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소명감이 있던 시절”

노동사회

“가난하지만 소명감이 있던 시절”

admin 0 2,556 2013.05.12 12:09

 


mk_01_10.jpg이번 호의 발간으로 일흔 아홉 번째가 되는 『노동사회』는 1995년 5월 『노동사회연구』라는 격월간지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97년 6월 통권12호부터였다. 연구소의 전신인 한국노동교육협회 시절부터 연구소에 많은 애정을 보이셨던 박중기 회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일흔 아홉 번째 『노동사회』가 발행될 수 있었을까. 이번 호 독자와 함께는 『노동사회』의 산파라 할 수 있는 박중기 회원과의 만남이다.

‘소명감’ 있던 시절

경남 밀양 출신인 박중기 회원은 인혁당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 60년대 청년들에겐 뭐랄까, 소명감 같은 게 있었어.” 
이렇게 시작한 박중기 회원의 젊은 시절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인혁당 사건, 박정희의 ‘사회안전법’ 시행으로 제대로 취직도 못하고, 투옥의 후유증으로 3년 동안 고생하며, 아내가 하던 구멍가게로 근근히 살던 시절의 경험들이 고스란히 테이블에 쌓여 갔다.
“어떻게 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되었죠?”
“80년대는 노동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운동을 하던 시절이었지. 열정은 있었지만, 논리성에서 약했거든. 그때 당시 노동법을 잘 알고 있던 김금수 이사장이 노동운동을 제대로 해보자고 시작했고, 난 그저 뜻이 통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회원 가입을 독려하는 역할을 했어.”
“『노동사회』에 대한 필요는 공감하지만 재정이 뒷받침 안 되던 시절이라, 내가 돈을 조금 보태어 월간지로 발행하게 되었어. 당시엔 참 가난한 시절이었어. 연구위원 한 사람은 버스비가 없어 걸어서 다니기도 한 기억이 나.”

갈등에 묶여 있으면 운동은 망한다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한 박중기 회원은 밖에 있는 사람이 하는 소리로 봐달라며 요즘 운동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은 노동운동대로, 당은 당대로 제 갈 길을 가는 것 같아 보여 안타까워. 분화를 위한 분화, 세를 위한 분화가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들고.”
“인간관계란 갈등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지만 갈등 자체에 묶여 머뭇거리면 운동이 망하지.”
관찰자라는 겸손한 표현을 썼지만, 나름의 고민이 묻어 나오는 말이었다. 아직도 소비조합에서 일하는 박중기 회원과의 만남이 끝나 갈 무렵 『노동사회』에 대한 뼈있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예전보다 글이 짧아진 점은 좋아 보여. 그리고 이 딱딱한 책에 시 하나 있는 건 마치 밥에 맛있는 콩 하나 들어간 느낌도 들고. 아쉬운 점은 이 책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잖아. 그러니 글이 좀 더 쉬웠으면 해….”
인터뷰 내내 박중기 회원로부터 받았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돌아오는 길에 생각났다. 외유내강. 조용하고 여유로와 보이지만 말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삶과 운동에 대한 통찰력은 만남이 끝난 후에도 가슴속을 울리고 있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