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자에게 사회보험을!

노동사회

비정규 노동자에게 사회보험을!

admin 0 4,226 2013.05.07 06:14

이미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비정규직들은 임금에서만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라 퇴직금이나 학비·주택자금 융자 등 기업복지 그리고 연금, 고용보험 등 국가복지 영역에서도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 노동자 가족의 재생산이 임금 외에 기업복지, 그리고 사회보험 등 국가복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정규직은 이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들은 해고를 당해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 의료보험은 직장 가입자로 등록되어 있으면 사용주가 보험료의 50%를 내주지만 직장 가입자에서 제외된 비정규직은 지역가입자로 등록되어 사용주 보험료 50%지원이 없어 정규직보다 보험료를 2배나 더 내는 불평등이 발생한다. 국민연금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직장에서 국민연금에 가입을 안 해주면 의료보험하고 똑같이 지역가입자로 분류되어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을 장기간 가입하지 않았을 경우 받게 되는 노후생활의 엄청난 불이익이다. 

이삼중의 차별

사회보험에서 가입 제외가 얼마나 엄청난 불이익을 주는지 예를 하나 들어보자. 국민연금이 처음 시작된 1988년부터 1999년까지 11년 동안 국민연금에 자동 가입되어 보험료를 납부해 온 정규직 A가 있고, 1988년 당시 비정규직이어서 현재까지 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 B가 있는데 1999년에 60세가 되어 현직에서 은퇴하여 A는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했고, B는 연금을 못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또한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A, B 모두 전체 가입자 중 월급이 중간에 위치해 있다고 가정하고 A, B 모두 우리나라 평균수명인 76세에 죽고, 그 부인은 9년을 더 살아 85세에 죽는다고 가정하자(평균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오래 살기 때문에). 이 경우 A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고, 자신이 죽으면 그 부인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되므로 총 25년 동안(16년+9년) 연금을 받게 된다. 여기서 A가 11년 동안 직장에 근무하면서 납부한 국민연금 보험료 총액을 99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944만원 정도가 되는데, A와 그 부인이 25년 동안 받게될 미래의 연금 총액을 역시 99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4,368만원이 된다. 따라서 A는 연금제도를 통해 무려 3,435만원(4,368만원-944만원)의 혜택을 보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이라서 국민연금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B는 이 혜택을 1원 한푼도 못 받게 된다. 비정규직 B는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 것이며, 연금을 받는 A와 그렇지 못한 B는 노후생활의 삶의 질에 있어서 '거지와 왕자'에 비유할 수 있다.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대 보험에서 소외된 비정규직

