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일상을 자본 앞에 공개하라

노동사회

네 일상을 자본 앞에 공개하라

admin 0 3,479 2013.05.12 12:05

양 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속칭 '몰카' 사건이 시끄럽다. 인터넷 성인사이트에서나 나오는 몰카가 드디어 정치권에 상륙한 셈이다. 술집에서 하루의 피곤을 달래며 술잔을 기울이는 직장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인들도 몸조심, 술조심 할거란 얘기를 한다. 권력의 실세들이 몰카를 통해 대중 앞에 벌거벗겨지니 뭔가 통쾌한 심정인 듯 하다.

그러나 양길승 몰카를 안주 삼는 대부분의 노동자들 역시 자신들이 CCTV를 비롯한 다양한 감시 시스템을 통해 사측으로부터 일상적인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까. 모 포털사이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중 4명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인터넷 이용을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양길승 몰카와 다른 점은 어딘지 모르는 곳에 숨어서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측이 대놓고 감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측은 노동자들을 향해 "나는 너희가 근무시간에 어떤 짓을 하는지 모조리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에 의한 노동감시가 일상적으로 그리고 별다른 거리낌없이, 놀랍게도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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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의 공장 내부에 달린 CCTV 카메라   - 출처:오마이뉴스 ]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워

노 동자 감시란 자본에 의한 노동통제 전반을 의미한다. 노동통제는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이용한 노동자 개인 감시, 노동형태 감시, 노동자에 대한 정보 수집 및 관리 형태로 나타난다. 감시 시스템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CCTV로 대표되는 영상 시스템(몰래카메라 등)과 향후 널리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첨단 위치추적 시스템(GPS, 핸드폰 위치추적 등)이 있다. 위치추적 시스템이 쓰일 경우 노동자의 동선은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가혹한 노동통제가 뒤따를 수 있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 사내에서 어느 곳을 방문했는지 알 수 있는 전자카드(IC칩 카드, 액티브 배지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노동자 감시 시스템이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업무용 개인 컴퓨터, 전화 등에 대한 무단 열람, 도청, 감청이 늘고 있는 점이다. 사측이 노동자의 개인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이메일은 물론 홈페이지 방문기록, 개인전화 통화내용을 속속들이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할 수밖에 없다.

1998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작업장 감시조사 연구팀과 함께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108개 사업체 가운데 37.1%가 CCTV를 도입했음은 물론 작업공간 이외인 휴게소와 화장실에 CCTV를 설치한 경우도 있을 정도로 노동자 감시는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직원 2,300명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경우 사측은 노조 홈페이지 접속자 및 접속량을 수시로 모니터링 했으며, 노조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의 아이피를 추적해 징계를 가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아이피 추적으로 글을 게시한 사람을 밝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추적된 부서의 팀장이란 이유로 2명의 팀장이 보직해임 당한 것이다.

하이텍알씨디 코리아는 정문부터 시작해 총 26대의 CCTV가 곳곳을 감시하고 있다. 사측은 CCTV를, 노조와 조합원에 대해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조합활동을 업무방해로 고소할 당시 촬영증거자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사내에 설치된 CCTV 때문에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한다", "발걸음 하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조합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화장실 같은 곳에도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 아닌가 불안해서 생리적 문제조차도 편안히 해결할 수 없는 실정", "자다가 꿈에서도 누군가가 날 노려보고 있는 꿈까지 꾸고 벌떡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남자 직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수치심이 든다. 너무 끔찍해서 아침마다 감시카메라에 테이프를 붙인다"는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전체사업장 중 89.9%가 감시 시스템 도입

노 동계가 반발하고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진보네트워크센터, 민변 등은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이하 연대모임)'을 구성하고, 2003년 7월31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현장에서 진행되는 노동감시 실태조사 결과와 사례를 발표했다. 연대모임에서 발표한 실태조사는 한길리서치연구소가 2003년 6월부터 7월에 걸쳐 전국 사업장에 대해 업종, 지역, 규모별 분포에 비례한 무작위 추출로 207개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였다. 조사결과 전체 사업장 중 절대 다수라고 할 수 있는 89.9%의 사업장에서 이미 한 가지 이상의 노동자 감시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노동자 감시가 이뤄지고 있는 사업장은 평균 2.3 가지의 감시 장비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감시 시스템 도입은 기계, 금속과 보건의료 사업장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났으며, 사측의 감시 시스템 도입근거는 △ 문제발생 시 객관적 근거마련(30.6%), △ 생산과정 모니터링 경영혁신(27.4%), △ 노동자 기물파손 절도방지(16.7%)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측은 인터넷 방문, 이메일 이용기록을 1개월 이상 보관하고 있어 노동자 기물파손, 절도방지 이외의 목적으로 감시 시스템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노동자 건강안전을 목적으로 도입한다고 했지만 감시 시스템에 대한 노동자 인식조사에서 34%의 응답자가 감시 시스템 도입으로 "정신, 육체적 피로가 증가"됐다고 답했다.

