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모델은 낡았는가

노동사회

독일 모델은 낡았는가

admin 0 3,754 2013.05.12 12:10

요즘 국내 여러 일간지에서 '노동자 천국 독일', '미국 생산성이 높은 것과 반대로 유럽의 경직된 붉은 깃발에 기인한 노동시장 경직성', '독일 - 빛 바랜 노조공화국이 복지천국 만들려다 일자리 없애', '무너지는 독일경제', '백수 먹여 살리다 독일경제 거덜난다', '독일, 유럽 경제의 짐으로 부상' 등의 기사 타이틀이나 내용을 가진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독일 상황을 전통적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아온 영국과 미국 등의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언론매체(파이낸셜타임즈, 비즈니스위크,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 저널)들을 근거로 한 독일 모델에 대한 논의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독일 노동시장의 상황에 대해 편파적이고 피상적인 단면만을 알린다는데 문제가 있다. 독일의 노사관계나 노동시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적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최근 독일 통일 이후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분석도 필요한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좀더 진지하고 깊이 있는 독일모델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우리 노사관계 제도의 개혁이 고민되기를 바라면서 독일 노사관계모델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노사관계의 특징

독일에서는 임금결정, 숙련양성, 실업문제, 노동자 경영참여를 비롯한 노동시장 정책을 결정할 때 노동조합이 깊이 관여하고 있어 노사관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독일의 노사관계는 영미식과 같은 단체교섭은 산업이나 지역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동시에, 기업이나 작업장 수준에서 공동결정 참여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어 두 가지 형태의 근로자 이해를 대변하는 '이중대표제도'(dual representation system)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또 독일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높은 성장잠재력만큼 독일의 노동시장에서는 분배가 강조되어 실업자 등에 대한 사회보장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대량해고가 어려워서 고용안정이 강조되며 장기적인 시각의 지속적인 숙련양성이 요구되는 사회적 합의형 숙련양성(corporatistic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제도를 갖춘 다소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어떤 시기에나 우월한 경제 및 사회적 성과를 낳는 노사관계 모델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1950년대와 1960년대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미국식의 노사관계가 모델로 각광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스웨덴 모델이 주목을 받았고, 1980년대에는 일본 모델이나 독일 모델이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스웨덴, 일본, 독일 모델은 고실업을 낳고 기업의 유연한 구조조정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2000년대에는 일본의 장기불황과 독일의 통일 이후의 경제적인 후유증이 증대되면서 상대적으로 유연한 노동시장을 기반으로 한 영미식 노사관계가 모델로써 주목받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 세월이 좀더 흐르면 다른 새로운 모델이 영미식 모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될지도 모른다. 한 국가의 노사관계 모델이 영원히 우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독일 노사관계모델은 영미국가와 비교했을 때 몇몇 측면에서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독일 모델의 강점

자본주의 기업을 운영할 때, 협상과 타협을 기반으로 하는 영미식 단체교섭이면 노사간 분쟁의 불씨들이 해소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교섭 위주의 노사관계는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관계를 항상 불신과 대립으로 지속되게 한다. 

반면 독일식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의 주요한 전략적 결정(회사의 해외투자 결정 등)이나 회사내의 감원, 재교육과 같은 작업장 수준의 결정에서 종업원평의회나 이사회의 근로자 대표들의 동의나 협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것은 사용자의 경영권이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에서 보면 최종 결정에 시간이 많이 소모되어 비효율성을 낳을 수 있으므로 그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근로자들의 공동결정권은 경영자들이 좀더 전문성에 기초해서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저임금에 기초한 저가격 상품전략의 추구에 몰두하는 것을 막아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아는 독일의 자동차나 공작기계 등의 제조업 상품들은 한국이나 중국은 물론 일본의 가격 경쟁도 피할 수 있는 고품질의 상품과 성능에서 경쟁우위를 가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실업자에 대한 관대한 사회보장제도는 이들의 재취업 동기를 줄여서 장기실업을 유도하고,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근로자들의 공동결정권은 고용 창출을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인과관계도 존재하겠지만,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독일은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최근에 두드러지고 있는 노동자 계층간 소득불균형이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 또 해고를 제한하는 경직적인 관행은 채용을 신중하게 하고 근로자들에 대한 재교육과 재훈련에 많은 투자를 하도록 하여 이들이 새로운 작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

독일의 사회적 합의형 숙련양성제도는 18세 전후의 청소년들의 2/3 정도가 참여하는 이중도제훈련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훈련은 직업학교의 이론 교육과 회사의 도제 현장 훈련이 결합하여 이론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실습 능력의 배양을 강조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보통 2년 반 정도의 장기적인 훈련과정을 통해서 관련된 업무의 기초부터 세분화된 전문 분야까지 섭렵을 하게 한다. 또 직업학교와 회사 도제훈련의 운영과 관련된 정책 변화의 결정에는 노동조합, 사용자, 정부(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훈련 교사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구조를 가지고 있다. 

숙련양성과 관련해서 훈련생이나 회사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강조되는 영미식의 잣대로 보면 이 제도는 지나치게 경직적이고 비효율성을 낳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제도를 통해서 양성된 숙련 인력은 독일이 고부가가치 상품전략을 추구하는데 중요한 인적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독일 제조업의 근로자들은 영국이나 미국과 비교하여 숙련 수준이 높고, 여러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다기능공이며, 생산과정에서 성실한 태도나 높은 인내심을 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이러한 근무태도나 자질은 이중도제훈련에서 길러진다. 

영미식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어

영미식의 잣대인 경제 주체의 선택의 자유나 양적인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하는 외국 제도의 평가는 상당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피상적인 현상만을 보고 단편적인 논리로 기사를 만드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그러한 평가 작업을 하기에 적절치 못하다. 

독일식 노사관계 제도의 강점에 대한 논의는 이 제도가 다른 나라의 노사관계 개혁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내의 노사관계를 보면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이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용자나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협력과 타협보다 갈등과 불신이 지배적이다. 또 IMF 경제위기 이후에 장기실업자들이나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효과적인 사회보장제도의 구축이 절실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의 청소년들은 공업고등학교나 공과대학 교육을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식 공동결정제도, 사회보장제도, 숙련양성제도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의 폐해와 노사관계제도의 문제를 상당부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국내의 경제 및 사회적 문제들을 개혁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독일 토양에서 자라고 성과를 내는 모형들이 우리 토양에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선 제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우리 문제를 분석하고, 나아가 우리 토양에 맞는 해결책을 강구하는 자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