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회협약 체결, 임금동결? 사회보장제도 개혁!

노동사회

네덜란드 사회협약 체결, 임금동결? 사회보장제도 개혁!

admin 0 3,559 2013.05.12 02:58

매일경제신문은 2003년 10월28일 "부럽다! 네덜란드"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의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정부가 2004년 임금을 동결하는 내용의 "사회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기사는 노조가 사회협약을 통해 "임금동결에 합의하는 대신 사용자단체와 정부로부터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2년 뒤로 연기시키는 성과를 얻어냈다"는 간략한 소개를 실었다. 덧붙여 합의 배경이 된 네덜란드의 악화된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국책연구기관의 입을 빌어 "이번 임금동결 합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네덜란드 노조는 단순한 이익단체의 한계를 넘어 책임있는 행동을 취한다"며 "한국 노조도 이러한 성숙한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훈시를 하였다. 이 기사는 임금동결이 "노동자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인정하면서 2003년 5월에 출범한 연립내각이 "지속적이고 논리적인 대국민 설득과 일관되고 과감한 리더십 발휘로 합의를 도출해 냈다"고 전하고 있다.

한 나라의 노동조합운동과 전체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조직이 왜 매일경제신문도 인정하듯이 "노동자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임금동결에 동의했을까. 필자는 네덜란드 노동조합이 임금동결을 수용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면서 매일경제신문과는 다른 이유에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보장제도 축소를 저지한 사회협약

'임금동결'이 부각된 네덜란드의 2004년 "사회협약"의 내용과 그 과정을 살펴보면 『매일경제』의 기사 내용과는 다른 측면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노동조합운동이 임금동결에 합의한 이유는 정부와 사용자단체의 '경제악화'에 관한 호소에 수긍하여 '어려움을 감내하겠다'는 식의 성숙한 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최대 전국노동조합조직인 FNV는 조합원들이 총투표에서 56%의 찬성으로 잠정합의안에 대한 지지를 밝히자 "이번 협약을 지지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정책의 실현을 위해 새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조합원들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고 "합의문에 서명했다고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다"는 위원장의 말을 담은 보도자료(2003년 11월26일, FNV 보도자료)를 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이 "임금동결"을 수용한 것은 보다 큰 자기 목표와 전략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채택한 결정이었다.

2004년 "사회협약"의 내용과 그 전후 과정을 살펴보면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은 정부의 사회보장제도 축소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과 '전략' 속에서 임금동결을 수용했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은 사회보장제도가 비용 증대 등의 문제로 인해 연대를 실현하는 제도로서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예산 삭감, 연대 기능의 약화 방식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 임금동결을 포함하는 사회협약에 합의한 것이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은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은 사회연대를 핵심 가치로 하며 삶의 질의 향상을 목표로 삼아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협약을 통해 이러한 개혁 논의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했다.

2003년 10월15일 네덜란드의 노동조합(FNV, CNV, MHP), 사용자단체(VNO-NCW, MKB) 그리고 연립내각(CDA, VVD, D66)은 2004년에 진행될 임금 인상을 위한 단체교섭의 방향과 사회정책의 방향에 대한 사회협약에 잠정 합의하였다. 조합원 120만 명으로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FNV는 11월3일 잠정 합의안을 조합원 총투표에 붙여 전체 조합원 중 18%가 투표에 참여하여 56%가 찬성했다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였다. FNV의 지도부가 아무런 의견을 달지 않고 잠정 합의안을 조합원 총투표에 부친 것에 대해 정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FNV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그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조합원 총투표는 구속력이 없는 의견 수렴 절차에 불과하다. 잠정 합의된 사회협약은 11월17일 최고의사결정 기관인 연맹대표자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최종 승인되었고, 그 다음날 협상에 참여했던 3주체가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체결되었다.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교두보 확보

네덜란드 정부는 노동조합의 임금동결 수용의 대가로 지난 2003년 5월, 3개 정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합의한 각종 사회보장제도 축소 및 예산삭감 정책을 보류하거나 폐기하기로 했다. 첫째로는 2005년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던 조기 퇴직과 정년퇴직 전에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에 포함되어 있는 소득세 감면 혜택을 폐지하는 정책을 1년 연기하기로 했다. 이 방침은 단순히 시행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 방향과 내용을 바꾸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조기퇴직제도와 퇴직 전 연금수령 제도의 개혁은 노동자들이 노동과 가족 구성원에 대한 보살핌의 책임에 충실하게 임할 수 있도록 자신의 '노동 생애' 동안 일하는 기간과 일하지 않는 기간을 직접 관리하는 제도를 확립하도록 추진된다. 정부는 이 새로운 제도의 확립을 위해 시행 첫해인 2006년에 8.8억 유로, 둘째 해인 2007년에 7.6억 유로, 그 다음에는 매년 7.6억 유로를 지출하기로 합의하였다.