또한 인터넷 감시로 차단되는 사이트에 노동조합(9.6%), 정당시민단체(1.4%)가 포함된 것은 회사가 노동자의 권리인 자주적인 노조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음은 물론 정당시민단체 사이트를 제한해 노동자의 정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민 주노총 최세진 정보통신부장은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무지와 사회적으로 프라이버시나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개념과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가 열악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며 "외국에서는 허가받은 국가 수사기관에서도 범죄자를 도청, 감시할 때 법적인 절차를 지키는데 한국의 사용자는 마치 그런 권한을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부장은 또 "노동자는 일반 범죄자보다 더욱 심한 감시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며 "노동자에 대한 감시는 결국 노동조직을 방해해 노동통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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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8월 노조 설립후 광명 성애병원의 간호사실에 달린 CCTV에 잡힌 화면   - 출처:참세상 ]

노동감시 규제는 국제적 추세

미 국 경영자연합은 2001년 조사에서 미국 기업의 77.7%가 노동자의 전화사용, 이메일, 인터넷 이용, 컴퓨터 파일 등을 감시한다고 발표했다(1997년 조사에서는 35.3%). 감시방법 중에서는 인터넷 접속 체크(62.8%)나 이메일 감시(46.5%)가 가장 많았고, 통화에 대한 정보기록(43.3%), 비디오 촬영(37.7%), 직원 컴퓨터 파일 검토(36.1%)도 적지 않은 비율이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노동감시 규제법을 만들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추세가 이미 자리잡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제노동기구에서 1995년에 제정한 '노동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행동 강령'에는 △ 개인정보는 반드시 적법하고 공정하게 기록, 오직 노동자의 고용과 직접 관련된 이유로만 처리할 것, △ 개인정보는 반드시 수집할 당시의 목적과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 △ 자동정보 시스템의 보안이나 적절한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 기술적이거나 관리 차원의 대책을 수립할 때 수집된 개인정보는 노동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에 사용할 수 없음, △ 전자 감시로 수집된 개인정보가 직무 수행 평가의 유일한 요소가 되어서는 안됨, △ 사업자는 수집 개인정보의 종류와 양을 가능한 줄이고 노동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정보처리 업무에 대해 장기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의회도 '개인정보의 처리와 자유로운 유통에 관한 개인정보 보호지침'을 마련했고, 프랑스 역시 노동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1년 통신비밀법에서 사용자는 사법부의 영장에 의하지 않고는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개인 통신에 접근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 연방노동법원도 헌법상의 인격권 조항에 따라 노동자의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하고 있고, 영국은 2000년 8월에 통과된 조사권한규제법에 의해 사업자가 통신의 송신자와 발신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전화와 이메일을 감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핀란드는 노사관계에서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특별입법이 제정돼 있고, 이탈리아는 노동자 감시를 제한하는 특별규정이 있다.

외국의 경우 불가피하게 노동자의 감시 장비를 도입해야 할 경우, 노조 대표와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럴 경우 사측은 감시당하는(?) 당사자에게 이를 사전에 통보해야만 한다. 적어도 은밀하게 감시하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감시 시스템을 회사에서 도입할 때, 사전협의는 24.2%, 사후협의는 6.5%에 비해 노동자나 노조에 통보 없이 도입하는 경우가 46.2%로 나타나 사측이 감시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홈페이지 게시판 작성이나 이메일 작성 내용까지 기록하는 경우가 18.8%에 이르며, 전화 통화내용까지 기록하는 경우도 6.0%에 이르고 있다. 감시 기록에 대해서 당사자나 노동조합이 기록, 저장 내용 열람 및 소명을 할 수 있는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0.9%로 나타나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무엇이 기록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잘못된 기록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적 장치 서둘러 마련해야

연대모임은 "노동자에 대한 감시 시스템 설치 비율이 89.9%라는 것은 노동자에 대한 전자감시가 우리 사회에서 일반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특히 두 가지 이상의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는 비율이 많다는 것은 노동자에 대한 감시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대모임은 또 "시스템 도입이 노동자와 노조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도입 과정과 시스템 관리, 운영에 노동자와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단체협약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노동자에 대한 감시는 절대 없어야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외국의 경우처럼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계속적으로 알리고, 감시 결과에 대한 열람과 정정이 가능하며, 노조와 단체협약을 통해 동의를 얻어서 도입해야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CCTV를 통한 감시는 위험방지를 위해서만 허용될 수 있고 이메일 감시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 주노동당 문성준 정책부장은 "감시 시스템의 특성상 노동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번 조사보다 더욱 심각하게 감시 시스템이 침투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문 부장은 "노동자가 자신의 일상이 감시당하는 것을 알았을 때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크게는 자본에 대한 노동통제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감시 시스템에 대한 정밀한 대응을 마련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자신의 일터에서 늘 불안하게 노동을 하고, 노조의 활동이 계속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