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나이키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노동사회

포스코, 나이키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편집국 0 11,377 2013.05.22 09:52

1993년 이후 노사문제에서 한발 비껴나 있던 포스코가 2006년 노사관계의 ‘핵’으로 부상했다. 참여정부에서 58명이라는 가장 많은 구속자를 양산한 ‘포스코 포항본사 점거사태’를 둘러싼 노사대립 때문이다. 대량 구속, 하중근 조합원의 죽음, 포스코의 손해배상소송, 불법 하도급의 구조적 문제 등이 뒤엉켜, 농성은 해산됐지만 사태의 실질적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이번 노사갈등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된 것은 노동자의 ‘폭력성’과 ‘불법성’이었다. 포항건설노동자들이 당사자도 아닌 “남의 회사” 포스코를 불법으로 점거했다는 것,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외면한 채 “집회와 폭력시위만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건설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와 그 동안의 단체교섭 과정은 모두 외면되었고, 불법과 폭력의 ‘상징조작’ 속에서 정권과 자본은 그들의 철옹성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과 분노에 찬 요구를 계속해서 외면한다면 제2, 제3의 포스코 사태는 더 확대된 형태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이번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포스코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번 사건을 CSR과 연관시켜 살펴보는 이유는 포스코가 국내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잘 수행하는 대표적 기업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2004년 경실련의 “경제정의기업대상”, 2005년 전경련과 『서울경제신문』의 “존경받는 기업 대상”, 『포천』(Fortun)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철강부문 1위”에 선정되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CSR은 노동문제와는 상관없는 것일까? 1만 7천여의 직원 중 조합원이 단 20명에 전임자가 4명인 비정상적인 상황을 포스코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당노동행위 혹은 부당한 노사문제 개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배치되지 않는 것일까? 게다가 이번 쟁의의 가장 큰 쟁점은 포스코의 사용자성 문제였다. 법률적 논란은 젖혀 두더라도, CSR을 주요 경영방침으로 내세우는 포스코가 이번 사태에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을 과연 합당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포스코의 두 얼굴, “존경받는 기업”과 “노동탄압 기업”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경제의 세계화와 다국적기업의 영향력 확대를 계기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개념이다.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기업 규모가 커지고 사회의 구성단위로서 기업 비중이 커지는 한편에서, 다국적기업(또는 대기업)의 비윤리적 경영이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CSR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CSR은 기업의 책임은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에 국한된다는 전통적 시각을 배격하며, 기업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성과, 환경적 성과 등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영미식의 ‘주주모델(stockholder model)’보다는 기업의 행위는 기업의 이해당사자, 즉 주주, 종업원, 노조, 소비자, 공급자, 하청기업, 지역사회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해당사자 모델(stakeholder model)’과 친화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CSR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53년 보웬(Howard Bowen)이 지은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책에서였다. 보웬은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기업가에게 주어진 사회 전체의 목적이나 가치에 알맞게 자신들의 정책을 추구하고 의사결정을 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에 옮기는 의무”라고 정의하고, “기업의 사회에 대한 경제적?법적 의무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무를 넘어서 전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후 CSR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으나 학문적 논의와는 별개로, “기업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역할” 정도로 개념이 정립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기구들도 CSR을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다국적기업 및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노동의 근본 원리 및 권리에 대한 선언(1989)’을 발표했으며, 국제연합(UN)은 ‘세계협약(Global Compact, 2000)’을 추진했다. 또 경제개발기구(OECD)는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CSR을 기업의 핵심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UN은 세계협약의 연장선에서 국제표준기구(ISO)와 협력하여, 사회적 책임의 국제표준 지침인 ‘ISO 26000’을 2008년까지 만들 계획을 갖고 추진 중이기도 하다.

한국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미지 개선?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CSR운동이 확대되고 국제기구에서도 표준화 작업이 추진됨에 따라 국내기업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05년 말 현재 국내기업 중 CSR의 추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속가능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를 발간하는 곳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SDI, 포스코 등 6개다. 이 기업들이 다른 기업보다 CSR의 수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CSR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즉 한국 기업들은 CSR을 지역 및 사회 등 이해당사자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공헌’으로 축소?왜곡하여 사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에서 CSR은 사회공헌활동으로 축소되었으며, 급기야는 이른바 공익연계 마케팅(Cause-Related Marketing)이라는 ‘기업 이미지 개선작업’으로까지 변질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기업들은 CSR의 주된 지표 중 ‘윤리경영’, ‘사회공헌’, ‘투명경영’ 분야에는 관심을 보이나, ‘지배구조’, ‘환경’, ‘인권’, ‘노동’ 분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다.

