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응하는 운동노선 재정비

노동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운동노선 재정비

admin 0 2,625 2013.05.11 11:57

한마디로 성과가 있는 반년이면서 성과가 없는 반년이었다. 제도개선에서는 뚜렷한 진전이 없었던 반면에 산별교섭,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제' 협약 등과 같은 성과를 낳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미패권주의의 득세는 올 상반기 노동운동을 규정하는 객관적 환경요인으로 작용하였다.

nohjk_01.jpg
[ 3월30일 전국 3만여 한국노총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치뤄진 '천만노동자 총력투쟁 진군대회'  - 출처:한국노총 ]

노동운동이 처한 환경

노무현 정부는 노무현 후보의 진솔함에 대한 정서적 지지를 바탕으로 성립되었지만 그러한 지지를 빼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여당이 과반수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이미 야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상태여서 DJ정권과 같은 연정구성도 아예 의미가 없었다. 과거 권위주의정권 같으면 인위적 정계개편식의 잡아흔들기로 국면을 타개해나갈 수 있겠지만 문민정부로 들어서면서 인위적 정계개편도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도덕적 정체성과 배치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개혁적 신당을 통한 정계개편이었지만 지금 보여주고 있는 대로 별 진전은 없는 상태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의미 있는 여당이 없는 상태이다. 노무현 정부 스스로 민주당을 여당으로 존중해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거국내각을 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당이던 코드가 맞지 않는 듯하다. 각당이 어떻게 나오던, 그리고 일이 안 되는 한이 있더라도 청와대나 정부가 생각하는 대로 나가겠다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도 신경전을 계속하고 있다. 

경제가 좋지 않아 재벌과는 타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벌들은 아직 정부를 믿지 않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의 일반 여론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을 언론의 문제로 책임전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무현 정부가 안고 있는 정치적 취약성의 다른 하나는 미패권주의의 득세이다. 부시 정권은 유엔의 결의에 반하여 이라크 침공을 감행, 일단 성공했고 연이어 북한 핵문제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 등 대외 긴장강화전략을 구사해 나가고 있다. 햇볕정책을 승계 하고자 한 노무현 정부에게는 심대한 도전으로 작용했고 우리나라의 대미 외교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IMF 경제위기 이래 강화되어온 초국적 자본 의존성도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취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들은 세계화 시대의 경제불안 및 불확실성을 지렛대로 하여 그들의 요구를 대담하게 내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의존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국적 자본의 세계지배전략은 지구촌 대부분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조정 능력 미약해 개혁 미지수

이런 조건 속에서 노무현 정부는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제도개선 사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용허가제처럼 커다란 장애에 부딪쳐야 했다.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지형상의 문제를 돌파하는데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 추진과 같은 기제가 중요하지만 합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조정력이 필수적이다. 경영계와의 친화 정도와 압박 능력에서 노무현 정부의 조정력은 취약하였고, 그 결과 노사정위원회도 대안이 되지 못했다. 결국 정부 재량으로 할 수 없는 제도개선 부분에서는 인수위 시절부터 냄새만 풍겼지 구체적인 성과가 별로 없게 된 것이다. 시간이 더 가봐야 알겠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계획만 있지 실행은 없고, 국회에다 던져만 놓았지 입법화는 안 되는, 그리고 때로는 누더기 입법이 되는 형국으로 끝날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현실 조건들을 직시한 가운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인적 자원을 확보했어야 했다. 자기만 깨끗하면 된다는 사고와 남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개혁을 밀고만 나가려는 비조직적, 자유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는 비록 출발은 멋있게 할 수 있지만 바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안정적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개혁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반대 급부로 대처리즘의 도래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최병렬호의 등장과 그의 대중적 어필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추세대로 나가면 내년 총선이 주관주의적 개혁노선에 대한 논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이와 같은 정치정세에서 노무현 정부는 정부 재량으로 할 수 있는 부분에 상당한 역점을 두고 있다. 권위주의 타파의 정치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이런 문화운동은 대통령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바뀔 그런 것들이다. 

