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도 환경문제에 관심가져야

노동사회

노동조합도 환경문제에 관심가져야

admin 0 3,731 2013.05.12 12:12

지난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2백90여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서해의 풍광 좋은 섬 위도에서 부안군의 격포항을 향하던 배가 침몰하면서 일어난 이 사고는 위도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잊혀졌다. 그리고 10년 뒤, 위도가 다시 연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7월14일 부안군수가 위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하기로 신청한 이후, 정부는 위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17년 이상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반발로 핵폐기물처리장 설치를 미뤄온 정부는 이번에는 기필코 성사시킬 태세다. 여기에 부안 군민들과 환경단체들도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저항하고 있다. 현재 부안은 전쟁 중이다.

사실 부안군에서 볼 수 있는 정부와 지역 주민들이 대립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미 우리는 89년 영덕, 90년과 92년 안면도, 91년 영일, 94년 양산·울진, 그리고 95년 굴업도에서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갈등을 보아왔다. 이 싸움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안긴 후, 해당 지역에 핵폐기물처리장을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백지화하는 것으로 끝이 나곤 했다. 이번에도 똑같이 그렇게 반복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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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31일 핵폐기장 반대 해상시위가 벌어진 전북 부안군 격포항에 반핵깃발을 단 200여척의 어선들이 모여있다.  - 출처:오마이뉴스 ]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 정부

핵폐기물은 핵발전소를 운영하면서 부산물로 나오는 쓰레기이다. 다른 쓰레기와 결정적인 차이점은 이것이 인체나 환경에 매우 유해한 방사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핵폐기물은 환경과 300년에서 1만년 이상 격리해 보관해야 한다. 핵발전을 하고 있는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를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최소한 300년 이상 핵폐기물을 격리할 부지를 선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300년 이상 관리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핵폐기물처리장을 설치하는 데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17년 이상 똑같은 식으로 동일한 갈등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정부에 큰 책임이 있다.

잠시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2001년 4월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RC) 산하의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BRWM)가 발간한 보고서는 핵폐기물처리장 부지를 선정할 때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나는 지역 주민을 포함한 대중과 모든 것을 터놓고 논의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과학자들에 의한 동료심사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먼저 지역 주민들에게 핵폐기물처리장과 관련된 충분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더 나아가 이미 결정된 내용이라도 다시 번복될 수 있도록 정책 과정을 단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핵폐기물처리장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고려했을 때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빼놓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밀실에서 결정한 후,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보고서는 정부 부처나 핵 관련 기구의 자체 인력이 만들어낸 연구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료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이를 발표하려 노력하며,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외부의 과학자들에게 검증하는 과정을 거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부 부처나 관련 연구 기관들의 보고서가 매번 주민들이나 환경단체의 불신을 받아온 전례를 본다면, 정책 결정자들이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한 지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위도를 부지로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다 무시했다. 과거 17년 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모든 결정은 주민들이 배제된 채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갖가지 협잡과 기만, 의혹이 주민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핵 관련 기구의 자체 인력으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가 불과 몇 주만에 결정한 적합성 여부 결정도 불신만 더 키우고 말았다. 이번 갈등도 결국 정부의 패배로 끝이 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도 이런 ‘기본이 안 된’ 정부의 처신 때문이다. 정부의 밀어붙이기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곧 한국 사회가 여전히 몰상식이 통하는 후진적인 사회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핵에너지 적합치 않아

현재 우리나라는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이용한 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면서 핵발전의 비중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 현재 약 40%를 보이고 있는 핵발전에 대한 의존도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가 기를 쓰고 핵폐기물처리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도, 앞으로 핵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계속 높이기 위해서는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이 계속되는 한 핵폐기물처리장을 둘러싼 갈등은 끊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화석연료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핵에너지 정책은 과연 타당할까?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현재 핵발전은 전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대중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전국 58개의 핵발전소가 가정용 전기의 4분의3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1998년 여론조사에서 핵에너지에 호의적인 사람은 불과 7%에 불과했다. 핵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50%를 넘었던 스웨덴은 1980년 국민투표로 아예 모든 원전의 폐쇄를 결정한 상태다. 이런 사정 때문에 1970년대 전세계적으로 700%의 증가율을 보였던 핵발전소는 1990년대 들어 5% 미만으로 증가율이 감소했다.

