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아줌마' 이야기

노동사회

'밥 아줌마' 이야기

admin 0 3,733 2013.05.11 11:53

최 근 들어 교내 급식이 확산되면서 급식의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지만 정작 업무를 담당하는 영양사와 조리보조원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IMF 이후 그나마 정규직 채용이 없어지고 일용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근로조건 개선이 더욱 시급하다.

mk_04_2.jpg방학이 두렵다

아 침 8시40분에 출근해 영양사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11시30분까지 12명의 조리보조원이 1,800명의 점심을 준비한다. 1인당 150명 정도. 그래도 1인당 2백명이 넘는 학교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위 생모를 쓰고 팔에는 토씨를 입는다. 방수 앞치마로 앞을 두르고 면장갑을 낀 손에 고무장갑을 또 낀다. 마지막으로 장화를 신는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짧은 바지와 티셔츠는 상상할 수 없다. 습기가 많고 물을 만지기 때문에 습진에 걸리기 다반사이다. 이제 조리보조원 12명이 역할을 나눈다. 밥 2명, 튀김 2명, 무침 2명…. 30평 남짓한 곳에서 튀김솥 5개, 국솥 2개, 압력밥솥 3개가 열을 내면 주방 온도가 쉽게 40도를 넘는다. 땀에 절은 옷을 두 번 갈아입는다. '솥'이라고 해서 집에서 쓰는 솥을 상상하면 안 된다. 이 솥은 1미터 정도의 깊이에 넓은 솥이라 사람이 안에 들어가 청소를 해야 한다. 에어콘은 없다. 고작 선풍기 3대가 돌아갈 뿐이다. 여기저기서 끊이기 때문에 연기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올해 4대의 후드를 설치해 다행이다.

손 과 팔에 여기저기 흉터가 많다. 스팀솥에 살이 타고, 끓는 물에 화상을 입어서이다. 하지만 산재처리를 위한 절차가 복잡해 엄두도 못낸다. 그냥 내 돈으로 약을 사먹고 만다. 50인분의 밥을 들고, 갖은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기기 때문에 관절과 어깨 통증은 달고 산다.

이렇게 일해서 받는 임금은 하루 28,400원. 올해 600원이 오른다고 한다. 겨우 버스 한 번 탈 돈이다. 고용관계가 일용직이라며 방학 두 번, 학교에서 임의로 쉬는 테마 방학 등엔 임금이 없다. 그래서 1년 받는 임금은 얼추 6백2십만원 정도.

조리보조원으로 5년을 일했다. 1년마다 사직서 쓰고 다시 계약하고…. 방학이 다가오면 두렵다. 또 어디가서 일자리를 구해야 할까. 나이가 많아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미래가 없는 일용직

병 원에서 영양사로 11년을 근무하다가 학교 영양사로 자리를 옮겼다. 위탁에서 2년 직영에서 2년을 일했다. 위탁? 그거 한마디로 돈 벌기 위한 장사지 애들 영양 고려는 눈꼽만큼도 하지 않는다. 나도 고등학교 다니는 애가 있지만, 내 자식이 이걸 먹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서 8시가 되면 납품한 물건들을 검수한다. 온도, 규격, 무게, 제조연월일을 확인하고 조리보조원이 출근하면 12시까지 정신없이 식사를 준비한다. 조리보조원처럼 직접 식사를 준비하지 않지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조리보조원이 청소작업을 시작하면 서류작업에 들어간다. 처음 직영에서 근무할 때는 저녁 8시 이전에 가 본적이 없다. 공무원 시스템으로 운영되다보니 서류가 예상외로 많다. 식단작성부터 교육, 예산관리, 구매, 물품관리, 인사관리 및 각종 서류 등의 행정 업무까지 모두 영양사 한 사람이 처리한다. 기업체와 비교한다면 규모만 작다 뿐이지 기획예산, 인사관리, 총무, 안전관리 부서의 일이 한군데 집약되어 있는 말 그대로 전천후 직종이다.

