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노조의 대협회투쟁의 성과와 과제

노동사회

증권노조의 대협회투쟁의 성과와 과제

admin 0 3,032 2013.05.11 11:54

2003년 4월16일부터 △ 산별교섭 체계 확보, △ 협회의 사용자단체 인정, △ 증권산업제도 개선위 설치, △ 사무실 제공 단협 이행, △ 비정규직 철폐 등 5가지 요구사항을 걸고 증권업협회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을 했던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이하 증권노조)의 대협회투쟁이 7월22일, 증권노조 이정원 위원장과 증권업협회 오호수 회장이 "증권제도 개선 등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98일만에 일단락 되었다. 이번에 합의된 내용은 △ 증권산업제도 개선과 증권노동자 관련 사항은 건의 시 최대한 반영, △ 사무공간 확보 제공, △ 민형사상 책임 면제 등이다. 이날 서명에 앞서 이정원 위원장은 협회의 구사대 투입과 충돌에 대한 유감을 표했고, 오호수 회장은 증권노조의 농성으로 협회에 대한 증권노동자들의 인식을 알게 됐다는 뜻을 전했다. 증권노조는 합의서 조인 직후 협회 앞에 한 달여간 설치했던 콘테이너 2개 동을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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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협회 앞에서 농성 중인 증권노조 지도부 ]

증권업협회는 사용자단체로 나서라

이 번 농성투쟁에서 증권노조의 핵심 요구는 증권업협회가 사용자단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2003년도 임단협 산별 교섭에 참여할 것과 또한 이를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써 증권업협회가 단체협약에 명시된 노동조합에 대한 사무공간 및 집기의 제공의무를 이행하여 사용자단체로서의 책임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증권업협회는 산별 교섭에 사용자단체로 나서는 것은 협회가 회원사들을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렵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증권노조의 농성장 완전퇴거와 지난해 협회장 퇴진투쟁에 대한 사과 등을 대화의 선조건으로 내걸고 증권노조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더 나아가 증권업협회는 증권노조의 농성을 불법적인 건물 점거라고 주장하며 서울지방법원에 농성중인 증권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출입금지등 가처분신청서"를 내고 이정원 증권노조 위원장과 권태국 지부위원장을 포함한 11인에 대하여 건물 점거를 풀고 사무실 집기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이행치 않으면 각 1인에게 하루에 1천만 원의 금액을 지급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조합원들의 협회 출입을 금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역시 하루에 1회당 1천만 원씩의 간접강제금을 과한다는 취지의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6월17일에는 경비용역들과 협회직원으로 구성된 구사대를 증권노조 천막농성장에 투입하여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기물을 파손하였으며 농성중인 조합원들을 강제로 퇴거시켰다. 이에 증권노조는 19일 새벽 증권업협회 건물 앞에 거주용 콘테이너 2개 동을 기습적으로 설치하여 산별 중앙교섭과 증권산업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대협회 농성투쟁을 다시 한달 넘게 진행했다.

증권노조는 이미 지난해 '주5일제 도입'등과 관련하여 9개 증권사 경영진이 경총에 교섭권과 체결권을 위임함에 따라 경총과 산별 교섭을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교섭은 산별(업종)노조와 사용자단체가 마주 앉아 벌인 첫 산별 교섭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증권업계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과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제조업체 중심의 경총과의 산별 교섭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증권노조는 최근 몇 년간 각종 감시와 징계로 증권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증권업협회야말로 산별 교섭의 당사자로서 자신의 사용자단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무책임한 증권업협회

증권업협회는 개별사 사장들이 협회에 교섭권을 위임하기 전까지는 증권노조가 협회에게 교섭요청을 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아직 산별 교섭을 진행할 만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을 내세워 사용자단체성 인정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지난 6월13일에 열렸던 증권산업 노사간담회에서 드러났듯이 개별사들은 교섭권과 체결권을 증권업협회에 위임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실무적인 이유로 자신의 사용자단체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결국 증권업협회는 사용자단체가 됨으로써 떠맡게 될 산별 교섭 과정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자 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즉 자신들은 규제와 규율만 할 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구시대적이고도 권위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권업협회의 무책임한 태도는 산별 교섭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고 사용자단체성을 강제하며, 사용자단체에게 교섭의무를 부과하는 법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단체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법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증권업협회는 굳이 자신들이 개별사들과 경총이 떠넘기는 산별 교섭의 책임을 넘겨받을 필요가 없다는 속셈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결국 일관된 원칙이나 방향 없이 표류하고 있는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98일간의 대협회투쟁 끝에 체결된 증권업협회와의 합의서에 증권산업제도 개선과 관련한 사항을 협회가 최대한 반영한다는 내용과 사무공간 확보 제공 등의 내용이 담긴 것은, 그동안 사용자단체성 자체를 거부해오던 증권업협회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무척 전향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증권노조가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증권업협회와의 산별교섭이 결국 무산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산별교섭에 관한 법·제도적인 장치의 미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업종노조로서의 위상 강화

이 번 증권노조 투쟁의 큰 성과는 진정한 의미의 산별교섭을 위한 당사자로서 증권업협회의 지위와 역할을 부각시켰으며, 더 나아가 그동안 사용자단체성을 부정해오며 증권노조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해오던 증권업협회를 공식적인 대화창구로 끌어냈다는 점이다.

