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노동사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admin 0 2,250 2013.05.12 12:03

2003년 3월29일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이하 자활노조)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는 자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자활노동자들은 “자활제도와 지원 체계의 미비, 사회적 연대의 부족, 자활 정책 방향과 실제의 불일치와 혼란, 무리한 단기적 성과와 평가주의, 자활 철학의 부족, 관성적이고 비민주적인 기관운영, 열악한 노동조건, 자활 조직의 단결력과 지도력 부족” 등을 자활사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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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7일 을지로 훈련공원에서 열렸던 공투본 출범식에 참여한 자활노조 ]

자활제도와 지원체계의 미비

한 국사회는 IMF 이후 대량 실업사태, 불안정 고용의 확대, 급격한 구조조정, 만성실업의 증가 및 빈곤의 심화, 빈부격차의 확대 등의 문제에 직면하였고,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빈민지역에서 시험되고 있던 “협동조합 방식의 생산자 공동체운동”을 제도화하였다. 이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에 명시되어 있는 자활지원사업, 자활공동체이며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빈곤 극복책을 주도하던 민간단체들의 기능을 제도화한 것이 바로 “자활후견기관”이다.

자활후견기관은 1996년 5개 자활지원센터의 시범운영으로 시작하여, 2000년 6월 20개에 불과하던 시설이 2000년 9월 90개소, 2001년 157개소, 2002년 171개소, 2003년 현재 전국 209개소로 증가하였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하여 조건부 수급자, 차상위 계층과 함께 간병, 청소, 집수리, 폐자원 재활용, 음식물재활용, 외식 등의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공공성 확보 및 생산자 공동체의 건설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자활지원사업의 목적을 ‘자활근로사업을 통한 자활공동체의 설립 및 육성’에 두고, 2년을 설립시한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 이후 사업의 주 참여 대상이 저소득 실업층에서 노동능력 및 의지가 현저히 약한 조건부 수급자로 변하면서 점차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자활공동체의 시장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체계가 전무한 상황에서 대부분이 10인 이내로 구성되는 소규모의 공동체가 생산·협동·나눔의 정신을 실현하면서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자활지원사업의 목적이 대상, 지원체계 등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되어 자활후견기관사업 운영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활지원사업은 후견기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자활에 대한 연구, 지자체의 협조, 사회복지단체와 시민단체 등과의 연대, 자활공동체에 대한 각종 법규 제정 및 지원, 기업 자본의 활용 및 유입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체계 등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활후견기관의 사업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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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위 계층
차상위 계층이란 월소득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최저생계비(4인 가구기준 102만원)보다 20% 많은 122만원 이하의 준 극빈층을 말하며 모두 320만 명에 달한다.

조건부 수급자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중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 받는 수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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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비 동결과 예산 부족

보 건복지부는 자활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마련과 인프라를 확충해야할 시기에 기본 운영비를 4년째 동결하고 있으며, 자활근로 참여자(조건부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의 생계가 달려있는 자활근로 예산마저 부족하게 편성해 놓고 있다. 현재 자활근로 예산의 경우 복지부에서 자체 150억 정도가 부족하다고 밝히고 있다.

경남 양산 자활후견기관의 경우 자활근로 예산의 부족으로 현재 자활사업이 중단위기에 놓여져 있으며, 또한 진해 자활후견기관의 경우 총 7개 사업단이 있으나 7월말로 5개가 사업을 종료하고 나머지 2개 사업단도 8월말이 지나면 사업을 종료하게 된다. 이는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그나마 받던 월 55~65만원의 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가족 전체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 이처럼 자활근로 예산 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지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관은 위의 한 두 곳이 아니다. 지자체로 보면 경남·전북 지역 전체, 전국에서 약 80% 이상이 현재 자활근로 예산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자활후견기관 운영비를 2000년부터 4년째 1억5천만 원으로 동결시키고 있다. 이 1억5천만 원은 1년 동안 자활후견기관 종사자 6명의 인건비, 운영비, 관리비, 사업비 등으로 사용되는 정부보조금이다. 자활후견기관 운영비의 동결은 정부가 자활사업을 발전시킬 의지가 더 이상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자활사업에 대해 다분히 경쟁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사고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보건복지부가 자활후견기관 운영비를 동결시키면서 평가를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하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자활사업을 저해하는 평가제도