비정규직이 국민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그리고 고용보험에서 얼마나 제외되고 있는지는 정확한 실태조사가 없어서 그 전모를 파악하기 힘드나 기존의 단편적인 연구결과를 보면 최소한 비정규직의 70%에서 50%정도가 4대 사회보험에서 제외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금수준도 낮은 비정규직들은 중병에 걸리거나, 실업에 노출되거나, 늙어서 노동능력이 떨어질 경우, 젊었을 때 재산을 축적해 놓지 않으면 그야말로 비참한 생활을 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비정규직들이 4대 사회보험에서 이토록 많이 제외되어 있는가? 그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보험 확대 과정의 특징이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은 대기업에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들을 먼저 사회보험에 적용하고, 비정규직이나 소규모 기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나중에 보험을 적용하거나 의도적으로 보험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예를 들어 산재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 모두 처음 사회보험을 시작할 때 50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적용하고 점차 300인 이상 사업장 → 100인 이상 사업장 → 10인 이상 사업장 그리고 → 5인 이상 사업장 순서로 적용을 확대 해왔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나 일용직 근로자들은 소득이 부정확하고 자주 사업장을 옮기며, 또한 사업주가 사업자 등록을 안하고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험료를 징수하고 가입자격을 확인하는 등 사회보험 관리상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또한 고용기간이 짧은 임시직, 계약직 같은 경우도 보험관리상 행정적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온 것이다. 또한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들을 사회보험에서 제외시키면 보험료의 사용주 부담분 50%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노동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당장 먹고살기 힘든데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해 보험료를 납부한다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험가입을 기피할 수도 있다. 더러는 사회보험을 신뢰하지 않아서 보험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말하면 비정규직이 사회보험에서 배제된 이유는 사회보험 행정관리상의 잘못과 사회보험의 신뢰도 저하, 사용주가 노동비용을 줄이려는 동기 그리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위험에 대한 대처 능력 부재(연금과 의료보험의 경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노동자 절반이 혜택 못누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배제 문제가 쟁점으로 되면서 그 동안 정부에 의해 여러 가지 개선 조치가 이루어졌고 노동운동에서도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는데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먼저 근로기간 규정 단축을 통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확대를 추구해 왔다. 고용보험은 최초 입법시 근로기간이 3개월 미만, 그리고 주당 30.8시간 미만인 근로자를 당연 적용에서 제외시키던 규정을 98년 10월부터 1개월 이상, 월 80시간 이상(주당 18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를 당연 적용시키는 쪽으로 법령을 개정하여 시행에 들어갔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도 98년 10월부터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국민연금도 임시·일용직 등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제외되어 있었으나 최근 입법 예고된 국민연금법 시행령에는 고용보험과 동일한 기준으로 근로기간 규정을 변경하여 2001년부터 이들은 사업장가입자로 전환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사용주의 부담을 늘린다는 이유로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제도가 개선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의료보험의 경우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와 1개월 이상 근무하는 단기간 근로자를 모두 직장 가입자로 전환시키는 조치가 2001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에 있다. 산재보험의 경우 비정규직은 원천적으로 보험 가입자가 되며, 2000년 7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되었다. 최근의 사회보험 확대 적용의 결과 사회보험의 가입자가 어느 정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고용보험의 경우는 97년 말 적용 근로자수가 428만명에서, 99년 말에는 605만명으로 약 177만명의 근로자가 추가로 가입되었다. 177만명의 추가 적용근로자 중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적용규모를 구별하기는 어려우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후자의 규모가 약 7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산재보험의 경우는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이후 99년 말 744만명에서 약 1백만명 정도의 적용자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는 지역 가입자로 분류되어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사업장 가입자로 전환시키면 약 177만명 정도가 직장가입자로 전환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2∼3년간의 '불완전 고용 근로자'에 대한 4대 사회보험의 확대적용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근로자가 아직도 사회보험망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99년 말을 기준으로 볼 경우 고용보험은 전체 임금근로자 중 52.7%(약 646만명 추정), 산재보험의 경우는 40.6%(약 508만명 추정), 그리고 국민연금의 경우는 47.8.2%(약 598만명)의 임금근로자가 아직도 제외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아직도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4대보험 통합 관리해야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장을 사회보험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책이 개선되어야 한다. 먼저 확인할 것은 비정규직을 사회보험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법적 조치, 즉 사회보험 당연 적용 기준 중 고용기간의 축소, 주당 근로시간의 축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확대 등의 조치는 이미 법률적으로 조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거나(고용보험, 의료보험, 산재보험), 앞으로도 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국민연금) 여러 가지 여건상 당연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 적용 규정을 법적으로 더 강화할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두 가지 정도의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첫째는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잦은 사업장 이동, 부정확한 소득 파악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이들을 위한 별도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건설근로자퇴직공제제도' 같은 제도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제도는 노동자간의 연대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실망감을 안겨주고, 또한 행정적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기존 사회보험제도의 확대 적용에 대한 행정적 시행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즉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가 사회보험에 배제되는 이유를 '누가 적용 대상이며', '적용 대상자의 소득은 얼마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또한 '사업주에 대한 보험료 징수의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사회보험 대상자의 자격 확인, 보험료 부과, 징수의 강제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필자는 이 방안이 실효성 있게 시행되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는 상당히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세사업장의 근무하는 근로자와 비정규직들의 신상에 대해 사업주가 정확하게 사회보험 행정기관에 신고하게 되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의 적용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여기서 4대 사회보험의 자격관리, 보험료 부과·징수 기능을 한 기관으로 이관시키자는 '4대 사회보험 통합론'과 맞물리게 된다. 이 방안은 4대 사회보험이 동일한 대상자에게 별도로 사회보험 관리를 하지말고 한 기관에서 하게되면 그만큼 사각지대도 줄어들고,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근로자가 있다고 한다면 이 근로자는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이 모두 적용되는데 지금처럼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의 기관이 나누어서 별도로 사회보험을 걷지 말고 한 기관에서 모두 처리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보험에서 보험 대상자가 되면 다른 보험에서는 자동적으로 보험가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사각지대가 줄어들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영자의 사회보험 관리까지 염두에 둔다면 아예 다른 나라처럼 사회보험료 징수를 국세청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사회보험료를 아예 국세청에서 걷고 있다. 사회보험의 자격관리, 보험료, 부과징수 기능을 국세청으로 이전하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확대는 훨씬 더 가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권리 찾기 나서야

비정규직이나 영세 사업장 근로자를 사회보험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있어서 행정체계의 정비 외에 보험료를 부담하는 당사자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월급 수준이 너무 낮아 보험료 납부에 부담을 느끼는 근로자 계층이 많이 있다.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경우 모두 소득 수준이 낮아 사실 보험료 부담이 생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소득기준을 정해 놓고 아예 저소득근로자를 보험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다른 제도를 통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며 저소득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국가의 재정이 투입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일정 소득 이하의 저소득 근로자에게는 보험료의 일부를 국가재정에서 납부해 주거나 혹은 일종의 가입기간인정제도(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동안 보험료를 납부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 예를 들어 육아휴직한 여성의 경우 3년 동안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보험료를 납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임)같은 것을 두어 보험료 체납으로 인해 사회보험의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태를 막을 필요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이다. 즉, 비정규직 스스로 사회보험에 대한 적극적 권리 찾기 운동이 필요하다. 사회보험에 가입하면 사용주의 보험료 부담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의료나 실업같은 사회적 위험에 훨씬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지난 100년간의 사회보험의 역사는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사회보험은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무서운 괴물이 아니다. 노동자가 사회보험을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 구조만 확보하면 노동자의 삶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사회보험은 타도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민주화시켜야 할 대상인 것이여 이는 온전히 노동자 당사자의 몫인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