최 근 몇 년간 자율규제기관이라는 명목으로 증권산업에 대한 지배의 강도만 높여온 증권업협회가 증권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할 책임과 이유가 있음을 분명히 알려냈으며, 비록 증권업협회와의 산별 교섭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증권업협회와 대화채널이 자유로워지고 노사관계가 공식화된 것은 의미있는 결과이다. 이를 통해 증권산업에서 산별노조의 역할과 산별 교섭이 가지는 의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은 이번 투쟁의 분명한 성과이다. 특히 증권산업제도 개선과 관련한 사항을 협회가 최대한 반영한다는 내용의 합의는 그동안 증권노조가 산별 교섭의 내용으로 요구해왔던 증권산업제도 개선위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아직 미흡한 내용이기는 하나 증권업협회가 산별노조인 증권노조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또 한 이번 투쟁 과정에서 증권노조의 대표성이 강화된 점도 의미 있는 성과이다. 실제로 대협회 농성투쟁 중이던 지난 5월에는 동원증권노동조합이 산별 전환을 결의하였으며, 동양종합금융증권노동조합도 전환을 결의하였다. 6월에는 KGI증권노조가 증권노조 지부로 다시 정상화되었으며, 대한투자신탁증권노동조합과 겟모어증권은 각각 산별 전환 결정과 신규지부를 조직하여 증권노조에 가입하였다. 특히 대한투자신탁증권노조나 겟모어증권의 신규지부 결성은 증권노조의 조직확대 방향이 전환증권사(옛 투신증권사)와 미조직 사업장으로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증권노조는 대형사와 중소형사, 전환증권사, 외국계 증권사와 증권유관 등 증권업계 전 분야를 아우르게 되었다. 이러한 신규지부의 결성을 통하여 증권노조가 가지는 대표성을 강화시킨 점은 이번 투쟁의 적지 않은 성과이다.

그리고 증권노조의 농성 과정에서 드러난 증권업협회의 권위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를 적극 알려냄으로써 증권노동자들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집중시켰고, 사무직에선 유례없는 로비 강제퇴거, 노동자에겐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 조치 등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완강한 투쟁을 지켜냄으로써 증권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산업내의 현안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투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나아가 산별 교섭의 법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도 이번 투쟁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산별 교섭을 위한 제도 마련해야

98일에 걸친 농성투쟁 끝에 마무리된 이번 증권노조의 대협회투쟁은 우선 처음부터 증권업협회의 전향적인 태도 변경만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결국 증권업협회를 대화창구로 끌어내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증권업협회를 상대로 한 산별 교섭을 성사시키지 못한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증권노조의 농성투쟁에 대하여 그동안 증권업협회는 대화를 거부하고 법적 대응만 강구해왔으며 이에 대해 노조는 딱히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또한 증권노조가 산별 교섭에서 조직적 틀을 갖추고 있고, 이번 투쟁을 통하여 산별노조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정립하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투쟁과 활동, 인력과 재정의 집중, 현장조직력 강화가 충분하게 뒤따르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조직 내부의 사정으로 투쟁과 교섭을 적절하게 병행하지 못하고 교섭에 치중하고 있는 점도 한계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무엇보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투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증권노조의 대협회투쟁과 개별 지부들의 투쟁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대협회투쟁은 마무리되었지만 증권노조는 이번 투쟁에서의 경험과 성과를 곧 있을 경총과의 임단협 교섭과 연계해 산별 협약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증권노조는 작년에 통일단체협약과 임금인상율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올해 협약에는 비정규직 개선, 연대임금, 증권산업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며, 제도개선 관련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그리고 사측의 지점폐쇄 계획 철회와 부실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KGI증권지부의 투쟁이나, 7월14일 성과급과 관련한 교섭권을 경총에 위임해버린 사측에 반발하여 실질교섭 쟁취투쟁에 들어간 동원증권지부의 투쟁 등 지부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와 지원, 그리고 하반기 구조조정 저지투쟁 준비도 증권노조의 과제다. 나아가 민주노총, 사무금융노련 등 상급단체와 협력해 산별 교섭을 위한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정책 사업의 수행도 중요한 과제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