보 건복지부는 2001년 설립 1년 이상의 후견기관을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하고 공동체 수, 수급자 수 등 양적, 결과적인 지표에 근거하여 전국의 후견기관을 가부터 라 등급으로 서열화 하였다. 그러나 자활지원사업은 장기적, 과정 중심적, 연대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양적 평가로는 후견기관의 점검 및 발전방향 도출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후견기관의 자주적 운영과 연대를 저해하는 역효과를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2003년 전국 171개 후견기관에 대해 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상위 30%의 기관에 대해서는 3천~5천만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고 하면서 후견기관간의 경쟁유도 및 부족한 예산에 대한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해소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보건복지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평가를 진행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자체로 하여금 후견기관을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민·관 파트너십이 저해되었으며, 평가를 불과 며칠 앞두고도 평가위원 및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채 실시하여 준비되지 않은 평가임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평가위원들에 대한 기초교육 - 평가의 목적, 활용방안, 지표에 대한 이해 - 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복지부의 졸속행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형식적이고 행정 편의주의적이며, 준비되지 않은 평가를 통해 자활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자활사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열악한 임금

자 활후견기관 운영비의 동결은 자활후견기관 종사자들의 인건비 동결로 이어졌다. 한국자활후견기관 노동조합이 2003년 3월 실시한 설문조사 및 자활정보센터가 2003년 5월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자활 실무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5급의 경우 1,073,036원, 4급 1,092,317원, 3급 1,333,333원이며, 4~6급의 월평균 임금은 1,166,662원으로 조사되었다. 이것은 제조업 노동자 평균임금의 69.7%, 공무원 평균임금의 49.9%, 교사 평균임금의 46.3%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 러한 열악한 임금상황은 산업별 임금비교가 아닌 유사한 공공서비스 종사자들의 임금비교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기본급에 있어서 대졸 1호봉의 경우 간호사 708,000원(2001년 기준), 교사 819,200원인데 비해 자활후견기관 종사자의 경우 547,000원이며 이는 간호사의 77%, 교사의 66.7%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임금 수준이 가장 열악한 사회복지기관 종사자 기본급의 85% 정도에 그치고 있음은 자활후견기관 종사자들의 열악한 임금조건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교사, 공무원, 사회복지사의 경우 2003년 5.47%, 5.5%, 5.0%의 임금 인상이 이루어진데 비해 자활후견기관은 후견기관 운영비가 4년째 동결되면서 임금인상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이러한 기준 임금 자체가 4급 1호봉임을 기준으로 한 것임을 감안해볼 때 5, 6급이 33.6%인 자활후견기관에서는 이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실무자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열악한 임금조건은 자활후견기관 종사자들의 잦은 이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활정보센터 조사의 의하면 자활후견기관 실무자의 이직률은 37.1%, 평균 근무기간은 13개월로 나타났다. 이러한 잦은 이직은 다시 자활사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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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29일 자활노조 조합원 2백여명이 모여 출범식을 하는 모습 ]

노동조합이 나아갈 길

자활노조는 이제 출범 후 5개월이 지났으며, 현재 전국에 흩어져 있는 209개 기관에 천여 명의 자활 실무자들 중 자활노조는 8개 지부, 100개 기관에 400여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

자 활노조는 그동안 209개 기관이 전국에 흩어져 있고, 한 기관에 5명 이내의 실무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회-지구-지부-중앙의 골간체계를 잡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교육, 회의 등 조직화 사업을 진행해 왔다. 또한 사이버 시위, 보건복지부 앞 집회, 자활후견기관 협회의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평가 거부 투쟁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에 평가 감시단을 조직하여 현재 진행되는 평가의 문제들을 지적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자활노조는 서울경인 사회복지 노동조합과 금속노조 성람지회, 그리고 개별 사업장 노조와 연대하여 6월27일에 사회복지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 출범식을 가졌다. 공투본에서는 사회복지 예산 현실화를 위한 특별기구 설치, 사회복지 노동자 임금인상 및 임금체계 개선 요구, 사회복지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요구, 자활후견기관 인센티브 철회와 운영비 지원 현실화 및 자활제도 개선, 노동조합 탄압 등 현안 사업장 문제 해결 등 5개의 요구안을 걸고 근로기준법 준수 투쟁, 사회복지 노동자 임금 및 노동조건 실태조사, 대국회 활동, 개별 사업장 투쟁지원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보건복지부는 준비되지 않은 평가를 실시하고 있고, 약속했던 기본급 인상에 대해서는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활근로 예산이 없어 자활사업 자체를 중단해야 할 위기에 몰려 있으며, 자활근로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협받고, 많은 종사자들이 자활사업에 대한 회의만 남겨둔 채 자활 현장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자활노조는 이후 자활근로사업의 정상적 진행을 위한 자활근로 예산 확보, 자활후견기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자활후견기관 운영비 증액, 자활후견기관 실무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임금 인상 등의 자활예산 확충 투쟁을 중점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결국 자활노조 강령에서 밝힌 것과 같이 “저소득·빈곤 주민에게 가해지는 모든 사회적 배제와 맞서 싸우며, 자활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통해 우리로부터 공동체를 실현하고 이를 지역과 사회로 확대”하는 투쟁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