대중들의 핵발전에 대한 큰 불신은 핵발전소의 사고 위험성과 앞에서 언급한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에서 비롯한 것이다. 최근에는 핵발전소 테러에 대한 공포까지 겹쳐 대중들의 불안은 더욱더 커졌다. 여기에 더해 핵에너지가 결코 무한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료인 천연 우라늄 등도 언젠가는 고갈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것마저도 모두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대중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막대한 홍보와 시설 설치에 따른 보상, 핵폐기물 처리 등 사후 관리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고려한다면 그 경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더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 이번 부안 주민들의 반발과 같은 사회 갈등을 더한다면 핵에너지는 가장 비효율적인 에너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OECD 국가들을 비롯한 핵 선진국들이 앞 다퉈 핵에너지 정책을 포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핵에너지 의존도가 두 번째로 높았던 벨기에는 작년에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2025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독일도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스페인도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노동운동은 반(反)환경운동인가

tyio_02.jpg새삼 연초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금 세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에너지다. 지난 전쟁에서 이라크의 석유를 놓고 러시아, 미국, 중국, 유럽 등 세계  열강들이 머리를 굴렸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략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인 우리나라는 2000년 기준으로 석유 소비 증가율은 세계 1위이고, 에너지 소비 증가율(10년간 평균)은 세계 2위이다.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확보를 위한 무한 전쟁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에너지 전환’을 고민할 때인 것이다. 화석연료나 핵에너지가 ‘미래 에너지’가 될 수 없다면 시급히 태양, 풍력에너지와 같은 대안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우리보다 에너지 사정이 훨씬 나은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2010년까지 대안에너지 비중을 10% 이상 높이겠다고 표방한 것도 사정의 시급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핵폐기물처리장과 같은 갈등을 통해서 ‘에너지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앞장서 이끌어야 할 정부 관련 부처들이 오히려 핵에너지 정책이 지속되어야 함을 강변하면서 대안에너지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대중들을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정부는 올해 핵에너지 연구개발을 위해서 1천9백11억원을 투자하기로 확정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4년 동안 대안에너지 개발에 정부가 투자한 금액은 1천2백6억원이다. 이런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어서는 절대로 ‘에너지 전환’은 가능하지 않고 핵에너지 정책도 폐기되지 않는다. 결국 정부가 ‘에너지 전환’에 나서도록 대중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에너지대안센터를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에 대한 다양한 실천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메아리가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노동운동이 에너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한 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더 찾기 쉬울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반대하는 에너지 산업계의 이해는 대부분의 경우 해당 노동조합의 이해와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건설노조와 광산에너지노조는 핵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에너지 전환’을 정면으로 거부해 왔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7월 중순 핵폐기물처리장 최종 유치신청에 즈음해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비롯한 관련 업체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핵폐기물처리장을 홍보하는 신문 광고를 낸 것이다. 한수원 노동조합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광고를 낸 것이라면서, 노동조합이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한수원 직원들이 인터넷 여론조사에 대거 참가해 결과를 편향되게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도 그들은 “노동자들이 자기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알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이런 노동조합의 편향은 ‘에너지 전환’을 늦출 뿐만 아니라 결국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전환’이 대세인 이상 언젠가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따라 일자리를 잃는 등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더 위험한 것은 결국 ‘에너지 전환’ 의제 자체가 정부와 일부 거대 기업에 독점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일부 거대 기업들이 대안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에너지 체제를 독점하면서 노동자ㆍ민중에게 속박을 강요하는 일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경우에는 기존 에너지 산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ㆍ민중이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노동-환경의 연대 절실해

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부터 ‘에너지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해당 에너지 산업의 장단점과 위험성을 잘 알고 있고 ‘에너지 전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이다. 이런 핵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먼저 핵산업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의 대세에 맞춰 기존 핵산업의 위험을 관리하는 것으로 정부 정책의 방향을 바꾸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차피 기존의 핵발전소는 향후 몇 십년 동안 가동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며, 그 이후에도 폐쇄된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데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에너지 산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이런 흐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의 상급단체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의제로서 ‘에너지 전환’을 설정하고 토론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에너지 산업계의 일자리 확보, 에너지세 신설 등 노동자 민중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노동운동의 급진성이 현저히 약하다고 평가받는 북미지역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올바른 이행(Just Transition)’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 환경친화적 에너지 체제 추구 등을 포함하는 지속가능한 경제(Sustainable Economy)로의 전환을 꾀하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Blue-Green Alliance)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 노동운동에게 이런 흐름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다행히 8월13일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전국민중연대는 “핵폐기물처리장 강행을 중단하고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환경, 여성단체와 함께 공동으로 발표했다.

우선 노동운동이 부안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전쟁 중인 부안 주민들에게는 외부의 지지와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부의 핵정책에 맞서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내는 싸움을 부안 주민들에게만 그냥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부안에서 안면도나 굴업도 주민들이 외롭게 싸워온 과거의 일을 반복하지 말자. 정부가 과거의 행태를 반복한다면 우리라도 달라져야 할 것 아닌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