강력한 개혁이미지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좌파 유권자와 의원들을 계속 묶어 두고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지지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동시에 실제로는 한나라당과의 협상을 통해 중도보수적인 정책을 끌어냄으로써 중도층과 중도보수층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는다. 4대개혁입법이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고 함으로써 ‘진보적 지지층’으로부터 지지를 확보하고, 국보법폐지와 동시에 사실상의 대체입법을 도입함으로써 안정지향의 중도와 중도보수층으로부터도 지지를 확보하려고 한다. 과거사 규명관련 입법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입장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심화하기 위한 개혁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그간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이 시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만약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방금 지적한 내부의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거부한다면, 이들이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서 표현된 국민적 시대적 요구인 자유민주주의와 개방적 민족주의를 실현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그러나 그간 노무현 정부에게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이 노무현정부의 실체와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진보정당에게 힘을 실어줄 때, 자유민주주의와 개방적 민족주의는 물론 ‘보다 큰 진보의 이상과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