둘째, 정부는 정리해고로 직장을 떠나는 노동자가 정리해고 수당, 위로금 등 전별금을 받게 되면 실업보험에서 받는 실업자 수당을 전별금에 비례하여 삭감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이번 임금동결 사회협약을 체결하면서 백지화하기로 하였다. 셋째, 정부는 장애나 질병으로 장기 휴직하는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급여 수준을 배우자 소득과 연계하여 계산해서 지급하도록 직업장애질병보험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정책을 폐기하기로 하였다. 넷째, 자기 회사 노동자가 이 보험을 수령하면 기업이 내게 되어 있는 범칙금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기업은 일정한 노동 수행 장애를 안고 있는 노동자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작업조직 개선 등 장애 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그러지 못할 경우 노동자가 계속 보험 급여를 수령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아가 2006년에 신규 직업장애질병보험 수령자가 2만5천명을 넘지 않으면 급여를 5% 인상하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실업보험과 장애질병보험 제도의 장기적인 개혁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제시하는 의견을 바탕으로 추진하기로 약속하고 2004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의견을 제출하기로 하였다.

조기퇴직제도(VUT)는 1970, 80년대 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고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청년 노동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되었다. 조기퇴직제는 노동자가 공식 정년퇴직 연령인 65세가 아닌 55세부터 은퇴(노동시장 탈퇴)하여 정상적으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최종 임금의 60∼80%를 급여로 받는 제도이다. 조기퇴직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통해 기금을 적립하고 정부는 이 적립금에 대해 세금 혜택을 제공하여 노동자가 조기퇴직 기금에서 받는 급여의 실제 가치를 높여 원래 임금과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1991년에만 12만 명의 고령 노동자가 조기에 노동시장을 탈퇴하였다. 네덜란드의 노사는 실업문제와 구조조정 문제 해결 방안으로 직업장애 질병보험 제도(WAO)도 조기 퇴직의 한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장애나 질병으로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직업장애 질병보험에서 최종 임금의 70%를 지급받고 단체협약으로 사용자가 부족분을 채워주도록 하여 원래 임금의 100%까지 보장받는다. 2002년 현재 이 보험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 수는 9만5천명에 달하고 매년 8∼10만 명이 새롭게 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예산 삭감과 휴직 계정 제도

네덜란드 노사는 이러한 제도를 통해 기업의 구조조정과 청년 노동자의 신규 채용을 원활히 해결함으로써 실업률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는데, 사회보장제도와 정부 예산 지출의 재정 부담, 고령화시대의 비용과 노동력 부족 현상이 그것이다. 1999년 현재 네덜란드의 55세 이상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25∼30%로 매우 낮은 편이다. 고령화 사회와 연관된 각종 문제점 그리고 고령 노동자의 경험이 기업 활동에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인식이 새롭게 제시되면서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문제들에 대해 새로 출범한 중도우파 연립정부는 예산 삭감 중심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러한 문제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할 것을 꾸준히 제기하였다. 그 한 예가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새로운 시도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생애 노동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조절,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노력으로 장기 육아 휴직, 아프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을 위한 장기 간병 휴직 등 노동자가 '보살핌'의 의무에 충실할 수 있는 노동제도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마이너스 통장'식의 '휴직 계정' 제도를 도입하여 노동자가 휴직 기간을 다 저축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필요한 경우 미래의 휴직 기간을 앞당겨 사용하고 미래의 노동을 통해 '상환'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제도를 통해서 노동자가 좀 더 오래 노동시장에 머물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정년퇴직제도의 경직성과 조기퇴직제의 사회보장 예산 부담 문제, 고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노동조합은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들의 유연한 노동시간 활용을 위한 작업 조직과 노동 활용 방식의 개선, 고령 노동자의 계속 고용을 위한 직업훈련 교육 보장 등 새로운 제도 확립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60%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제도가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유급노동과 무급노동(보살핌)의 균형을 확립할 수 있는 방법이며 나아가 젊은 세대와 고령 세대 사이의 연대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

임금동결로 각광받는 이번 네덜란드의 사회 협약은 사실 3개 중도 우파 정당들이 연립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정책 협상에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총 130억 유로의 예산을 삭감하기로 합의한 방침을 백지화 하는 결과를 낳았다. 연립내각은 애초에 사회보장 관련 지출 등 공공부문 예산의 대대적인 삭감을 통해 예산 삭감 목표치의 반 이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FNV를 비롯한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은 새 정부의 이러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공격을 "반사회적이고,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으며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규탄하였다. FNV는 환자, 공공부문 노동자, 다양한 사회보장제도 수급자 등과 연대해서 정부의 방침을 저지한다는 투쟁 방침을 세우고 투쟁 상황실을 설치하고 조합원들의 항의 투쟁과 사회 단체와의 연대 활동을 조직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은 전혀 다른 가치를 기초로 삼아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이나 공공부문 예산의 문제를 접근하는 중도우파 정부에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임금 동결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하였다. 임금 동결을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상황도 존재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임금 인상률이 계속 하락했고 2003년 10월의 조사에 의하면 평균 임금 인상률이 2.8%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03년 2/4분기의 국민총생산(GDP)은 1.2% 하락했고 3/4분기에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상태였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은 사회보장제도와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이 득세하고 있는 세계적 상황과 오랜 기간 집권했던 사민주의적 정당이 선거에서 지고 우파정부가 들어선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만 했다. 임금 동결에 합의한 것은 취약 계층과 전체 노동자들의 삶의 질 그리고 노동운동의 핵심 가치인 연대 개념과 직결되어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방어와 발전을 주도하려는 전략 속에서 채택된 전략적 선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운동의 행동을 "성숙한" 것으로 평가하려면 이러한 전략적 노력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