2006년 7월 발간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의 『2005 기업 및 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경련은 “한국 주요 기업들의 사회공헌비용이 2004년 1조를 넘은 이후 매년 10%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으며, 2005년에는 1조 4,025억원이 집행되어 이제 일본기업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을 금액에서 다른 국가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 기업 오너들은 개인 기부를 거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공헌활동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재단’이 재벌 가문들의 비정상적 재산상속을 위한 조세회피 수단으로 널리 활용돼 왔다는 역사적 상황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 외에도 전경련의 보고서는 CSR 보고서로서 보고서 표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CSR에서 주요 이해당사자의 문제인 노사관계, 근로조건 등에서 구체적인 언급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뇌물공여, 공정거래법 위반 등은 전혀 보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조 항목이 없는 포스코의 지속가능보고서

포스코는 CSR 경영에서 다른 국내기업에 비하여 비교적 앞선 예로 꼽힌다. 2003년부터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기업지속가능성 관리팀’을 발족시켜 CSR을 기업경영에 반영하기 위한 조직기반을 갖췄다. CSR에 대한 경영진의 적극적 입장은 △ 외주파트너사 직원 임금을 2007년까지 포스코 대비 70% 수준으로 인상, △ 결제금액 전액 현금 지불, △ 성과공유제도(Benefit Sharing) 운영 등 중소기업과의 상생적 협력관계로 이어져, 2005년 청와대에서 “중소기업 협력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포스코 청암재단은 기업재단으로는 최초로 2006년 하반기부터 시민단체 활동가 50명에게 200만 달러를 지원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은 포스코 CSR의 목표 및 방향을 요약한 것이다.

[그림] 포스코의 CSR 목표 및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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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2005년 포스코 지속가능보고서 ]

CSR에 대한 적극성은 경영진이 직접 쓴 글에서도 묻어난다.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은 2005년 2월 “강한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글에서, “우리 포스코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따뜻한 기업이 되고자 한다. 즉, 투자자에게는 투자하고 싶은 회사, 고객에게는 거래하고 싶은 회사, 직원에게는 일하고 싶은 회사, 사회에는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회사가 되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며 CSR의 기본 철학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의 CSR은 다른 한국 대기업들과 유사하게, 유독 노사관계 및 노동조합에 관해서는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포스코의 2005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사례로 노동조합이 아닌 ‘노경협의회’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노경협의회는 직원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기 위한 직원대표기구다. 2005년 1월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된 총 414명의 부서별 기초위원들이 노경협의회와 함께 단위 조직의 현안 문제와 공통 관심사항을 토의해 해결하고, 회사 경영 현황과 정책에 대한 설명을 통해 직원 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포스코의 이러한 설명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포스코의 보고서는 노동기본권과 직원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포스코가 노동영역 CSR지표 중 ‘아동노동 및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국제기구의 CSR 평가 노동지표들은 공통적으로 ‘노동자의 결사 및 단체협약의 자유 보장’, ‘차별금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포스코의 CSR은 다른 부분의 긍정적 요소에도 노동분야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누락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포스코 사태와 나이키의 노동착취공장

한편 이번 포스코 사태의 핵심에는 포항의 건설노사관계에서 포스코의 책임 여부를 따질 수 있는가하는, ‘사용자성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건설현장의 다단계 불법하도급이라는 법률문제를 뛰어 넘어 CSR의 측면에서 검토해보자. 유사한 사례인 나이키 노동착취공장의 경험을 먼저 살펴보겠다. 

1990년대 미국 운동화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며 급격하게 성장하던 나이키가 언론과 시민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하청업체의 노동조건’ 때문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150달러짜리 나이키 신발을 생산하는 제3세계 공장의 노동자들은 하루 2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는 미성년자이며, 신체적 학대를 받거나 톨루엔, 아세톤 같은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나이키의 착취공장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처음에 나이키는 이러한 비판을 강하게 받아쳤다. 자신들은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책임질 필요가 없으며, “나이키는 스포츠기업이지 제조업을 가르치는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나이키의 대변인 키드(Dusty Kidd)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이키가 없었다면 그들은 땡볕 아래서 코코넛 수확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나이키 공장은 착취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빈곤을 탈출할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반(反)나이키 캠페인’을 확대해갔다. 시민단체들은 착취문제의 책임을 하청공장에게 떠넘기며 발뺌하는 나이키의 논리를 반박하고 책임을 촉구했다. “만약 소비자가 나이키라는 이유로 신발을 구매한다면 그 소비자는 제3자가 그 신발을 만들고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나이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키우기 위해 그곳에서 생산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나이키의 판매액은 증가할 뿐이었다. 고무된 나이키는 착취공장의 문제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버텼다.