5시에 퇴근하라고 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 그렇다고 시간외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영양사도 1999년부터 정규직 채용이 없어지고, 모두 일용직으로 채용되었다. 시간외수당도 주지 않는다. 영양사를 '밥 먹을 때만 필요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학교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 6개월이나 1년 일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본다. 행정실장이 나를 보는 눈에서 "넌 얼마나 일하다 갈거니?"라고 하는게 읽힌다.

일용직 영양사 친구 중에 이혼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 있는데 방학동안엔 백화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말이 좋아 고급인력이지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생각만 든다.

mk_05_1.jpg방학기간 중엔 임금지급 없어

위 의 두 가지 사례는 학교 내 비정규직 중 일용직 영양사와 조리보조원의 일상을 적은 것이다. 일용직 영양사와 조리보조원 근로실태의 문제점은 정규직과의 차별이다. 일용직 영양사로 4년째 일하고 있는 함윤정씨는 일당으로 3만6백원을 받는다. 연봉으로 계산하면 같은 근무년수 정규직의 40%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일용직 영양사와 조리보조원은 근로계약서에 근로계약을 1년 단위로 정하지 않고 방학을 제외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방학기간이 근로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근무를 하더라도 임금이 지급되지 않으며, 휴업수당, 연차휴가수당은 물론 퇴직금 계산시에도 제외되는 등 생존권이 위협받는 처지에 있다. 한편 근로계약서에는 방학이라 할 지라도 학교장의 요구가 있다면 근무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 모순이 있어 단지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편법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일용직 영양사와 조리보조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어려우면 연봉제나 월급제로 해서 방학동안 어느 정도의 생활비가 보장되게 해달라고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청에 요구하고 있지만, 일용직 영양사는 '일용잡급직'으로 되어 있어 불가능하다고 대답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학교 비정규직의 계약이 학교장의 재량으로 되어 있어 장기근속을 하고 있지만 학교장이 바뀌거나 재계약시기만 되면 고용불안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영양사의 경우 계약 도중에 정규직이 발령되어 올 경우 그 날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시·도 교육청별 직종별 임금 지급액도 다르다. 현재 각 학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각 시도 교육감이 일일 임금액과 연간지급일수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광주 교육청 소속 일용직 영양사들의 경우 공무원 기능직 10급 1호봉(연봉 1천5백만원)의 대우를 받지만, 경기도 교육청 소속 일용직은 30,600원, 서울은 31,870원이다. 조리보조원도 마찬가지로 교육청마다 틀려 서울은 28,300원, 부산 26,889원, 경남 24,00원이다.

정부가 비정규직 양산

학교 비정규직 처우의 심각성은 전적으로 정부가 조장한 측면이 크다. 영양사의 경우 IMF 이후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일용직으로 그 자리를 대체했으며, 2002년부터 지방마다 약간 명을 채용하고 있다. 또한 방학기간도 과거엔 근로계약기간 및 계속근로기간에 포함되어 퇴직금이 지급되어 왔으나 감사원이 방학기간중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퇴직금 지급을 문제삼으면서 교육청이 방학기간을 계속근로기간에서 제외하는 특약을 근로계약에 포함시켰다. 비정규직 차별을 솔선수범해서 근절해야 할 정부가 스스로 비정규직 차별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정부의 공무원 총정원제나 예산절감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용직 영양사와 조리보조원들은 이같은 학교내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화의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정규직화 이전에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임금인상, 연간 임금 지급일수 제한 폐지, 공휴일 임금지급, 휴가 및 복리후생에서 정규직과 동등하게 지급되어야 하고 실질적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용직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단지 "밥하는 아줌마"정도로 인식되는 영양사와 조리보조원에 대한 처우 개선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넘어 청소년의 건강과 영양을 책임지고 있는 그들의 직업에 대한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코앞의 비용을 계산하느라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봐야 할 때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