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나갑니다”

노동사회

“노가다 나갑니다”

admin 0 5,330 2013.05.11 11:52

제조업을 중심으로 주5일 근무제가 논의되는 등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 사회 여론이 주목하는 사업장의 노동조건들은 개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지만 힘도 없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겐 좀 더 나은 노동조건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일명 ‘노가다’로 통하는 건설 일용노동자.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주70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지만,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어떤 사회복지의 혜택도 받고 있지 못한 건설 일용노동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누가 임금 주는 지도 몰라

mk_02_9.jpg용접공으로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는 안형진 씨는 인천국제공항의 철도건설 현장에서 보름 전부터 일하고 있다. 보통 건설업의 기능공은 ‘인맥’을 통해서 일을 구하게 된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오야지(십장)나 동료로부터 일감을 제의 받고 일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능공과 달리 단순노무직은 용역회사를 통해 현장에 오는 경우가 많은 데 이들은 일당의 10%를 용역회사에 수수료로 제공해야 한다.

안형진 씨는 아직 자신의 임금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략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근로계약서 작성 때 사측이 제시한 일당이 8만원이었지만 요즘 평균도 안 되는 일당이라 더 요구를 했고, 일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대답을 받았다. “지금으로는 최소 9만원 이상은 줄 것 같은데, 간조날(월급날)가면 알 수 있겠죠”

안형진 씨처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보통 임금란은 공백으로 남겨두고 일을 하기도 한다. 노동자나 사용자나 일 하는 것을 보고 고용과 임금을 결정한다. 그나마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지도 십 년 정도밖에 안 된다. “오야지가 동네 아는 형이면 대충 일당 얼마 받는다고 얘기 듣고 일 하는 거죠.” 정부 부처가 발주한 규모가 큰 공사들을 제외한 소규모 민간 공사들은 근로계약서 작성은 얘기도 꺼내지 못한다. 

안형진 씨는 종합건설업체인 대림산업이 수주를 받은 공사장에 나간다. 대림산업이 전문시공업체인 동구산업에게 하청을 주고, 다시 하청을 거치고 십장을 거쳐 안형진 씨에게 일이 돌아온 것이다. 건설은 대략 토목, 건축, 설비로 나뉘는데 각각의 전문시공업체가 하청을 받고 다시 하청을 준다. 그는 4단계라는 것은 알지만, 업체들을 모두 기억 못한다. 전체 공사 구간의 1.6km만을 대림이 맡았고 나머지 구간을 맡은 업체는 현대건설, 금강종합건설, 포스코건설, 삼부토건, 동부건설, 삼환기업 등 여섯 군데이다. 이들이 다시 하청에 재하청을 주었으므로 지금 지하철 공사에는 수십 개의 업체가 들어와 공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공사 금액은 작아지고 최초 금액의 50%에 공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된다. 이러니 부실공사와 체불임금이 만연하고, 하다 못해 “노가다 한바(건설노동자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는 4천원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생긴다.

건설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고용관계를 복잡하게 하는 일차적 원인이다. 하도급이란 어떤 사람이 도급 맡은 일의 전부나 일부를 다시 다른 사람이 도급 맡는 일을 말하는데, 건설업의 경우 적으면 3~4단계, 많으면 7단계를 거쳐 일을 하게 된다. 7단계까지 거치면 누가 임금을 주는 지도 모를 지경에 이른다. 

전화하지마

건설 현장에 스무 살부터 뛰어들어 지금은 도장공으로 일하는 박철희 씨는 정부가 사람을 더 부려먹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 15일간 수원에서 유치원 공사를 한 그는 개인공사의 경우 오전 8시 넘어서 일을 하기도 하는데, 정부 공사만 유독 아침 7시에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끝나는 시간이 저녁 6시로 동일하기 때문에 정부 공사의 노동자들은 더욱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 보통 건설노동자들은 아침 6시30분에 출근, 아침을 먹고 7시에 일을 시작해서 저녁 6시에 일을 마친다. 어림잡아도 10시간은 넘는다. 물론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저녁 늦게 까지 일을 하거나, 휴일에도 일을 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선거 날 투표한지도 오래되었다. 

일일작업량은 십장이 와서 “오늘은 여기까지”하면 끝이다. 양이 많아도 대꾸도 안하고 죽어라 일해 저녁까지 할당량을 맞춘다. 업체의 기사가 작업 명령을 하면 대들기도 하지만, 오야지(십장)의 말은 절대적이다. 

일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말고 일의 강도가 강한 것도 이들이 토로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여름 같은 경우엔 점심 먹고 낮잠을 자지 않으면 못 버텨요.” 점심을 후딱 먹고 공사 현장 에 몸 가릴 그늘 하나 있으면 한숨 자야 한다. “한번은 자고 있는데 후배 녀석이 전화를 하더라고요. 정말 짜증이 나서 야, 전화하지마, 전화 끊어! 하고 그냥 잤어요.” 