이러한 지리멸렬한 공방 상황을 무너뜨린 것은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1996년 『라이프』(Life) 6월호는 12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과 함께 글로벌기업에 의한 저발전국가의 아동 노동착취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이 기사를 본 미국과 유럽사회는 충격에 휩싸였고,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축구공이 어린이들을 착취하면서 만들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나이키의 주가와 판매량은 급감했다. 결국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이키는 기존의 전략을 수정하여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했다. 1998년 5월 나이키의 회장은 “그동안 나이키제품은 노예노동, 강제잔업, 그리고 노동학대와 동일시되었다. 나는 미국 소비자들이 노동자가 혹사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실토한 후, 나이키의 하청관리와 노동통제 관행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런데 사실 나이키는 이미 1992년에 만들어진 기업윤리규범을 통해 ‘선진국 수준’의 노동규범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착취를 당한 것은 본사가 아니라 하청공장 노동자들이었고, 이들에게는 본사의 멋진 윤리규범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그런데 착취공장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통해 윤리규범의 적용이 하청공장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된 것이다. 나이키는 1998년 이후 ‘생산선도 기업체제’를 도입하여 가격, 납기, 제품의 질, 기업 책임 등 4가지 기준에서 나이키의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들과 배타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이하의 부품업체에게도 ‘기업윤리규범’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이전에 나이키가 취해왔던 시장계약(market contracting) 전략, 즉 필요에 따라 수시로 하청기업을 바꿔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왔던 전략이 하청공장의 노동착취에 영향을 줬다는 반성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성찰 속에서 CSR의 노동기준이 그 기업의 직접적 종사자뿐만 아니라 그 기업이 구축한 하청외주관계까지 포함된다는 새로운 기준이 확립된 것이다. 포스코 사태의 해결을 고민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건설노동자들은 당신들의 ‘이해당사자’다!

건설노동자들이 포스코의 책임을 주장하는 이유는 포항건설노조의 요구를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주체가 포스코 사측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쟁의는 발주사인 포스코가 예년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발주했고 다시 원청업체인 포스코건설이 공사금액을 삭감해 하도급업체인 건설전문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데서 비롯됐다. 다단계 하도급구조의 피해가 고스란히 건설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악화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포스코는 건설노동자의 파업을 무력화하는 ‘대체근로’를 추진하여 ‘점거사태’를 촉발한 실질적인 원인의 제공자이기도 하다. 

“포스코 하청협력업체 노동자임금을 정규직 대비 70%로 끌어 올리겠다”는 이구택 회장의 약속 이면에서, 하청 비정규 건설일용노동자는 정규직 대비 36%의 임금을 받으며 쇳가루와 분진 속에서 노동하고 있었다. 포스코 현장의 건설일용노동자는 용접?배관?기계?철근 등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식당도 없어 내리는 빗물에 도시락 말아먹고, 욕탕?휴게실도 없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며 일해 온 포스코 성장의 주역이었다.

CSR 핵심은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에 있다. 몇 십억, 몇 백억의 기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수백, 수천 쪽의 보고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CSR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진짜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노동자, 지역주민, 소비자, 투자자, 시민단체, 협력업체, 하청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의사소통이다. CSR은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주장하는지 차분히 들어보고 대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포스코의 CSR에서 이제 건설노동자들은 영원히 배제되어야 할 사람들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포스코는 당사 노사관계를 “협력과 동반의 관계”로 발전시키지 못한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포스코는 ‘유령노조’라는 괴물에 시달렸다. 유령노조는 활동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의미뿐 아니라 노조의 생명인 ‘자주성’이 없다는 이중 의미를 갖고 있다. 포스코의 조직인사실 HR연구반이 2006년 3월에 작성한 “노사환경 변화에 따른 주요 추진사항 및 향후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은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가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되는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즉 포스코는 노조뿐만 아니라, CSR 보고서에서 자랑하고 있는 노경협의회 선거에도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문건은 “비우호 성향의 노조 추가가입 차단을 통한 건전 성향의 우호집행부 당선”을 위한 전략을 제기하고 있으며, “노사관계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노경협의회 선거(2006년 11월 예정)에서도 “회사정책에 우호적이고 직원들의 신망이 높은 직원들이 근로자 위원으로 출마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노동배제의 노사관계가 지난 수년간 수조원의 순이익(2005년 4조 130억원)을 남기는 데 기여하는 동안, 비정규직(2003년 기준 포스코의 사내하청노동자는 정규직 대비 67.5%)은 확대되었고, 작업현장은 명예퇴직의 공포가 떠도는 전쟁터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손 내미는 건 “위대한 기업” 원하는 포스코의 몫

70여일을 훌쩍 넘기며 장기화되고 있는 이번 노동쟁의의 해결열쇠는 분명하게 포스코가 쥐고 있다. 우리는 포스코가 요구하기만 하면 경찰이 움직이고, 포항시가 춤을 추고, 정부관료가 일벌백계를 훈시하는 모습을 이미 보았다. 포스코가 나서지 않으면 난마처럼 엉킨 해결의 실타래를 풀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은 포스코 개별기업을 비난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이 아니다. 포스코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노사관계 현 주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좋든 싫든, 지금 포스코는 기업 측에서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노사관계의 발전도 산업 경쟁력과 고용의 질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기업들은 압축성장의 결과로 자기 내실에 걸맞지 않은 외투를 걸치고 있다. ‘국민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는 포항제철도 주식의 60% 이상을 외국인이 갖고 있으며,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포스코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외부이사 1명조차 없는 회사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를 맞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규모가 성장한 만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포스코가 진정 “강한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CSR을 ‘구호’가 아닌 ‘내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키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시간을 끌면 오히려 기업의 손실만 커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적극적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만이 포스코의 명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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