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죽이기

노동사회

국민연금 죽이기

admin 0 3,254 2013.05.12 12:15

요 즈음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생각은 "국민연금? 그거 세금 아니야? 나중에 연금 받을 수는 거야?"일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들은 국민연금을 매우 심한 불신하고 있으며, 매달 내고 있는 보험료를 일종의 세금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은 까닭은 국민연금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불신을 조장한 일부 언론에게도 그 책임이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을 책임져야 할 정부에게 있다.

정부가 한편으로는 국민연금과 관련하여 "기금이 고갈된다. 직장인만 봉이다"라며 국민들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언론들의 보도는 차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소득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 국고지원 확대, 보험료 상한선의 폐지 등 재정안정화를 포함한 제도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기금운용 및 국민연금제도 운영 전반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함에도, 전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매달 보험료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도 기금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주식에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정부가 얼마나 기금을 빌려쓰고 있는지 등을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러한 상황을 정부 스스로 자초해놓고선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조금만 지나면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되어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보험요율은 높이고 연금급여율은 낮춥시다"라고 하면 어느 누가 "그래 그거 고쳐봅시다"라고 할 것인가? "그거 이 참에 없애버립시다"라는 반응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국민연금 거부하게 만드는 개정안

정부의 국민연금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요율과 연금급여율의 조정, 기금운용위원회의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우 선 정부는 장기재정추계의 결과 향후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화를 위해 현행 9%인 보험요율을 2010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15.90%로 상향조정하고, 60%인 연금급여율은 2008년까지 50%로 하향조정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장기재정추계는 재정적자의 폭을 늘려 잡을 수밖에 없는 변수들을 사용하였다는 점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재정추계의 변수로 사용한 통계출산율을 적용하면, 2150년경에는 우리나라의 국민이 하나도 없게 되는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자료이다. 여기에 공적사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영국, 일본 등의 나라들이 재정추계시 60년의 기간을 설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70년이라는 과도한 추계기간을 설정하여 재정적자의 폭을 대폭 늘려 잡았다. 다시 말해 정부는 보험요율과 연금급여율을 조정하기 위해 재정적자 폭을 늘려 잡을 수밖에 없는 변수들을 설정한,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재정추계를 내놓은 것이다.

다음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는 21명의 위원 가운데 가입자대표가 과반수를 넘는 즉, 12명의 가입자 대표가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으로 되어 있어 형식적으로나마 가입자들의 대표성이 확보되고 있다.1) 그런데 정부는 '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대표가 과반수가 넘게 차지하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을 9명으로 축소하고 가입자대표도 4명으로 축소시켰다. 여기에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는 현재 100조가 넘고 있는 막대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담당 부처를 보건복지부에서 총리실로 이관하려고 시도하고 있어, 국민연금기금을 주식시장에 퍼부어 넣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결국 정부 개정안의 핵심적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오히려 가뜩이나 국민연금에 대해 극심한 불신을 갖고 있는 국민들로 하여금 국민연금 자체를 거부하도록 만드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정부역할이 강화돼야

국 민연금제도는 공적사회보험으로서 정부 또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정부기관에 의해 전 국민의 노후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인 만큼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국고지원의 확대이며,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제도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우선 정부의 국고지원이 필요하다. 공적사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노령연금 급여액 지원, 당년도 수지 적자분 지원, 기초연금액 지원 등 비록 그 형태는 다양하나 조세를 통한 국고를 지원함으로써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경감시키고 있다.2) 따라서 정부는 다른 나라들의 공적사회보험제도에 대한 국고지원을 애써 외면하지 말고, 또한 재원마련이 어렵다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지말고 현재의 국고지원 수준을 보다 확대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국고지원을 위한 재원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은 작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이 제기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아 이미 한 차례 그 제도의 필요성이 검증된 부유세의 도입이 있을 수 있다. 부유세의 도입으로 가능한 재원은 11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현재 GDP대비 10% 수준인 직접세의 비중을 OECD 가입국 평균수준인 15∼16% 수준으로 높이면 약 25-30조원의 재원이 추가적으로 마련될 수 있다. 또한 정부 예산 가운데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방비인데, 이 경우 2002년도에 17조였던 예산이 2003년도에 22조원으로 대폭 증액되었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부문에 투여되는 예산을 과감히 삭감하여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한 지원과 사회복지예산으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국민연금의 공공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행 보험료상한선 폐지, △고소득자영업자들의 정확한 소득파악, △소득재분배의 성격강화를 위한 연금산정식 균등지수 강화 등이 필요하다. 즉, 현행 연금보험료의 부과 기준이 되는 최저 22만원, 최고 360만원이라는 보험료 상한선을 폐지하여, 약 68만 명으로 추산되는 보험료 상한제도의 혜택자들에게 소득에 비례한 보험료 부과를 하여야 한다. 또한 정부의 의지만 강력하다면 고소득자영업자들의 정확한 소득파악은 가능하다는 것이 개혁적 조세전문가들의 지적인 만큼 정부는 이들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엄격한 소득파악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여기에 소득재분배의 성격을 강화시켜주는 연금 산정식의 균등지수와 비례지수의 비율을 현행 1:1에서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 이전인 1:0.75로 복원시켜야 할 것이다.3) 이 외에도 일정금액 이상의 연금급여에 대한 과세제도 도입, 특수직역연금과의 연계성 강화도 적극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추가 제도개혁 필요