“기아자동차에 공사가 있어 들어간 적이 있어요. 점심시간에 근처 풀밭에 누워 자려고 하는데, 기아자동차 인라인 동호회 사람들이 인라인 스케이팅을 땀을 뻘뻘 흘리며 타고 있더라고요. 난 점심시간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쉴까 궁리하는데…”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강도 속에서 일하지만 건설노동자들에게 ‘복지’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해도 너무 해요. 아침에 와서 작업복 갈아입을 곳이 없어요. 차안에서 갈아입기도 해요. 휴식을 취할 공간도 없고, 화장실, 씻을 곳도 따로 없어요.” 

“전 요즘 작업 끝나고 씻지 않고 집에 간지 십 년이 됐어요. 한번은 병원 근처에서 공사를 하다가 저녁에 씻을 곳이 없어서 병원에 들어가 씻었어요. 그랬더니 병원에서 나와 막 뭐라고 하더군요. 그 날 이후로는 그냥 시꺼먼 얼굴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그래요.” 위암판정을 받고 일을 쉬고 있는 정인구 씨의 행동은 사회적 차별에 대한 반감이다.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간이화장실 한번 사용하면 냄새가 배어 주위에 아무도 얼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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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4일 건설산업연맹 주최로 건설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신용대출은 안 됩니다”

7월24일 국가인원위에는 ‘건설 일용노동자 산재보험적용차별에 대한 진정서’가 접수되었다. 지난 1월 업무중 사고로 허리를 다친 이종만 씨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던 중,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적용 제외 사업에 해당하여 보상을 받지 못해 자살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산재보험에는 ‘2천만원 미만이나 100평 이하의 공사’가 제외되어 있어 이로 인해 보상을 받지 못한 사례였다. 

건설노동자의 경우 이처럼 법제도적 제약에 의해 산재 처리가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법을 악용해서 2천만원 미만으로 허위 신고하는 사례도 많아 법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태이다. “한번은 손목 인대가 끊어진 적이 있어요. 십장이 아는 사람이었는데, 자기 보험카드 주면서 처리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내가 조합원이라 남들 산재는 쫓아다니며 손 써 주지만 막상 제가 그렇게 되니까 산재 처리하기 쉽지 않더군요.” 그나마 산재보험은 공공근로복지제도 중에서 건설노동자들에게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제도이다. 이를 제외한 고용, 연금, 건강 보험의 경우, 고용보험은 ‘1월 미만 적용 제외 규정’을 빌미로 대부분의 경우 혜택을 받지 못하며 연금의 경우 사업장 적용이 없고 지역가입자로서도 적용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요? 그거 정말 웃겨요. 하루는 전화가 왔는데, 내가 소득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국민연금 대상자에서 제외된다고 얘기하더군요.” “직업을 물으면 노가다 나간다고 대답하는데, 연금 대상자가 될 수 있겠어요?” 박철희 씨나 안형진 씨나 연금을 내고 있지 않다. 

“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간 적이 있어요. 직원이 신원조회를 하더니 웃으면서 신용대출은 안 됩니다 하더군요. IMF 때 실업기금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노가다로 나오니까 신용대출이 안 된거죠. 회사 다니면 재적증명서 한 통이면 가능하던데….” 근로자로서의 신분증명이 어렵기 때문에 주택보조금 비과세, 신용보증, 저축장려금, 근로자 주택자금 융자, 학자금 지원 등은 엄두도 못 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게 현실이고 회사도 사회도 정부도 그렇게 사는 게 건설 일용직의 당연한 삶이라고 간주하는 듯하다. 

일용직 시장 공식화해야

2003년도 들어 건설 경기가 다시 침체되어 작년에 비해 일감이 줄어들고 있다. IMF 당시에는 요즘 일당의 절반을 받으며 일을 해야 했고, 그나마 일감이 있는 사람은 다행이었다. 운 좋게 정부의 실업자 대출을 받으면 다행이었고, 아니면 한 달에 4~5일을 일하며 살아야 했다. 이런 지경이니 이혼하는 경우도 많고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건설노동자들과 그 가족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경기에 따라 죽고 산다. 사회적 안전망은 그들에게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건설노동자들을 포함한 일용직 노동시장을 공식화하는 데 드는 행정비용이 과다하다며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취재 내내 스스로를 ‘노가다’ 인생, 밑바닥 인생이라고 칭하던 건설노동자들은 뭔가를 절실히 말하려는 모습이었다. 남들이 하는 8시간노동에 대한 동경, 빨간 날에 쉬어 봤으면 하는 열망, 직업 때문에 자존심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애비 직업으로 자식이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

순진한 생각이라고 비웃을지 모르나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직업에 따라 사회적 차별을 넘어 인간적 차별까지 만연한 사회에서 과연 ‘꿈’을 꾸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0호