노사분규와 관련해서는 법과 원칙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내세워 처음엔 권력 핵심이 분규에 적극 개입하여 해결하였으나 '친노동' 정책으로 매도되자, 공권력 개입의 기준을 설정하는 등 방어책을 강구하다가 결국은 노동계 비판 쪽으로 돌아섰다. 

물론 이것은 노무현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여당이 무조건적으로 과반수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대통령제가 완전히 기능할 수 있는 체제는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조건이 내각제적 성격으로 바뀌고 그에 따라 대통령제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현상인 것이다. DJ정부 시절부터 그런 무기력성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의 한계와 성과

노동운동도 이러한 정치지형 변화에 따른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 여당에 로비를 하고 정치적 압박을 가하여 양보를 얻어내는 종전의 방식은 별로 쓸모가 없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지형에서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유효할 수 있으나 정부 조정력의 미약,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인해 확실한 방법이 못되고 있다. 그 결과로 제도개선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장외투쟁에 의존하는 방식을 구사하지만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역공을 당하는 형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나 상반기 노동운동이 이렇게 답답하게 움직인 것만은 아니다. 금속노조, 금융노조 등에서 사용자들을 산별교섭의 장으로 이끌어내는데 괄목할만한 진전이 있었고, 노동조건 개악 없는 주5일제를 협약화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앞이 보이지 않는 노동운동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이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력을 통해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는 고립무원한 포위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현장으로부터는 희망의 나무들이 싹터 자라 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장으로 되돌아가 강건한 정치력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정세는 흐리고, 운동은 관성에 빠져 있고

지금 같은 상반기 정세는 대부분 9월 이후의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정세를 구성하는 상당 부분은 누가 대통령이든 나타날 그런 것이었고 노무현 정부이기 때문에 나타났던 일들도 하반기에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반기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계획한 대로 기초가 쌓였으며, 큰 오류가 없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듯하다. 청와대 비서실의 인적 쇄신에 대한 요구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으로부터도 강력히 제기되었음에도 내부 충원으로 일관한 것도 그런 자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하반기에는 내년도 총선을 앞둔 정당 사이의 각축 때문에 정국이 더욱 경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경제가 회복 기세를 보이지 않는 한 반노동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이것은 하반기 노동운동 정세가 여전히 '흐림'일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노동운동은 하반기에 들어서면 우선 조직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 정세 변화와 지금까지의 노동운동 방향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할 필요가 있고 그런 토대 위에서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의 프로그램을 수립하여 조직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운동이 평가를 한 경험이 없거나 노동운동 방향을 수립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노동운동은 여전히 기존의 관성대로 나가고 있다. 모든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기존 운동방식의 한계가 분명히 노출되고 있음에도 그것을 따라잡는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동원에 의한 정치투쟁을 주요 전략으로 했는데 동원력이 떨어짐에 따라 그 전략의 유효성이 미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요인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제도개선 활동도 마찬가지다. 노동계는 그간 많은 제도개선 과제를 이슈화하여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았지만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지형 등 근본적 제약들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제약은 몇 달이나 한 두 해 안에 사라질 것들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나 정치권이 깜짝 놀랄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거나 아니면 노동운동 스스로의 기대 심리를 낮추고 점진적 접근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양대 노총 사이의 경쟁은 제도개선 문제에 조직논리를 가지고 접근토록 하고 있다. 노동운동 내부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심각한 반성이 있어야 향후의 제도개선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해갈 수 있을 것이다. 

nohjk_02.jpg
[ 8월20일 양대 노총이 근기법 개악음모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결의대회를 마치고 노동계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국회에 진입하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출처:한국노총 ]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략 절박

물론 노동운동 진영 스스로가 자기 정비를 한다 하더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질서재편의 도전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지금까지 방어적이고 비타협적인(또는 경직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는데 시간을 지연시키는 정도의 결과는 낼 수 있었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본질적 측면인 경제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의 일상화로 취약한 경제 체질의 한국은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매우 약한 상태이다. 

