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축구식으론 안된다

노동사회

동네 축구식으론 안된다

admin 0 2,794 2013.05.12 02:46

 

 

dlpwoo_01_0.jpg‘부싯돌은 부딪혀야 불꽃을 낼 수 있다’는 볼테르의 말에 힘입어 민주노총 동지들에게 부딪혀 가는 문제제기를 해 볼까 한다. 필자의 얘기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토론을 위해 던진 얘기이기에 큰 부담은 없다. 우리는 부싯돌보다 부딪혀서 얻는 ‘불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므로.

‘정치개혁’ 없던 노동자대회

민주노총이 개최한 2003년 노동자대회의 주요 요구에는 ‘정치개혁’이 없었다. 민주노동당에게 ‘정치개혁’, 특히 선거제도의 개혁은 생존권 문제이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10% 득표할 경우 27석을 얻고 그냥 현재 선거제도에서는 적을 경우 2~5석을 얻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꾸리느냐 아니냐는 선거제도의 개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거의 혁명적인 얘기 아닌가. 이렇게 되면 손배?가압류나 구속, 수배가 남발되고 비정규직이 폭증하는 노동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는데도 민주노총은 노동자대회의 요구 속에 정치개혁 한 줄 넣는 것에 인색했다. 그나마 노동자집회에서 간간이 나오는 민주노동당을 밀자는 얘기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걸까.

어떤 이는 정치개혁을 10대 요구에 넣건, 5대 요구에 넣건 조합원이 실천토록 하는 집행력이 갖추어 있지 않을 바에야 큰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언으로라도 정치개혁을 조합원 대중의 과제로 제시하고 이것을 지도부가 철두철미하게 전체 조직의 사업으로 벌여나가느냐, 아니면 몇몇 정치위원들이 알아서 하는 사업으로 치부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정치개혁 문제가 연일 신문을 도배하고 온 국민의 화두가 되어 있는데 노동계급의 대표조직이라는 민주노총에서 연맹별 요구는 열거하면서도 정치개혁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추도사처럼 “그만큼 죽었으면, 그 아까운 생목숨들을 그만큼 바쳤으면 영남대승론, 호남필승론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필승론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밝히자

한진중공업 고 김주익 지회장의 장례투쟁에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지도부 대부분이 민주노동당 당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김주익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반노동자적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정치적 단결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얘기는커녕 민주노동당 배지라도 달고 다니는 ‘투쟁 지도부 당원’들을 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한다. “왜 투쟁집회에 민주노동당의 깃발이 보이지 않는가?” 물론 민주노동당 깃발이 나부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살아있는 깃발이 대중투쟁의 지도부 당원들이 아닌가. 민주노동당이 그저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 수준에서 참가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것보다 대중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지도부가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훨씬 강한 메시지다.

그런데 이들은 왜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든 대중투쟁의 자생성에 굴종하는 모습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치 얘기를 하다가 괜히 오해받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조합원들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을까 부담스러워 한다면 이는 정치적 복지부동이다.

노조 간부부터 정치개혁에 관심 가져야

12월9일은 제16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폐회일이었다. 민주노동당 부산시지부는 이날을 부패정치 장례일로 정하고 규모 있는 행사를 열자고 민주노총, 민중연대 등에 제안했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행사를 안내하고 상근 간부들의 참여를 기대했으나 노조 상근 간부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몰랐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행사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일상적인 정치투쟁을 강조하지만 노동조합 간부 당원들을 별도의 정치개혁 투쟁집회로 조직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사실 이들은 선거 때만 활발히 움직인다. 물론 각 지구당에 속해 있는 노조 간부 당원들의 당활동을 평가절하하지 않겠다. 문제는 노동부 항의집회 같은 투쟁에는 그나마 동력이 붙는데 정치개혁투쟁은 아예 기획할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반면 토론회에서 그들은 민주노동당이 대중정치투쟁을 해야 되고, 의회주의, 선거중심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필자 또한 그러고 싶다. 그런데 일상적인 대중정치투쟁을 하고 싶어도 참여를 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기업별 활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조합원 의식이 제약되고 조직의 분산으로 인해 강력하고 집중된 동원을 하기 힘들다는 측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평소에 축적된 정치활동이 없으니 미리 준비해야 하는 총선도 선거가 임박해서야 준비를 하지만 마음만 급해서 일은 뒤죽박죽 되기 일쑤다. 몇 번 선거를 해봤으니 지금쯤 조합원 중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조합원과 그 가족들을 연고자 카드로 관리를 하고 선출된 후보 진영과 함께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별 준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이것은 사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역할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개별 기업의 투쟁 지원부대를 넘어서야

지난 대선 직후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대선잔여금’(?)을 조금 남겨 체계적인 정치사업을 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 대선 때의 특보 같은 신문도 발행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실현되지 않았고 예전과 같은 관성적 실천으로 되돌아갔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투쟁 지원부대의 역할에 발목 잡혀 온 것 같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중요한 집행력들이 단위노조의 투쟁 지원에 발목잡혀 있는 동안 정치사업이나 비정규직 사업 등 총연맹 지역본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사업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민주노총 지역본부 대부분이 그렇듯이 상근 집행간부들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업무분장은 형식이 된 지 오래다. 집회에서 무대 설치하고, 마이크 잡고 선동하고, 선전물 만들고, 노조 간담회도 뛰어야 한다. 그러다 투쟁이 터지면 동네축구가 시작된다. 공이 이리로 굴러가면 우르르 몰려가고 저리로 굴러가면 저리로 우르르 몰려다닌다. 동네축구가 그렇듯 포지션이 없다. 이게 언제적 얘긴데 아직도 동네축구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량배치를 목적의식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총연맹, 지역본부가 기업별 현장투쟁에 목을 매는 관행으로는 결코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 단위조직에서도 정치위원회 사업체계를 담보해야 한다. 지역본부에서는 정치위원회 체계를 만드는데 각 연맹 지부에서 전혀 뒷받침 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조직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올 1월에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있고 지역본부 본부장 선거도 있다. 이것 때문에 정치사업이 모두 멈춰서는 안 된다. 누가 정치위원장이 되든 정치위원회의 조직적 실천체계는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명색이 50명의 민주노총 총선 후보를 출마시키는 조직인데 정치사업이 정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진보와 보수의 구도 만들어야

이제 조만간 엄청난 해일이 닥칠 것이다. 2004년 4?15 총선이라는 해일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4·15 해일에 난파당할 것인지, 아니면 그 흐름을 타고 드넓은 바다로 나갈 것인지 우리가 준비하기에 달렸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4당체제라는 저들만의 잔치에 밀려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졌다. 보수언론들은 허구적 4당체제를 앞세워 민주노동당,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밀어내고 있다. 이대로 무맥하게 대처하다가는 4?15의 격랑에 떠밀려 초라한 성적표를 쥐고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할 지 모른다.

당면한 정치개혁투쟁과 17대 총선 대응의 핵심 컨셉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수 4당체제-그들만의 리그’를 ‘진보와 보수 세력의 구도’로 만들어 민중진영을 ‘진보정치세력화 총출동 태세’로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농민의 대중투쟁,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이라크 파병 반대투쟁 등을 보수정치 규탄 정치투쟁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선전과 선동에서도 4당은 신자유주의 부패?보수 동색임을 폭로하고 노동자·민중의 선택을 부패?보수 동색당이냐 민주노동당이냐로 갈라야 한다. 보수세력이 밀어내려는 민주노동당이 저들만의 잔치를 엎어버리고 당당히 대중정치의 장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모든 민중투쟁에 민주노동당을 당당히 내세우는 목적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동지들이 앞장서리라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