이상과 같은 정부의 역할강화 이외에도 다음 몇 가지 제도개혁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첫 째,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지역가입자 등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약 6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국민연금 미가입자를 방치한 채, 다시 말해 전 국민의 3분의 1이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 상황에서 보험요율과 연금급여율의 조정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둘째,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눈초리에는 기금운용에 대한 의구심도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민주화와 상설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미 기획예산처가 59개 연기금의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상황이며,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을 장악하기 위해 연금기금관리위원회를 총리실 산하로 이관하려는 노골적인 행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은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들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정부의 사금고로 만들려는 정책은 즉각 철회되어야 하며, 가입자의 통제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국민연금

정 부의 이번 국민연금제도 개편은 최종적으로 공적연금제도를 사적연금시장으로 완전히 대체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는 사적생명보험시장의 확대와 맞물려 있는 바, 2002년 현재 사적생명보험 시장이 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49조 원을 보험료로 거두어들였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정부가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나 몰라라 방치하면서 국민연금제도를 후퇴시키는 동안 사적생명보험시장이 공적연금제도의 영역을 서서히 잠식하여 엄청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정부는 기업과 함께 노후생활 보장의 다층체계의 구축이라는 미명 아래 현행 퇴직금제도를 없애고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이러한 일련의 정책변화는 국민연금/기업연금/사보험의 다층체계로 공적연금제도를 재편하려는 기도인 것이며, 이는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의 최대이자 최후 보루인 사적연금시장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사적연금시장으로의 진입이 어려운 저소득계층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제도의 도입 취지를 국민연금법 제1조는 "이 법은 국민의 노령·폐질 또는 사망에 대하여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8월19일 입법예고 된 국민연금 개편안이 이러한 법 도입의 취지에 과연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 것일까?

후주
1) 여기서 형식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가입자대표의 구성이 민주노총, 한국노총, 금융노조 등 노동계 대표 3인과 참여연대 1인을 제외하고는 경총, 전경련, 중소기업중앙회, 공인회계사회, 음식업중앙회,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이 가입자대표로 참여하고 있어 실질적인 가입자 대표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소득비례일원형 연금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총급여지출의 20%와 수지적자 발생 시 국고지원을 보장하고 있으며, 스웨덴의 경우는 급여지출의 20%를 역시 국고지원 하고 있다. 이 밖에 기초연금과 소득비례 이원형 연금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에는 기초연금에 대해 당년도 수지적자분의 최대 17%까지 국고지원을 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기초연금에 대해 급여지출의 1/2을 국고지원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정부의 국민연금 국고지원은 농어민에 대한 보험료 지원(최저등급 22만원 소득자의 보험료 1/2)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관리운영비 1/2 등 약 570억원에 불과하다.
3) 애초 국민연금은 도입 초기부터 소득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부를 이전하는 즉, 소득재분배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소득재분배의 성격은 연금산정식이라는 조금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계산식에 의해서 가능했다. 다시 말해 아래의 연금산정식 가운데 균등지수를 나타내는 A와 비례지수를 나타내는 B에 의해 소득재분배의 성격이 나타나는데 이 A와 B의 비율이 높을수록 소득재분배의 성격은 강하게 된다. 예컨대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평균 소득이 150만원이라고 하면 15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수령하는 연금액보다 적은 연금액을 받게 되고 150만원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원래 자신이 수령하는 연금액보다 더 많은 연금액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이 A와 B의 비율이 1:0.75이었던 것이 1998년 국민연금법의 개정 시 1:1로 바뀌어 소득재분배의 기능이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연금산정식 = 1.8(A+B)(1+0.05n)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