신자유주의적 공세하에서 노동운동 역량은 경제불확실성과 경제불안, 고용불안정과 경쟁 강화로 인해 현장으로부터 무너져가고 있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정규 고용을 침식하여 정규직위주의 노동운동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조합원 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하고, 지금의 노동운동이 정규직 중심의 '귀족 노동운동'이라는 비판이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에게도 상당히 호소력 있게 전파되고 있다.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 반대의 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는 노동자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단결력을 와해시키고 생존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유효한 전략수립이 절박하다. 하반기엔 이런 고민들을 정리하면서 조직 정비를 하고 프로그램을 설정하여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작년에 마련한 개혁 과제를 구체화하여 실천하고 그 중에서도 한국노총의 운동방향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그 정체성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개혁 과제와 관련해서는 산별 체제 구축 등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산별 체제의 추진은 각 산별이 주체가 되어 할 일이지만 노총 차원에서도 추동방안을 강구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하반기 사업방향과 구체적 사업 설정을 위한 준비과정으로서 상반기 평가작업을 하고 있으며 제도개선 과제에 대한 설명자료, 그리고 지금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반노동 이데올로기의 부당함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들을 가지고 지역순회토론을 가질 계획이다.

반노동 공세에 대한 대응 필요

그러나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총체적으로 밀려오고 있는 반노동 공세이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들의 일반 정서가 노동계에 상당히 곱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의 여론 조작과 사회의 전반적 우경화, 특히 대다수 연구자들의 우경화가 주는 영향이 매우 크지만 노동운동 스스로가 그런 빌미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노동운동을 사회의 긍정적 세력으로 형성시킬 것인가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운동노선을 재정비하고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 진영의 주장을 뒷받침할 연구들을 촉진시켜야 할 것이다. 

제도개선 과제로는 주5일 공동투쟁 전개, 공무원노조 입법화, 비정규직보호법 입법화 등이 여전히 중심 과제가 될 것이며, 정부측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연금법 개악과 퇴직연금제 도입에 대한 대응도 주요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정당명부제 도입 등 정치개혁 입법과 경제특구법 시행에 대한 대책들도 과제로 주어지고 있다. 또한 한국노총은 상반기에 차별금지법 입법 요구안을 검토해왔지만 하반기엔 구체적 법안을 마련하여 요구를 제기할 계획이다. 

한편 지금 노사정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노사관계 로드맵 작성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동계의 요구를 반영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노사관계 로드맵에서는 노동기본권 문제나 노사관계 정책의 방향성을 정립해야겠지만 반노동 공세가 전례 없이 격화되고 있는 시기에 추진되고 있어 우려되는 바도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와 관련하여 산업자원부가 마구 덤비는 것도 현 정세와 무관하지가 않다. 로드맵의 중요성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의 정책 의지가 담길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조직 강화를 위한 일상 활동 정착

하반기에는 내년 총선을 계기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어떻게 극대화해갈 것인가를 검토해 실천방안을 마련해 갈 것이다. 한국노총은 현재 사회민주당을 만들어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지만 창당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자생적 기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사민당에 대한 조직 내부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진성 당원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끝으로 조직확대 강화를 위한 체계적 일상 활동을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내셔널센터의 활동이 제도 개선이나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투쟁 등 이벤트성 활동에 중점을 두어온 것이 사실이고 많은 활동이 정부나 정치권의 조치를 뒤따라가는 방어적 성격을 띠었다. 그런 과정에서 조직확대 강화를 위한 일상활동이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노총은 금년도에 전략조직특위를 설치하여 비정규직이나 공무원 조직화에 전념토록 한 바 있다. 

비정규직 조직화의 경우 상반기에 연대체를 구성하여 비정규직 노조들이 스스로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충분치 못함을 느끼고 있으며 각급 조직이 조직화 문제에 유기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현장과 함께 하는 일상활동 강화를 위해 교육활동 강화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그 어떤 활동보다도 현장강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장의 힘을 바탕으로 계획을 통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나 사용자측의 공세에 방어적, 임기응변적, 이벤트성 활동으로 반짝성 대응을 해나가는 특히, 양대 노총 사이의 경쟁을 의식해 순간순간 땜빵질 하는 사업 작풍을 고쳐나가기 위한 노력도 경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